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 동서문화사 월드북 6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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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그는 그녀의 체온과 향수 냄새를 느끼고, 숨을 쉴 때마다 코르셋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보았던 것은 드레스와 하나의 완성체를 이루고 있는 대리석과 같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한 장의 옷으로밖에 감추어져 있지 않은 그녀의 훌륭한 육체를 남김없이 보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단 거짓말이 탄로나면 두 번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그는 그것을 보고 나자 그녀를 다르게 볼 수가 없었다.(282쪽)


다시는 그것을 나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삐에르는 눈을 내리깔았지만 다시 쳐들고, 여태까지 매일 보고 있었던 것과 같이 자기에게는 먼, 인연도 없는 아름다운 여인으로서 그녀를 다시 한번 바라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럴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안개 속에서 풀 줄기를 보고 그것을 나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그것을 풀줄기라고 알게 된 뒤에는 다시는 그것을 나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무섭게도 그에게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이미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그녀 사이에는 이미 자신의 의지의 벽 이외에는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282-283쪽)



어른이 되어 가는 것


자기 아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그 어느 시기에 있어서나 그녀에게는 특별한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같은 길을 거쳐 성장한 몇백만 몇천만의 사람들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20년 전에는 어딘가 그녀 심장 아래의 태내에서 숨쉬고 있던 작은 존재가, 울거나 젖꼭지를 빨기도 하고 겨우 말을 하기 시작하리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 존재가 씩씩하고 용감한 사나이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는 것은, 이 편지로 판단하면 명백한데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325쪽)



삼제 회전의 패배


시계의 경우, 수없이 많은 갖가지 톱니바퀴나 도르래의 복잡한 움직임의 결과가, 시간을 표시하는 바늘의 느리고 규칙 바른 움직임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이들 16만의 러시아인과 프랑스인의 모든 정열, 희망, 후회, 굴욕, 고뇌, 자존심의 고양, 공포, 환희의 분출 등 갖가지 복잡한 인간적인 움직임의 결과는 아우스터리츠 전투, 이른바 삼제(三帝) 회전의 패배에 지나지 않았다. 즉, 인류 역사의 시계판 위에서 세계사 바늘이 느리게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354쪽)



이 끝없는 하늘 이외에는


‘뭐야, 이건? 나는 쓰러져 있는 것인가?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뒤로 쓰러졌다. 프랑스 병과 포병과의 싸움이 어떤 결말이 되었는지, 빨간 머리의 포병이 죽었는가 죽지 않았는가, 대포를 빼앗겼는가 빼앗기지 않았는가를 보기 위해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는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ㅡ개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없이 드높고, 그 아래를 회색 구름이 조용히 흐르고 있는 높은 하늘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하고 평온하고 엄숙할까. 내가 달리고 있었던 때와 판이하다.‘ 안드레이는 생각했다. ‘우리들이 달리고 외치고 서로 잡고 싸운 것과는 전혀 다르다ㅡ구름이 이 드높고 끝없는 하늘을 흘러가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왜 나는 전에 이 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것을 알아차린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든 것은 공허다. 이 끝없는 하늘 이외에는 모든 것이 거짓이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아니, 이 하늘 외에는 그것조차도 없다. 정적과 평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고맙게도!‘(384-3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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