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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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살육이 있을 뿐


전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한 것은 연이어 계속되는 살인이었고, 러시아측에서도 프랑스측에서도 쓸데없는 살육이 있을 뿐이었다. 나폴레옹은 말을 멈추고, 베르쩨에 의해 방해된 명상에 다시 잠겼다. 그는 자기 앞과 주위에서 생기고 있는 일, 자기가 지배하고, 자기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일을 저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결과로서 이 전투가 그에게 처음으로 쓸데없는, 무서운 것으로 여겨졌다.(1109쪽)



파악할 수 없는 힘


죽음과 싸우고 있는 10만이 넘는 인간을 단 한 사람이 지휘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다년간에 걸친 전쟁 경험과 노인의 지혜로 알고 있었다. 그는 전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총사령관의 지시도, 각 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대포나 죽은 자의 수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부대의 사기라고 하는, 파악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래서 그 힘을 주시하고,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 힘을 지배하려고 했던 것이다.(1110쪽)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은 보다 더 완강한 자


"그렇다면 자네는 다른 사람처럼 아군이 퇴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지?"


"반대입니다, 각하. 승패가 정해지지 않은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은 보다 더 완강한 자입니다." 라에프스끼가 대답했다. "제 의견으로는 ……."


"까이사로프!" 꾸뚜조프는 자기 부관을 불렀다. "앉아서 내일의 명령을 써 주게. 그리고 자네는" 그는 또 다른 한 부관에게 말했다. "전선을 돌아다니며 포고해라. 내일 우리 군은 공격한다고 말이야." (1113쪽)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


안드레이도 이야기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같이 눈을 반짝이며 상대방을 바라보고 마음이 위로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그는 생각했다. '저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이 세상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어째서 나는 이렇게 인생과 헤어지는 것에 미련을 두는가? 이 인생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리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1119쪽)




새롭고 뜻하지 않은 추억


'그렇다, 바로 그 사나이다. 저 사나이와 나 사이에는 무엇인가 밀접한 괴로운 관계가 있다.' 안드레이는 자기 눈앞의 사실을 아직 뚜렷이 이해하지 못한 채 생각하였다. '이 사나이와 나의 유년시대, 나의 인생과의 연관 관계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에게 물어보았지만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문득, 어렸을 때의 깨끗하고 사랑에 찬 세계 깊숙한 곳으로부터 새롭고 뜻하지 않은 추억이 안드레이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는 1810년의 무도회에서 처음 본, 가는 목과 가는 팔을 하고 한껏 생기에 넘친 행복스러운 얼굴을 한 나따샤를 상기하였다. 그러자 그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고 강렬하게 그의 마음속에 되살아났다. 지금 그는 울어서 부은 눈에 넘쳐흐르는 눈물을 통해서 멍청하게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이 사나이와 자기와의 관계를 상기하였다. 안드레이는 모든 것을 상기했다. 그러자 이 사나이에 대한 감동에 찬 연민과 사랑이 그의 행복한 마음에 넘쳤다.(1121-1122쪽)



그러나 이제는 이미 늦었다


안드레이는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람들과 자기의 미망에 대하여, 또 남과 자기에게 상냥한 사랑에 찬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동정, 동포에 대한, 사랑해 준 사람에 대한 사랑,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 적에 대한 사랑. 그렇다, 하느님이 지상에서 설교하신 마리아가 나에게 가르쳐 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저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삶에 미련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거다, 아직 남겨진 것은. 만약 내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늦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1122쪽)



세상의 절반이 칭찬하고 있는 자기 행위를 거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사건에 관계된 다른 그 누구보다도 답답하게, 이 사건의 모든 중압감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고 있던 이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흐려진 것은 이날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생애가 끝날 때까지 선도 아름다움도, 진실도 자기 행위의 뜻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행위가 선과 진실과 너무나 대립하고, 또 모든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세상의 절반이 칭찬하고 있는 자기 행위를 거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진실과 선과 모든 인간적인 것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자(死者)와 폐인이 된 사람들(그의 생각으로는 그것은 그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로 가득 찬 전장을 돌아보면서 그가 이들 인간을 보고, 프랑스 병사 1인당 러시아 병이 몇 명이 되는가를 계산하여, 프랑스 병 한 사람에 대해서 러시아 병 다섯 명이 된다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고 기뻐할 이유를 발견한 것은 이날 하루만이 아니었다. 전장에 5만의 시체가 있다는 이유로 '전장은 휼륭하다'고 파리에 편지를 쓴 것은 이날 하루만이 아니었다.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독거의 정적 속에서까지도 역시 그러했다. 그는 거기서 한가한 시간을 자기가 한 위대한 사업을 기술하는 데에 바칠 작정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썼던 것이다.


'러시아 전쟁은 현대에서 가장 민의에 합당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양식과 참된 이익을 위한 싸움이자, 만인의 평안과 안전을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전히 평화적, 보수적인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대의(大義)를 위한 것이었고, 우연한 일들의 끝이자 평안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지평, 새로운 사업이 만인의 복지와 번영으로 가득 차서 열릴 것이고 유럽 체제의 기초가 놓였을 것이며, 문제는 다만 그것을 어떻게 짜맞추느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


파리는 세계의 수도가 되고, 프랑스 사람은 온갖 민족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 후 나는 내 아들이 제왕 교육을 받는 틈을 타서, 황후와 함께 진짜 시골 부부처럼 내 말을 타고 여행하며 여가와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국내 방방곡곡을 두루 방문하여 민원을 듣고 부정을 바로잡고, 전국 곳곳에 기념 건축물과 선행을 베풀었을 것이다.'


여러 국민의 사형 집행인이라고 하는, 비참하고 부자유한 역할이 섭리에 의해서 정해져 있던 이 사나이가 자기 행위의 목적은 여러 국민의 복지이며, 자기는 수백만 명의 운명을 지배하여 권력을 사용해서 선행을 베풀 수 있다고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1123-1125쪽)



어, 그만, 충분하다, 인간들이여


아까까지 그토록 명랑하고 아름답고 아침 햇살에 총검이 반짝이며 연기가 피어오르던 들판에 지금은 습기와 연기가 아지랑이가 되어 끼어 있고, 초연과 피의 이상한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비구름이 모여들어 전사자와 부상병과 겁먹은 자, 그리고 녹초가 된 자,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 위에 후두둑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비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젠 됐어, 그만, 충분하다, 인간들이여, 그만 …… 제정신을 차려라. 대체 너희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1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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