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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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그러나 누구도 결코 자기의 욕망, 자기의 관념, 자기의 고통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가를 드러내보이지는 못하는 법이고 사람의 말이란 깨진 냄비나 마찬가지여서 마음 같아서는 그걸 두드려서 별이라도 감동시키고 싶지만 실제는 곰이나 겨우 춤추게 만들 정도의 멜로디밖에 낼 수가 없는 것이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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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써낸 50 내지 60편의 장편소설들을 모두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할 일은 너무 많고 인생은 너무 짧다. 다만 힘차고 다양하게 사회를 묘사한 작가라는 점에서는 발자크를 따를 자가 없다.

 - 클리프턴 패디먼

 

 * * *

 

"내 머릿속에 19세기의 사회가 들어 있소"

 

1834년에 발자크가 한스카 부인에게 보낸 편지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을 품었던 사람이다. 그의 웅대한 구상을 보면 톨스토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나폴레옹과 러시아가 벌였던 전쟁을 배경으로 불멸의 거작인『전쟁과 평화』를 썼지만, 그의 초기 구상은 그 소설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것이었다.(그는 1825년의 데까브리스뜨 반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폴레옹의 1813년 러시아 원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1805년에서 1812년까지를 제1부, 1825년 데까브리스뜨 반란을 제2부, 1856년 시베리아에서 돌아오기까지를 제3부로 하는 거대한 장편을 구상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전쟁과 평화』로 개작했다. 시대 배경 또한 1805년에서 1820년까지로 대폭 축소했다.)

 

발자크는 톨스토이보다 '집필 환경'이 훨씬 열악했지만 자신의 구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풍속 연구」,「철학적 연구」,「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에 걸쳐서 137편의 소설을 채우려고 했다니 그의 포부가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계획대로 끝마치지는 못했으나 91편까지 쓴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소설들을 한데 묶어 통칭하는 소설 제목이 『인간 희극』이다.

 

'한 세대의 살아 있는 벽화의 연속성'을 소설로 그려내고자 열망했던 작가는 '인물 재등장 기법'이라는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 기법을 평생 즐겨 사용했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얼마나 될까. 대략 2,000여 명이 된다고 한다. 세익스피어가 37편의 희곡 작품을 통해 대략 1,100명의 인물을 창작했다고 하는데 발자크는 그보다 한 술 더 뜬 셈이다. 그런데 애당초 발자크가 구상했던 인물은 무려 4,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작가의 머리속이 어떻게 구성되었길래 그 많은 인물들을 창작하고 소설에 녹여낼 생각을 했는지 기가 막힌다.

 

발자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숫자를 세다가 세월 다 보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애쓴 결과가 자못 흥미롭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2,000여 명이 된다. 그 가운데에서 460명이 75편의 작품들에서 다시 증장하고 있다. 한편 75편 가운데에서 36편의 소설은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18편은 파리와 지방을, 21편은 파리를 완전히 벗어나서 지방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무대로 삼고 있다. 또한 460명 가운데 167명은 직업이 없다. 이들 중에서 55명은 귀족 출신이거나 신사이며, 62명은 귀족 출신의 부인들이고, 나머지 50명은 부르주아 출신 부인들이다. 다른 293명의 직업은 다양하다. 공무원, 법률가, 군인, 교회에 관계하는 사람, 사업가, 예술가 등이다.(400-401쪽)

 

프랑스 문학에서 발자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문학사가들의 관심사일 뿐 평범한 독자들한테까지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많은 작가들로부터 실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는 점만은 미리 알아둬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그는 몇몇 저명한 작가들로부터 '엉터리 작가'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으며, 프루스트와 같은 작가로부터는 심지어 프랑스어를 더럽힌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에게 '저질 작가'라는 오명을 씌운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살아 남았다. 『인간 희극』의 서문에서 미리 밝혔던 '나를 공평하게 평가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국에서 홀대받은 그는 도리어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 독일, 헝가리에서 훨씬 더 나은 평가와 존경을 받는다. 발자크만큼 가장 예리하고도 능숙하게, 객관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떠오르는 부르주아 사회'를 그려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줄곧 예술가적 신념으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발가벗겨서 독자들에게 당차게 들이댔고, 그런 진실성과 역사성이 끊임없이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것이다.

 

"귀족은 단순히 존재함으로써 귀족일 수 있으나 부르주아지는 모든 성공과 실패의 유동성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존재의 근거를 만들어가야 할 긴박한 사회적 투쟁 속에 휘말려 있다. 발자크는 안정되고 교양 있는 전통적인 부르주아지에 속하지 않았으며 바로 대혁명에 의해서 창출된 서민적인 부르주아지에 속하였다. 그는 수세기의 성장 끝에 비로소 19세기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부르주아 세계를 표현한,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부르주아적인 작가인 동시에 이 계급의 철저한 자기 인식과 탐구 그 자체에 의하여 이 계급에 대한 최대의 비판자가 되었던 작가였다.".(405-406쪽)

 

문학계의 나폴레옹이 되려고 했던 그는 어쨌든 '고상한 문학 풍조'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꾀했으나 '황제'에 오를 만큼의 위엄과는 사뭇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무한히 샘솟는 풍요로운 상상력 때문에 '작품의 구성이나 플롯의 정연한 전개'는 너무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이고, 지나치게 꾸며내고 과장하는 습관 탓에 '자제력'을 발휘하여 우아하고 재치있는 솜씨를 부려야 마땅할 장면에서도 허풍을 치고 속임수를 부린다는 점 때문에 '그는 남에게 학자나 철학가의 인상을 보이려고 하는 순간에 구역질나는 사기꾼이 된다'(플로베르)는 혹평까지도 듣게 된다. 그러나 그가 없었더라면 도대체 누가 당대의 사회를 구성했던 인물들을 그토록 익살맞고 재치있으면서도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낼 사람이 있었겠는가. 그는 '소설을 쓴 셰익스피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묘사의 달인'이었다.

 

발자크는 작가 자신이 남들로부터 '연구 대상'이 될 만큼 흥미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글쓰는 일 말고도 수많은 사업을 벌였지만 판판이 망하고 큰 빚을 졌다. 그 때문에 평생 '돈 문제'에 시달렸다. 그의 작품이 그만큼 작가를 반영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돈' 때문에라도 끊임없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열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살았던 작가도 드물다. 그러나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훌륭한 전기로 만나는 게 마땅하다. 더군다나 걸출한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그에 대해 '불멸의 평전'을 남겨 놓았으니, 그에 대한 얘기로 자꾸만 글줄을 늘린다고 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작가 얘기를 계속 쓰다 보면 그가 쓴 탁월한 작품은 계속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이쯤에서 고리오 영감 얘기로 넘어 가자.

 

고리오 영감도 『고리오 영감』이 아닌 발자크의 다른 작품에서 '다시' 여러 번 등장할까? 용케도 이 영감은 『고리오 영감』이라는 소설에만 등장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너무 안심하긴 이르다. 다른 작품에도 등장했다가 『고리오 영감』에 '다시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35명이나 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다른 소설에도 끊임없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령 은행가인 뉘싱겐은 서른한 번, 의사인 비앙숑은 스물아홉 번, 장관인 라스티냐크는 스물다섯 번이나 다른 작품에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을 다 만나 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또 그럴 수도 없다. 평생 발자크의 소설만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나 『고리오 영감』만 읽어도 발자크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재미있고 발자크의 천재성을 흠씬 느낄 수 있다. 그러나『고리오 영감』은 발자크의 작품들이 그려낸 거대한 벽화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엄청난 작품들을 쉬지 않고 계속 써낸' 작가였고, 그 작품들을 두루 접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그의 천재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고리오 영감』은 '고전 작품'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렇다고 『돈키호테』를 읽을 때처럼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까지 읽을 정도의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의 주된 흥미는 '인생의 출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고리오 영감'과 '인생의 입구'에서 점점 사회 한가운데로 깊숙하게 진입하는 '라스티냐크 학생' 사이의 선명한 대비에서 주로 비롯된다. 두 사람은 과부 보케르가 운영하는 파리의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이 두 사람 말고도 그 하숙집엔 다섯 명이 더 있다. 그들은 장차 어떤 식으로든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하숙생들보다 훨씬 더 결정적으로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를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떠맡는 인물은 고리오 영감이 애지중지 키워서 귀족사회로 편입시킨 두 딸이다.

 

발자크는 이 소설을 쓸 때 '창작 노트'에 미리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의리 있는 사나이, 하숙집, 6백 프랑의 연금, 5만 프랑의 연금을 가진 딸들을 위해 스스로 한푼 없는 빈털터리가 된 남자, 개처럼 죽어가는 그 모습"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비교적 단촐하고, 장소는 파리의 어느 골목 하숙집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좁다. 이야기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극히 재미있으면서도 불멸의 고전이 된 까닭은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로는 발자크 특유의 놀라운 입담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당시의 사회상'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아주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특히 '돈 문제'에 관한 한 그만큼 생생하게 그려낼 작가는 찾기도 어렵다.

 

고리오 영감이 두 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퍼붓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다. 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꼭 닮았다. 그는 젊었을 때 온갖 고생을 다 겪은 후에 제면업자로 크게 성공해서 번 상당한 재산을 두 딸의 결혼지참금으로 다 쏟아 붓는다. 자신의 노후대책이라고 해봐야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연금이 고작이었다. 두 딸을 시집 보내고 아내와 사별한 그는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하숙방에서 생활하는 외롭고 불쌍한 노인으로 빠르게 쇠락해 간다. 그런 그에게 화려한 몸치장을 한 젊은 귀부인이 가끔씩 몰래 드나든다. 같은 하숙집에 사는 하숙생들은 그 노인네가 '돈'을 주고 그 여자들을 불러들인다고 생각한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그녀들은 파리 사교계에서도 알아주는 백작 부인과 은행가인 남작 부인이자 영감의 사랑하는 두 딸이다. 그녀들은 대저택에 살고 있지만 남편 말고 따로 사귀는 정부(情夫)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 남자들이 떠안은 거액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서 딸들은 친정 아버지인 고리오 영감에게 끊임없이 손을 벌린다. 영감은 그런 두 딸을 위해 마지막 남은 은식기마저 우그러뜨려 내다팔아 돈을 보태준다.

 

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희생하고 아낌없이 내주는 부성애(父性愛)가 참으로 눈물겹다. 고리오 영감은 끝내 빈털털이로 '두 딸 조차 외면한 상태로' 쓸쓸하게 죽지만 아주 잠깐 딸들을 욕할 뿐이다. 두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 못지않게 감동적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리어 왕은 자신의 권력과 영지를 아양 떠는 두 딸에게 내주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막내딸 코델리아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매몰차게 대한다. 그런데 막대한 영지를 물려받은 두 딸은 이내 아버지를 배신하고 내쫒지만 정작 막내딸 코델리아는 불쌍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다. 두 딸에게 버림받아 황야에 버려지다시피 한 리어 왕은 일견 고리오 영감과 닮았다.

 

그러나 리어 왕의 비극이 막내딸 코델리아의 죽음에 이르러 절정과 동시에 파국에 이르렀다면, 고리오 영감은 스스로 아낌없이 두 딸들을 위해 도움을 주면서도, 그런 도움을 줄 능력이 고갈되는 걸 도리어 안타까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한다는 점에서 리어 왕 보다는 훨씬 덜 비극적이다. 그러나 두 딸들이 '파리 사교계'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났던 '익숙한 패턴'에 따라 '파멸'로 치닫는 동안, 고리오 영감의 삶 또한 서서히 막바지에 이르는데, 이 과정에서 두 딸이 끝내 아버지의 마지막 간절한 소원인 '죽기 전에 꼭 한 번' 두 딸을 보고 싶은 마음을 끝끝내 외면한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백작 부인과 남작 부인인 두 딸이 아버지의 마지막 부름에 응하지 못한 이유 또한 그 중간에 낀 인물인 학생 라스티냐크가 볼 때는 너무나 어이없으면서도 지극히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큰 딸은 정부(情夫)와 함께 저지른 대형 사고가 들통나는 바람에 남편으로부터 '외부인 접견 금지'를 당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 딸은 자신의 크나큰 목표였던 '더 큰 사교모임'에 진출하기 위해 기필코 그날 밤 초대장을 받은 '무도회'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감기'에 걸려 몸이 몹시 불편하기도 했고.

 

고리오 영감과 두 딸과의 관계가 이 소설의 밑바닥을 흐르는 주조저음(主調低音)이라면, 시골 출신의 대학생인 라스티냐크는 이제 막 인생의 출발점에 서서 꿈에 부풀어 '파리 생활'을 배우느라 몹시 바쁜 학생이라는 점에서 고리오 영감과는 사뭇 대조적인 울림을 준다. 시골에서 얼마 안 되는 밭뙈기를 붙이는 부모님이 보내 주는 빠듯한 돈으로는 보케르 아줌마에게 하숙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훗날의 '성공'을 위해 지금 당장은 밤을 새워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지만 '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모습을 슬쩍 엿보게 된 이 청년은 그만 마음이 세차게 흔들려 곧장 그리로 뛰어들고픈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온갖 수소문을 다해 집안의 친척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파리의 부유한 주택가에 사는 먼 친척인 '자작 부인'에게 찾아간다. 그는 대저택에 출입할 때 마땅히 타고 가야 할 '이륜 마차'는 커녕, 마부에게 줄 몇 푼 안 되는 '택시비'마저도 아껴야 할 형편이다. 사교계에 드나들 때 갖춰야 할 맞춤복이나 구두나 장갑을 마련할 비용은 꿈도 꾸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고향의 부모님 앞으로 '눈물 겨운' 편지를 쓴다. 이유는 제발 묻지 마시고 최대한으로 돈을 마련해서 보내주시라고 말이다. 나중에 기필코 성공해서 꼭 되갚아 드리겠노라는 철석같은 약속과 함께.

 

마침내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으로부터 거금 1,200프랑과 350프랑이 보태져서 그의 주머니에 미끄러져 떨어지자 그가 보인 반응이 놀랍다. 발자크의 천재적 재능은 바로 이런 곳에서 유감없이 번쩍인다.

 

그의 내부에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원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제멋대로 모든 것을 갈망했다. 그는 쾌활하고 너그러우며 감정이 풍부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는 날개가 없던 새가 크게 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뼈다귀 하나를 훔쳐낸 개처럼, 돈 없는 이 학생은 한 가닥의 쾌락을 꽉 붇잡았다. ……

 

파리 전부가 그의 것이었다. 모든 게 빛나고 번쩍이며 이글거리면서 불타는 나이이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젊은 사람 아니고는 아무도 맛볼 수 없는 기쁨과 힘이 넘쳐흐르는 나이!  빛과 격렬한 격정마저도 모든 기쁨을 열 배로 만들어줄 수 있는 나이! 센 강 왼쪽 언덕배기와 생 자크 거리로부터 생 페르 거리 사이를 지나다녀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 파리 여성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사랑을 구걸하려고 달려올 텐데!> (133∼134쪽)

 

청년 라스티냐크가 '인생의 출발점'에서 겪는 고뇌와 방황은 시골에서 도회지로 '청운의 꿈'을 안고 진학했던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젊은 날의 초상'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다. 나 또한 그렇게 읽었다. 시골에서 한 해 동안 땀흘려 농사 지어서 버는 돈이라는 건 전세계 어디서나 액수가 뻔하다. 그런 사정을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4년간 등록금 전액 면제'를 받고 대학을 다녔어도 '비밀 과외'를 해서 하숙비에 보태야 했다. 그런데 촌놈이 서울에 올라와 보니 서울은 정말 거대하고도 휘황찬란했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상경한 첫날 저녁에 '명동'으로 '시내 구경'을 나갔는데 롯데쇼핑센터에서 번쩍거리는 불빛에 정신이 아득했고, 명동 일대의 고층 빌딩들을 쳐다보느라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젖혔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영화를 보러 시내의 영화관만 들어가 봐도 화면이 초대형에다 돌비 사운드 시스템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향이 죽여줬다. 어쩌다 시내에서 직접 보게 된 여배우들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내가 잠시 과외를 했던 중학생의 집도 저택 수준이었다. 아이를 가르칠 때 항상 과일을 내주시던 학생의 어머님은 TV 연속극에서나 봐왔던 사모님 같았다. 8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그 집안이 아직도 한국에서 여전히 손에 꼽히는 재벌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라스티냐크도 시골에서 상경하여 '파리 생활'을 익히느라 바빴다. 그가 머무는 하숙집엔 수백만 프랑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처녀인 빅토린 양도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은근히 라스티냐크에게 호감어린 눈길을 자주 보내온 터였다. 보케르 아줌마네 하숙집에서 지내는 가장 독특한 인물인 보트랭이 어느 날 라스티냐크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빅토린 양이 '수백만 프랑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그녀의 오빠를 제거해 줄 테니 나중에 그녀와 결혼해서 갑부가 되고 나면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라스티냐크는 보트랭의 제안에 몹시 마음이 흔들리지만 용케 자신의 신념이나 도덕관념을 지켜내면서 보트랭의 제안에 굴복하지 않고 견뎌낸다. 보트랭이 제안의 말미에 라스티냐크에게 '한 수' 가르치는 기분으로 들려주는 '세상 사는 이치'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란 전부냐 아니면 전무냐, 어느 한쪽이지. 단 푸아레라고 불릴 때는 전무이지. 그런 놈은 빈대 새끼처럼 짓이겨 놓지. 그야말로 납작해져 냄새를 풍기겠지. 하지만 인간도 자네를 닮은 경우에는 하나님이지. 이젠 인간 가죽을 쓴 기계가 아니고 아름다운 감정이 약동하는 하나의 무대라네. 그리고 나는 그런 감정으로만 살고 있네. 하지만 감정은 사상 속에 있는 세계가 아닐까? 고리오 영감을 보게나. 그의 두 딸은 노인에게 우주 전체이지. 그녀들은 실이지. 그 실로 노인은 만물에 파고들 수가 있지. 자, 그런데, 인간을 깊이 파고들어 가본 내겐 단 하나의 현실적 감정만이 존재하네. 즉 남자와 남자 사이의 우정이지. 」

 

보트랭의 '인생 강의'는 여러 날에 걸쳐 라스티냐크를 계속 흔들어 댄다. 파리에서 출세하는 법, 좋은 자리가 오만 개밖에 없는 사정, 파리 사회를 이루는 계층 구조, 파리에 도사린 온갖 지옥 같은 함정들까지도 보트랭은 훤히 꿰고 있다. 라스티냐크가 뛰어들고 싶은 백 가지 직업에서 재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열 명쯤 있다면 바로 그 사람들을 '도둑놈'으로 부른다는 말까지, 그의 강의는 참으로 친절한 데가 있다.

 

이제 자네가 결론을 끌어내 보게! 인생이란 지금까지 얘기한 그대로야.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 나는 세상을 알고 있네.(149쪽)

 

다시 고리오 영감으로 되돌아 오자. 완전한 빈털터이가 된 노인의 장례를 치를 인물은 이제 라스티냐크 밖에는 없었다. 해가 질 무렵에서야 간신히 페르 라셰즈의 묘지에 시신은 안장되었다. 아주 헐값으로 사들인 극빈자용 관을 덮으려고 흙을 몇 삽 퍼서 던지던 두 명의 매장꾼이 라스티냐크에게 돈을 요구했지만, 그의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하숙집에서 영구차가 떠날 때부터 동행했던 사람은 하숙집 심부름꾼인 크리스토프 밖에 없었다. 라스티냐크는 그에게 일 프랑을 빌렸다. 그는 너무나 슬퍼서 발작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그가 매장을 마치고 센 강의 두 기슭을 따라서 꾸불꾸불 누워 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내가 오래 전에 대학을 다니던 무렵이 불현듯 다시 떠올랐다.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하여튼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였다. 시골 고향에서 낮에는 농사일을 거들고 밤에는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맘껏 술을 마시며 놀던 방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기 위해 하루 종일 걸리는 버스를 탔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어느새 거대한 도시가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한강을 따라 온갖 불빛들이 거대한 띠를 이루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시골 고향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에 나는 그만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몸을 고쳐 앉았다. "여기가 바로 서울이군,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속으로 떠올린 혼잣말 속에는 '대결'의 뜻도 아예 없지는 않았으리라.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속에서 그토록 오래된 희미한 기억과 풍경과 다짐들을 다시 찾아낼 줄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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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15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글을 읽으니까 아직 안 읽은 발자크의 작품들이 보고 싶어집니다. ^^

oren 2017-07-15 12:23   좋아요 0 | URL
발자크의 작품들 가운데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책들이 의외로 그리 많지 않더군요. 발자크와 관련된 이런 저런 리뷰와 페이퍼들을 찾아 읽다가 ‘발자크를 유난히 애정하시는‘ cyrus 님의 글도 여럿 구경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참고가 되었고요^^

꼬마요정 2017-07-1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리오 영감 내용만 대충 알아서 안 읽을까 했는데, 꼭 읽어야겠습니다. 발자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츠바이크의 평전도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oren 2017-07-15 12:40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평전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발자크 평전‘인 모양입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만, 츠바이크라면 믿음이 확 가는 전기작가이니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습니다. 발자크를 읽으면서 가장 자주 떠올리는 단어는 아마도 ‘돈‘일 꺼에요. ˝돈이 바로 인생이야˝(315쪽), ˝잉여 인간˝(370쪽)이라는 유명한 문구들도 인상적이고요. 방금 경제학 서적에서 간신히 ‘다시‘ 찾아낸 ‘발자크‘를 재미삼아 덧붙여 봅니다.

* * *

스프라그의 인용과 번역이 정확하다면, 호레이스(Horace)는 그들의 자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라; 할 수 있다면 정직하게 돈을 벌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라.˝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언급도 이와 마찬가지로 냉소적이다: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리고 나서 혹시 미덕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 하라.

발자크는 마지막 한 방이라고 부를 만한 말을 남겼다: ˝가장 미덕 있다는 상인들이 당신 앞에서 가장 노골적인 자세로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말을 들려줄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나쁜 일에서 잇속을 챙겨 나온다.˝

-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中에서
 
셰익스피어 전집 10 : 소네트.시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 1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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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설화시(說話詩) 『루크리스의 강간』은 제목만 봐도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 누구나 능히 추측할 수 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몇 가지 뚜렷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영원히 회자될 만큼 아주 유명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강간'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내면 심리 묘사'가 몹시 탁월하다는 점이다. 셋째는 이 사건 이후로 '로마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이야기를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로마 달력』제2권에 실린 이야기에서 빌려 왔다고 한다. 물론 이 역사적 사건은 로마 최대의 역사가였던 리비우스의 『로마사』제1권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두 원전에서 100행 정도 되는 이야기를 무려 1855행의 장시로 새롭게 창작했다. 


세익스피어가 시(詩)로 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루크레티아의 침실'로 한정되다시피 하고, 시간상으로도 '강간 사건 전후'를 모두 포함해서 1박 2일 내지 2박 3일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 그만큼 작품이 시공간적으로 몹시 압축되어 있다. 강간 사건의 배경, 동기, 발단, 진행 과정, 사건 이후 루크레티아의 자살로 이어지는 과정이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지만, 셰익스피어의 묘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내면 심리 묘사'에 극도로 집중된다. 그 긴박하고도 절체절명의 끔찍한 사건을 두고 '시간의 흐름'을 너무 오래도록 붙잡아 두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인은 '두 사람의 내면 심리 묘사'에 필요한 시행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다. 그만큼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일순간의 욕정이 일으킨 결과가 엄청나고 중요했는데, 그 사건 때문에 '두 사람의 삶' 뿐만 아니라 '로마의 역사'가 송두리째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은 둘이다. 가해자 타르퀴니우스 섹스투스는 고대 로마 왕정 시대의 마지막 왕이었던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의 막내아들이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친척이자 귀족이었던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영어로는 '루크리스')였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자신의 장인이 차지하고 있던 왕위를 찬탈한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는 자신의 아들들과 로마 귀족들을 데리고 아르데아를 포위 공격하러 로마를 벗어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왕자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의 막사에서 저녁 식사 후 담화에서 서로 '자신들의 부인의 미덕'을 칭찬하게 되었다. 그 때 로마의 귀족이었던 콜라티누스는 자신의 아내 루크레티아의 비할 데 없는 정절을 격찬했고, 왕자와 로마 귀족들은 곧바로 '현장 조사'를 위해 로마로 말을 몰았다. 과연 콜라티누스가 호언장담한 그대로였다. 다른 부인들은 모두 춤추고 흥청대거나 다른 오락을 즐기고 있었는데 오직 루크레티아만 밤이 깊었는데도 시녀들과 함께 실을 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루크레티아가 미덕만 갖춘 게 아니라 눈부신 미모까지 함께 지녔다는 점이었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몸이 달아 올랐지만 자신의 격정을 억누르고 일행과 함께 진영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곤 곧장 몰래 빠져나와 루크레티아에게 찾아가 아무런 의심도 사지 않고 '왕족 대접'을 받으며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날 밤 그는 도둑고양이처럼 루크레티아의 침실로 숨어 들어가 끝내 난폭하게 그녀를 겁탈하였고, 아침 일찍 서둘러 떠났다. 루크레티아는 비탄에 빠진 채 자결을 결심한다. 죽기 전에 그녀는 심부름꾼을 시켜 친정 아버지와 남편을 급히 불러들인다. '검은 상복'을 입은 채 비탄에 빠진 그녀는 '증인들'을 앞에 두고 강간범 타르퀴니우스의 범행을 알리고 자신의 복수를 다짐받은 직후 칼로 자결한다.


이 때 '범행 고발 현장'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는 유니우스 브루투스도 있었다. 그는 먼 훗날 로마 공화정 말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했던 브루투스의 조상이었다. 강간범의 부친이자 왕이었던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가 이미 '왕위 찬탈자'였고 폭정을 일삼았던 데다가 이런 끔찍한 사건까지 겹치게 되자 브루투스는 우연히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결한 루크레티아의 몸에서 손수 칼을 뽑으면서 '타르퀴니우스 가문 전체를 뿌리 뽑겠다'고 맹세하였고, 곧바로 루크레티아의 시신을 끌고 로마의 광장으로 가서 '독재 왕정의 폐단'과 '범죄의 만행'을 시민들에게 고발했다. 이로써 '로마 왕정'이 끝나고 로마는 '두 명의 집정관'이 통치하는 공화정이 시작되었다. 로마 최초의 집정관 두 사람이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콜라티누스였다.


이 때가 기원전 509년이었고, 루크레티아는 '고결한 여성의 상징'이 되었고 훗날 '로마 공화정의 어머니'로 불리게 되었다. 브루투스는 '로마 공화정의 창시자'가 되었다. 브루투스는 시민들에게 "로마는 앞으로 어떤 인물도 왕위에 오르도록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인물도 로마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맹세했다. 그로부터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다시 '왕관'을 욕심낸다는 소문이 로마에 파다했을 때 '브루투스'가 다시 나타나 그를 찔렀다. 브루투스의 목소리는 셰익스피어의 펜 끝에서 다시금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왜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그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결코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카이사르가 죽음으로써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카이사르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카이사르는 나를 사랑했기에, 나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그가 행운을 타고났기에,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그가 용감했기에,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었기에, 나는 그를 죽였습니다. 그의 사랑에 대한 눈물, 그의 행운에 대한 기쁨,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심에 대해서는 죽음이 있습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중에서

 

 

어느새 '고대의 성폭행 사건'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다. 다시 『루크리스의 강간』으로 되돌아 가자. 셰익스피어는 이 시를 통해 '인간 욕망의 덧없음'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 그런데 그의 시를 감상하고 싶은 독자들한테 '이야기의 줄거리'만 간략하게 요약해 놓으면 그게 무슨 재미일까.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악명'을 깊이 새긴 강간범 타르퀴니우스의 '내면 심리 묘사'를 셰익스피어의 언어로 조금도 맛볼 수 없다면 말이다.


그래, 난 죽어도 이 추문은 살아남아

나의 금빛 문장에서 흉물이 될 것이다.

문장관은 무언가 역겨운 표시를 고안하고

내가 참 얼마나 어리석게 혹했는지 묘사하여

내 후손은 그 기록을 창피하게 여기고 

내 유골을 저주하며, 내가 그들 조상이 

아니길 바라는 게 죄라고 여기지 않을 거다.


내가 추구하는 걸 가진다면 난 뭘 얻지?

덧없는 기쁨의 한 꿈, 한 숨, 거품이지.

그 누가 순간의 환희 사서 일주일 울부짖지?

아니면 장난감 때문에 영원을 내다 팔지?

포도 한 알 때문에 누가 그 덩굴을 망치지?

어떤 바보 거지가 왕관을 만져만 보려다가

곧바로 홀에 맞아 나자빠지려 하지?

(204∼217행)


셰익스피어가 쓴 154편의 소네트 가운데서도 이처럼 '인간 성욕의 허망함'이 절절히 묘사된 작품이 있다. 그 시는『루크레티우스의 강간』(1594년)보다 훨씬 뒤인 1609년에 출간되었지만 서로 긴밀한 연관을 지닌 것처럼 읽힌다. 민음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전집10 』에 담긴 번역보다는 다른 책에서 읽은 '해설이 곁들여진 번역'이 이 글에 더 알맞을 듯하여 그 대목을 인용해 본다.



황폐한 수치심 속에 소모된 정신은

끓어오르는 육욕의 결과; 그처럼 끓어오르기 전에는

거짓되고, 살인적이며, 잔인한 수치덩어리.

야만적이고, 극렬하며, 무례하고, 잔인하며 믿을 수 없는 것;

즐기자마자 멸시받는 것;

정신없이 쫓다가 잡자마자,

정신없이 미워지는 것, 삼킨 자 더욱 미치게 하려고

일부러 놓아 둔 미끼를 삼킨 것처럼;

쫓을 때도 미친 짓, 얻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

차지했을 때, 차지하고 있을 때, 차지하려 할 때, 언제나 극렬한 것;

할 때는 황홀경, 하고 난 뒤에는 비애감.

전에는 눈앞의 행복, 후에는 허망한 꿈.

이 세상 사람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것은

남자를 이 지옥으로 이끄는 천국을 피하는 일.


이 시의 맹렬한 에너지는 계속되는 욕망과 욕정의 파멸을 예언한다. 시에는 등장하는 인물이 없다. 잘생긴 젊은이는 먼 곳에 있고 거무스름한 여인은 암시에 의해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 소네트에서는 욕망이 암흑의 정신을 지닌 주인공이자 악당인 셈이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 부분에 지옥에 대한 남자들의 욕망을 묘사하는데, 지옥Hell은 엘리자베스와 자코비언 시대에는 여성의 성기인 '질'을 뜻하는 은어였다.


 - 헤럴드 블룸의 『교양인의 책읽기』, <시>


 

방금 다른 책에서 인용한 세익스피어의「소네트 129번」에도 표현되었듯이, 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남자를 이 지옥으로 이끄는 천국을 피하는 일'이다. 루크레티아를 강간한 타르퀴니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양심의 갈등이 그를 계속 '범행'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끈질기게 애원했지만 그는 끝내 '눈먼 욕정의 명령'에 굴복하고 만다. 온갖 변명과 허위 논리와 감언이설을 스스로에게 다시 늘어놓으면서.


이건 수치스럽다, 그래, 사실이 알려지면.

미움받을 일이다, 하지만 사랑엔 미움 없다.

그녀 사랑 난 애원할 텐데, 그건 남의 것이다.

이 일의 최악은 거절과 나무람뿐이다.

내 욕심은 강하여 이성으론 쉽게 못 없앤다.

경구나 늙은이의 격언을 두려워하는 자나

벽걸이 그림 보고 외경심에 빠질 거다."


이렇게 얼어붙은 양심과 불타는 욕심 새에

은총 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그는

선량한 생각은 면제를 받았다 여기고

나쁜 뜻을 언제나 유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순수하단 표시는 모두 다 한순간에

흩어지고 사라져, 매우 치사한 것이

덕행으로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239∼252행)


타르퀴니우스가 처음부터 '악의 화신'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마치 '햄릿'을 연상시킬 정도로, 온갖 갈등을 다 겪으며 마음 속으로는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지만 끝내 자신의 욕망을 꺽지 못한다. 그가 마침내 극악무도한 악인으로 돌변하는 장면은 루크리스를 범하기 직전에 보이는 협박 장면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그는 전쟁터에서 적을 무찌르는데 써야 마땅할 칼을 뽑아 무방비 상태에 내몰린 루크레티아를 위협한다.


"루크리스." 그의 말, "난 오늘 밤 그대를

즐겨야겠는데 거절하면 폭력으로 막가겠소,

그대의 침대에서 그대를 없앨 작정이니까.

그런 다음 가치 없는 종 하나를 살해하여

그대의 명예를 그대 생명 파괴하며 허물 거요.

또 그대의 죽은 팔에 그를 놓고, 그를 품는

그대를 보고서 살해했다 맹세할 것이오.


그래서 살아남은 그대의 남편은

눈 뜬 사람 모두가 경멸하는 표적 되고,

그대의 친척들은 이 멸시에 머리를 떨구며,

그대의 자식은 무명의 서출로 얼룩지고,

그들의 체면 손상 장본인인 그대는

자신의 불륜이 가요에서 언급될 것이며

후세의 아이들이 노래 부를 것이오.

(512∼525행)


타르퀴니우스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데 더해서 루크레티우스에게 치욕과 불명예까지 뒤집어씌우려는 야비한 행위마저 서슴치 않는다. 강간이 저질러진 이후 비탄에 빠진 루크레티우스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들은 마치 고대 그리스 시인들의 비극시를 읽는 것처럼 장중하면서도 애닯다. 루크레티아는 때로는 필로멜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밤꾀꼬리'로 변신한 아테네의 공주. 형부에게 끔찍하게 강간 당한 뒤에 '형부의 범행'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혀'마저 뽑혔다. 나중에 언니와 함께 복수한다. ☞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복수)에 비유되기도 하고, 때로는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비참한 여인으로 전락한 왕비 헤카베에 비유되기도 한다.

 

유명한 화가들도 이 사건을 주제로 많은 그림들을 남겼다. 자신의 '거품 같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끝끝내 상대방은 물론 자신과 왕조마저도 파멸로 내몬 '인간 욕망의 비극'에 어느 누군들 왜 관심이 없었겠는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셰익스피어가 시를 통해 더욱 비극적으로 묘사한 『루크리스의 강간』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도 이미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가 여러 그림에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쉽사리 변치 않을 '인간의 욕망과 비극'이 그만큼 여러 예술가들의 영감을 끊임없이 자극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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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덧붙이는 '참고자료들'은 또다른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자료들이다.

 

셰익스피어는 『루크리스의 강간』을 제외하고도 특별히 '브루투스 가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작품을 조금 더 남겼다. 무엇보다도 '브루투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줄리어스 시저』가 눈에 띈다. 심지어『베니스의 상인』조차 여주인공(포르키아, 영어로는 '포샤') 이름이 '브루투스의 아내'에서 따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브루투스 가문 사람들'을 애기하지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여러 재미있는 일화들과 마키아벨리의『로마사론』에 담긴 일부 내용도 빼놓긴 아쉽다.

 

그런 내용들을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들과 함께 버무려서 글로 정리해 볼까 싶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글을 쓰도록 부추긴 요소들 가운데는 '그림'의 역할이 가장 컸다. 그런 그림들을 이제 겨우 싹을 내밀까 말까 하는 다른 글 때문에 꼭꼭 숨겨둘 필요는 없을 듯하여 여기에 덧붙여 놓는다.


 * * *


 

루크레티아, 1685년

세바스티아노 리치(1659∼1734, 이탈리아)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16세기경

베첼리오 티치아노(1488∼1576, 이탈리아)



루크레티아의 자결, 1518년, 뮌헨 알테 피나코텍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 독일)



루크레티아의 자살, 1640∼1642년, 카피톨리나 미술관

귀도 레니(1573∼1642, 이탈리아)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1610년,

루벤스(1577∼1640, 독일), 에미르타주 미술관(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걸려 있는 루벤스의 그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62701031632071002

 

 * * *

 

 

브루투스(Brutus, Lucius Junius)

 

로마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로마 공화제의 전설적 창시자

 

 

로마7왕의 마지막 왕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누이인 타르퀴니아와 마르쿠스 유니우스의 아들이다. 역사상의 인물이라고도 하지만, 실재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형제들이 독재 군주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에 의해 처형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브루투스는 바보로 위장하여 목숨을 건졌다. 브루투스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왕실 주변에서 자라면서 복수할 기회를 엿보았다.


로마에 전염병이 번져서 왕자들이 델포이신탁()을 물으러 갈 때,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브루투스를 데려갔다. 왕자들이 델포이 신전에서 누가 왕위를 계승할 것인지 묻자, 로마에 가서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는 자가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렸다. 브루투스는 로마에 들어서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었는데, 이는 신탁에서 말한 어머니는 인류의 어머니를 뜻하는 땅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막내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는 사촌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를 겁탈하였다. 루크레티아는 남편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자살하였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브루투스는 본색을 드러내고 폭군을 몰아내자고 주도하였다. 브루투스는 무장 봉기를 지휘하여 로마를 장악하고 왕정()을 종식시켰다.


브루투스는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와 함께 집정관으로 선출되어 로마공화제가 시작되었다. 브루투스는 민중들이 타르퀴니우스 일족인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가 집정관으로 선출된 일에 불만을 품자 사임하도록 종용하였으며, 그 결과 발레리우스 푸블리콜라가 새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로마를 빼앗긴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왕위를 되찾기 위해 귀족 자제들과 손을 잡고 로마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킬 음모를 꾸몄는데, 브루투스의 두 아들이 여기에 가담한 사실이 적발되었다. 브루투스는 냉철하게 두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처형식에도 입회하였다고 한다. 이후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가 이끄는 에트루리아의 군대가 로마를 공격하였을 때, 브루투스는 그의 둘째아들 타르퀴니우스 아룬스와 1대1로 결투를 벌이다 모두 전사하였으나, 에트루리아 군대가 패배하여 물러감으로써 로마공화제는 지속되었다고 한다.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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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브루투스 가문의 인물들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7-07-01 19:23 
    "브루투스, 너 마저?" 이 짧은 대사만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것도 드물다. 이 말은 삼척동자도 웬만큼 안다. 왜?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금세 '상황 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다가도 "아무개, 너 마저?" 라고 외칠 만한 상황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맞닥뜨렸던가. 나도 언젠가부터 저 짧은 대사를 듣고 알게 되었다. 그게 언제였는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내가 품었던 생각은 이랬다. '브루투스는 '참 나쁜
 
 
 


신화는 문학과 예술에 무엇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 삶이 어떤 얼개로 되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이건 대단한 것이지요.

 - 조셉 캠벨, 『신화의 힘』중에서


 * *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따라가자면 그 곁가지가 너무나 많아 매번 곤욕을 치른다. 하르퓌아이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이 마녀새 이야기를 하자면 제법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들을 두루 거쳐야만 '이야기의 얼개'가 완성된다. 나는 꽤 오래 전에 이 마녀새에 얽힌 신화를 몇몇 책을 통해서 읽고 나서 그 강렬한 인상을 좀처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문득 니체의 작품 『선악의 저편』에서 정말 뜬금없이 이 마녀새를 다시 만났다.(http://blog.aladin.co.kr/oren/8597307) 그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는 이 마녀새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찾아 읽었고, 글을 하나 지어볼 요량으로 신나게 자판을 두드려 나갔다. 그러다가 얼마 못 가서 포기하고 말았다. 고작 이 마녀새 이야기를 하자고 내가 이렇게나 '수많은 곁가지 이야기'를 다 펼쳐야 하나 싶은 마음이 자꾸만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 '마녀새' 이야기를 최근에 '기가 막힌 장소'에서 다시 발견했다. 무대는 이탈리아 나폴리 앞바다의 어느 '무인도'였다. 좀더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그 마녀새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태풍』속에서 갑자기 다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번엔 그 마녀새를 도저히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힘을 냈다. 까마득한 옛날에 쓰다 만 '하르퓌아이' 이야기를 마저 쓸 힘을 말이다. 그래서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절반쯤은 '과거에 써 놓았던' 글이고, 나머지 절반쯤은 이번에 '다시금 이어 쓴' 글이다. '신화'는 몇 년 사이에 쉽게 바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수천 년이 지나도 조금도 변치 않을지 모른다. 그러니 내가 쓴 글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쓰여졌다고 '변질'이나 '변색'을 걱정할 일은 조금도 없다. 다소 먼 여정이지만, 어쨌든 이제 다시 떠나 보자.


이 마녀새를 다루기 위해 맨 처음으로 우리가 찾아가야 할 장소는 '파가사이 항'이다. 파가사이는 텟살리아 지방의 해안도시다. 거기엔 고대의 수많은 영웅들이 '황금 양모피'를 찾기 위해 '지상 최대의 모험'을 떠날 채비를 갖춘지 오래다. 그 배에 타고 있는 인물들만 하더라도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가 벅찰 정도다.

 

원정대장은 이아손이 맡았다. '원정대원'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도 있었다. 고대 최고의 명가수 오르페우스도 그 배에 타고 있었다.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어 '쌍둥이자리'에 오른 카스토르폴뤼데우케스도 동참했다. 이 두 쌍둥이는 제우스가 백조로 둔갑하여 스파르타 왕비 레다와 사랑을 나눈 후 낳은 두 개의 알에서 깨어나온 인물들이다. 하나의 알에서는 카스토르와 헬레네 남매가 나왔는데, 이 헬레네는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바로 그 헬레네다. 다른 알에서는 폴뤼데우케스와 클뤼타임네스트라 남매가 태어났는데,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물론 트로이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을 떠맡았던 아가멤논의 아내이자, 자신의 정부(情夫)와 짜고 귀환하는 승전사령관이자 남편인 아가멤논을 독살한 바로 그 여자다.

 

이들 쌍둥이 장수에 얽힌 이야기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사람 있다. 그는 당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헬레네 납치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 인물이었다. 이 인물을 얘기하자면 우리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크레테 섬'을 한 번 다녀와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 섬에 갇혀 지내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 나라의 왕비 파시파에가 황소에 반해 '교접'을 하고 얻은 괴물이 바로 미노타우로스였고, 그녀가 암소로 분장할 수 있었던 건 물론 당대 최고의 장인(匠人)이었던 다이달로스가 기가 막힌 솜씨로 빚은 '나무 암소' 덕분이었다. 사람 잡아먹는 괴물로 태어난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필요가 있을 때 왕비는 다시 한번 다이달로스를 불렀다.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迷宮)을 지어달라고 말이다. 그 미궁에서 첫 번째로 빠져나온 인물이 바로 테세우스였고, 그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그에게 홀딱 반한 '아리아드네 공주'가 '실'로 그를 묶어 준 덕분이었다.

 

어쨌든 해마다 아테나이의 젊은 처녀와 총각들을 공물로 바치게 해서 꿀떡꿀떡 삼켜 넘기던 공포의 괴물이 미노타우로스였고, 그 괴몰을 처치하기 위해 자진해서 미궁 속으로 뛰어들어갔던 인물이 테세우스였으니, 그가 임무를 마치고 아테나이로 무사히 귀환했을 때 받았을 환영행사가 얼마나 거창했을 것인지는 달리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왕자가 젊어서 한 때 자신의 친구와 공모하여 '카스토르와 폴뤼네이케스 형제'의 누이인 헬레네를 납치한 적이 있었다. 쌍둥이 장수가 어느 날 느닷없이 사라진 자신들의 누이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메고 다닐 무렵 그녀의 행방에 관해 '결정적인 제보'를 해 준 인물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아카데모스였다. 누이를 찾은 쌍둥이 형제는 제보자의 공을 기려 그의 고향을 '아카데메이아'라고 부르게 했고, 아테나이 근교에 있는 그 마을은 훗날 플라톤이 철학을 가르키는 '학문의 전당'을 세움으로써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 학원 이름이 바로 '아카데메이아'였다. 그 이름은 오늘날 숱한 학원과 학교뿐 아니라 심지어는 영화에 주어지는 최고 권위의 상에도 쓰일 정도가 되었다.

 

이야기가 순식간에 너무 곁가지로 흘렀다. 다시 고대의 항구로 되돌아 와서 그 배에 탄 영웅들을 다시금 살펴보자.

 

아르고스는, 원정대가 50명으로 짜일 것이나 그 대원 하나하나가 일당 백의 범 같은 장수들이어서 그 크기와 무게 또한 엄장할 것인즉 유념하고 배를 지으라는 이아손의 말에 따라 배를 지어놓고도, 모여든 장수들의 면면을 보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50명의 원정대는 하나의 '미크로코스모스(소우주)'를 상기시킨다. 아이손이 이 미크로코스모스를 짜고, 배 지을 뜻을 세운 선견자(先見者)라면, 이르고스는 그 뜻에 따라 미크로코스모스가 깃들 그릇을 마련한, 천궁으로 말하면 헤파이스토스에 견줄 수 있는 섭리의 집행자다. 날개가 달려 있어서 하루에 천 리를 날 수 있고 하루에 500리를 걸을 수 있는 저 보레아스(북풍)의 두 아들 칼라이스와 제토스는 이 선견자가 보고 집행자가 빚은 미크로코스모스의 두 다리이고, 아틀라스를 대신해서 하늘 축을 들고 서 있을 수 있는 천하장사 헤라클레스와, 말을 타고 걷는 것보다 둘러메고 걷는 쪽이 편하다는 스파르타의 역사(力士) 폴뤼데우케스는 이 미크로코스모스의 두 팔이며, 새 우는 소리에서 모이라이(운명)의 발소리를 듣는 예언자 몹소스와 뱃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로 뱃길을 짐작하는 암피아라오스는 이 미크로코스모스의 두 귀고, 90리 밖에 있는 작대기가 참나무 작대기인지 소나무 작대기인지 알아보는 천리안(千里眼)의 망꾼 륀케우스와 밤에 보아둔 별자리로 낮의 뱃길을 짐작하는 천부적인 뱃사람 나우폴리오스는 이 미크로코스모스의 두 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노래와 수금 가락으로 저승 왕 하데스를 울리고, 영원히 도는 익시온의 불바퀴를 멈추게 했던 트라키아의 명가수 오르페우스도 있고, 배를 몰고 산모룽이을 돌아가되 노수(櫓手)로 하여금 노 끝으로 산자락 꽃을 어루만지게 할 수 있는 보이오티아 최고의 키잡이 티퓌스도 있으며,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둔갑의 도사인 페리클뤼메노스도 있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헤엄친다는 수영의 명수 에우페모스도 있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신인이나 영웅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는 신들에게 비는 인간을 썩어가는 인간이라고 믿는 참람한 인간 이다스도 있었고, 남자의 사랑을 받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는 여걸 아탈란타도 있었으며, 신들에게 빌지 않는 인간을 오만한 짐승이라고 믿는 이피토스도 있었고, 동성인 헤라클레스를 하늘로 알고 떠받드는 나약한 미소년 휠라스도 있었다.

 

더 있었다. 칼뤼돈의 멧돼지를 잡은 호걸 멜레아그로스도 있었고, 후일 트로이아 전쟁의 명장 아킬레우스의 아버지가 되는 펠레우스도 있었고, 헤라클레스 덕분에 죽은 아내를 되살리는 아드메토스도 있었고, 테세우스와 함께 명계로 내려가 저승 왕에게 아내를 내어놓으라고 했던 페이리토스도 있었다.127∼128쪽)


 - 이윤기, 『그리스 로마 신화 5』,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고대세계의 가장 유명한 모험은 이렇듯 숱한 영웅들을 태우고 항구를 떠나면서 돛을 가득 부풀렸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조차 없었지만, 흑해 연안 콜키스에 있다는 전설의 '황금양모피'를 구하기 위한 '굳은 결심'만은 단단했다.


항해가 시작된 이후에 그들이 겪은 '온갖 우여곡절들'을 여기서 모두 얘기할 수는 없다. 원정대가 맨 처음으로 도착한 렘노스에서 '냄새 나는 여자들'을 마침내 해방시켜 준 몽환적인 이야기, 사모트라케를 지나고 헬레스폰토스를 지나 퀴지코스라는 나라에 들렀을 때의 불행한 이야기, 헤라클레스가 아끼던 휠라스를 샘의 요정에게 빼앗기고 중도하차하게 되는 애석한 이야기 등은 아쉽지만 모두 생략해야 옳다. 우리가 기어이 만나 보고 싶은 그 '하르퓌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나기 위해서라면 우린 재빨리 목적지로 '날아가듯' 달려야 하니까.


여러 곡절을 겪은 끝에 아르고 원정대가 마침내 닿은 곳은 흑해 초입에 있는 트라키아의 어느 해안이었다. 그들이 그 땅에 상륙해서 맨처음 찾은 곳은 언덕 위에 보이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오두막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하도 늙고 하도 마르고 하도 그을려, 발밑에 엇비슷하게 누운 그림자와 별로 다르지 않은'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의 말은 이랬다.


"왔구나, 왔구나. 아르고나우타이가 이제야 왔구나. 왔구나, 왔구나, 보레아스의 아들 칼라이스와 제토스가 왔구나."


그 노인은 장님이었다.


"먹을 것을 좀 주어. 한 그릇의 보리죽, 한 모금의 물, 한 알의 실과 …… 모두 맛본 지 오래……. 하지만 지금 줄 것은 없어. 지금 주어도 나는 못 먹어. 아직은 먹을 때가 되지 않았어."


그 노인은 이내 다음과 같은 '긴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나는 아게노르의 아들 피네우스야. 내 이름, 귀에 설지 않지? 나는 세상이 접시같이 평평하지 않다는 걸 알고, 세상이 휘페르보레이아(極北)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나는 헬리오스(태양)가 검은 너울을 쓰는 까닭도 알고, 셀레네(달)가 뜨고 지는 이치도 알아. 어떻게 아느냐고? 아폴론께서 가르쳐주셨지. 그런데 나는 포이보스 아폴론(빛나는 아폴론)이 모르는 것도 알아. 내 잘못인가? 나는 이걸 사람들에게 가르쳤어. 그랬더니 제우스 대신이 어째서 천기를 누설하느냐고 몹시 화를 내시면서 벼략을, 조그만 것으로 하나 던지시더라고. 그게 무슨 벼락이었는지, 한 대 맞았더니 살갗이 떡갈나무 껍질같이 늙고 눈이 보이지 않아. 내 눈에는 자네들이 보이지 않아. 하지만 나는 알아. 자네는 젊은 대장 이아손이고, 자네는 트라키아의 풍각쟁이 오르페우스, 자네는 개똥 점쟁이 몹소스, 자네는 술장수 팔레로스…… 주신(酒神)의 사생아지? 그리고 저기 주먹 쥐고 서 있는 것은 쇠주먹 폴뤼데우케스…… 주먹에 피가 묻었구나. 뱃길이 남았는데 해신(海神)의 아들을 죽여? 그리고 자네는 달거리(月經)하는 무사로구나. 그 옆에 있는 것은 눈 밝은 륀케우스…… 눈구녕만 밝으면 무얼해? 심안(心眼)이 있어야지. 나 장님이라도 장님이라는 걸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아. 제우스 대신은, 장님이라는 걸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는 장님이 또 보기 싫으셨던 게야. 그래서 하르퓌아이를 보내어 나를 괴롭히는데…… 하르퓌아이 알아? 새야 새. 크키가 독수리만 해. 새는 새인데 대가리는 곱기가 한량없는 계집 사람이야. 물론 계집의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 이게 하르퓌아이야. 너희들도 곧 이 '제우스의 사냥개들'을 보게 돼. 이것들, 꼭 세 마리씩 짝을 짓고 다니는데, 끼니 때마나 나타나 내 먹을 걸 대신 먹고는 접시에다 똥을 싸 갈기고 날아가 ……. 물을 먹으려 해도 날아오고, 보리죽을 먹으려 해도 날아오고, 실과를 하나 먹으려 해도 날아와. 저승에서 탄탈로스가 물을 마시려고 하면 멀쩡하게 있던 물이 달아나버린다더니 나는 살아서 이 꼴을 당하고 있어. 아, 한 그릇의 보리죽, 한 모금의 물, 한 알의 실과……. 맛본 지 오래야."


이아손이 곧 아르고선에서 술과 고기를 내려오게 한 뒤에 음식을 한상 잘 차려 대접했지만 피네우스는 먹지 못했다. '하르퓌아이'라고 하는 요괴가 어느새 하늘에서 구름을 헤치고 쏜살같이 내려와 덮쳤기 때문이다. 얼굴은 곱기가 한량없는 계집인데 나머지는 영락없이 새인, 참으로 요상한 괴물이었다. 그러나 모습보다 더 요상한 것은 그 버르장머리와 몸에서 풍기는 이상한 냄새였다. 피네우스 노인과 아르고호 원정대원들이 코를 싸고 있는 동안 요괴들이 음식을 말끔히 핥아 먹고 접시에는 똥을 싸 갈겨놓고 하늘로 날아올라갔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북풍의 아들 칼라이스와 제토스가 잽싸게 그들을 뒤쫓았다. 그들이 세 마리 하르퓌아이를 따라잡은 흑해에 떠 있는 조그만 섬 상공에서였다.


하르퓌아이는 섬을 돌다가 방향을 바꾸어 아마존의 나라가 있는 텔모돈 강 하구 쪽으로 날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집이 유난히 커 보이는 하르퓌아이 하나는 여전히 뒤처지고 있었다.

칼라이스는 이 뒤처진 것을 노리고 꼬리 쪽을 겨누어 칼을 둘러메는 순간 뒤따라오던 제토스가 소리쳤다.

"보아요, 무지개가 아니오!"

언제 섰는지 무지개가 하나 텔모돈 강과 구름 사이에 걸려 있었다.

"하르퓌아이가 무지개 여신 이리스와 자매 간이라는 말 들어보았소?"

제토스의 말에 칼라이스가 칼을 거두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사이에 하르퓌아이가 무지개 뒤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보레아스의 아들들아, 너희들이 나를 아느냐?"

하르퓌아이가 무지개 뒤로 숨자 헤라 여신의 사자(使者)인 이리스 여신이 쌍둥이 형제를 불러 세웠다. 형제의 눈에는 무지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스 여신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칼라이스가 물었다.

"너희들 눈앞에 있다. 이제 제우스 대신의 뜻이 이루어졌으니 하르퓌아이를 더 쫓지 마라. 칼질하는 것은 더욱 안 될 일이다. 하르퓌아이는 대신께서 길들이신 대신의 사자들인즉 너희들은 칼을 거두고 돌아가거라."

"여신께서 하르퓌아이의 자매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돌아가야 합니까?"

"피네우스에게 내려졌던 제우스 대신의 진노가 거두어졌다는 말이다. 내가 이리스 여신이라는 것을 믿느냐?"

"무지개 안에 계시니 이리스(무지개) 여신이겠지요."

"그러면 내가 제우스 대신의 몸을 받아 스튁스 강에다 맹세를 친다. 금후로는 하르퓌아이가 피네우스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 피네우스는 너희 은혜를 입었다."

"저희들이 무엇으로 징표를 삼으리까?"

"피네우스가 다 알고 있을 것이니 징표가 필요하지 않다. 칼라이스여, 네가 칼로 내려치려던 게 누구인지 알기나 하느냐? '포다르게(빠른 자)'다. 포다르게가 왜 뒤처졌는지 알기나 하느냐? 자식을 배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 자식인지 알기나 하느냐? 네 아비 보레아스(북풍)의 자식이다. 내가 칼질을 멈추게 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포다르게의 복중에 든 형제를 죽였을 것이다. 쫓는 너희가 짐승이면 모르되, 인간이거든 뒤로 처진 것에다 칼질을 삼가라. 어린것, 늙은것, 아니면 새끼를 밴 것일 테니 ……."

쌍둥이 형제는 이리스 여신의 말을 믿고 피네우스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뒷 이야기지만, 하르퓌아이의 하나인 포다르게가 낳은 북풍의 자식은 두 마리의 말이었다. 트로이아 전쟁 때 명장 아킬레우스가 타던 두 마리의 말 '크산토스(밤색 털)'와 '발리오스(얼룩무늬)'가 바로 이 빠르기로 소문난 북풍과 포다르게의 자식들이다. 뛰는 것 중에 아킬레우스가 따라잡지 못할 것은 이 두 마리의 명마뿐이었다.(172∼174쪽)

 - 이윤기, 『그리스 로마 신화』,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쌍둥이 형제가 돌아왔을 때 피네우스의 오두막 앞마당에는 마침 푸짐한 잔치상이 차려져 있었고, 피네우스는 먹은 위에 또 먹고, 마신 위에 또 마셨다. 그리곤 아르고호 원정대 팀원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줬다.


"이아손 대장이, '먹을 것을 누가 마련해주느냐'고 물었을 때 '희망이 마련해준다'고 한 내 말은 허사가 아니오. 에르피스(희망)가 내 옆에 없었더라면 나는 그들이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데스에 가 있었을 것이오. 나는 오래전에 그대들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오래전부터 나는 그대들을 만나고, 이렇게 먹고 마실 수 있게 될 줄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이 술과 고기는 '희망'보다 내 '예지'보다 맛이 있구료. 제우스 대신께서는 그대들 만나는 자리를 꾸미려고 나를 연단(練鍛)하신 것이 아니라 참 술맛, 참 고기맛을 알게 하시려고 나를 굶긴 것만 같아요. 나는 이렇게 먹고 마시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에욱세이노스, 저 적대하는 바다를 열 아르고나우타이여, 내 말을 잘 들으세요.


여기에서 뱃길로 이틀 거리 되는 곳에는 이 적대하는 바다의 문이 있어요. 그대들이 열어야 하는 이 문을 뱃사람들은 '쉼플레가데스'라고 부른답니다. '충돌하는 바위섬'인 것이지요. '에욱세이노스'라고 하는 저 검은 바다(흑해) 초입에 마주 보고 서 있는 섬이 바로 '쉼플레가데스'인데, 지금까지 이 두 섬 사이를 지나간 배는 한 척도 없어요. 왜냐, 이 두 바위섬은 뿌리를 땅에다 박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옛날의 '델로스(떠 있는 섬)'처럼 물 위에 가만히 떠 있다가 그 사이로 뭐가 지나갈 때마다 이렇게……."


피네우스는 두 주먹을 가슴 앞에서 탁 맞부딪치면서 말을 이었다.


"…… 꽝 부딪친답니다. 이러니 배가 지나갈 수 있겠어요?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중략) 알겠소? 내 말을 명심하지 않으면 에욱세이노스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하데스의 땅으로 들어가는 꼴이 될 것이니 그리 아세요. 그대들이 내 말대로 해서 이 섬 사이를 뚫어내면 쉼플레가데스가 다시는 맞부딪치지 못할 것이오."


그것은 대체 무슨 말씀이시지요?"


점쟁이 몹소스가 물었다. 피네우스가 같은 예언자이자 점쟁이인 몹소스한테는 여전히 예를 갖추지 않고 꾸짖었다.


"너 같은 것은 천상 새점이나 칠 팔자구나. 세이레네스(사이렌 무리)가, 저희들 노래에 홀리지 않는 뱃사람을 만나면 자결하고 만다는 말도 못 들었느냐? 스핑크스가 제 수수께끼를 풀어버린 오이디푸스 앞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말도 못 들었느냐?"


"그러니까 쉼플레가데스도 세이레네스나 스핑크스같이 ……."


"너 같은 것을 데리고 천기를 누설하라는 말이냐? 그것은 그렇고…… 이아손 대장은 귀담아 들으세요. 적대하는 바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더라도, 기쁘다고 너무 기뻐하지 말고, 슬프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기뻐하느라고 마음 빗장까지 열었다가 슬픈 일 당하고, 슬퍼하느라고 삼가다가 기쁜 일을 만나는 수가 있는 법이오. 늙은 아비의 이빨이 하나 빠지는 것은 어린 새끼의 이빨이 하나 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니, 그대들이 겪을 앞날도 이와 같을 것이오. …… 하면, 지나는 뱃사람에게 콜키스 땅이 어디냐고 묻지 않아도 될 것이며, 콜키스 땅에 이르면 그대가 근심해야 할 일은 콜키스 땅이 마련하고 있을 것이오."(176∼178쪽)


 - 이윤기, 『그리스 로마 신화 5』,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이렇게 해서 아르고 원정대가 '쉼플레가데스'를 무사히 통과하고 마침내 콜키스 땅에 이르러 황금양모피까지 얻게 된다. 무서운 용이 지키는 진귀한 보물인 '황금양모피'를 얻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처녀가 바로 메데아 공주였다. 오비디우스는 콜키스의 공주가 이아손에게 도움을 주게 된 사연을 이렇게 노래했다.


 

이아손과 메데아 

 

그녀는 오랫동안 버텼지만 이성으로는 자신의 광기를 이길 수 없자

"메데아야, 싸워봤자 소용없어! 누군지는 몰라도 어떤 신이 너를

방해하고 있어." 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이런 것이거나 아니면 이와 비슷한 것일 거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왜 아버지의 명령이 너무 가혹해 보이는 거지?

그 명령은 사실 너무 끔찍해. 왜 나는 본 지 얼마 되지도 않는

그가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내가 이토록

두려워하는 까닭이 뭐지? 불행한 소녀여, 타오르는 불길을

네 소녀의 가슴에서 떨쳐버리도록 해. 할 수만 있다면!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어. 하나 어떤 이상한 힘이

싫다는 나를 끌어당기고 있어. 욕망은 이래라 하고, 이성은 저래라

하는구나. 더 나은 것을 보고 그렇다고 시인하면서도

나는 더 못한 것을 따르고 있어. 이 공주님아, 왜 너는 이방인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불태우며, 왜 낯선 세상과 결혼할 생각을 하는 거지?

이 나라도 네가 사랑할 만한 것을 줄 수 있어. 그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신들에게 달려 있어. 그래도 그가 살았으면 좋겠어!

이 정도는 사랑하지 않더라도 기원할 수 있는 거라고.

사실 이아손이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지?

비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아손의 청춘과 가문과

용기에 반하지 않을 수 있어?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준수한 그 용모에 누가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7권 10∼28


[이아손과 메데이아], 귀스타브 모로, 1865년, 오르세 미술관


 

숱한 인물들이 얽혀 있는 신화 속에서 어쩌면 '하르퓌아이'는 단순한 괴물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르퓌아이'는 '세상의 비밀'을 탐구하다가 기어이 신의 노여움을 얻게 된 인물이 겪는 '먹지도 못하는 불행'만 들려주는 단순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배고픔과 배부름의 엄청난 차이뿐 아니라 오랜 간난신고와 기다림의 고통, 그 끝에 찾아오는 만족과 보람, 분노와 증오, 관용과 화해 등등의 요소가 아주 밀접하게 서로 연관을 맺고 있어서 여느 '마녀들'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들려주는 존재다. 그래서 나는 이 '마녀새'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수 없이 이토록 '길게'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 쓰다 만 글을 이렇게 다시 꺼내어 이어서 쓰고 나니 셰익스피어의 『태풍』이라는 작품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하르퓌아이'가 등장하기 전까지도 이미 충분히 매혹적인 이야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주요 등장 인물들이 푸짐하게 차려놓은 식탁을 마주한 장면에서 셰익스피어가 절묘하게 등장시킨 하르퓌아이는 순식간에 나를 또다시 '새로운 경이로움'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미 충분히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한데, 이런 놀라운 이야기에 또다시 그토록 새롭게 더욱 놀라도록 '하르퓌아이'까지 등장시키다니. 그것도 어쩌면 그토록 알맞은 상황에 그토록 어울리는 마녀새를 그처럼 알맞은 때에 등장시킬 수 있단 말인가.


『태풍』은 셰익스피어가 만년에 쓴 최후의 낭만희극이지만, 그 작품이 담고 있는 신비로운 이야기만 놀라운 게 아니다. 등장인물들과 대사들이 두루 뜻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심지어 일부 비평가들은 "신의 심판의 우의극(寓意劇)"으로 보기도 하는 모양이다. 뒤늦게 다시 생각해 보니, 동생의 쿠데타로 하루 아침에 밀라노의 군주에서 쫒겨나 무인도로 휩쓸려간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하르퓌아이'에게 시달린 피네우스를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피네우스 또한 왕년에 트라키아에서 임금 노릇을 할 때가 있었다.) 프로스페로 역시 피네우스처럼 '세상의 비밀'을 알기 위해 '통치'는 내팽개치고 '책'만 들여다봤던 인물이다. 프로스페로가 척박한 무인도에서 고난을 겪는 모습도 황량한 언덕 위 찌그러진 오두막에서 홀로 사는 피네우스를 닮았다. 그리고 프로스페로가 '12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복수할 기회'를 잡게 되는 모습도 '기다리는 피네우스'를 닮았다(자신의 왕위를 찬탈한 철천지 원수들이 태풍에 휩쓸린 끝에 무인도로 떠밀려 온다.). 프로스페로가 결국 그들을 '포용'하고 '증오' 대신 '관용'을 베풀어 '화해'를 이루는 모습조차 '하르퓌아이 이야기'와 닮았다. 심지어 세익스피어는 『태풍』에서 '하르퓌아이와 자매지간인' 이리스 여신까지 등장시켜 멋진 시를 읊조리게 만든다. 그러니 내가 '하르퓌아이'를 이럴 때조차 못본 체 외면하고 지나치기는 너무나 어려웠던 셈이다.


           알론소

앞으로 나가서 먹겠다,

이게 끝일지라도. 상관없다, 최고의 시절은

지나갔다 느끼니까. 자, 동생과 공작께선

나가서 짐처럼 하시게.


천둥과 번개, 아리엘, 하르푸이아처럼 등장,

식탁 위에서 날개를 퍼덕이고, 진기한 무대 장치에 의해

잔치 음식이 사라진다.


(중략)

     프로스페로

너는 이 하르푸이아의 형상을 멋지게

연출했다, 아리엘. 빼어난 흡인력이 있었어.

내 지시를 네가 꼭 해야 할 말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또, 넘치는 생동감과

놀라운 관찰로 급이 낮은 정령들도

본분을 다하였다. 최고급 마술이 통하여

나의 적들 모두가 정신 착란 상태에서

뒤엉켜 있구나. 그들이 내 손안에 있으니

한동안 발작하게 버려두고 난 어린

(그들이 익사했다 여기는) 페르디난드와

그의 애인, 내 사랑, 딸애를 보러 간다.    (퇴장)


 - 셰익스피어, 『태풍(Tempest)』, <4막 1장>


《폭풍우》의 미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

(앤터니 홀든/장경렬 옮김,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담긴 사진)



『그리스 로마 신화_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쓰고, 『신화의 힘』, 『변신 이야기』,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등을 두루 번역한 분은 이윤기 선생님이다. 그 분도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매료되어 작고하기 몇 해 전엔 손수『겨울 이야기』를 번역해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 분이『겨울 이야기』의 '앞과 뒤'에 잔뜩 펼쳐놓은 '해설'에는(무려 40여 쪽에 달하는데) 온통 흥미로운 신화들로 가득하다. 작품 해설 말미에 그 분이 남겨 놓은 다음 말은 지금 다시 읽어도 안타깝기만 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특히 그리스와 로마 신화 및 민담과 관련이 있는 작품에는 이런 압축 파일이 밤하늘의 별처럼 점점이 박혀 있다. 나에게 셰익스피어를 읽는 일은 이 압축 파일을 푸는 일이다. 나에게 셰익스피어를 번역하는 일은 이렇게 풀어낸 압축 파일을 독자들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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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5-29 2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화의 힘>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군요! 책을 소장하고 있지만 펼쳐 볼 일이 없어 무슨 내용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근데, 이상하게도 신화 관련 책은 손이 잘 안가네요. 오렌님은 여전히 ~ 두껍고 도전하기 힘든 책을 읽으시는 거 같아 부럽습니다. 간접적이나마 캠벨의 책을 접할 수 있으니 좋네요. 감사합니다!

oren 2017-05-30 11:10   좋아요 1 | URL
신화는 이상하게도 ‘진입 장벽‘이 있는 듯해요. 저도 그런 느낌을 꽤나 오래 경험했었으니까요.

제가 요즘에 읽는 책들은 <셰익스피어 전집>에 담긴 작품들이랍니다. 대략 37편의 작품 가운데 절반쯤 읽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읽으면 그리 멀지 않아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다 읽을 수 있을 듯해요.
 

 

(밑줄긋기)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책읽기


"저작에도 창조적인 저작이 있듯이 독서에도 창조적인 독서가 있다. 마음이 노력과 창의로 긴장해 있을 때에는 우리가 읽는 그 어떤 책의 페이지에도 다양한 암시들이 가득 차서 영롱해진다."

 - 에머슨(1803∼1882), 미국의 사상가, 시인.



"때로 독서란 독자를 가르친다기보다 그들의 머리를 도리어 산만하게 만든다. 덮어 놓고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몇몇 좋은 저자의 책을 골라 읽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

 -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의 소설가.



"무엇이든 하루에 5시간만 독서하라. 그러면 당신은 박학다식해질 것이다."

 - 보스웰(1740∼1795), 영국의 전기 작가, 변호사.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생각하는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이해하는 것, 그가 우리에게 시사하여 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 파게(1847∼1916), 프랑스의 비평가.



"독서에 소비한 만큼의 시간을 생각하는 데 소비하라."

 - 베네트(1867∼1931), 영국의 소설가.



"읽는 기술은 이미 있는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다. 모든 독서는 언제나 하나의 재창조다. 독서는 끊임없는 발견이고 이미 새롭게 행해지는 모험이다."

 - 가이 미쇼(1879∼1955), 프랑스의 문학사가.



"책은 청년에게는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때는 자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면 위안이 된다."

 - 키케로(B.C. 106∼43), 로마의  정치가, 철학자



"아침에는 일하기 전이므로 과학이나 철학과 같이 머리를 쓰는 책을, 일을 한 다음에는 약간 부드러운 내용의 책을, 오후에는 역사, 수필, 비평 호근 전기 따위를, 저녁에는 소설이나 시집을, 밤에는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 책을 읽는 게 좋다."

 - 몸(1874∼1965), 영국의 극작가 겸 소설가.



"가장 위대한 책이란 종이 테이프에 찍히는 전문처럼 두뇌에 새로운 지식이 박히는 게 아니고, 생명이 넘치는 충격으로 다른 생을 눈뜨게 하고 또 다른 생에서 생으로 여러 가지 정수를 공급해 주는 것이다."

 - 롤랑(1866∼1944), 프랑스의 소설가, 평론가.



"과학에 관해서는 늘 새로운 책을 읽도록 힘쓰고, 문학에 대해서는 오래된 책을 읽도록 힘쓰라. 고전 문학은 항상 새롭다."

 - 리튼(1803∼1873), 영국의 정치가, 소설가 겸 극작가.



"읽는 것은 빌리는 것을 말한다. 독서하고 창작하는 것은 자기가 진 빚을 갚는 것이다."

 - 라히텐베르크(1742∼1799), 독일의 물리학자, 비평가.



"독서는 정신적으로 충실한 사람을 만든다. 사색은 사려 깊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논술은 확실한 사람을 만든다."

 - 벤자민 플랭클린(1706∼1790), 미국의 정치가, 문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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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5-25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중에서 몇 개 골라 댓글을 씁니다.

˝덮어 놓고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몇몇 좋은 저자의 책을 골라 읽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
- 저처럼 다독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글입니다.

˝때로 독서란 독자를 가르친다기보다 그들의 머리를 도리어 산만하게 만든다.˝
- 쇼펜하우어 인생론에서도 이와 비슷한 글을 읽었어요. 독서의 단점을 말하더라고요.

˝무엇이든 하루에 5시간만 독서하라.˝
- 하루에 보약을 세 번 챙겨 먹는 것도 바빠서 하루에 두 번만 먹고 있어요. 저는 하루에 두세 시간만 독서하겠습니다.
이것도 안 될 때가 있어요.ㅋ

oren 2017-05-26 00:41   좋아요 0 | URL
저도 ‘덮어 놓고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을 부러워 한 적은 없었던 듯해요. 제 취향과도 영 맞지 않고요.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독서를 위해 남겨진 시간‘도 자꾸만 들어드는 게 눈에 보이는 듯해서도 아무 책이나 붙잡고 읽는 걸 피하게 되고요. 헤럴드 블룸이 취했던 ‘독특한 고집‘도 ‘어떨 땐‘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싶기도 하더군요.
* * *
세계적인 석학으로 손꼽히는 헤럴드 블룸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해리포터 열풍에 대해서 “진부함에 강하고 상상력에는 약하다(Long on Cliches Short on Imaginative Vision)˝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전자책의 선봉이 되었던 SF 작가 스티븐 킹이 작년에 전미도서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에 대해 “스티븐 킹은 싸구려 스릴러 작가이며 그의 작품에는 문학이 주는 그 어떤 미학이나 독창적 지성이 없다”며 혹독한 비평을 했다. 헤럴드 블룸의 문학에 대한 입장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해줄 수 있는 것은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