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 동서문화사 월드북 6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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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지니는 삶 이상의 부질없음

˝아, 자네였나, 젊은이?˝ 그는 말하였다. ˝기분은 어떠시오, 나의 용사?˝

5분 전만 해도 안드레이는 자기를 운반해 준 병사에게 두서너 마디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시선을 골똘히 나폴레옹에게 박은 채 잠자코 있었다…… 그에게는 이 순간, 나폴레옹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모든 관심이 실로 부질없이 여겨지고, 보잘것없는 허영과 승리의 기쁨에 사로잡힌 이 영웅의 모습이, 자기가 보고 이해했던 저 드높고 공평하고 선량한 하늘에 비하면 몹시 시시하게 여겨졌다ㅡ그래서 그는 나폴레옹에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출혈로 인한 쇠약, 고통, 죽음을 가깝게 각오했기 때문에 그의 마음 속에 불러일으켜진 준엄하고 장중하게 구성된 생각에 비하면, 모두가 무익하고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안드레이는 나폴레옹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면서, 위대함의 부질없음과 아무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질없음에 대해서, 그리고 또 살아 있는 자는 누구 한 사람 그 뜻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죽음이 지니는 삶 이상의 부질없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403쪽)


한 판만 더


그는 마음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나쁜 짓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거나, 모욕하거나, 불행을 바란 일이 있었던가? 어째서 이토록 무서운 불행에 부딪혔을까? 대체 이 불행은 언제 시작됐을까? 조금 전이다. 100루블 벌어서 어머니의 생신 축하를 위해 귀중품 상자라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작정으로 이 테이블에 다가섰을 때이다. 그때 나는 그토록 행복했고, 자유롭고, 쾌활했었는데! 그러나 나는 그때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그 행복은 언제 끝났고 이 새로운, 무서운 상태가 언제 시작되었는가? (중략)


˝왜 그러나, 더 안 해? 나는 굉장한 카드를 가지고 있는데.˝ 마치 자기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게임 그 자체의 즐거움이라는 듯이 말했다.


‘모든 것은 끝났다, 나는 파멸이다!/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이젠 이마에 총알 한 발ㅡ남은 것은 그것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즐거운 듯한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 한 판만 더 하세.˝(467-468쪽)



제각기 자기식으로


˝어쩌면 자네는 자네로서 옳을지도 몰라.˝ 그는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제각기 자기식으로 살아가고 있어. 자네는 자신을 위해서 살아왔고 그 때문에 하마터면 평생을 망칠 뻔했으나, 남을 위해 살려고 했을 때 비로소 행복을 알았다고 말하고 있어. 그런데 나는 그 반대의 경험을 했지. 나는 명예를 위해서 살았어. 명예란 뭔가? 역시 남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 남에게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마음, 남의 칭찬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아닌가. 즉 나는 남을 위해서 살아왔고, 하마터면이 아니라 완전히 내 인생을 못쓰게 만들고 말았어.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게 되면서 마음이 안정되었지.˝(528쪽)



떡갈나무


봄날의 따뜻한 빛을 받으면서 그는 포장마차에 앉아, 지금 막 싹이 트기 시작한 풀, 자작나무의 잎, 맑게 갠 푸르른 하늘을 흘러가는 하얀 초봄의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마냥 즐겁고 부질없이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1년 전에 삐에르와 이야기를 나누던 나루터도 지나갔다. 질퍽질퍽한 마을, 탈곡장, 겨울 보리의 새싹, 다리 근처의 눈이 남은 비탈길, 녹은 눈에 씻긴 진흙의 언덕길, 그루터기만 남은 밭, 군데군데 파릇파릇한 덤불을 지나 길 양쪽에 우거진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숲 속은 오히려 더울 정도였고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작나무는 온통 끈적거리는 푸른 새싹으로 덮여 까딱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묵은 낙엽 밑에서는 낙엽을 쳐들고 풀과 엷은 자주색 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자작나무 숲 속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어린 전나무는, 볼품없는 상록으로 겨울을 되새겨주고 있었다. 숲 속에 들어서자 말들은 콧김을 내기 시작하고 눈에 띄게 땀을 흘렸다.


하인 뾰뜨르가 마부에게 무슨 말을 하자 마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뾰뜨르는 마부의 동감만으로는 불만이었던지 마부대에서 주인 쪽을 돌아다보았다.

 

"나리, 정말 마음이 홀가분해집니다!" 그는 공손하게 미소짓고 말했다.


"뭐라고?"


"홀가분합니다, 나리."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안드레이는 생각했다. ‘그렇지, 봄 얘기군, 아마,‘ 그는 사방을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그렇지, 이미 완전히 푸르군…… 참 빠르다! 자작나무도, 체류무하도, 오리나무도 벌써 파래졌어…… 그러나 떡갈나무가 보이지 않는데, 아, 저기 있다. 저게 떡갈나무다!‘


길가에 떡갈나무가 서 있었다. 숲을 이루고 있는 자작나무보다 열 배도 더 연륜이 많은 듯한 이 자작나무는 어느 나무보다도 굵고, 키도 배는 높았다. 그것은 두 아름이나 되는 거대한 떡갈나무로서, 오래 전에 꺾인 듯한 가지와, 역시 상처투성이인 낡은 딱지가 생긴 껍질을 가진 거목이었다. 커다랗고 볼품없는, 고르지 않게 내뻗은 손과 손가락을 가진 이 고목은 마치 화를 잘 내고 남을 깔보는 늙은 추한 인간처럼, 미소짓고 있는 자작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오직 그만이 봄의 매혹에 몸을 맡기려 하지 않고 봄도, 태양도 보려고 들지 않았다.


‘봄, 사랑, 행복‘ 그 떡갈나무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희들은 용케도 싫증을 내지 않는구나. 늘 똑같은, 부질없고 무의미한 속임수에 말이야. 봄도, 태양도 행복도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저 봐. 저기 짓눌려 죽은 떡갈나무가 웅크리고 있지 않아?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말이야. 그리고 봐, 꺾여서 껍질이 벗겨진 손가락을 펼치고 있다. 그것이 어디서 나든ㅡ등이건 옆구리건 상관 없어. 솟아나면 난 대로 그대로 서 있다. 너희들의 희망과 속임수에 누가 속을 줄 알고?‘(576-5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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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그는 그녀의 체온과 향수 냄새를 느끼고, 숨을 쉴 때마다 코르셋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보았던 것은 드레스와 하나의 완성체를 이루고 있는 대리석과 같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한 장의 옷으로밖에 감추어져 있지 않은 그녀의 훌륭한 육체를 남김없이 보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단 거짓말이 탄로나면 두 번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그는 그것을 보고 나자 그녀를 다르게 볼 수가 없었다.(282쪽)


다시는 그것을 나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삐에르는 눈을 내리깔았지만 다시 쳐들고, 여태까지 매일 보고 있었던 것과 같이 자기에게는 먼, 인연도 없는 아름다운 여인으로서 그녀를 다시 한번 바라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럴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안개 속에서 풀 줄기를 보고 그것을 나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그것을 풀줄기라고 알게 된 뒤에는 다시는 그것을 나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무섭게도 그에게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이미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그녀 사이에는 이미 자신의 의지의 벽 이외에는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282-283쪽)



어른이 되어 가는 것


자기 아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그 어느 시기에 있어서나 그녀에게는 특별한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같은 길을 거쳐 성장한 몇백만 몇천만의 사람들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20년 전에는 어딘가 그녀 심장 아래의 태내에서 숨쉬고 있던 작은 존재가, 울거나 젖꼭지를 빨기도 하고 겨우 말을 하기 시작하리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 존재가 씩씩하고 용감한 사나이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는 것은, 이 편지로 판단하면 명백한데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325쪽)



삼제 회전의 패배


시계의 경우, 수없이 많은 갖가지 톱니바퀴나 도르래의 복잡한 움직임의 결과가, 시간을 표시하는 바늘의 느리고 규칙 바른 움직임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이들 16만의 러시아인과 프랑스인의 모든 정열, 희망, 후회, 굴욕, 고뇌, 자존심의 고양, 공포, 환희의 분출 등 갖가지 복잡한 인간적인 움직임의 결과는 아우스터리츠 전투, 이른바 삼제(三帝) 회전의 패배에 지나지 않았다. 즉, 인류 역사의 시계판 위에서 세계사 바늘이 느리게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354쪽)



이 끝없는 하늘 이외에는


‘뭐야, 이건? 나는 쓰러져 있는 것인가?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뒤로 쓰러졌다. 프랑스 병과 포병과의 싸움이 어떤 결말이 되었는지, 빨간 머리의 포병이 죽었는가 죽지 않았는가, 대포를 빼앗겼는가 빼앗기지 않았는가를 보기 위해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는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ㅡ개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없이 드높고, 그 아래를 회색 구름이 조용히 흐르고 있는 높은 하늘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하고 평온하고 엄숙할까. 내가 달리고 있었던 때와 판이하다.‘ 안드레이는 생각했다. ‘우리들이 달리고 외치고 서로 잡고 싸운 것과는 전혀 다르다ㅡ구름이 이 드높고 끝없는 하늘을 흘러가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왜 나는 전에 이 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것을 알아차린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든 것은 공허다. 이 끝없는 하늘 이외에는 모든 것이 거짓이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아니, 이 하늘 외에는 그것조차도 없다. 정적과 평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고맙게도!‘(384-3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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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갈라 놓고 있는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ㅡ불가사의와 고뇌와 죽음이다. 그리고 그 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저편에는 누가 있는가? 건너편의 들이나 나무, 태양이 비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르지만 알고 싶어한다. 이 선을 넘는 것은 무섭지만 넘어 보고 싶다. 그리고 모두는 알고 있는 것이다ㅡ조만간 이것을 넘어 그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게 된다. 그것은 마치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가를 아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나 자신은 강하고 건강하고 명랑하면서도 초조해 있으며, 이렇게 건강하고 초조한, 활기에 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지금 적과 마주 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비록 이렇게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느낀다. 그리고 이 감각이 이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일종의 특별한 인상의 광채와, 마음이 편안한 날카로움을 주는 것이다.(198-199쪽)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

니꼴라이는 고개를 돌려 무엇인가를 찾는 듯이 먼 경치, 다뉴브 강의 물,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어쩌면 저렇게 푸르고 고요하고 깊을까! 멀리 내다보이는 다뉴브 강의 물은 얼마나 부드럽게 빛나고 있는가! 또 멀리 다뉴브 저쪽에 파랗게 보이는 산들, 수도원, 신비스러운 골짜기, 산정까지 안개에 싸인 솔밭은 더욱 훌륭했다…… 저편은 조용하다, 행복하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나는 원하지 않아, 거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무것도 원하지는 않아.‘ 니꼴라이는 생각했다. ‘오직 내 안에, 그리고 저 태양 속에 넘치는 행복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신음과 고통과 공포와 그리고 이 혼탁, 이 어수선함…… 저기 또 무엇인가 외치고 있다. 그리고 또 모두가 뒤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도 모두와 같이 뛰고 있다. 그리고, 봐, 그 녀석이, 죽음이 내 위에, 내 주위에…… 순간적으로 나는 영원히 저 태양, 저 물, 저 골짜기를 볼 수 없게 된다…….‘(205-206쪽)

애연가가 뿜어내는 파이프

사방에서 일어나는, 귀청을 때리는 듯한 아군의 포성, 적탄이 내는 소리와 명중하는 소리, 포 곁에서 땀을 흘리며 바삐 움직이고 있는 포수들의 모습, 사람이나 말의 피, 건너편의 적진에서 일어나는 초연(이 연기가 보인 뒤엔 반드시 포탄이 날아와서, 대지, 사람, 포, 말에 명중하였다)ㅡ그러한 여러가지 사물로부터 그의 머리에는 독특한 환상적 세계가 구성되어, 그것이 지금 그의 도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적의 대포는 그의 공상 속에서는 대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애연가가 가끔 연기 고리를 뿜어내는 파이프였다.(263-264쪽)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런데 힘이 있는 인간을 만나면 그 순간에 본능이, 이 사나이는 쓸모가 있다고 남몰래 가르쳐준다. 그래서 바씰리 공작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그 사나이에게 접근하여,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비위를 맞추고, 친숙해지고 필요한 일을 화제로 삼는 것이었다.(275쪽)

뜻하지 않은 자산가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그를 자기보다 힘이나 돈이 많은 사람에게 끌어갔다. 그리고 그 자신도 사람을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 또 그것이 가능한 그 순간을 포착하는 보기 드문 수완을 타고났던 것이다.

삐에르는 좀 전만 해도 고독하지만 아무 근심 걱정 없는 편한 신세였지만, 뜻하지 않게 자산가가 되고 베주호프 백작이라는 신분이 되어, 혼자 있게 되는 것은 잠자리에 들 때뿐일 정도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바쁜 몸이 되었다. 그는 서류에 서명을 하거나,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관청과 교섭하기도 하고, 무슨 일을 총지배인에게 물어 보기도 했다. 또는 모스크바 부근 영지에 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접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사람들은 전에는 그의 존재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가 만나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비관에 빠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갖가지 사람들ㅡ사무가, 친척, 지인ㅡ은 모두 이 젊은 상속자를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 주었다. 누구 할 것 없이 삐에르의 우수한 자질을 분명히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는 듯했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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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자본

세상에서의 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자본이며,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을 소중하게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28쪽)



한 걸음마다 깨닫게 될 것


˝여보게, 절대로 결혼 같은 건 하지 말게. 이건 자네에게 주는 나의 충고일세. 결혼을 해서는 안 돼.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더욱이 자네가 선택한 여자를 사랑하지 않게 되어 그 여자를 분명히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는 말이야. 그렇잖으면 자네는 비참한, 되찾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될 걸세. 결혼은 늙어서, 아무 쓸모가 없어졌을 때 하게……. 그렇잖으면 자네가 지니고 있는 좋은 것과 훌륭한 것이 모두 못쓰게 된다. 모두 보잘것없는 일에 소모되고 말지. 그래, 그렇다, 그래! 그렇게 놀란 얼굴로 나를 보지 말게. 만일 자네가 무언가 자기 앞날에 기대하고 있어도, 자네는 한 걸음마다 깨닫게 될 것일세.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모든 것에서 쫓겨나고, 남은 것이란 자네가 궁정의 하인이나 큰 바보들과 같은 줄에 서는 응접실뿐이라고 느끼게 돼.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43-44쪽)



이것이 여자야


˝그 우아한 여자라고 하는 것이 모두 어떤 것인지, 자네가 알 수만 있다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나의 아버지 말씀이 옳아. 이기주의, 허영, 두뇌의 우둔함, 만사에 있어서 무능, 있는 그대로 정체를 보이자면 이것이 여자야. 사교계에서 여자를 잠깐 보면 무엇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결혼은 하지 말게, 제발 결혼하지 말아.˝(45쪽)



아첨과 찬사


비할 바 없이 친밀하고 털어놓은 관계라도, 움직이기 위해서는 수레에 기름을 칠 필요가 있는 바와 같이 아첨과 찬사가 없어서는 안 된다.(45쪽)



흐뭇한 눈물


두 사람이 운 것은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 선량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울고, 또한 청춘시절의 친구가 이처럼 천한 돈 때문에 속을 썩이고 있음을 생각하고, 자기네들의 청춘이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물은 흐뭇한 것이었다…….(84쪽)


둘 중의 하나


삐에르가 다가가자 백작은 곧바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그 눈초리의 의미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눈초리는 전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눈이 있는 한 무엇인가를 보아야 하는 데에 지나지 않은 것인지, 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지, 둘 중의 하나였다.(117쪽)



과거와 미래


출발이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날 때 자기 행위를 잘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은 흔히 진지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과거가 반성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세워진다.(144쪽)



사람을 사랑하는 것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준 좋은 일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그 사람에게 한 좋은 일 때문이다.‘(146쪽)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알아다오, 마리야. 나는 나의 아내를 무엇 하나 책망할 수 없고 책망한 일도 없고 절대로 그럴 생각도 없다. 또 아내에 대한 나의 태도에서 나 자신을 비난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어떤 경우에 놓이게 되더라도 항상 변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만약 네가 진실을 알고 싶다면…… 내가 행복한지 어떤지 알고 싶다면 솔직히 말해서 행복하지가 않다. 그럼 아내는 행복할까? 역시 행복하지 않아.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149쪽)


˝떠났나? 그럼 됐어.˝


˝잘 있어, 마리야.˝ 그는 조그마한 소리로 누이동생에게 말하고 서로 키스를 나눈 뒤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공작 부인은 안락의자에 누워 있고 부리엔 양은 그녀의 관자놀이를 비비고 있었다. 마리야는 올케를 부축하고 눈물 젖은 아름다운 눈으로 안드레이가 나간 문 쪽을 마냥 바라보면서 오빠를 위해 성호를 그었다. 서재로부터 연거푸 코를 푸는, 화가 난 듯한 노인의 소리가 총소리같이 들려 왔다. 안드레이가 나간 순간 서재 문이 재빨리 열리고, 흰 가운을 입은 노인이 근엄하게 내다보았다.


˝떠났나? 그럼 됐어.˝ 그는 정신을 잃고 있는, 몸집이 작은 공작 부인 쪽을 화가 난 듯이 흘끗 보며 이렇게 말하고는 비난하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며 문을 쾅 닫아 버리고 말았다.(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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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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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미궁에 빠진 인간은 결코 진실을 추구하지 못하고,

자신의 아리아드네만 찾으려 할 뿐이다.

 - 니체

 

 * * *

 

 

 

 

 

(밑줄긋기)

 

그리고 그는 미지의 기술에 마음을 쓰고자 한다.
Et ignotas animum dimittit in artes.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Ⅷ, 188

 

 -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題詞 중에서

 

 * * *

 

영혼의 자유와 힘을 밑천으로 하나의 살아 있는 것,

아름답고 신비한 불멸의 새 비상체(飛翔體)를 오만하게 창조해 보리라.

 

 -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題詞 중에서

 

 

 

 

('題詞'에 대한 나의 생각)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크레테의 크노소스 궁전에 얽힌 '다이달로스 신화'에 매료되었던가. 니체도 그랬고(왜 아니 그랬겠는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왕국에 찾아온 테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의 실'을 달아준 여인, 자신의 조국과 아버지 미노스 왕보다도 아테네에서 건너온 아름다운 왕자 테세우스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공주, 끝내 낙소스 섬에서 테세우스에게 버림받고 만 가련한 처녀, 그런 아리아드네를 구해준 남자가 바로 디오니소스였으니 말이다.) 크레테에서 태어난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그랬다.(이번 기회에 그동안 눈길만 주곤 했던 카잔차키스의『크노소스 궁전』을 결국 사고 말았다. 내친 김에 카잔차키스의 대표적인 작품『오디세이아』까지도 함께 샀다. 카잔차키스의『오디세이아』는 너무 방대하고 거창한 작품이어서 솔직히 겁은 좀 나지만, 언젠가는 결국 읽게 되지 않을까?) 

 

제임스 조이스 역시 예외가 아니었구나. 이 훌륭한 '자전적 소설'의 주인공 이름으로 스티븐 디덜러스('다이달로스'의 영어식 표기가 바로 '디덜러스'이다.)를 내세운 것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싶더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결국『율리시스』에서도 스티븐 디덜러스를 다시 한번 더 등장시켰으니 말이다. 

 

차마 두려워서 여태껏 제대로 집어들지 못한『율리시스』를 그래도 듬성듬성 눈길 가는 대로 펼쳐 읽는 것만으로도, 그 소설 속에 크레테 궁전에 얽힌 매혹적인 이야기와 인물들이 적잖이 담겨 있었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명장(名匠) 다이달로스가 나무로 빚어낸 암소 덕분에 마침내 황소를 유혹하여 자신의 음탕한 욕망을 채울 수 있었던 파시파에, 거기서 탄생한 괴물 미노타우로스, 자신이 만들었고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도로 거기에 갇히게 된 바로 그 미궁에서 탈출하기 위해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던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 제임스 조이스가 마침내 '자유'를 찾아 미궁 같은 음울한 도시 더블린을 떠난 것도 다이달로스를 너무 닮았다. 그런데 조이스의 책을 읽는데 왜 자꾸 니체가 슬며시 겹쳐 떠오를까? 제임스 조이스가 '고대 그리스'에 너무나 정통했기 때문일까? 니체에 정통했던 그리스인 카잔차키스는 또 어떻고?

 

 

 

Daedalus, Pasiphae and wooden cow.

Roman fresco from the northern wall of the triclinium in the Casa dei Vettii (VI 15,1) in Pompeii.

 

 

 

《잠든 아리아드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98년, 캔버스에 유채, 91×151㎝, 개인소장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티치아노. 1522∼1523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툴리오 롬바르도, 1520-1525년경, 대리석, 높이 56cm,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카루스의 추락, 토마소 단토니오 만추올리(Tommaso d'Antonio Manzuoli), 1570 ~ 1571, 베키오 궁전

 

 

 

  * * *

 

언젠가 그 신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 "상황에 따라 나는 인간들을 사랑한다 ㅡ 이때 그 신은 그 자리에 있었던 아리아드네Ariadne를 넌지시 암시했다 ㅡ : 나에게 인간이란 지상에서 그와 비견될 만한 것이 없는 유쾌하고 용기 있고 창의적인 동물이다. 이 동물은 어떤 미궁에 있어도 여전히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아낸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은둔자의 저술에서는 언제나 황야의 메아리 같은 어떤 것, 고독의 속삭임이나 두려워하며 주의를 살펴보는 태도와 같은 것을 듣게 된다. 그의 가장 강한 말과 외침소리에서까지도 어떤 새로운 좀더 위험한 종류의 침묵이, 비밀스러운 침묵이 울려온다. 해마다 밤낮으로 홀로 자신의 영혼과 은밀히 다투거나 대화하면서 함께 앉아 있었던 자, 자신의 동굴에서 ㅡ 그것은 미궁일 수 있지만, 황금 갱도일 수도 있다 ㅡ 동굴의 곰이 되거나 보물 채굴자가 되거나 보물 수호자와 용이 되어버린 자, 이러한 사람의 상념 자체에는 마침내 어떤 특이한 어스름 빛을 띠고, 심연의 냄새와 함께 곰팡이 냄새를 풍기며, 그 곁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찬 기운을 내뿜는, 무어라 전달하기 어렵고 불쾌한 것이 있다.

 

- 니체, 『선악의 저편』

 

독립한다는 것

 

독립한다는 것은 극소수 사람의 문제이다 : ㅡ 그것은 강자의 특권이다. 독립을 시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독립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그에 대한 훌륭한 권리를 가지고, 그가 강할 뿐 아니라 자유분방한 상태에 이를 정도로 대담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그는 미궁으로 들어가며, 삶 자체가 이미 동반하고 있는 위험을 천 배나 불리게 된다.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길을 잃고 고독에 빠져 양심이라는 동굴의 미노타우루스Minotaurus에게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위험 가운데서도 결코 사소한 위험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이 밑바닥으로 내려간다고 할 때, 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을 느끼지 못하고 동정하지 못하게 된다 : ㅡ 따라서 그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다! 그는 사람들의 동정으로도 되돌아올 수 없다! ㅡ ㅡ

 

- 니체, 『선악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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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6-07-12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잔차키스의 `크노소스궁전`을 읽어보고 싶네요. 그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부터 삐걱걸린 1인입니다. 위대하다 칭찬해마지 않는 이 작품이 물론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건 아니지만 .... 저는 이상하게 걸리더군요. ...... 다른 작품들은 어떨지 다시 한번 시도해봐야겠습니다.

oren 2016-07-12 15:57   좋아요 1 | URL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뭔가 삐걱거리는 느낌을 받으셨다면 그건 아마도 주인공이 `우리의 삶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그리스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조르바처럼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소설 속의 주인공을 조금만이라도 닮고 싶은데, 그런 자유조차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 현실이 도리어 독자들로 하여금 그 소설 작품을 미워하게 만드는 느낌 또한 아예 없지는 않지 싶습니다. <돈키호테>와 같은 작품에서는 도저히 맛보기 어려운, 주인공을 향한 묘한 시기심이나 질투심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동안에 언뜻언뜻 끼어드는 듯한 느낌을 저 또한 떨쳐내기 힘들었던 기억이 슬며시 다시 떠오르는군요. <크노소스 궁전>은 그에 비한다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지 싶습니다. `다이달로스`가 과연 어떤 성격과 행동을 지녔는지도 궁금하고 말이지요.

yamoo 2016-08-11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판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읽을만한가요? 조이스의 작품은 대체로 지루함을 느껴 완독한 책이 없습니다..이 책은 소장하고 있는데, 언제쯤 읽을 지 모르겠어요~

oren 2016-08-12 00:07   좋아요 0 | URL
네. 민음사판의 번역은 제 기준으로는 아주 좋았습니다. 지나치게 번역투로 흐르지도 않고 나름대로 순 우리말로 절묘하게 옮겨놓은 어휘들과 매끄럽고 유려한 문장들도 많구요. `조이스 입문용`으로서가 아니라 `대작가의 처녀작`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작품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