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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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코감기

더욱이 전투의 경과를 지배한 것은 나폴레옹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작전 명령서 중에서 그 어떤 것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고, 전투 중에도 그는 자기 앞에 생기고 있는 일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인간들이 어떻게 서로 죽였느냐 하는 것도 나폴레옹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와는 관계없이 전투 전체에 참가한 수십만의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폴레옹은 다만 모두가 자기의 의지에 의해 행하여졌다고 느껴졌을 뿐이었다. 따라서 나폴레옹이 코감기에 걸려 있었느냐의 여부는, 역사상 최하급 수송병의 코감기 문제 이상의 관련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물며 나폴레옹의 코감기 탓으로 그 작전 명령서와 전투 중의 지시가 종전의 것에 비해서 좋지 않았다는 문필가들의 말은 전적으로 옳지 않은 것이므로, 8월 26일의 나폴레옹의 코감기 같은 것은 더욱더 의미가 없는 것이다.(1084쪽)



살기 위한 기계

" …… 우리들의 몸은 살기 위한 기계다. 몸은 살기 위해 만들어져 있다. 그것이 몸의 본성이다. 몸 안의 생명을 좋을 대로 내버려 두면 돼, 생명이 스스로 자기를 지키도록, 그렇게 하면 약으로 방해를 해서 속박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일을 생명이 해준다. 우리의 몸은 일정한 시간 일을 하도록 의무가 지워진 시계와 똑같다. 시계방은 그것을 열 수가 없고 눈을 가린 채 손으로 더듬어서 다룰 수밖에 없다. 그렇다, 우리들의 몸은 살기 위한 기계다, 그것뿐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좋아하는 정의(定義), 프랑스어로 말하자면 디피니시옹의 연쇄로 들어간 것처럼 그는 갑자기 새로운 정의를 하였다. "알고 있나? 랏프, 전술이란 무엇인가?" 그는 물었다. "어느 순간에 적보다 강해지는 기술이다. 그것뿐이다."(1087쪽)



가장 좋은 수를 쏟아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기분이 무거웠다. 그것은 무턱대고 돈을 퍼부어 언제나 돈을 따온 항상 운이 좋았던 노름꾼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승부의 온갖 가능성을 생각하여 써야 할 가장 좋은 수를 쏟아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더욱더 돈을 잃을 가능성이 확실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군대도 이전과 다르지 않았고, 장군들도 변함없었다. 전투 준비와 작전 계획도 이전과 다름없었다. 포고도 마찬가지로 간결하면서 힘차고, 그 자신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는 이전에 비해서 훨씬 경험이 풍부해졌고 노련해진 것도 알고 있었다. 적도 아우스터리츠나 프리틀란드 때와 똑같았다. 그런데, 무서운 기세로 내리친 손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힘없이 풀린 것이다.


모든 것이 항상 성공을 거두었던 이전과 같은 방법이었다. 포병대의 한 지점에 대한 집중도, 전선 돌파를 위한 예비대의 반격도, 강철 같은 기병대의 공격도, 그러한 모든 방법이 이미 다 사용되었는데도 승리를 얻을 수가 없을 뿐더러, 사방으로부터 장군의 사상(死傷)이나 증원의 필요, 러시아군 격파의 불가능함이나 군의 혼란 등이 보고되었다.(1107-1108쪽)



꿈속에서 악한의 습격을 받아


돌각 보루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그것이 이제까지의 자기 전투에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같은 기분을, 전투의 기분을 쌓은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얼굴이 침울하고 모두의 눈이 서로를 피하고 있었다. (⋯) 나폴레옹은 전쟁의 오랜 경험을 쌓고 있었기 때문에, 여덟 시간에 걸쳐 모든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측이 이길 수 없는 전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거의 진 전쟁이고, 극히 사소한 우연이 지금에 와서는 - 지금 전투가 처해 있는 극한에 이른 긴장점(緊張點)에서는 - 자기와 자기의 군을 파멸시킬 염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승리를 거둔 전투는 하나도 없었고, 두 달 동안에 군기도 대포도 군단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이 기묘한 러시아 원정 전체를 여러 가지로 머리에 떠올리고, 주위 사람들의 슬픔을 감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폴레옹은 꿈속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무서운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자기를 파멸시킬지도 모르는 갖가지 불행한 가능성이 머리에 떠올랐다. 러시아군이 나폴레옹의 좌익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한 가운데를 돌파할지도 모른다. 유탄이 자기 자신을 쏴 죽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다. 이제까지의 전투에서 그는 오직 승리의 가능성밖에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무수한 불행의 가능성이 떠오르고, 더욱이 그는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꿈속에서 악한의 습격을 받아, 반드시 상대방을 타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손을 들어올려 악한을 내려쳤을 때, 그 손이 넝마처럼 힘이 빠져, 비참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공포가 무력하고 무원(無援)의 인간을 사로잡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1108-1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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