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과거는 논쟁지대다

우리가 재생산과 생산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이중적 가능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지배의 자연적·문화적 필요성의 전망을 강화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을 실천하는 다른 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 즉, 이론의 범주 및 통제와 적대의 실천에 압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도 우리 자신의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현재로서는 단편적인 가능성을 보다 분명히 보여 줄 수 있다. - P44

과학의 독특한 특성 중 하나는 과거의 규칙성과 진행과정을 알게 되면, 사건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과학은 (우리의 경험을 특정한 방식으로이론화하도록 훈련하는 활동이며 역사적으로 가변적인 데에 보태어) 세계 속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고 구성하며, 미래를 만드는 전략을 개발한다. - P46

밀러와 주커먼은 인간가족(이른바 지속적인 여성 수용성)의 생물학적 핵심에 해당하는특성이, 포유류가 번식을 위해 이루는 집단에서 모두 발견된다는의견을 피력했다. 단지 주커먼은 그로써 형성되는 영장류의 사회형태에 대한 분석으로 시야를 넓혀 나갔을 뿐이다. - P54

주커먼에게 사회 진화에서 중심적인 사건은 극단적인 계절성과 암컷의 지속적인 성적 ‘수용성‘에 토대를 둔 장기간의 유대(association)가 도입되는 사건이었다. 우선 발정기가 도입되었고, 그 뒤를 따라 생리주기가 도입되면서 성교에 몰두하는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월 주기가 계절 주기를 대체했고 사회적 혁명이 그 뒤를 따랐다. 동물들이 지속적인 유대에서 살아남으려면강력한 통제장치가 필요했다. 그에 따라 ‘하렘‘이 발전한 것이다. - P56

주커먼은 남성 경쟁은 자연스럽고 여성 성욕은 위험하다고 강조하는 과학적 믿음을 의심하는 연구자까지도 따라야만 하는 질문 형식을 설정했다. 성욕을 지배에 묶어 두는 그의 관점은 1930년대의 생리학과 행동과학이 수용할 수 있는 형태였고 지배 상태를 개념보다는 속성 내지는 사실로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영장류학은 계속해서 지배 행동의 선택적 이득에 대해 줄곧 질문했고, 번식상의 이득과 지배라 일컬어지는 무엇 사이의 관계를, 검증하기보다는 가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1965년 셔우드 워시번의 학생 두 명이 논문 한 편을 발표해서연중 지속되는 암컷의 성욕을 영장류 사회의 기원으로 보는 그의이론에 의문을 제기하기 전까지 그의 이론은 확신 속에 지탱되었다. 잠복한 프로이트주의, 생화학적 메커니즘, 사회적 행동 연구를 혼합하는 주커먼의 방식은 장기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 P59

1974년 로웰은 사회구조를 이해할 때 지배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론을 요약했다. 로웰에 따르면 두 가지 핵심 접근법이 있다. 첫째, 잠정적으로 지배로 간주되는 행동 전체를 학습된 반응으로 봄으로써 현대 동물심리학 이론이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둘째, 지배를 선택압에 종속된 특징이나 적응적복합체로 간주하게 만드는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 다시 말하면, 이른바 지배 행동은 번식 성공과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 P62

스트레스 반응의 차이 배후에 있는 개체군의 유전적 다양성은 진화 과정에서 보존될 것이다. 체계 전반의 균형에 대한 사회적 역할의기능주의적 관념, 생화학적 호르몬 기능에 대한 유전적 개념, 그리고 지배 - 종속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법은 모두 스트레스라는중심 개념에서 수렴된다. - P64

생물학적 특성은 문명의 진보와 더불어젯거리가 되었다. 점점 빨라지는 기술적 진보 탓에 오적응이 되는 일이 빈번한 것이다. 옛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의 몸은, 언를 통한 새로운 기술의 문화적 전수 속도에 발을 맞추지 못했ㄷ그렇다면 이제 사회통제가 와해될 때, 병리적 파괴가 뒤따를이라고 예상해야만 한다. 여기서 햄버그와 워시번이 제공하는례는 나치 독일, 콩고, 알제리, 베트남의 사례다! 교훈은, 우리우리의 본성을 통제하려면 우선 그 본성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난점은, 영장류가 현대의 인간 집단을 이끈다는 사실이다. 영장류의 진화사는 생물학적·사회적 전수를 통해 위계ㄷ대한 강한 선호를 낳았다". 이 논리는 정보를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과학 이전의 관습을 합리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로 발전해 나갔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진보된 세계에서 과학전의 관습에 따라 살아가는 공격적인 종은, 대인 갈등과 국제 전쟁을 통해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 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특정한 사회질서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이런 건 정치와 가치의 문제다) 모든진보된 사회를 위한 선결 조건을 수립하는 것, 즉 이제는 실효성이 없고 오적응적이며 시대에 뒤처진 생물학적 특성을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 P68

주커먼과 워시번의 수렵 논변을 추적해 온 독자의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로, 암컷 수용성은 암컷 선택이라는 다른 이름을 얻었고 그 유전적 결과 또한 컸다는 점이다.
둘째로, 송곳니의 축소라는 해부학적 현상은 다른 행동과 다른 기능이 가정될 때 재해석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 P79

각 설화의 목표는 인간 보편성과 문화의 기초로서간 본성을 그려 내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페미니즘에 유용한 인간 본성의 재구성은 사회주의페미니즘의 사유에서 가장 경멸당하는 두 이론에서 도출되었다. 기능주의와 사회생물학이로 그것이다. 이 두 분야는 불평등한 경제와 정치적 구조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한다고, 신체와 정체의 현재 관계를 재생산하는 것을 합리화한다고 비판받았다. 그러나 분명 로웰, 태너, 질먼이 보여 준 것처럼, 이 이론들은 다른 목표에 기여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가변성과 복잡성, 변화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바로 과학 내부로부터 생명사회적 논쟁에 진지하게참여할 수 있다. - P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캠브리지 중국사 10 - 하 - 청 제국 말 1800~1911, 1부 캠브리지 중국사 10
존 킹 페어뱅크 책임 편집, 김한식.김종건 외 옮김 / 새물결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령 내륙아시아의 이후의 역사는 한족의 정주, 한족화 그리고 전에 비중국적이었던 사회의 보다 큰 중국으로의 통합 등으로 특징지어졌다. 이런 손실을 입기는 했지만 청조가 이룩한 것도 부인해서는 안 될것이다. 내부 반란과 유럽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왕조는 살아남았고 청의 질서는 최소한의 변화만을 허용한 채 계속 유지되었다. 청조가 처해 있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청이 이보다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 P610~611


이전 권에서 1800년 경 만주, 몽골, 신장, 티베트와 청의 조정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면 이번 권에서는 1820년~1830년 무렵의 시기를 살펴본다. 특히나 청과 러시아 사이 국경을 둘러싸고 아이훈 조약이 맺어지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로웠다. 시작은 다른 내륙 아시아와 마찬가지로 교역 관계의 문제였는데 1854년 크림 전쟁의 발발로 러시아가 영국을 경계하면서 청과의 접경 지역을 더욱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통제하려고 했다. 이 과정을 청은 주도적으로 끌고갈 수 없었는데 이는 태평천국운동으로 내부가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1858년 아이훈조약과 텐진조약을 차례로 맺으며 양국 간 북쪽의 국경선이 정해지고 항구를 개방하며 러시아인에 대한 자유로운 교역을 허용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이로서 동북 만주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몽골 유목 사회는 사원 제도가 정착하면서 출가에 따른 남성 인구가 감소하였고 한족 세력이 침투하여 몽골인의 채무가 늘어나 약탈, 걸식으로 내몰리자 일반인들은 빈민화되었다. 몽골의 방목지까지 감소하면서 먹고 살 길은 더 어려워졌고 이에 도시 지역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다. 청 조정도 처음에는 한족이 이 땅에 이주하는 것을 경계하였으나 관리를 파견하고 조세 수입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통해 우호적인 입장으로 변화하였다.


몽골 지역에서 청조의 목적은 중국인들의 오랜 목표, 즉 유목민들을 변화시켜 중국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이 점에서 만주족은 성공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몽골인들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으니, 만주 지역에서 준가르 지역에 이르기까지 인구가 감소했고 가축과 영토 또한 크게 감소했다.

신장에서 만주인들이 원한 것은 평화와 공식적으로 청조 황제에게 복종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동투르키스탄인들은 중국의 영향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 지역까지 뻗어 있는 광대한 이슬람 문명의 성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계관은 모든 권위의 정점에는 황제가 있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제국 질서의 초석에 도전적이었다. 황제는 라마교도가 되지 않고도 라마교의 합법적인 후견인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슬림이 되지 않고서는 무슬림 세계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 P701


몽골이나 신장과 달리 티베트는 자기 고유의 토착적인 중앙 정부를 갖고 있었다. 티베트의 군사력은 중국에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 결과 만주족은 이 종교 국가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권위를 약화시키기 위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그의 권력을 강화시켜 주었다. 19세기 내내 달라이 라마 정부의 권력은 증대되었고, 베이징은 외국의 영향력을 배척하고 티베트의 고립을 유지하려는 라싸의 노력을 지지했다. - P702~703


1830년대 신장의 역사는 놀라웠다. 그 지역을 꽉 잡고 있던 세력은 코칸드 정부로 청 조정은 1840년대 난징조약 등 외국 세력과 맺은 다양한 사항을 미리 이행하는 과정을 거쳤다. 치외법권, 최혜국 대우 등의 조항이 있는데 향후 조선이 외국과 맺은 조약에서 볼 수 있는 비슷한 내용들이다. 티베트도 네팔과의  사이에서 코칸드 정부와 비슷한 협상을 거치며 1856년 조약을 맺었다. 


청조는 태평천국운동 세력들을 물리치면서 쌓여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했다. 증국번은 양쯔강 이남 지역의 농촌에 토지세와 부가세를 줄이면서 농민들이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했고 조정 관료의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인재 선발을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반면 화북 지방에는 소금 밀매업자인 염군이 활동했는데 그들은 의적을 자처하며 핍박 받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일어났고 1868년 무렵이 되면 그들이 화북 전체로 집단화되어 민란이 번진다. 때문에 조정의 입장에서 민란은 태평천국 이후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세력이었을 것 같다.


메리 클래버 라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왕조뿐만 아니라 붕괴된 것처럼 보였던 문명 또한 1860년대 걸출한 인물들의 걸출한 노력으로 살아남아 이후 6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것이 동치중흥이다. - P808

메리 라이트의 탁견은 앞으로도 이 시기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청조의 중흥은 "중국의 전통적 제도의 타당성을 다시 한번 주장하기 위한 최후의 위대한 노력을 대변하며 "당시의 위대한 사람들은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승리를 보았다" 는 것이 그녀의 최종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이미 1870년대 초 장쑤 성, 산둥성, 직예성 등에서는 구질서가 분명하게 회복되었다. 쑤-쑹-타이 지역의 ‘대호들‘은 탈세를 계속했다. 아역들은 다시 산둥 성에서 활동하기 시작해 세금 징수를 독점하거나 부가세를 착복했다. 거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하층 신사들(심지어 예성의 하층 신사들조차)은 세금 징수인 혹은 말썽많은 ‘송‘ 혹은 송사가 되어 아역과 결탁하거나 경쟁했다. 대규모 반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은 것은 대부분 서양식 무기를 이용할 수있게 된 여러 성의 용영, 심지어 재훈련된 녹영군 때문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한편 청조가 관료 인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게 되면서, 총독과 순무가 지방 관원 임명에 대한 역할을 확대시켜 행정적 개혁을 모색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융통성이 점차 제한되었다. - P824~825


2차례의 큰 전쟁을 치르며 청 조정의 관료들은 전통적인 유교식 덕치주의 정치에 대한 한계를 깨닫는다. 이제 과거와는 단절하고 외국 열강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함을 느낀 것이다. 특히나 전쟁에서 확인한 서양의 대포를 비롯한 화기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이후 그들은 부국 강병책을 위해 서양 무기 수용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게 된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 맞춰 의견 갈등은 있었으나 정도의 차이일 뿐 기본적으로 대부분은 수용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전통과의 단절에 대한 압박은 서양 종교의 포교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기독교 선교회는 일찍부터 청에 들어와 포교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조직 체계를 세우고 청나라 전 지역에 대한 자유로운 이동, 경비 마련 등이 필요했다. 1860년 프랑스와의 사이에서 조약이 체결되면서 중국에서의 모든 기독교 선교가 가능해진다. 그렇지만 과거의 유산은 깊었다. 송나라 시기 이후 기독교는 유가적 세계와 충돌을 일으켰으며 기적에 의한 기독교적 신앙이 정치 전복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낙인이 찍히며 이단화된다. 결국 옹정제 때 기독교 금령이 내려지는데 결정적으로 태평천국운동 세력이 기독교에 배경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 수용할 수 없는 배경이 되엇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에 대한 이해였다. 서양인들이 가진 기독교적 세계관을 청나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으며 반대로 서양인들도 청나라 사람들의 문화,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서로 다가가지 못한 기간이 이토록 길었던 것이다. 

청나라 말기 선교가 자유화되며 기독교 세력은 확대되지만 중국 내 자리잡는데는 실패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청나라 사람들은 서양의 지식은 수용하고 종교는 거부하는 이중 전략을 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10권 상/하권 읽기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처음에는 잘 안 읽혀서 고생했는데 책에 대한 감을 잡고 나니 그 이후에는 읽기가 더 매끄러웠다. 책에서 특히 만주, 신장, 티베트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장 “너 자신을 알라”

아테네의 지식세계는 이전의 지식세계와는 사뭇달랐다. 이전의 철학자들은 대개 이오니아 지방이나 이탈리아 지방에서활동했고, 대중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현자‘에 가까웠다. 그들 중 어떤사람들은 종교의 교주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유한 내용들은 일반 대중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변들이었다. 그리고 지식세계는 대체로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중해세계 곳곳으로부터 아테네로 집결한이 새로운 유형의 철학자들은 고객을 두고서 서로 경쟁하는 지식인들이었고, 종교의 교주나 철학적인 현자들이라기보다는 독특한 유형의 전문 - P203

가들이었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우주에 관한 순수한 사변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필요한 기법들, 특히 언어에 관련한 기법들이었다. 이들은 숭고함보다는 친밀감을, 지적 순수함보다는 현실적 감각을, 진리의 영원함보다는 당장의 효용성을 무기로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등장한 이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들을 사람들은 ‘소피스트들‘
이라 불렀다. 이 말을 ‘궤변론자들‘이라 번역하는 것은 플라톤적 관점을 전제하는 것이다. 보다 중립적인 번역어를 택한다면 아마 ‘전문가들‘,
‘지식인들‘ 같은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들이 ‘소피스트들‘이라 불린것은 그들이 ‘소피아=지혜‘를 가진 인물들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 P204

소피스트들이 말하는 주관성은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주관성이다. 경험이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소피스트들에게는 인식 주체를 넘어선 무엇,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을 넘어서 - P210

는 무엇은 의미를 상실한다. 단적으로 말해, 한 대상은 "너에게 그렇게보이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보인다." 결국 소피스트들은 객관성만이 아니라 보편성 또한 거부한다고 할 수 있다. - P211

와 노모스를 명확히 구분한 점이다. 자연철학자들이 모두 ‘퓌지스‘를 탐구했고 ‘자연‘ 또는 ‘본성‘에 입각한 사유를 펼쳤다면, 소피스트들은 이전 사람들이 퓌지스라고 생각했던 것에 노모스의 맥락에서 접근함으로써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했다. 이것은 사물들의 ‘본성‘ 자체를 부정하는이들의 존재론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모스의자의성을 통해 ‘지스‘ 탐구가 함축하는 본질주의를 해체한 것이다. - P215

소크라테스는 엄밀한 ‘논변(辯)‘을 통해서 사유를 펼치려 했고, 이 점에서 이들과 구분될뿐만 아니라 사유의 역사에서 어떤 결정적인 지도리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의 사유를 다른 문명들에서의 사유와 핵심적으로구분해주는 특징이 되었다. 소크라테스야말로 독단을, 나아가 권위를 넘어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을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적 논변의 이런 궁지(窮地)는 흔히 ‘아포리아(問)‘라 불린다. 이는 사유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을 때 만나게 되는 근본 물음, 풀리지 않는 난문이다. 철학적 사유의 매력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문제에 해답을 제공했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삶에서 궁극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근본 물음, 심오한 아포리아를 드러낼 때 두드러진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아포리아들은 심오한 형이상학적 난문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상에서 부딪치게 되는 윤리적 난문들이었다. - P228

소크라테스는 본래 ‘생명‘이라는 자연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던 ‘psyche‘라는 말에 ‘정신‘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함으로써 철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정신을물질의 부대효과 정도로 환원하려 애쓰고 있는 것과 정확히 대조적이라하겠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델피 신탁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해답은
‘영혼‘이었다. 인간이란 영혼을 가진 존재이며 이 영혼이야말로 인간이 윤리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근간이라는 생각이 소크라테스 사유의 핵을 이루고 있다. - P232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민주주의이다. 따라서 알키비아데스처럼 사람들을 지도해야 하는 입장에 선 사람만이 문제가 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늘날 모든 정치적 결정은 근본적으로는 대중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치를 지배하는 요소들은 숱하게 많지만,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오늘날 거의 파시스트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또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이 쫓겨나는 것도 결국 대중의 여론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있다. 그렇다면 알키비아데스에게 준 소크라테스의 교훈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정치가를 꿈꾸는 자들에게 주는 교훈이라기보다는 오히려민주주의 정치에 참여하는 대중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핵심적인 것은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시민이 되는 것이다. - P2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언가 일이 많았는데 정리를 하지 않고 넘어가서 쌓이는 것 같아 정리할 겸 간단하게 적어본다.



얼마 전 펀딩한 도서들이 도착했다.

3개월 동안 이미 많은 고가의 책들을 질러서 자제해야지 했지만 손가락이 가는 걸 어쩌랴.


곧 있으면 세월호 10주기가 되어 참사를 정리하고 내 마음도 추스리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펀딩 명단을 보다가 알라딘 친구분이 아닌 실제 지인의 이름을 발견하고 놀랐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든 아니든 그럴 만도 하지 라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질문을 털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재난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언급이 반드시 되는 책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도 받았다. 읽어야지 생각했으나 회피해왔던 책이었는데 이제야말로 읽을 기회를 마련한 셈이다. 3권이 모두 묵직하여 케이스가 있었으면 금상첨화였을 것 같다. 그래도 책을 험하게 보니 별 소용 없겠다 싶기도 하다.



도서관에서는 희망도서로 이런 책들을 받았다.




먼저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이다(제목이 정직하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라니, 문학가, 예술가들은 몇몇 접한 적이 있었는데 언어학자는 처음이다. 게다가 이름도 생소했다. 평전이라 선뜻 구입하기 전 먼저 확인해보자 싶어 희망도서로 신청한 것이다. 이 책으로 이번 주 독서 모임도 예정되어 있는데 아직 단 한줄도 읽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다. 

<근대 용어의 탄생>은 이전에 관련하여 읽었던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책과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비교하여 읽으며 따져보고자 신청했다. 두 책 다 공교롭게도 언어학과 맥락이 닿아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리고 어제 상호대차로 신청한 책도 받아 왔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다. 예전에 페이퍼에서 인도 미술 전시회와 관련하여 언급했던 책이다. 이 책을 미리 읽고 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부랴부랴 신청했다. 


그런데 과연 다 읽을 수 있을지. 음...

이 달에 읽기로 한 책들이 많았는데 요새 책이 잘 안 읽혀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읽어봐야 소용없어서 읽히는 만큼 천천히 읽고 있다. 뭐 누가 숙제 내주는 것도 아니고 읽는 만큼 읽는 것이겠지.



이제 산수유와 매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번주 말이나 다음주 초면 만개지 않을까?

어제는 태풍 같은 바람이 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황사를 몰고 왔었다. 다행히 오늘은 공기질이 쾌청하여 볕을 느끼며 산책을 기분 좋게 즐겼다.


일교차는 크지만 이제 정말 봄 기운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따뜻해졌다. 봄이다, 봄!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4-03-19 07: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숙제 내는 알라디너들🤣🤣🤣
묵직한 책들이네요. 즐거운 독서 하시길요! 이번 봄에는 황사 미세먼지 심하지 않기를 비나이다비나이다…

거리의화가 2024-03-19 17:32   좋아요 1 | URL
ㅋㅋ 숙제는 굳이 왜 스스로 내고 하는지... 항상 그러면서 괴로워하지만 또 진행하면서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원해서 하는 공부니까요^^*
황사나 미세먼지는 기온이 올라가기만 하면 다가오는 것 같네요. 오늘은 기온이 떨어져 춥던데 괭님 건강 잘 챙기세요^^

건수하 2024-03-19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람이 사람에게_ 만 샀어요. 세 권 펀딩하신 화가님 칭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4-03-19 17:32   좋아요 1 | URL
오, 수하님 펀딩하셨군요^^ ㅋㅋ 칭찬받아 좋습니다. 가능하면 4월 안에 읽으려구요!

건수하 2024-03-19 17:39   좋아요 1 | URL
펀딩 안하고 그냥 샀습니다… 표지가 좀 달라 보이네요 ^^
 

동물사회학과 정체의 자연경제

사이보그는 유기체와 기계로 구성된 잡종이다. 하지만 사이보그를 이루는 기계와 유기체는 20세기 후반에 적합한 특수한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사이보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잡종체로서 정보 체계와 텍스트 그리고 인체공학적으로 통제되며 노동.욕망·재생산 체계로 위장한, 우리가 자발적으로 택한 적 없는 ‘하이테크‘ 내부에 있는 우리 자신과 다른 생명체들을 기본 성분으로삼아 만들어져 있다. 사이보그를 이루는 두 번째 필수 재료는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정보 체계, 텍스트 그리고 스스로 작동하며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장치로 위장한 기계들이다. - P10

우리는 우리에게 전통적으로 할당되어 온 자연적 대상의 위상에 반자연주의적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맞섬으로써, 페미니즘이 필요로 하는 생명과학의 모습이 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과학이 물신(fetish)의역할을 하도록 허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물신은, 만든 사람이 자 - P21

신이 그것의 창조자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뿐이다. 물신은 인간이사회적 · 유기체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변 세계와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한다. - P22

성을 위험하고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은 프로이트의 체계에서 핵심적이고, 정체를 생리학적 출발점으로 환원시키는 전통적인 과정을처음 시작한다기보다는 반복한다. 이러한 정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본능을 다스려야만 문화적 집단을 이룰 수 있는 자연적 개인을 토대로 삼는다. 최근의 신프로이트주의자 및 신마르크스주의자 두 사람이 내 논문에 주장된 내용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프로 - P22

트의 입장을 아이러니하게 재구성했다. 한 사람은 노먼 O. 브라운(Norman O. Brown) 이며 다른 한 사람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이다. 프로이트, 브라운, 파이어스톤의 이론은 정체의 정치적·생리학적 기관(organs)에 대한 이론을 해부하는데 유용한 도구다. 세 사람 모두 섹슈얼리티에 관한 설명에서 이론을 시작하여 거기에 문화적 억압의 역학을 첨가한 뒤, 개인적 신체와 집합적 신체를 다시 해방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 P23

생명행동과학 영역 중 하나가 억압적인 정체 이론을 구성하는 데 예사롭지 않은 역할을 했다. 바로 동물사회학 내지는 동물집단에 대한 과학이다. 이 생명사회과학을 새로운 실천과 이론을고안해 재전유하면서, 동물사회학의 중심을 차지한 지배 개념에기대 생리학적 정치에 맞서 비판적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 P25

지배구조는 여전히 관찰되고 연구되지만, 조직 기능을 설명하는 인과적 원인으로 꼽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정주의자들은단기적이고 스펙터클한 공격성 대신 모계중심적 집단과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협동을, 강직된 구조보다는 유연한 과정을,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특징들을 강조해 왔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과학적 · 이데올로기적 사안이 결부되어 있다. 새로 출현하는 연구들 역시 논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적으로 정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창조적인 이론과 실천의 형식만큼이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두 학문 분야가 모두 필요하다. 이 과학 분야는 지배를토대로 삼지 않는 사회관계 위에 구축될 때 비로소 해방적 기능을수행할 것이다. 이와 같은 요청은 필연적으로 자연과 우리 자신에 대해 지배의 논리를 정당화해 온 것, 즉 주체-객체 분할에 뿌•리박힌 순수한 객관성을 옹호하는 각종 형태의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거부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