ch7

What elegant historian would neglect a striking oppor-tunity for pointing out that his heroes did not foresee the history ofthe world, or even their own actions? For example, that Henry ofNavarre, when a Protestant baby, little thought of being a Catholicmonarch; or that Alfred the Great, when he measured his laboriousnights with burning candles, had no idea of future gentlemen measur-ing their idle days with watches. Here is a mine of truth, which, how-ever vigorously it may be worked, is likely to outlast our coal.



it is a narrow mindwhich cannot look at a subject from various points of view.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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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거란의 국호 중 한자로 ‘요’라고 표기한 것은 한족들이 위화감을 같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거란의 국호는 계속 ‘거란’이었다. - P24

석경당이 유주를 거란에 바친 사건은 중국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베이징이 북방 민족의 손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만리장성은 더 이상 병풍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중국 역사는 북방 민족과 중원의 대립에서 북방 민족의 우세로 기울기 시작했다. - P59

거란 통치자들은 북위 정권처럼 한화되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근본을 초원에 두고 전통과 정통성을 지키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백성의 2/3을 차지하는 한족문화도 부정하지 않았다. 거란 사회는 유목과 농경 그 사이 어디쯤에서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 P90

성종이 즉위한 10세기 말 거란은 송과 여전히 충돌하고 있었고, 고려와는 교류가 거의 끊어졌으며, 만주와 초원의 여진과 여러 부족들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고, 대하와도 원만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후 40여 년간 다원적 국제질서의 맹약체제를 구축하면서 1020년대 이후부터 12세기 초까지 1세기 동안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누렸다. 거란은 한족 중심의 조공체제와 천하관의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송, 대하, 고려 등 이웃 국가들과 공존을 추구하였다. - P129

거란 제국과 주변 국가들 사이에 발생한 전쟁, 타협, 그리고 평화 관계는 조공체제의 형식이 아니라 당시 다원적 국제질서와 세력 균형의 틀에서 이해해야 하며, 거란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연구는 ’중국사에서의 요대‘가 아니라 아닌 거란 중심적 시각에서의 접근을 요한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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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mortals, men and women, devour many a disappointment between breakfast and dinnertime, keep back the tears and look alittle pale about the lips, and in answer to inquiries say, "Oh, noth-ing!" Pride helps us, and pride is not a bad thing when it only urges us to hide our own hurts-not to hurt others.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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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중국의 근대사는 두 개의 커다란 드라마로 구성되는데, 하나는 국제 교역과 전쟁을 무기로 팽창을 거듭해온 서구 문명과 농업과 관료주의를 무기로 이에 끈질기게 저항한 중국 문명 사이의 문화적 충돌이며, 이러한 충돌의 와중에서 미증유의혁명을 거치며 이루어진 중국의 전면적 변화가 다른 하나이다. - P24

중국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으며 동질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은 중국적 생활양식이 특이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데서도 기인했는데, 그것은 역사의 여명기 이전 신석기 시대부터 부단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었다. 정착촌을 이루어 사는 가족 집단이 괭이로 경작하는 농경법은 BC 5000년경 황허의 지류인 웨이수이 유 - P37

역(즉 시안 부근의 반포 마을과 같은 지역)에서 이미 출현했다.
전사-통치자들의 간헐적인 침입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의 촌락 생활은외관상 사회적·기술적으로 갑작스런 변화에 의해 중단되는 일 없이이때부터 지속성을 유지한 채 꾸준히 발전해온 것 같다. 촌락 공동체사이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것 또한 오랜 전통을 지닌 중국 지배층의 특별한 관심사였다. 왕조는 계속 바뀌었지만 이들 지배층은 점차 복잡한 관료주의 통치 조직을 창조해냈다. 1800년 이후까지 이처럼 농업-관료주의에 기반한 중국 제국은 유럽의 상업적 군사적 사회보다 훨씬 오래된 그리고 그것과는 전혀 다른 사회 질서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중국의 농업 공동체에서는 폭력의 사용을 포함해 개인의 용기와 적극적인 태도가 해상 활동, 전쟁, 탐험, 해외 이민 등을 추구하는 유럽 사회에서와는 달리 그리 중시되지 않았다. - P38

전통 중국은 지방 차원에서는 확대 가족, 즉 가문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데, 다름 아니라 가문은 혈연관계에 관한 유교 경전의 가르침이 요구하는 위계적 역할 구조를지탱하는 주요한 토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든 남편이든 또는 신사든관리든 유교는 윗사람에 대한 복종을 가르쳤다. 각종 정치적 통제 수단을 가진 관료 집단은 통치자를 대신하는 존재로서 사람들을 통치자에게 복종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관료들은 일반 서민들의 삶 속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친족 구조가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근대 혁명 시기에 그러한 균형이 무너져 관료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고 가족친족 구조는 크게 파괴되었다. 그러나 1800년대 초의 청조 국가는 구체제의 기반 위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 P62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 속에는 천자가 천하를 통치한다 ㅡ 다시 그렇기 때문에 천자가 비한족 왕조들의 통치를 승인할 수있었다는 고대의 이념이 보존되어 있었다. 17세기에 진행된 만주족의 중국 정복은 13세기에 있었던 몽골족의 중국 정복이라는 선례로 - P75

인해 한층 더 용이해진 측면도 없지 않다. 그들 모두 계속하여 천하를다스리는 천자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정부의 성격을 한족이 계속 중국을 통치했을 경우보다 훨씬 더 전제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민족주의적 성향은 약화시켰다. 물론전제통치의 강화가 전적으로 이러한 논리만으로 전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전제주의는 그저 행정 수단과통제력의 진보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합된 소수 민족 집단으로서의 정복왕조는 연장자 우선라는 중국적 관례가 아니라 무용과 개인의 역량을 따르는 부족적 관습에따라 지도자를 선택했다. 따라서 정복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력적인 지도자들을 갖게 되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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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목요일부터 3박 4일 동안 대만 가오슝에 다녀왔다. 대만은 보통 11월에서 3월이 여행하기 좋은 때라 이번에는 여행하기 좋겠다 생각했다. 한국이 추워서 따뜻한 남쪽으로 가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일치하지 않았다. 목요일은 거의 해가 질 때쯤 도착해서 날씨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금, 토요일은 연이어 날이 흐리고 바람이 쌩쌩 불어 15도 정도였으나 추웠다. 현지인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 나왔더라.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해가 떠서 원래의 기온으로 복귀했다. 만약 돌아가는 날이 아니었다면 온종일 채워서 쨍한 날씨를 즐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렇지만 여행 내내 돌아다니면서 사람/차/도시 구경, 쇼핑, 먹는 것을 잘 즐기고 돌아왔다.


이번에 가면서 평소 공부하던 중국어를 얼마나 알아듣고 사용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역시 막상 가서 들으니 현지인들의 말이 너무 빨라서 대부분은 들리지 않았지만 간단한 문장이 들릴 때는 기쁨이 일었다. 이번에는 왠만하면 영어를 안 써보자 생각해서 거의 안 썼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물론 말할 때 어떤 경우는 단어(명사)만 말하고 어떤 경우는 동사만 말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


여행지에 가서 오래 있다 보면 한국 음식이 생각날 수는 있겠으나 나는 가능하면 현지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편이다. 호텔 조식을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편하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급하게 잡은 스케줄이였고 항공+호텔 상품에 껴 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먹게 되었다. 그치만 3일 내내 조식은 허용할 수 없어서 나는 과감히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산책을 하다가 지도 검색에 뜬 아침 식당을 찾아갔다. 노상에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앉아 먹을 수도 있었으나 쌀쌀하여 추울 것 같아 포장을 했다. 호텔에 들어와 먹는데 감동의 물결이... 내가 원한 맛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나 같이 맛있다니! 전병이며 계란 후라이며 주먹밥이며 따끈한 우유까지 완벽했다. 옆지기는 몇 점 집어먹기는 했는데 딱히 끌려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타이베이에서는 음식을 괜찮게 먹었었는데 이번에는 계속 먹고 나서 탈이 나는지 힘들어했다. 나는 멀쩡했는데 쩝! 그가 말하길 ˝당신은 전생에 중국인이었나봐!˝ 아무튼 나는 고수만 못 먹을 뿐 그 밖의 향신료나 음식 등은 잘 먹는 편인 것 같다.



첫 날 저녁은 야시장에서, 2일 째 저녁은 둘 다 너무 피곤한 상태라 점심 겸 저녁으로 대충 끼니를 해결했다. 3일 째 저녁은 현지 식당에 가서 제대로 먹어보자 했다. 1인 1냄비로 나오는 전골 훠궈 집인데 다양한 재료에 소스도 직접 제조해서 취향껏 먹을 수 있고 국물도 소고기, 돼지고기 육수를 고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돼지고기 육수, 옆지기는 소고기 육수를 선택했고 배가 고팠는지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돌진! 아무튼 둘 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물론 편의점도 브랜드별로 가서 구경하며 먹을 것을 샀다. 옆지기는 이곳을 구경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ㅎㅎㅎ 어찌나 다양한 음식들이 있는지 구경하는 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기도 했다.


욕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구경하며 발을 혹사시키는 여행을 선호하는 나는 놀멍 쉬멍 스타일의 옆지기와는 완전히 다른 여행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신혼 여행 때 부딪힌 적이 있다. 이후 같이 가는 여행인을 배려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도 최대한 옆지기의 발걸음에 맞춰 여행하려고 노력했다.


돌아오니 3월이 되었다. 며칠 동안 책 한 줄 읽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직장인&독서인의 생활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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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4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04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4-03-04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화가님도 여행가서는 책을 못읽으시는군요! ㅋㅋㅋㅋㅋ 챙겨는 가셨나요? 챙겨가도 여행가면 안읽게되는데 매번 챙겨갔던 저 ㅋㅋㅋㅋ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신 것 같아 좋네요!! 영어 없이 거의 중국어로만 의사소통 하고 오신 거 넘 멋집니다...🥹

잠자냥 2024-03-04 20:08   좋아요 1 | URL
여행 안 가잖아….? 🙄

은오 2024-03-04 20:10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이랑 손잡고 가려고 계획짜고 있습니다~!!

잠자냥 2024-03-04 20:23   좋아요 0 | URL
잘 다녀오세요…

거리의화가 2024-03-04 20:23   좋아요 0 | URL
책 아예 안 가져갔어요^^ 어차피 안 읽는 것을 알기에^^ 놀 땐 놀아야죠! 제 지론입니다ㅋㅋㅋ
여행자들의 어눌한 발음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것이 신기했네요.

희선 2024-03-05 0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박 4일 조금 짧았을지 몰라도 즐거운 시간 보내신 듯하네요 거기 음식이 잘 맞았다니 그게 가장 좋았겠습니다 음식이 안 맞으면 지내기 힘들 테니... 거리의화가 님은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시는군요 누군가와 함께 가면 맞추기도 해야겠습니다 그것도 괜찮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3-05 09:15   좋아요 1 | URL
지금까지 간 곳들 중에서는 음식 안 맞는 경우는 없었어요. 평소에도 잘 걸어다니지만 아무래도 여행 가면 더 많이 보고 와야 한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옆지기와 함께 여행가게 된 이후에는 그 사람 발에 무리가 갈까봐 템포를 맞춰 다니고 있어요. 희선 님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4-03-05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올리신 사진 보니 저도 대만 가면 아주 맛있게 먹고 다닐 것 같은 느낌적 느낌입니다.
다시 일상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리 또 잘 지내 봅시다!!

거리의화가 2024-03-05 09:16   좋아요 1 | URL
ㅎㅎ 다락방 님은 단연컨대 음식 잘 맞으실 것 같아요!^^ 짧아서 아쉬운 여행이지만 직장인이니 또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겠죠.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4-03-05 17:30   좋아요 0 | URL
단언컨대….🤣🤣

다락방 2024-03-07 09:40   좋아요 0 | URL
제가 가급적 빨리 짬을 내어 대만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3-05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사진을 보니 많은 곳을 즐겁게 여행하셨구나 싶어요. 음식 사진도 맛있어 보이고요. 하늘도 멋집니다^^

거리의화가 2024-03-05 17:29   좋아요 0 | URL
마지막에 연달아 올린 하늘 사진들은 마지막날 아침에 혼자 산책하며 찍은 것들이에요. 그날은 날이 무척 맑았고 좋았어요.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단발머리 2024-03-06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먹거리 사진에 대만이 다시 보이네요. ㅎㅎㅎ 거리의 화가님의 전담마크 하늘 사진도 멋지구요. 하지만 제일 좋았던 건 새우사진이었음을 꼭 밝히고 싶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놀멍쉬멍 스타일의 저는 거리의화가님 스타일의 여행자가 곁에 있어야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맛있는 거 얻어(?)먹는것 같아요. 그런점에서 싸우지만 않는다면 천생연분 아닐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4-03-06 17:20   좋아요 1 | URL
새우는 야시장에 가서 먹은 것입니다. 사실 그것만 먹지는 않았는데 첫날이라 배고파서 허겁지겁 먹느라 나중에 보니 저것만 찍었더라구요?ㅋㅋ
사실 저는 먹는 것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입은 아니고요. 박물관이나 미술관, 현지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데 옆지기는 반대로 먹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돌아다니는 걸 싫어해서 여행 스타일은 완전 반대입니다. 옆지기 덕분에 저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달까요. 지금은 서로의 스타일을 아니까 싸우기 전까지 안 가는 것 같아요!ㅋㅋ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