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날이 오락가락하더니 오늘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을 보니 울적했던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나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구나 싶었다. 


지난 주 일요일에 산책 나갔다가 아파트 근처에서 발견한 꽃나무들. 참 화사하니 이뻤다!



지지난주에 마트 근처에 갔다가 생선 구이 정식 집을 갔다.

사진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요사이 밖에서 먹은 밥 중 가격 대비 가장 만족스러웠다. 옆지기도 엄지척을 했다. 인당 14,000원인데 남는 게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반찬도 정갈하니 괜찮았고...

고등어랑 삼치를 하나씩 시켰는데 진짜 배부르게 잘 먹었다.


이건 지난 주말에 먹은 삼겹살 집. 원래 가려고 했던 삼겹살 집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다른 곳으로 갔다. 

개인적으로 웨이팅은 못하겠더라. 아무리 맛집이더라도.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이제 물가가 너무 올라서 밖에서 먹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그래도 반찬들이 많아서 고기 3인분으로 끝났으니 망정이지^^;;;



낮에 산책을 하며 찍었다. 올 봄 산수유를 놓치지 않고 지나가서 다행이다.





현재 이런 책들을 읽고 있다.



세계철학사 1권은 고대, 중세 시기 지중해 세계를 중심으로 나타난 철학자들을 다룬다.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로고스(이성)'에 대한 개념은 서양 철학의 원형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의 사상은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 그 기반은 같다고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학문 분류는 오늘날에도 그 기반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라 놀라울 따름이었다. 반면 생물학적인 성과 가부장제에 기반한 역할 정의는 역시 읽다 보면 갑갑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철학자들은 오랜만에 읽어도 재밌었는데 '데모크리토스' 이외에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일원론이 아닌 다원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던 것이 아무래도 내게 공명을 주는 것 같다. 

플라톤 철학 전체를 관류하는 문제의식은 ‘가짜‘에 대한 경계심과 그 반면으로서 진짜를 가려내려는 열정이었다. 그의 사유는 가짜가 판을 치는 그리고 오히려 진짜는 핍박받는 현실에 대한 의구심과 환멸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유는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려는, 사물들에 상이한 존재론적 위상을 부여함으로써, 달리 말해 사물들을 존재론적 위계(ontological hierarchy)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진품을 가려내려는 열망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의 사유 전체는 모방(‘미메시스‘) 개념에 의해 추동되고 있으며, 모든 구별, 평가의 기준으로서 제시된 것이 바로 이데아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데아를 얼마나 잘 모방하고 있는가가 그 사물의 존재론적 위상을 판별할 수 있게해주는 기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 보기에 사람들이 사물들의 실재, 진상(眞相)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감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 P341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은 질료 및 시간과 떼어서는 의미를 상실하는, 플라톤의 형상과 성격을 달리하는 실체이다. 그러나 현실태로서의 형상이 잠재태로서의 질료를 이끌어가는 목적론적 구도는 그가 결국 플라톤을 잇고 있다는 점을 다시한 번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형상과 질료가 오로지 형식적으로만 구분되는 이원적 일원의 세계이며, 질료의 잠재성을 형상이 이끌어가는 목적론적 세계이다. 그리고 이런 존재론은 무엇보다 생명체들의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확인된다. 그의 존재론은 근본적으로는 플라톤을 잇고 있지만, 보다 경험주의적이고 유기체주의적인 색채를 통해서 새롭게 재구성된 플라톤주의인 것이다. - P440


자연철학들의 기본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세계를 이루고 있는 실재는 영원하고 자기동일적이고 순수한 존재‘들‘이다.

2. 이 존재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관계 맺음‘으로써 무/부정 및 타자성을 매개해 운동함으로써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현상세계가 성립한다. - P148


엠페도클레스는 다원론을 시도한다. 영원한 것이 단지 하나(일자)가 아니라 넷이 된다. 다른 모든 것들은 이 넷으로부터 나오고 넷으로 돌아가지만, 이 넷은 영원한 동일성이다. - P150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은 정신이라는 것이 따로 설정되고 그것이 이 우주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 P173

데모크리토스는 아르케로서 원자들(atomata)을 제시한다. 각각의 원자는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와 같지만, 원자들‘은 다자를 형성하며 또 운동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사유 또한 포스트-파르메니데스적 사유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을 "어떤 것(to den)", "꽉 찬 것(to naston)", "있는 것(toon)" 등으로 부른다. 그리고 일자와 마찬가지로 이 원자들도 우리의 감각을 벗어나는 존재들이다. - P177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1~2부는 많이 어려워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었는데 그나마 3부는 기존에 읽었던 내용들이 많아서 역시 이해하기가 더 쉬웠던 것 같다. 페미니즘의 역사, 사이보그에 대한 이야기, 맥락적으로 세계를 보는 방법에 대해서까지 읽었다. 이제 어느덧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있다.


‘우리‘는 픽션 읽기라고 일컬어지는 고도로 정치적인 실천을 통해 생산된 포함과 배제, 동일시와 분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구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읽기 자체 속에서 생산된다. 모든 읽기는 잘못된 읽기이자, 다시 읽기이며, 편파적인 읽기이자 강제적 읽기이며 상상된 텍스트의 읽기이기도 하다. 텍스트는 원래부터 궁극적으로 그냥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세계가 원래부터 무너져 있었던 것처럼, 텍스트는 이미 언제나 서로 경합하는 실천과 희망으로 뒤엉켜 있다. - P224


인종, 젠더, 자본은 전체와 부분에 대한 사이보그 이론을 요청한다. 사이보그에게는 총체적 이론을 생산해 내려는 충동이 없지만, 경계 및 경계의 구성과 해체에 대한 개인적 경험은 있다. 파급력 있는 행위를 위해, 과학기술에 대한 하나의 관점과 지배의 정보과학에 도전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할 정치적 언어가 되기를 기다리는 신화 체계가 있는 것이다! - P327


상황적 지식은 지식의 대상이 텅빈 스크린, 토대, 자원이 아니라 행위자이자 행동가로서 형상화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객관적인‘ 지식에 실린 고유한 행위자성과 저자성으로부터 변증법을 차단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형상화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요구한다. - P359


페미니즘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은 이제 좀 읽을 때가 된 것 같다. 특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엥겔스는 계급과 국가 사이의 매개적인 구성체로서 가족을 최우선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성별의 구분을 분리하여 고려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적대적인 구분에 포함시켰다[카워드(Coward), 1983]‘ 가족 형태의역사적 다양성과 여성의 종속이라는 문제의 중요성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연스러운 이성애를 토대로했기 때문에 섹스와 젠더를 역사화할 수 없었다. - P238

 



그리고 읽고 있는 원서들.



도스토옙스키 전집도 이어서 읽어야 하는데... NOON 세트를 더 빨리 읽을 것 같았지만 역시나 동시다발적으로 읽는 책들이 많다보니 쉽지가 않구나. NOON 세트는 도스토옙스키의 백야와 추리소설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눈 깜짝할 새 3월 말이 다 되어 간다. 주말에 책을 몰아 읽기는 하는데 쑥쑥 읽히지는 않아서 간혹 졸기도 하고 안되겠다 싶으면 눈도 붙이고, 드라마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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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27 0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밖에 나갔는데 하늘이 맑더군요 구름도 떠다니고... 오랜만에 맑은 하늘 본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매화 산수유는 핀 건 보고 목련은 조금 핀 것과 활짝 핀 거 다 봤어요 꽃이 피니 조금 밝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삼월 마지막 주네요 이번주가 가면 사월이라니... 거리의화가 님 삼월 남은 날 동안 읽고 싶은 책 자주 만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4-03-27 16:29   좋아요 1 | URL
오늘도 다행히 날이 맑네요^^ 여기는 이제 막 목련과 개나리가 올라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매화는 만개를 지나서 꺾였고 산수유는 만개더군요^^ 말씀처럼 꽃이 피니 봄 느낌이 나는 것 같아요.
희선님 일교차가 큰데 건강 관리 잘하시고 독서 생활도 즐겁게 하시길요!

새파랑 2024-03-27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를 응원합니다~!! 요새 물가가 비싸서 밥 한번 먹는데 최소 만원이더라구요. 쫌만 보태면 책이 한권인디... 한끼를 굶으면 책 한권을 살 수 있다~!!

요새 꽃들 피는걸 보니 봄이 온게 실감이 납니다 ㅋ

거리의화가 2024-03-27 16:31   좋아요 1 | URL
ㅎㅎ 네^^ 아무래도 상반기에 다 읽기는 힘들 것 같지만 어쨌든 전집은 꼭 올해 안에 읽으려고 합니다. 너무 미루면 전집에게 미안해서라도?ㅋㅋ
어쩌면 책 값이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소비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뭐든 집기가 무서워요ㅠㅠ 마트 한 번 가면 30만원은 우습습니다.
일교차는 크지만 따뜻한 봄 햇살과 꽃들을 보니 봄 기운이 느껴지죠? 이 봄 만끽하시길!

그레이스 2024-04-04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영어, 중국어, 역사, 사상, 문학이 총망라된 리스트네요!

거리의화가 2024-04-04 11:05   좋아요 1 | URL
작년보다 좀 더 다양하게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레이스님 감사해요^^
 

9장

객관적 시각이야말로 모든 시각적 실천의 생성력에 대한 책임의 문제를 종결시킨다기보다 다시 촉발한다. 부분적 시점은 유망한 괴물과 파괴적 괴물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 객관성에 관한 모든 서구의 문화적 서사들은, 페미니스트 과학의 문제에 각인되어 있는 우리가 정신과 몸, 거리 유지와 책임감이라고 부르는 것과 맺는 관계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레고리다. 페미니스트 객관성은 한정된 위치(location)와 상황적 지식에 관한 것이지, 주체와 대상의 초월과 분「열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보는 방법을 통해배운 것에 대해 책임질 수 있을 것이다. - P343

상대주의는 어디에도 없으면서도 동시에모든 곳에 똑같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입장의 ‘동등성‘은 책임과비판적 탐구를 부인하는 것이다. 상대주의는 객관성 이데올로기에 나타난 총체화와 완벽한 쌍둥이 거울이다. 상대주의와 총체화모두 위치, 체현, 부분적 시점과 관련된 이해관계를 부인한다. 양자 모두 잘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상대주의와 총체화는 동등하고 완벽하게 모든 곳에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신적 요술‘이 약속하는 시각이자 동시에 대문자 과학을 둘러싼수사학에 공통된 신화다. 하지만 다름 아닌 이 부분적 시점의 정치학과 인식론이야말로 꾸준히 지속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구의 가능성이 자리한 곳이다. - P346

무엇이 세계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인가에 관한 투쟁은 보는 방법에 관한 투쟁이다. 그것은 시각의조건들인 식민주의에서 과학의 문제, 절멸주의(exterminism)에서과학의 문제(소풀리스, 1988) 그리고 페미니즘에서 과학의 문제등에 관한 투쟁이다.
정치적으로 다양한 경험주의, 환원주의 혹은 다른 과학적 권위를 가진 해석에 대한 공격에 가담하는 문제는 상대주의적으로접근하기보다 위치로 보아야 한다. - P351

상황적 지식은 지식의 대상이 텅빈 스크린, 토대, 자원이 아니라 행위자이자 행동가로서 형상화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객관적인‘ 지식에 실린 고유한 행위자성과 저자성으로부터 변증법을 차단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주인과노예의 관계로 형상화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요구한다. - P359

객관성은 탈참여(dis-engagement)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호적이고 그리고 대체로 불공평한 구조화에 관한 것이며, 세계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우리는 영원히 죽을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말하자면 죽음이라는 ‘마지막‘ 통제는 불가능하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분명하고 뚜렷한 아이디어를 가지지 못한다. 다양하게 투쟁하는 생물학적인 몸은 생물학적인 연구조사와 글쓰기, 의료사업, 다른 사업 실천, 테크놀로지, 즉 이장에서 은유로 열거했던 시각화 기술의 교차로에서 출현한다. 하지만 교차로의 마디로 기꺼이 들어가는 것은 생생한 언어로 들어가는 것에 비견된다. 그런 언어는 문학적 가치의 생산에 적극적으로얽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재치 있는 행위자와 행동가로서코요테와 프로테우스처럼 변화무쌍한 세계의 체현으로 얽혀들어가는 것이다.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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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종교/신학이 지배하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위계(位階=hierarchy)의 사회이다. 초월적 신들과 그들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은 사제들 및 귀족들,
그리고 평민들, 그 아래에 천민들이 피라미드를 형성한다. 지중해세계에종교는 항상 존재해왔지만, 우리는 로마 제국에서 이런 위계가 점차 두드러지고 또 철학사의 흐름과 일정 대목에서 교차함을 볼 수 있다.
AD 2세기 서구사상사에는 또 한 번의 거대한 변환이 도래한다. 이흐름은 ‘스토아주의에서 플라톤주의로‘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플라톤주의는 사실상 철저히 종교적인 플라톤주의였다. - P587

지중해세계에서는 여러 형태의 일신교들이 명멸했지만, 후대의 역사를 염두에 둔다면 유대교의 일신교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유일신에 대한 표상은 매우 작은 종족이었던 유대의 문화맥락에서 점차 확대되어 후에는 지중해세계 전반, 적어도 그 절반으로퍼져나갔다. 그러나 이런 확장은 유대교 자체로써가 아니라 그것이 기독교의 형태로 바뀜으로써 가능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P650

기독교 서사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데에는 그것이 담고 있는 이런비극의 정조(情)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중에게는 논리적 설득력이나 학문적 사실성, 엄밀성보다는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 (현대식으로 말해 ‘스토리텔링‘)나 감각적인 이미지 등이 더 호소력 있는 법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신학적 해석은 이런 비극성과 이율배반적 관계를 형성했다. 만일 이 모두가 신의 각본이라면, 즉 예수가 많은 고난을 겪는다해도 결국 그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것이라면, 역사적 예수의 진실성과 감동은 현저하게 증발해버릴 수밖에없는 것이다. 예수의 행적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위대한 기획에의해 연출된 것일 뿐, 인간인 우리가 그것을 경모하고 사랑하고 그처럼되기를 즉 예수-되기(becoming-Jesus)를 희구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 P652

사건이기를 그쳐버리는 것이다. 기독교의 정통은 그노시스학파의 SF와도 같은 예수 해석을 거부하고 보다 역사성 있는 예수상을 수립했지만,
그 상은 결국 역사적 진실성이 휘발된 신학적 예수상에 불과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이런 예수상이 아니라 깨달음과 고난과 희망으로 가득 찬, 우리 자신이 그것 ‘되기‘를 꿈꿀 수 있는 그런 예수상이아닐까.

서구에서 종교는 특정한 한 심급(審級)이지만, 이슬람세계에서 이슬람교는 모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에의해 기획되고 모색되고 성취된 것이다. 예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인물이지만, 무함마드는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기독교가 예수의 삶에대한 추후적인 음미를 통해 그의 사후에 조금씩 형성되어간 것이라면, 이슬람교는 무함마드가 그의 생전에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알라와 무함마드의 거리는 야훼와예수의 거리보다는 물론이고 야훼와 모세의 거리에 비해서도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크다. 이슬람교에서 무함마드는 어디까지나 ‘예언자‘일 뿐이다. "신의 아들인 예수와는 격차가 큰 셈이다. - P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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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이타가키 류타 지음, 고영진.임경화 옮김 / 푸른역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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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작년부터 언어, 개념, 학문 체계와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 여러 권의 책을 읽다 보면 겹치는 영역이 생기고 그 때는 이해되지 않고 넘겼던 것들이 이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짜릿함과 성장의 기쁨이 아닐까. 


거의 1년 만에 독서 모임을 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북한의 언어학자 김수경이라는 인물을 파헤친다. 개인의 역사이자 평전이지만 조선어학 이론을 확인할 수도 있다. 서술 방식이 독특한데 역사와 이론을 교차로 배치하여 낯선 인물과 역사, 그의 이론 중 끌리는 부분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두 달 전쯤 한국어 맞춤법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 느낀 바가 있었다. 한글 맞춤법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은 했으나 생각 이상으로 훨씬 복잡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내가 잘못 써온 맞춤법을 마주하며 쉴 새 없이 머리에 돌 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하물며 현재 북한에서 사용 중인 조선어는 어떨까.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고 봐야 했다.


'우리말' 개념은 그것을 상대화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 단어 어디에도 국가를 지시하는 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말'에는 분단 상황을 일단 괄호 안에 넣어 탈분단적인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겨레말'과 달리,'우리말'에는 민족이나 국민을 나타내는 요소조차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의 설정에 따라 자유자재로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다. 

여기에 일본에 사는 나와 같은 일본인이 이 언어를 '우리말'이라고 부르는 것의 의의가 있다. 내가 '우리말'이라고 하는 순간, 위화감을 느끼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 뭔가 '이물질' 내지 '침입자'가 들어온 듯한 감각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위화감도 모두 포함하여 '우리말' 개념의 가능성에 걸고 싶다. 장뤼크 낭시는 동질성과 단일성이 아니라 오히려 타자의 존재와 복수성에서 공동성을 사고하려 했다. 낭시에 따르면, 전혀 공통성이 없는 특이한 존재들 간에 있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며,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특이한 존재가 형성된다. - P6~7

'우리말'과 '우리 나라'는 서로 다른 범위를 갖고 있다. '우리 나라'는 영토와 주권이 단일한 공간이라면 '우리말'은 그보다 더 다층적이고 넓은 범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김수경이라는 낯선 인물, 낯선 이론을 만났다. 서두에서 깔기는 했지만 조선어의 이론 부분은 역시 어려웠다. 그러나 이론이 어려워서 힘들다 싶으면 그의 흥미로운 역사를 풀어 놓기 때문에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저자인 이타가키 류타는 문화인류학자인데 전작에서 식민지 시기 한국의 상주라는 공간의 지역사를 훓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하필 김수경이라는 개인에게 꽂혔는가 궁금했다. 2009년 연구년을 맞아 보스턴 근교에 머물렀던 저자는 2010년 북미에 거주하는 한반도 북부 출신들과 인터뷰 조사를 위해 캐나다의 토론토를 방문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식사 자리에서 임혜영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가 북한에서 언어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임혜영은 당시 토론토 대학에서 외국어 교원으로 근무 중이었고 아버지는 짐작하겠지만 김수경이다. 그 때는 김수경이라는 학자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교토에 돌아왔다가 주변 연구자들에 의해 그가 북한 언어학의 기초를 닦은 학자임을 알게 된다. 이후 그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본격적인 자료 조사를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 이 책의 집필의 출발점이 되었다. 


김수경은 1934년 경성제대 예과를 만 15세에 입학하고 1937년 만 18세의 나이에 경성제대 법문학부에 진학했다. 그는 법문학부에서 철학과를 선택했는데 당시 학부에 언어학 강좌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전공이었다고(그렇지만 그 와중에 순수철학을 공부했다는 게 놀랍다). 김수경은 진작부터 언어학에 관심이 있어서 고바야시 히데오(소쉬르의 이론을 번역함) 연구실을 찾아간다. 그는 일본어학, 조선어학를 넘어선 일반언어학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1940년 도쿄제대 문학부 대학원에 입학하여 4년 간 재학하면서 조선어학자인 이희승을 만나 친하게 지냈고, 또 이남재와 결혼을 한다. 1944년 자퇴를 하는데 조선어학 교수인 오구라 신페의 퇴직, 아내의 임신, 막바지에 이른 전쟁으로 학도병으로 출진해야 하는 상황 등의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 그리고 그는 언어 천재였다고 한다. 무려 9개국어를 했다고. 그가 언어학에 관심이 있었던 이유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해방 후, 김수경은 경성대학 자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좌파가 주도한 자치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치위원회 내부에서는 김수경을 조교수로 언어학 강좌를 맡기로 내정했으나 당연히 미군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실제로는 이희승이 맡았다고). 그는 11월 30일자로 경성대학 자치위원회 위원을 사임했다. 이처럼 그는 해방 후에도 좌파 지식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국어국문화보급회, 조선언어학회에 참여하여 언어학 활동은 계속 이어갔다. 북한에서 김일성대학의 창립이 결정될 무렵 남한은 서울대학교 설립 계획이 추진된다. 그는 1946년 5월, 경성제대 동기생인 박시형의 보증으로 조선공산당에 입당했고, 김석형, 박시형과 함께 8월 17일 월북했다.


조선어의 문자체계의 터를 잡는 역할을 한 것은 김두봉이다. 김두봉은 한자의 폐지를 실시하고, 풀어쓰기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는 1948년 조선어 신철자법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데 여기에 김수경도 함께 참여했다. ‘조선어 신철자법’에서 핵심적인 것은 두음법칙의 폐기, 절음부의 도입, 신6자모 도입이었다. ‘토’의 개념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접사, 의미 중 문법상 의미를 가지는 것만 따로 분류한 말이다. 나는 이 중 풀어쓰기와 두음의 고정 표기, ‘토’의 개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다만 풀어쓰기는 나중에 사용상의 문제로 버려지게 된다. 생각해보라. ‘감’을 한 글자로 표기할 수 있는 것을 ‘ㄱㅏㅁ’ 이렇게 표현하면 글자 수도 3개가 되고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김수경은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세기가 되면,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이 주류를 잡게 되고 구조주의가 유행한다. 문헌학으로 대표되는 개별화와 구조언어학으로 대표되는 일반화는 근대 언어학의 지향성이 두 축이 되었다. 김수경 언어학의 초기 업적에는 ① 구조언어학, 나아가서는 언어철학 등 좀 더 보편적인 언어 문제에 대한 지향성, ② 조선어에 관한 개별 구체적인 역사언어학에 대한 지향성, 그리고 그 양자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해방 후, 특히 월북 후에는 언어가 '이래야 한다'는 표준을 책정하려는 언어학, 즉 ③ 규범의 창출이라는 실천적인 언어학이 더해진다(P86~87). 


스탈린은 “민족이란, 언어, 지역, 경제 생활 및 문화의 공통성에 나타나는 심리 상태의 공통성을 기초로 생겨난, 역사적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견고한 공동체이다”고 할 정도로 언어의 중요성을 알았다. 이 구조를 실현한 언어학자가 니콜라이 마르와 그 학파였다. 마르학파는 스탈린이 최고지도자 지위에 있을 때 활약했는데 김수경이 여기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향한 조선어학은 규범화, 구조화에 바탕한 것으로 국제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민족적 자주’ 개념이 강조되면서 조선어 문법에도 변화가 생겼고 관련하여 김수경은 가장 바쁜 세월을 보낸다. 1956년까지 김수경은 김일성종합대학의 ‘과학연구부장’이라는 직위에 있었다. 그는 김두봉의 사상 비판 때 활동에 제약을 받기는 했지만, 계속 교육과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나 1967~68년 김일성 유일 체제가 진행되면서 대학을 그만두고 교육 일선에서 물러나 도서관장을 맡게 된다. 다행히 1980년대 후반이 되면 복권이 되고 그의 업적이 재조명된다. 


간단하게 그의 연구와 업적과 관련하여 설명했는데 사실 개인사는 훨씬 드라마틱하다. 한국 전쟁이 터지자 그는 교육 때문에 진도에 내려가야 했다. 전쟁의 상황이 급박해지자 아내와 딸들은 이남으로 내려갔고 그렇게 가족은 영영 헤어지게 되었다. 교수이자 학자로 엘리트였음에도 그는 입대해야 했고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김수경은 1986년에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학술토론회로 주최자였던 최응구의 도움으로 둘째 딸과 재회할 수 있었다. 1988년에 둘째 딸은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1996년 큰 아들과 재회하였고 아내였던 이남재와는 1988년에 만날 수 있었다. 김수경은 2000년 영면한다. 그의 부고가 알려지자 “20세기 남북한을 통틀어 최고의 국어학자 중 한 명”이라는 식자의 언급과 함께 신문에 보도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2006년 ‘동숭학술재단이 선정한 언어학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참으로 죄송한 일이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지역 연구를 포함한 오늘날의 학문 분야를 낳은 식민주의와 냉전이라는 힘에 대해, 비판적인 지역 연구로서의 '비판적 코리아 연구'라고 말하고 싶다. 월러스틴과 마찬가지로 학문 분야의 장벽을 넘어 국민국가를 초월한 분석을 시도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일한 세계체계 분석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등장했을 때의 비판적 계기를 계승하는 것, 즉 식민주의와 냉전이 남긴 틀의 재생산에 봉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깨뜨리는 앎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작업을 추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재외 코리안의 경험에 끝까지 접근하면서 앎을 재구축한다는 의미에서 '코리아학'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코리아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식민지기부터 냉전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었던 '조선', '남한', '북한'이라는 카테고리를 일단 괄호 안에 묶어서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 P12~13


저자는 이 책에서 김수경이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전체사'를 그려내려고 했다. 한정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의 역사를 온전히 재구성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개인사=전체사'는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시도를 한 것은 한 사람의 역사가 보여주는 다채로움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김수경은 20세기 대부분의 시기를 살아낸 인물이다. 그렇기에 조선의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하여 해방 전후, 북한의 현대 시기까지 개인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평전으로는 충분한 평가를 주고 싶다. 조선어학 이론의 기초도 얻을 수 있다. 다만 저자가 말한 대위법적 평전의 시도가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대중을 생각하여 가능한 쉽게 써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학문사다보니 개념이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내가 5별을 준 것은 저자의 노고에 감사하기 때문이었다.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하는 등 추적이 결코 쉽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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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26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러 나라 말을 잘 아는 사람은 대단해요 여러 가지를 알면 비슷한 점이나 다른 점을 알기도 하겠습니다 북한에서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기를... 식구들과 헤어진 건 마음 아팠겠네요 나중에 만났다고 해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4-03-26 14:07   좋아요 2 | URL
진짜 천재는 괜히 천재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영어, 중국어 공부만 하는데도 허덕이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그 분의 지위가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회를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돌아가시기 전까지 만나기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젠더‘는 차이의 체계를 구성하고 분류하는 핵심이다. ‘섹스‘와 ‘젠더‘라는 용어의 복잡한 분화와 융합과정은 이 단어들의 정치적 역사의 한 부분이 된다. ‘섹스‘와 관련되었던 의학적 의미들은 20세기를 통과하면서 영어에서는 점진적으로 ‘젠더‘에 축적된다. - P235

엥겔스는 계급과 국가 사이의 매개적인 구성체로서 가족을 최우선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성별의 구분을 분리하여 고려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적대적인 구분에 포함시켰다[카워드(Coward), 1983]‘ 가족 형태의역사적 다양성과 여성의 종속이라는 문제의 중요성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연스러운 이성애를 토대로했기 때문에 섹스와 젠더를 역사화할 수 없었다. - P238

여성을 자연의 범주에서 벗어나,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역사적으로 자기 구성적인 사회적 주체로 자리매김하려는 정치적·인식론적 노력 중에, 젠더의 개념은 생물학적 섹스의 오염으로부터격리되는 경향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종속적인 존재로 출현한다고 주장하는 ‘나쁜 과학‘을 제외하고는, 무엇을 섹스 혹은 여성으로 간주하여 구성할 것인가라는 진행 중인문제는 이론화하기 힘들어졌다. ‘생물학‘은 개입에 열려 있는 사회적 담론이라기보다 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 P243

섹스-젠더 체계의 보편화 권력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분석적인 분열은 유럽-아메리카 페미니즘의 자민족중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경향의 일부로서 특히 유색 여성들로부터치적으로 신랄하게 비판받았다. 젠더 범주는 그 밖의 모든 ‘타자들‘을 모호하게 하거나 혹은 종속시켰다. 하나의 ‘제3세계 여성(Third World Woman)‘을 특징짓기 위해 서구의 혹은 ‘백인‘의 젠더 개념을 이용하려는 노력은 오리엔탈리즘, 인종차별주의, 식민주의 담론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종종 초래했다 [모한티(Mohanty),1984; 아모스 외(Amos et al), 1984]. 게다가 미국 ‘유색 여성‘ 자체의 섹스화된 정체성은 복잡한 다툼을 통해 정치적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위계적인 차이의 생산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이론을 산출했다. 그런 생산 체계 속에서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그리고 1960년대 시민운동과 반전운동으로부터 출현했던 여성운동초기 시절부터, 인종, 국적, 섹스 계급 등은 서로 얽혀 있었다. "여성들의 사회적 입장성에 관한 이런 이론들은 ‘총칭적인‘ 페미니스트 이론에 토대를 제공하고 조직했다. - P261

젠더, 인종, 계급에 대한 의식은 가부장제, 식민주의, 자본주의라는모순적인 사회 현실을 겪어 온 우리의 비참한 역사가 강제로 떠안긴 성과다. 그렇다면 내 화법에서는 누가 ‘우리‘로 간주되는가?
‘우리‘라는 강력한 정치 신화를 정초하는 정체성은 무엇이며, 이모임에 들어오고 싶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있을 법한 단층선은모조리 따라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페미니스트들이 고통스럽게 분열되면서, 여성들 사이에 자행되는 각종 지배의 기반을 정당화하는 변명이 되어 온 여성의 개념을 규정하기 어려워졌다. 나자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역사적 위치(백인, 전문직, 중산층, 여성, 급진 정치, 북미, 중년의 신체)에 있는 사람들 상당수에게 정치적 정체성이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근원은 너무나 많다. - P282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페미니즘이 본질화하는 것은 노동의 존재론적 구조, 혹은 그 유비물인여성의 활동이다. "내가 볼 때 이 입장을 취할 경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마르크스식 인본주의를 계승하면서 너무나 서구적인자아를 함께 물려받게 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페미니즘의 경우에 문제는 단일한 여성이라는 실체와 같은 것이 있다는 식으로 자연화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입장은 여성들을하나로 단결시키기 위해 현실의 여성들이 일상에서 감당하는무를 강조했고, 이와 같은 공식화를 통해 페미니즘에 기여했다. - P288

여성들이 실제로 처한 상황은 지배의정보과학이라는 생산/재생산과 커뮤니케이션의 세계 체제 속으로 통합/착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 일터, 시장, 공적 영역, 몸 자체, 이 모든 것이 거의 무한한 다형적 방식으로 분산되고 인터페이스로 접합될 수 있다. 이 과정은 여성과 다른 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사람마다 대단히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이에 대응하는 국제적 저항운동을 만들어 내기가무척 힘들어지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이와 같은운동이 절실하다. - P297

새로운 경제적, 기술적 배치는 복지국가의 붕괴, 그리고 여성에게 본인뿐 아니라 남성, 아이, 노인의 일상까지 챙기라는 주문이 점점 강해지는 것과도 관련된다. 복지국가가 해체되는 과정에 안정된 직장을 예외로 만드는 가사경제에 의해 산출되고, 여성임금은 자녀 부양을 위한 남성 임금과 같을 수 없다는 기대로 지탱되는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는 긴급한 관심의대상이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여성 가장 가구가 생겨나는 원인은인종, 계급, 섹슈얼리티의 함수다. 하지만 이 추세가 일반화되면서 여성 연대의 기반이 다양해졌다. 여성들에게 어머니라는 지위를 강요해 온 현실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 여성이 일상을 지탱하는 역할을 으레 맡게 되는 현상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적이며 갈수록 전쟁 의존적인 경제와 통합되는 현상 자체는 새롭다. - P303

사이보그는 부분성, 유동성, 때로는 성과 성적 체현의 측면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젠더는 심오한 역사적 폭과 깊이를지녔어도, 결국에는 보편적인 정체성이 아닐 수도 있다. - P326

사이보그 젠더는 글로벌한 복수를행하는 로컬의 가능성이다. 인종, 젠더, 자본은 전체와 부분에 대한 사이보그 이론을 요청한다. 사이보그에게는 총체적 이론을산해 내려는 충동이 없지만, 경계 및 경계의 구성과 해체에 대한개인적 경험은 있다. 파급력 있는 행위를 위해, 과학기술에 대한하나의 관점과 지배의 정보과학에 도전하는 하나의 방법을 하나제시할 정치적 언어가 되기를 기다리는 신화 체계가 있는 것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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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3-25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 이제 퇴근하는데요. 퇴근길에 저도 이 책 또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