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 동서문화사 월드북 6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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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갈라 놓고 있는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ㅡ불가사의와 고뇌와 죽음이다. 그리고 그 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저편에는 누가 있는가? 건너편의 들이나 나무, 태양이 비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르지만 알고 싶어한다. 이 선을 넘는 것은 무섭지만 넘어 보고 싶다. 그리고 모두는 알고 있는 것이다ㅡ조만간 이것을 넘어 그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게 된다. 그것은 마치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가를 아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나 자신은 강하고 건강하고 명랑하면서도 초조해 있으며, 이렇게 건강하고 초조한, 활기에 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지금 적과 마주 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비록 이렇게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느낀다. 그리고 이 감각이 이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일종의 특별한 인상의 광채와, 마음이 편안한 날카로움을 주는 것이다.(198-199쪽)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

니꼴라이는 고개를 돌려 무엇인가를 찾는 듯이 먼 경치, 다뉴브 강의 물,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어쩌면 저렇게 푸르고 고요하고 깊을까! 멀리 내다보이는 다뉴브 강의 물은 얼마나 부드럽게 빛나고 있는가! 또 멀리 다뉴브 저쪽에 파랗게 보이는 산들, 수도원, 신비스러운 골짜기, 산정까지 안개에 싸인 솔밭은 더욱 훌륭했다…… 저편은 조용하다, 행복하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나는 원하지 않아, 거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무것도 원하지는 않아.‘ 니꼴라이는 생각했다. ‘오직 내 안에, 그리고 저 태양 속에 넘치는 행복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신음과 고통과 공포와 그리고 이 혼탁, 이 어수선함…… 저기 또 무엇인가 외치고 있다. 그리고 또 모두가 뒤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도 모두와 같이 뛰고 있다. 그리고, 봐, 그 녀석이, 죽음이 내 위에, 내 주위에…… 순간적으로 나는 영원히 저 태양, 저 물, 저 골짜기를 볼 수 없게 된다…….‘(205-206쪽)

애연가가 뿜어내는 파이프

사방에서 일어나는, 귀청을 때리는 듯한 아군의 포성, 적탄이 내는 소리와 명중하는 소리, 포 곁에서 땀을 흘리며 바삐 움직이고 있는 포수들의 모습, 사람이나 말의 피, 건너편의 적진에서 일어나는 초연(이 연기가 보인 뒤엔 반드시 포탄이 날아와서, 대지, 사람, 포, 말에 명중하였다)ㅡ그러한 여러가지 사물로부터 그의 머리에는 독특한 환상적 세계가 구성되어, 그것이 지금 그의 도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적의 대포는 그의 공상 속에서는 대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애연가가 가끔 연기 고리를 뿜어내는 파이프였다.(263-264쪽)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런데 힘이 있는 인간을 만나면 그 순간에 본능이, 이 사나이는 쓸모가 있다고 남몰래 가르쳐준다. 그래서 바씰리 공작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그 사나이에게 접근하여,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비위를 맞추고, 친숙해지고 필요한 일을 화제로 삼는 것이었다.(275쪽)

뜻하지 않은 자산가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그를 자기보다 힘이나 돈이 많은 사람에게 끌어갔다. 그리고 그 자신도 사람을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 또 그것이 가능한 그 순간을 포착하는 보기 드문 수완을 타고났던 것이다.

삐에르는 좀 전만 해도 고독하지만 아무 근심 걱정 없는 편한 신세였지만, 뜻하지 않게 자산가가 되고 베주호프 백작이라는 신분이 되어, 혼자 있게 되는 것은 잠자리에 들 때뿐일 정도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바쁜 몸이 되었다. 그는 서류에 서명을 하거나,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관청과 교섭하기도 하고, 무슨 일을 총지배인에게 물어 보기도 했다. 또는 모스크바 부근 영지에 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접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사람들은 전에는 그의 존재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가 만나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비관에 빠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갖가지 사람들ㅡ사무가, 친척, 지인ㅡ은 모두 이 젊은 상속자를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 주었다. 누구 할 것 없이 삐에르의 우수한 자질을 분명히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는 듯했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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