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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2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음식도 먹지 못하고 휴식도 하지 못한 인간들은 이쪽이나 저쪽에서, 아직도 서로 죽여야 하나? 하는 의심에 사로잡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모두의 얼굴에 동요의 빛이 보이고, 모두의 마음에 의문이 일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나는 죽이고, 죽음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죽이고 싶은 자는 죽이란 말이다. 멋대로 하란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싫다!’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모두의 마음에 이와 같은 생각이 익어갔다. 지금도 이들 모두가 자기네들이 한 일에 대해 겁을 먹고, 모든 것을 팽개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달아나고 싶은 것 같았다.(1126쪽)
무서운 사태
그러나 전투가 끝나갈 무렵 사람들은 자기들 행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기꺼이 전투를 중지하고 싶어 했는데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이 아직도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포 3문에 한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은 포병들은 땀에 젖어 화약 냄새와 피를 뒤집어쓴 채 피곤해서 발이 걸려 휘청거리거나 숨을 헐떡이면서도, 탄약을 운반해 장전하고 조준을 맞추어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포탄은 여전이 재빨리 잔혹하게 양쪽으로부터 날아가 인간의 육체를 망가뜨렸다. 그리하여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무서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러시아 군의 후방을 본 사람은, 프랑스군이 조금만 더 밀고 나갔더라면 러시아군은 소멸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또 프랑스군의 후방을 본 사람은 러시아군이 조금만 더 힘을 썼다면, 프랑스군은 멸망했을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군도 러시아군도 더 밀지 않고 전투의 불꽃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1126-1127쪽)
봄이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일부 역사가는 나폴레옹이 남아 있는 옛 근위대를 투입하기만 했다면 전쟁은 승리로 끝났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만약 근위대를 투입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은, 봄이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나폴레옹이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근위대를 내보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군의 장군, 장교, 병사는 모두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저하된 사기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로지노에서 받은 치명상 때문에
무서운 힘으로 추켜든 손이 맥없이 늘어지는 꿈과도 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었던 것은 비단 나폴레옹만이 아니었다. 전쟁에 참가했건 안 했건 간에 프랑스군의 모든 장군들과 모든 병사들이 느끼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모든 전투를 경험하면서 (이제까지는 이 10분의 1의 노력에도 적은 도망가 버렸다) 병력의 반을 잃고 전쟁이 끝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와 마찬가지로 무섭게 버티고 있는 적에 대해서 나폴레옹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공격하는 프랑스군의 정신력이 소진된 것이다. 빼앗은 천 조각, 군기라고 불리는 막대기 끝에 단 헝겊 조각이나 군대가 서 있던 또는 서 있는 공간 등에 의해 결정되는 승리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정신적 우월과 상대방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정신적인 승리가 보로지노에서 러시아군에 의해서 쟁취되었다. 러시아를 침공한 프랑스군은 세차게 달리는 동안에 상처를 입어 미처 날뛰는 짐승처럼, 자신의 파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것은 전력이 반으로 약해진 러시아군이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격을 받은 후에도 프랑스군은 모스크바까지 굴러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러시아군 쪽에서 새로운 힘을 가하지 않아도, 프랑스군은 보로지노에서 받은 치명상 때문에 많은 피를 흘리고 멸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로지노 회전의 직접적인 결과는 모스크바로부터의 이유 없는 나폴레옹의 도주, 구(舊) 스몰렌스크 가도를 통한 귀국과 50만 침입군의 괴멸, 그리고 보로지노 전에서 처음으로 정신적으로 우세한 적에게 압도딘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의 괴멸이었던 것이다.(1127-1128쪽)
총사령관의 입장
전쟁이나 전투 계획은 지휘관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 서재에서 지도를 바라보면서 이러저러한 전투에서 자기라면 어떤 식으로 지휘할 것인가, 또 어떻게 지휘를 했을까 하고 궁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왜 꾸뚜조프는 퇴각할 때 이런 식으로, 또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는가, 왜 그는 필리(모스크바 교외의 마을)에 도달하기 전에 진지를 잡지 않았는가, 왜 그는 곧 깔루가 가도로 퇴각하지 않고 모스크바를 포기했는가 등등. 이러한 생각을 하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항상 모든 사령관이 행동을 취할 경우의 필연적인 조건을 잊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령관의 행동은, 우리가 서재에 한가하게 앉아서 일정한 수의 군대가 쌍방에 있고, 일정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지도 위의 전투를 분석하여, 자기의 생각을 일정한 시점에서 시작할 때에 공상하는 행동과는 전혀 다르다. 총사령관은 우리가 항상 그 어떤 사건을 관찰할 경우처럼 그 사건의 발단의 시점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총사령관은 항상 움직이고 있는 일련의 사건 속에 있는 것이며, 어떠한 순간에도 절대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의미나 전체를 생각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그 사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시각각으로 부각되어 그 뜻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연속적으로 끊어지지 않고 사건이 부각되는 개개의 시점에서 총사령관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책동, 음모, 심로, 종속, 권력, 제안, 조언, 협박, 기만의 와중에 있으며, 자기에게 제출되는 항상 서로 모순된 무수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1135-1136쪽)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이미 한 말은 은이지만, 하지 않은 말은 금이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다.(1160쪽)
그렇다, 바로 저것이 모스크바다!
'그러나 보라, 모스크바는 금빛 둥근 지붕과 십자가를 햇살 속에서 반짝이고 떨면서 내 발 아래 가로놓여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녀석을 용서해 준다. 야만과 전체의 낡은 비석 위에 나는 정의와 자비의 위대한 말을 새겨 주겠다 …… 알렉산드르는 누구보다 이것을 뼈저리게 깨달을 것이다. 나는 그를 알고 있다(지금 생기고 있는 일의 가장 큰 의의는 자기와 알렉산드르와의 개인적인 싸움에 있는 것처럼 나폴레옹은 느끼고 있었다). 크레믈린의 꼭대기에서 ㅡ 그렇다, 저것이 크레믈린이다. 그렇다ㅡ나는 그들에게 정의의 법률을 가르쳐 주고, 나는 그들에게 참된 문명의 의의를 보여주겠다. 나는 러시아 귀족들의 자자손손까지 정복자의 이름을 사랑의 마음으로 상기시키도록 하겠다. 나는 전권 대표단에게, 나는 전쟁 같은 것은 바라지 않았고 지금도 바라고 있지 않다, 나는 너희들 궁정의 잘못된 정치와 싸운 데에 지나지 않다, 나는 알렉산드르를 경애하고 있다, 나는 나와 나의 국민에게 어울리는 강화 조건을 모스크바에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해 주겠다. 나는 존경하는 황제를 모욕하기 위해서 승리의 행운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귀족들이여, 하고 나는 말해주겠다. 나는 전쟁을 바라지 않고 평화와 나의 신하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고 있다고. 하여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놈들이 눈 앞에 있으면 기분이 용솟음쳐서 여느 때처럼 명쾌하고 당당하고 훌륭하게 말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모스크바에 있다는 것은 정말일까? 그렇다, 바로 저것이 모스크바다!'(1197-1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