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만당 - The Chinese Feas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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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
  •  
  • 아마도 '만한전석'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번째 영화 +1  
  • 지글지글, 기름을 주로 사용하는 중화요리야말로 영상과의 씽크로율 최고! +2
  • 1995년 영화라는 점을 잊지 않고 본다면, 다소간 용서하고픈 마음이 생긴다 +1
  • 무엇보다 빛나는 장국영의 미모 +1

 

채찍 ◀◀◀◀☆◀◀◀
  •  
  • 홍콩영화 특유의 부산스러움 -2
  • 그리고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스토리텔링 -2 
  • 게다가 과장된 조리솜씨 -2
  • 돌아온 총잡이가 아니라 돌아온 요리사, 라는 뻔한 스토리텔링 -1 
  • 만한전석임에도 보여주는 것을 딸랑 3가지, 그 중에서 원숭이골요리는 가짜 -1

 

합계 +5-8=-3 : 먼지 3번 털고 끝내자. 툭, 툭,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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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 - The Yakiniku Movie :Bulgogi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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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작품의 주제는 후반에 제시되는 할아버지의 대사로 압축된다.  

   
 
- 할아버지 : 맛있니? 사이좋게 지내는데는 밥을 같이 먹는 게 최고란다. 
  사람은 처음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과 친구가, 연인이, 가족이 되고 싶어해서  
  먼저 함께 밥을 먹는 거란다.
  몇 번씩 몇 번씩 먹다보면, 결국엔 친구가, 연인이 가족이 되는 거야.
  뭘 먹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란다.
  누구와 먹었나, 몇 번을 먹었나 그걸로 애정과 생각을 알 수 있는 거란다.
  네가 형과 재회한다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만약 다시 만난다면...
  먼저 밥을 먹여라. 조용히 밥만 먹이면 된다. 그걸로 된단다. (#2:43:02-45:20)
 
 
   

그래, 사실 형식이니 내용은 별로 색다를 것이 없었다.
여타의 요리 만화/영화/드라마와 차별되는 것은 한국음식인 '불고기'를 소재로 다룬다는 정도? 

하지만 요리대결의 주체가 '재일교포'가 되는 순간,
이 이야기는 단순한 요리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낯선 사회에 대한 적응,
대립되어 보이는 이 두 가지 감정의 극점에 서서, 둘의 조화를 찾았던, 찾고있는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재일교포이기 대문이다.  

 

당근 ▶▶▶▶☆▶▶▶
  • 지글지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스러운 불고기 요리 +2 
  • 사실은 곱창 요리가 메인 +3  
  •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과 사회에의 동화, 두 감정음 적절한 조화 +2 
  • 다소 일반적이긴 하지만, 현자삘 나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한 동감 +1

 

채찍  ◀◀◀◀☆
  • 그러나 그 모든 고기음식보다 깻잎 조림이 더 맛나 보이는군 -1 
  •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곶감 -1 
  • 맹밍하기 짝이 없는 일본 영화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요리베틀로도 어쩌지 못하는군 -2 
  • 다소 식상한 캐릭터 -1

  

결론은 ; +8 -5 = 3. 뭐, 그럭저럭 박수받을 만 하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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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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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랑촐랑 엉덩이 들썩들썩거리는 설정극 아니면,
그래봐야 구질구질한 연애질에 불과한 스토리가 판을 치는
작금의 영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박수 받을만 하다, 마땅히.

다만 아쉬운 것은, 
상황, 캐릭터, 스토리텔링 어느 것도 새롭지는 않았다는 것.
기존의 것을 잘 포장해놓은 선물세트랄까? 

더구나 송강호의 연기는 <공동경비구역JSA> - <쉬리> - 그리고 <의형제>로 이어진다.
즉, 이 주제에 너무 익숙한 배우인지라,
연기를 잘 했음에도 눈에 크게 들어오지 않더란 말이지.  

다만, 같은 관점에서 강동원은 반짝반짝 빛난다.
이미지야 그가 출연한 여러 작품과 그리 다르지 않고,
연기도 늘기는 했지만 아주 탁월하다 보기 어렵고,
다만 그가 이런 식의 주제를 담아낼 수 잇다는 그릇이 되었다는 것에 감탄했다.  

아무래도 2010 상반기는 강동원이 대세다.  

 

당근 ▶▶▶▶☆▶▶▶▶★▶▶▶
  •  
  •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잊고 있던 분단이란 소재를 참신하게 재창작 +4
  • 여전히 든든한 송강호의 연기 +1  
  • 늘어질수록 아련한 그의 눈매 +1
  • 최근 유독 반짝거리는 강동원의 연기 +2  
  • 그리고, 그의 날렵한 몸매 & 눈매 +1
  • 남과 북의 혈연 문제와 다문화 문제를 병치해주는 센스 +3 
  • 제법 폼나면서도 토종틱한 몸부림 액션 +1  

채찍 ◀◀◀◀☆◀◀◀
  •  
  • 지루하지 않지만 새로울 것도 없는 상황, 캐릭터, 스토리텔링 -1
  • 더구나 북의 킬러 '그림자'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진부하고 -1 
  • 국정원 국장 & 기타 요원들의 캐릭터 그보다 더 진부하고 -2 
  • 남파간첩의 갈등요인 다소 부족함 -1 
  • 끝내 곁가지에 머물고 만 베트남 사람들 -2 
  • 몸부림액션은 그나마 봐줄만 한데, 총질액션은 한참 멀었더라 -1

  합계 +13-8 = 박수 5번치고 나오자, 짝짝짝!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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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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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다. 
대략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은 주는 영화였다. 점수로 치자면 B-, 별점으로 치자면 ★★★. 

기대는 대략 충족되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의 대부분은 날것으로 제시되는 교훈에 대한 것. 

제길, 설교하지 말란 말이다!  

 

당근 ▶▶▶▶
  •  
  • 원작의 아이디어를 큰 무리 없이 풀어놓은 스토리텔링 +2
  • 다소 뜬금없지만 아무튼 동감이 되기는 하는 교훈들 +1
  • 폭넓은 연령대를 연기한 배우들 +1

 

채찍 ◀◀◀◀☆◀◀◀◀★
  •  
  • 참기힘든 교훈에 대한 강박 -3 
  • 그 교훈들의 보편타당함 & 보편타당한 교훈이 주는 지루함 -3
  • 사랑, 진부한 사랑놀음 -4

  

마지막 항목, "사랑, 진부한 사랑놀음"에 대한 뱀발

a) 벤자민은 끝까지 데이지를 사랑한다. 이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견해 아닐까? 
    차라리 원작에서 보이는 다음과 같은 시각이 더 타당하겠지, -2점.

   
 

  여기서 우리는 가능하면 빨리 지나가는 게 좋을 불쾌한 주제에 도달한다. 벤자민 버튼에게는 딱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더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때 힐더가드는 서른다섯의 여인이었고, 열네 살이 된 로스코라는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신혼 시절, 벤자민은 그녀를 숭배했다. 하지만 세월이 가자 꿀빛 머리칼은 매력 없는 갈색으로 변했고, 파란 물감 같던 눈은 싸구려 도자기 같은 색을 띠었다. 게다가,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기 틀 안에 지나치게 안착해버렸다. 너무 평온하고 너무 만족하고 너무 흥분을 모르고 취향도 너무 점잖았다. 새색시로서 벤자민을 무도회와 저녁 식사에 '끌고'다닌 것은 그녀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역전됐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김선형 역,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문학동네, 2009, p.31.

 
   

 b) <포레스트 검프> 삘 나는 다음 장면에서 -2점.  
     왜 검프와 버튼은 이리도 여자에게 헌신적인 성인군자란 말인가? 

   
 

#1:46:13~1:47:18 
- 데이지 : 헤이, 난 네가 올 줄 몰랐다구!
               오, 벤자민. 뭘 기대한 건데? 내게서 잠깐 들러서 원했던 게 뭐야?
            
   이게 내 삶이야.
- 男무용수 : 놀라갈 건데, 갈래?
- 데이지 : 같이 가자. 재미있을 거야. 가수들도 있고 재밌는 사람들도 많다구.
- 벤자민 : 네가 그럴 필요는 없어. 내 잘못인 걸. 전화를 하고 왔어야 했는데. 
               난, 그냥… 와서, 널 깜짝 놀래켜주려고 했을 뿐이야.
- 男무용수 : 데이지, 가자! 
- 데이지 : 금방 갈게.
- 벤자민 : 저 사람 좋아보이는데… 사랑하니?
- 데이지 : 그런 것 같아.
- 벤자민 : 행복하다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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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ㅜ 2010-11-0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흠..
이정도의 별점밖에 주지 못하는 책들만 쏘옥쏘옥 고르는 당신의 재주에 정말 감탄을 하게 만드는군요. 우연히 검색하다 들렸지만 당신의 이상하게도 빈정거리는 말투에 흥미가 솟구쳐 이곳저곳 구경하고 갑니다.
제가 보기에 책의 내용에 잘못이 있는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르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는편이 훨 낫다고 생각드는데...
당신의 책고르는 솜씨에 별을 ~~~~ 주고 싶지만 그러고 싶지 않네요.
그럼~~

라훌라 2010-11-03 02:01   좋아요 0 | URL
ㅋㅎ 스스로 책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은, 게다가 좋은 책만 고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또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읽어야만 하는 책도 있고, 그래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좋은 책보다는 좋지 않은 책이 더 많구요.
일단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서평이나 평점의 기능은 '판단의 기준'입니다. 만일 좋은 점수만 주고, 좋은 이야기만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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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뼈대만 세운다고 집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벽을 만들고, 구들을 만들고, 지붕을 얹는 것, 즉 기본적인 골격을 만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집은 그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벽지를 바르고, 장판을 깔고, 가구를 들여놓고, 마침내는 사람들이 입주해서 알콩달콩 살아가면서 사람냄새를 풍겨야...... 그제야 집이 완성된다.

궁궐이든,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초가삼간이든 모두 같다.  

애당초 집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 '집의 비유'는 그대로 이야기에도 적용된다.  

내가 처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의 여러 작가&학자들이 이 비유를 즐겼다. 우리의 근대문학사에서도 팔봉(八峰)과 회월(懷月)이라는 당대의 걸출한 논객들이 펼쳤던 '소설의 내용과 형식 논쟁', 일명 '소설건축설 논쟁'이 있지 않았던가? (물론 이들의 논쟁은 당대에는 건출했으나,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적당히 유치하다. 아주 못봐줄 정도는 아니지만, 흥미를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나는 다시 한번, 이 해묵은 비유를 사용하고 싶을 따름이다.  
어찌보면 문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팔봉-회월 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무릇, 이야기를 가장 큰 덩어리로 구분하면, 이야기와 디테일로 나누어진다. 
이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스토리와 플롯, 파불라와 슈제, 이야기와 담론 등을 선택하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 둘은 건축의 뼈대와 인테리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뼈와 살의 관계'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소설건축설에 기대다 보니 표현이 다소 바뀌었다. 뼈와 살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뼈대가 이야기라면, 인테리어는 디테일이다.
뼈대만 세운다고 해서, 그 황량한 집에 누가 들어와 살려고 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인테리어만 세련된 집이라면, 그 부실시공 때문에 끝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 작품 <노서아 가비>는 꼭 뼈대만 잔뜩 만들어놓은 형상이다.
이야기는 다소 과도할 정도로 넘치는데,그것을 효과적으로 풀어내지 못했다.
  

디테일의 가장 주요한 역할은 독자/관객이 이야기에 동화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디데일이 부족하니(사실 거의 없으니), 독자는 이야기에 빨려들지 못한다.

주인공 따냐의 인생역정은 참으로 기구하고 속도감 넘치는데도, 전혀 동감할 수가 없다. 
이 인물에게는 망설임과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숨가쁘게 진행되는 이야기를 소화하기에 급급한 신인여배우처럼 느껴질 밖에.
이 인물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인형(doll or idol)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작가는 스스로를 '스토리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김탁환, <당신에게 이 검은 액체는 무엇입니까?>(작가의 말), 236쪽.)  

※ 김탁환이 말하는 '스토리 디자인'의 개념은 강심호의 해설에 비교적 잘 설명되어 있다. 참고할 만하다. (강심호, <러시안 커피-소설노동자가 '따냐'와 함께 내달린 세계>(해설), 249-251쪽.)  
 
하지만 작업 내용을 고려하면, 그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획자에 가깝다.
디자인은 디테일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전혀 디테일을 찾아볼 수 없는데, 어찌 디자인을 하겠다는 것인가?

★ 

사실, 지금까지 지적한 문제들은 <노서아 가비>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읽었던 김탁환의 또 다른 작품인 <나, 황진이>도 다르지 않았다.  

의심은 넘치는데, 아직 이런 이야기 과잉을 "김탁환 소설의 문제"로 싸잡아 말하지 않는 것은,
내 독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은 그의 작품을 전반적으로 감상한 뒤에나 합당하리라.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을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적어도 그는 소재를 발굴하는 데 있어서는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독서가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읽고 싶은 것은 잘 만든 '작품'이지, '아이디어 꾸러미'가 아닌 탓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은, 독자들이 재화와 시간을 소비하기를 원한다는 뜻일 게다.
독자가 읽고 싶은 것이 결과인지, 과정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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