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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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와 우스개 사이


'이건 위대하다!' 역사가는 말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있는 것은 다만 '위대한 것'과 '위대하지 않은 것'뿐이다. 위대는 좋고 위대하지 않은 것은 나쁘다. 위대한, 그들의 개념에 의하면 자기들이 영웅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어떤 특별한 동물들의 성질인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따뜻한 모피 코트를 입고, 파멸에 처한 동지는 물론 (그의 생각에 의하면) 자기가 그곳에 끌고 온 사람들을 버리고 그의 나라로 도망가면서, 이것은 위대한 일이라고 느끼고 그 마음은 편안한 것이다.

"숭고에서 (그는 자기 내부에 무슨 숭고한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스개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발짝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온 세계가 50년에 걸쳐서 '숭고! 위대! 위대한 나폴레옹! 숭고와 우스개 사이는 단 한 발짝이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선악의 기준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은 다만 자신의 무가치와 한없이 비소(卑小)함을 인정하는 데에 지나지 않은다는 것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진 선악의 척도가 있으므로 측정 못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소박, 선, 진실이 없는 곳에 위대함은 없는 것이다.(1460쪽)


 

경험 있는 소몰이

러시아군은 반이나 죽으면서 러시아 민족에게 어울리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모든 일을 했다. 그러므로 따뜻한 방에 앉아 있는 다른 러시아 사람들이 하기를 바랐던 일을 다 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은 러시아군의 책임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묘한 사실과 역사 서술 사이에 오늘날 이해할 수 없는 차질이 생기고 있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역사가들이 여러 장군들의 아름다운 감정이나 말의 역사를 쓰고 있을 뿐 사건의 역사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에게는 밀로라도비치의 말이나 어느 장군이 받은 포상이나 그들의 생각이 매우 흥미 있게 여겨지지만, 각처의 야전 병원과 무덤에 남겨진 5만 명의 문제는 그들의 연구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흥미를 끌지도 못한다.

그런데 상신서나 종합 계획 등의 연구에 등을 돌리고, 사건에 직접 참가한 무수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내려가 보면, 이제까지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문제가 순식간에, 또 매우 손쉽고 간단하게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해결된다.

나폴레옹을 군과 함께 분단하려는 목적은 열 명 정도의 머릿속 외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의미하고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가 없다.

국민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자기들의 영토에서 침략자들을 소탕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은 첫째, 프랑스군이 퇴각하고 있었으므로 저절로 실현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단지 그 움직임이 멈추지 않도록 하기만 하면 되었다. 둘째로, 이 목적은 프랑스군을 괴멸시키고 있던 국민 전쟁 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또 셋째로는, 프랑스군의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에는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러시아의 대군이 프랑스군의 뒤를 밟는 것으로 수행되어가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달아나는 동물에 대한 채찍과 같은 작용을 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경험 있는 소몰이는 동물을 위협하면서 채찍은 들어 올린 채, 뛰고 있는 동물의 머리는 때리지 않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1465쪽)

 

 

 

존재를 그만두는 것


사람은 죽어가는 동물을 보면 공포에 사로잡힌다. 바로 그 자신, 자기의 본질이 눈앞에서 소멸해간다ㅡ존재를 그만두는 것이다. 그러나 죽어가는 것이 인간이라면, 더욱이 사랑하는 또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삶의 소멸을 앞둔 공포 외에 단절감과 정신적인 아픔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상처는 육체적인 상처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죽음에 이르고 때로는 완치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또 아픔을 북돋우는 외부로부터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이 죽은 뒤 나따샤와 마리야는 똑같이 이것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몸을 웅크리고 머리 위에 다가오는 무서운 죽음의 구름에 눈을 반쯤 감고, 삶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차 없이 아픔을 불러일으키는 접촉을 피하고 조심스럽게 벌어진 상처를 감싸고 있었다. 거리를 재빨리 지나가는 마차, 식사를 재촉하는 목소리, 준비할 양복을 묻는 하녀의 물음, 더 나쁘게는 상처의 아픔을 쑤셔대는, 마음이 깃들지 않은 동정의 말 등, 모두가 모욕으로 느껴졌다. 또 그 모든 것들은 두 사람이 아직도 자기의 뇌리에서 울리고 있는 무섭고 엄숙한 합창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정적(靜寂)을 교란하고, 두 사람 앞에 순간적으로 나타난 불가사의하고 끝없이 먼 저편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었다.(1466쪽)



 

인생은 멈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순수하고 완전한 슬픔이라고 하는 것은 순수하고 완전한 기쁨과 마찬가지로 있을 수가 없다. 마리야는 자기 자신이 자기 운명에 대한 단 한 사람의 의지할 데가 없는 주인이며 조카의 후원자이자 양육자라고 하는 입장 때문에, 처음 2주일 동안 살아왔던 슬픔의 세계에서 나따샤보다 먼저 실생활로 돌아왔다. (⋯) 인생은 멈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리야는 이제까지 자기가 살아온 혼자만의 명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또 나따샤를 혼자 남겨두는 것이 아무리 마음이 허전하고 마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심정이었다고 해도 생활의 여러 가지 까다로운 일들에 자기가 관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몰두하고 말았다. 그녀는 알빠뚜이치와 수지(收支)를 확인하고, 조카의 일에 대해 데사르와 상의하고, 모스크바로 옮기기 위한 지시나 준비를 하였다.(1467쪽)


 

 

뻬쨔의 전사


그녀가 홀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빠른 걸음으로 백작 부인의 방에서 나왔다. 아버지의 얼굴은 주름투성인 데다가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는 분명히 목구멍에 솟구치는 통곡을 실컷 소리 내어 터뜨리기 위해서 방에서 뛰어나온 것 같았다. 나따샤를 보자 아버지는 절망적으로 두 손을 흔들고 별안간 발작적인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둥글고 부드러운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뻬 ⋯⋯ 뻬쨔가 ⋯⋯ 가봐라, 어머니가, 어머니가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어린애처럼 울부짖으면서 쇠약한 다리로 급히 의자 쪽으로 다가가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자 거의 그 위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갑자기 전류 같은 것이 나따샤의 온몸을 스쳐갔다. 무엇인가 무서운 힘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도록 내리쳤다. 그녀는 무서운 아픔을 느꼈고, 무엇인가가 그녀 안에서 찢겨나가 자기는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픔에 뒤이어 그녀는 그때까지 자기 위에 얹혀 있던 삶의 금제(禁制)에서 순식간에 해방되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를 보고 문 안쪽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무서우리만큼 거친 외침 소리를 듣자, 그녀는 순식간에 자기와 자기의 슬픔을 잊고 말았다. 그녀가 아버지 옆으로 뛰어갔지만 그는 힘없이 손을 흔들고 어머니가 있는 방의 문을 가리켰다. 마리야가 창백한 얼굴로 아래턱을 떨면서 문에서 나오자, 무슨 말을 하면서 나따샤의 손을 잡았다. 나따샤는 마리야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과 싸우는 듯 잠깐 걸음을 멈췄다가 어머니 옆으로 달려갔다.

백작 부인은 기묘하고 보기 흉하게 몸을 뻗으면서 안락의자에 누워 머리를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쏘냐와 하녀들이 그녀의 손을 누르고 있었다.

“나따샤! 나따샤를! ⋯⋯” 백작 부인이 외쳤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 ⋯⋯ 나따샤를!” 그녀는 주위 사람들을 밀어젖히면서 소리쳤다. “모두 저쪽으로 가줘요, 모두 거짓말이야! 전사! ⋯⋯ 핫, 핫, 핫! 거짓말이야!”(1471쪽)

 

 

 

마음의 상처


어머니의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뻬쨔의 죽음이 그녀의 생명의 절반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뻬쨔의 전사 소식을 받았을 때는 아직 발랄하고 씩씩한 쉰 살의 여자였던 그녀가 한 달 후에 방에서 나왔을 때에는 반은 죽은, 인생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한 노파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백작 부인을 절반쯤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상처가, 그 새로운 상처가 나따샤를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였다.

마음의 살이 찢어져서 생기는 상처는 육체의 상처와 마찬가지여서, 깊은 상처가 낫고 양끝이 붙은 후, 육체의 상처와 마찬가지로 안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에 의해서 비로소 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따샤의 상처도 나았다. 그녀는 자기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그녀에게 인생의 본질인 사랑이 아직 자기 내부에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사랑이 눈을 떴다. 그리고 생명도 눈을 뜬 것이다.(14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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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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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초를 태워버렸기 때문

 

그런데 1812년에 갑자기 프랑스군이 모스크바 근교에서 승리를 거두고 모스크바를 점령했는데도, 그 후 새로운 전투가 없는 상태였는데 멸망하게 된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60만의 프랑스군대였고, 더 나아가 나폴레옹의 프랑스제국이었다. 역사의 법칙에 억지로 사건을 발라 맞추어서, 보로지노에서 전장을 유지한 것은 러시아군이고, 모스크바 이후 나폴레옹군을 섬멸시켰다고 말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프랑스군이 보로지노에서 승리를 거둔 후 전면적인 전투는커녕 전투다운 전투는 한 차례도 없었는데, 프랑스군은 소멸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가령 이것이 중국 역사의 예라면, 이 현상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 자기 기준에 맞지 않은 것이 있을 경우 역사가가 도망가는 상투적인 수단이다). 소수의 군대가 참가한 단기간의 전투라면 그 현상을 예외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우리 조상들의 눈앞에서 생긴 것으로 우리 조상들의 사활이 걸린 것이었고, 게다가 이 전쟁은 인간들이 알고 잇는 모든 전쟁 중에서 최대의 것이었던 것이다.

 

1812년의 보로지노 전투로부터 프랑스군을 쫓아낼 때까지의 전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은, 전투의 승리는 정복의 원인이 아닐 뿐 아니라 정복에 반드시 수반되는 증후도 아니라는 것이며, 또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은 정복자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나 전투 속에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인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가들은 모스크바로부터 나오기 전의 프랑스군의 상태를 말하면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위대한 군대는 기병, 포병, 마차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정연했지만 소와 말을 먹일 사료가 없었다. 이 불운은 어떻게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주변의 농민들은 건초를 모두 태워 버리고 프랑스군에 내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의 승리는 여느 때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프랑스군이 모스크바로 들어온 뒤 짐마차를 끌고 도시를 약탈하러 왔을 때, 개인적으로는 영웅적인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던 까르프나 블라스와 같은 수많은 농민들이, 아무리 좋은 값을 준다고 해도 모스크바로 건초를 가지고 오지 않고 태워버렸기 때문이다.(1408쪽)

 


 

국민 전쟁이라는 몽둥이

 

스몰렌스크의 화재 이래, 종래의 어떠한 전쟁의 전설에도 적용되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시와 마을의 소실, 몇 가지 전투 후의 후퇴, 보로지노에서의 손해, 두 번째의 후퇴, 모스크바의 포기와 화재, 약탈병의 체포, 수송차의 탈취, 유격전 등ㅡ이 모든 것은 규칙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검술가의 정규적인 자세로 모스크바에 남아, 상대방이 검 대신에 자기 머리 위에 쳐든 몽둥이를 본 바로 그 순간부터, 꾸뚜조프와 알렉산드르 황제를 향해서 전쟁하는 방법이 규칙에 어긋난다고 (마치 사람을 죽이는 데도 무슨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불평을 계속했다. 지위가 높은 러시아인에게는 몽둥이로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가 창피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프랑스 측의 규칙 위반의 불평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제4의 자세나 제3의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제1의 자세로 보기 좋게 찌르고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 전쟁이라는 몽둥이를 무서운 힘으로 번쩍 들어올려 그 누구의 기호나 법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둔하리만큼 거칠게, 그러나 목적에 따라서 무조건 내리쳐 침략자 전체가 박멸될 때까지 프랑스군을 후려갈긴 것이다.(1409쪽)


 

 

군대의 사기


이러한 모순이 생기는 것은 군사학이 군의 힘을 그 수와 동등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학에 의하면, 군이 크면 클수록 그 힘도 크다. 커다란 군은 항상 도리에 합당한 것이다.


이렇게 주장할 경우, 군사학은 힘을 그 질량과의 관계만으로 고찰하여 질량이 같다, 또 같지 않으니까 그 힘은 같다, 또는 같지 않다고 말하는 역학과 같은 것이다.


힘(운동량)은 질량과 속도를 서로 곱한 것이다.


전쟁에서 군의 힘은 역시 질량과 무엇인가를, 무엇인가 알 수 없는 x를 곱한 것이다.



그 x란 군대의 사기다.
즉 군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싸우려는 의지, 일신을 위험에 드러내놓으려는 의욕의 대소(大小)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병사들이 천재이거나 천재이지 못한 지휘관의 명령으로 싸우고 있는가, 3열 또는 4열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가, 몽둥이로 또는 1분간에 30발 쏠 수 있는 총으로 싸우고 있는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기야말로 힘을 도출해 내기 위해 질량에 곱하는 승수(乘數)인 것이다. 군의 사기라고 하는 이 알 수 없는 승수의 수치를 밝혀내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학문의 과제인 것이다.(1410-1411쪽)



 

사기의 고양이나 저하가 강하게 나타날 경우

 

공격 때는 집단으로 행동하고 퇴각 때는 분산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전술 법칙이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군의 힘은 그 사기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인간을 포탄 아래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는 공격군을 격퇴하는 일 이상의 규율이 필요하며, 그것은 집단으로 행동함으로써 비로소 얻어진다. 그러나 이 법칙은 군의 사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옳지 않은 경우가 많고, 특히 사기의 고양이나 저하가 강하게 나타날 경우, 즉 모든 국민적 전쟁의 경우에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과 차질을 가지고 오게 된다.

1812년 퇴각할 때의 프랑스군은, 전술에 따르자면 분산해서 몸을 지켜야 했는데, 집단이 아니면 군을 하나로 유지할 수가 없을 정도로 사기가 저하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덩어리가 되어 몰려다녔다. 그런데 러시아군은 반대로 전술에 따르면 집단으로 공격해야 했는데 실제로는 분산했다. 그것은 사기가 크게 높아져서 개개인이 명령 없이 프랑스군을 공격하여, 자기 몸을 고생과 위험에 노출시키는 데에 강제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1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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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시간,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용사다


‘공격을 하면 우리가 질 뿐이라는 것쯤은 그들이 깨달아야 한다. 인내와 시간,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용사다.’ 꾸뚜조프는 생각했다. 사과는 아직 파랄 때 따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사과는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는데, 파랄 때 따면 사과도 나무도 상하게 되고, 먹어도 이가 시릴 뿐이다. 그는 노련한 사냥꾼처럼 짐승이 부상당했다는 것, 러시아가 전력을 다하여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치명상인지 아닌지는 아직 분명치 않은 문제였다. 지금은 로리스똔과 베르젤레미(나폴레옹의 사자)가 파견되어 왔다는 점이나, 유격대의 보고에 의해서 꾸뚜조프는 적이 치명상을 받고 있다는 것은 거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확증이 더 필요했다. 기다려야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죽인 짐승을 달려가서 보고 싶어하고 있다. 기다려라,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항상 행동, 항상 공격 타령이다!그는 생각했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가, 항상 눈에 띌 생각만 하다니. 마치 싸우는 데에 무엇인가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마치 어린이 같아서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조리 있게 말하지도 못한다. 모두 자기는 싸움을 잘한다는 것을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면밀한, 훌륭한 작전을 제안한다! 그들은 두서너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내면 (그는 뻬쩨르부르그에서 보내온 종합 계획을 상기했다), 그것으로 모든 가능성을 생각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가능성은 무수히 있는 법이다.'(1398-1399쪽)

 

 

60년의 경험


보로지노에서 입힌 상처가 과연 치명적이었느냐 아니냐 하는 미해결의 의문이 이미 한 달 동안이나 꾸뚜조프의 머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프랑스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하였다. 그 반면 꾸뚜조프는 자기와 모든 러시아 사람이 힘을 합하여 전력을 다했던 그 무서운 일격이 틀림없이 치명적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이미 한 달 동안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는 점점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자리에 누워서 그는 젊은 장군들이 하고 있는 일, 다름 아닌 그가 젊은 장군들을 비난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확실한, 이미 이루어진 나폴레옹의 파멸을 나타내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내려고 하였다. 그는 젊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그 가능성을 생각해내려고 하고 있었는데, 다만 다른 점은 그는 예상 위에 아무것도 세우려고 하지 않았고, 또 그 가능성을 둘이나 셋이 아니라 무수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생각하면 할수록 그 가능성은 더욱더 많이 나타났다. 그는 나폴레옹군의 전체 또는 그 일부가 뻬쩨르부르그에 접근하고, 노리고, 우회하는 모든 종류의 움직임을 생각하였다. 나폴레옹이 자기와 같은 무기로 자기와 싸울 가능성, 즉 자기를 기다리고 모스크바에 남아 있을 가능성도 생각하였다 (그는 이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 꾸뚜조프는 나폴레옹군이 메드이니와 유흐노프로 후퇴하는 움직임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예견할 수 없었던 단 한 가지 일, 그것은 실제로 생긴 일, 즉 모스크바를 나온 후 처음 11일 동안의 나폴레옹군의 미친 듯한, 단말마의 몸부림 - 이것이야말로 당시의 꾸뚜조프로서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프랑스군의 괴멸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 그는 60년의 경험으로, 소문에 어느 정도의 무게를 두면 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는 인간은, 바라고 있는 것을 마치 뒷받침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정보를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는 을 알고 있었다. 또 그런 경우 모순되는 것은 모두 자진해서 간과해 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꾸뚜조프는 그것을 바라면 바랄수록 더욱더 그것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1399-1400쪽)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조건

 

프랑스군의 모스크바 철퇴 소식부터 전쟁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꾸뚜조프의 모든 행동은, 오직 권력, 술책, 요망에 의한 자기 군대의 쓸데없는 공격, 행동, 그리고 파멸해 가는 적과의 충돌을 억제하는 데에 있었다.(…)

꾸뚜조프는 도처에서 퇴각했다. 그러나 적은 그 퇴각을 기다리지 않고 뒤돌아 반대쪽으로 도망갔다.

나폴레옹의 사가(史家)들은 따루찌노와 말로야로슬라베쯔에의 교묘한 이동을 기술하면서, 만일 나폴레옹이 풍요한 남부의 여러 현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추리하고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이들 풍요한 남부 지방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러시아군은 그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나폴레옹군은 그때 자신의 내부에 이미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역사가들은 잊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풍부한 식량을 발견하면서도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발밑에 짓밟아버린 이 군대가, 또 스몰렌스크에 침입했을 때도 식량을 정리, 분배하지 않고 약탈한 이 군대가, 어찌 깔루가 현에서 대세를 만회할 수 있었으랴!

이 군대는 어디서도 태세를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보로지노 전투와 모스크바의 약탈 이래 이 군대는 이미 자기 자신 안에, 말하자면 화학적인 분해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군대이기는 했던 이 사람들은 지휘관과 함께 자기들 자신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나폴레옹과 모든 병사들은) 단 한 가지 일만을, 즉 막연하기는 했지만 그들 모두가 의식하고 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빠져나가는 것만을 바라고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로야로슬라베쯔에서 열린 회의에서 장군들이 온갖 의견을 내서 사뭇 협의를 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을 때,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일, 즉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발언한, 병사와 같이 단순 소박한 무똔(프랑스 여단장. 익숙한 길을 지나서 모자이스크에서 니멘으로 퇴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의 마지막 의견이 모두의 입을 틀어막고, 누구 한 사람, 나폴레옹까지도, 모두가 의식하고 있는 이 진리에 대해 한 마디 반대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퇴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창피한 마음은 아직 남아 있었다. 따라서 이 수치심을 이겨낼 수 있는 외면적인 계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필요할 때 나타났다. 그것은 프랑스인이 말하는 ‘황제 돌격’이었다.

회의 이튿날 나폴레옹은 아침 일찍 부대와, 이제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전장을 시찰하고 싶다는 구실 아래 원수들과 호위대를 거느리고 군 배치선의 중간쯤을 말을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사냥감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던 까자크들이 황제 자신과 부딪혀 하마터면 그를 잡을 뻔했다. 그때 까자크가 나폴레옹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은, 프랑스군을 파멸시키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이, 즉 따루지노에서도 여기서도 인간은 제쳐놓고 까자크들이 덤벼든 전리품이 그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폴레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었고, 나폴레옹은 그 틈을 타서 도망가고 만 것이다.

‘돈 강의 아이들’이 황제 자신을 자신의 군대 한복판에서 하마터면 붙잡을 뻔 했을 때, 잘 알고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을 지나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도망가는 일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흔 살의 사나이답게 배가 나온 나폴레옹은 이미 이전과 같은 민첩함과 용기를 자신 속에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암시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까자크한테서 받은 공포에 사로잡혀 곧 무똔의 의견에 찬성하고, 역사가들이 말하는 스몰렌스크 가도에의 퇴각 명령을 내린 것이다.


나폴레옹이 무똔에 찬성하여 군이 퇴각을 시작했다는 것은 나폴레옹이 그것을 명령한 것이 아니라, 모자이스크 가도로 향하도록 전군에 작용하고 있었던 힘이 동시에 나폴레옹에게도 작용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1401-1403쪽)

 

 

1,000㎞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인간은 운동 속에 있을 때는 항상 그 운동의 목적을 자기를 위해 생각해내려고 한다. 1,000㎞의 길을 걷기 위해서, 인간은 그 1,000㎞ 저편에 무엇인가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운동하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희망의 땅을 그려낼 필요가 있다.


프랑스군이 공격하고 있을 때의 희망의 땅은 모스크바였고 퇴각 때에는 조국이었다. 그러나 조국은 너무 멀었다. 1,000㎞의 길을 가는 사람은 그 거리가 너무 멀어 아무래도 최종적인 목적을 잊은 채 자기에게 이렇게 타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40㎞를 걸어가면 휴식과 숙박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리고 처음 행정(行程)을 가는 동안에는 이 휴식지가 궁극의 목적지를 가리고, 모든 희망과 기대를 그 자체에 집중시킨다. 각 개인 속에 나타나는 갈망이 군중 속에서는 항상 증폭된다.


구(舊) 스몰렌스크 가도를 퇴각해 가는 프랑스군에게 조국이라는 궁극 목적은 너무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군중 속에서 큰 비율로 증폭되면서 모든 희망과 기대가 가는 가장 가까운 목적지는 스몰렌스크였다. 그러나 스몰렌스크에 풍부한 식량과 새로운 군대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거나 그러한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오히려 반대로 군의 수뇌와 나폴레옹 자신도 거기에는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만이 그들에게 움직이는 힘과 당면한 곤궁을 견디어낼 힘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다 같이 자신을 속이면서 희망의 땅으로서 스몰렌스크를 향하고 있었다.(1403-1404쪽) 

 

 

 

시간의 한도


눈 덩어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녹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일정한 시간의 한도라는 것이 있어서 그 어떤 열의 힘도 그보다 빨리 녹일 수는 없다. 반대로 열을 가하면 가할수록 남은 눈은 더욱 굳어진다.

러시아군 지휘관 중에서 꾸뚜조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것을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프랑스군이 스몰렌스크 가도를 따라서 퇴각한다는 방향이 정해졌을 때, 꼬노비니찐이 10월 11일 밤에 예상하고 있던 일이 현실로 되기 시작했다. 군의 수뇌들은 모두 전공을 세우려고 프랑스군을 분단하고, 붙잡아 포로로 하고, 패주시키려고 공격을 요구했다.

오직 꾸뚜조프 한 사람만이 자기의 온갖 힘을(어떠한 총사령관의 경우도 그러한 힘은 그다치 큰 것이 아니다) 공격을 반대하는 쪽에 쏟고 있었다.

그는,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모두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전투를 하고, 도로를 차단하고, 아군의 장병을 잃고, 불행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때려눕힐 까닭이 어디 있는가? 그러한 일이 모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전투도 하지 않고 모스크바에서 뱌지마까지의 사이에서 그 군대의 3분의 1이 사라져버렸는데……. 그러한 일은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노인다운 지혜로 모두가 이해할 만한 것을 끌어내서 말하였다. 그는 황금의 다리를 놓아 적을 계속 도망하게 하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그를 비웃기도 하고 중상하기도 하고 피살된 짐승을 찢고 내던져 창피를 주었다.


뱌지마 부근에서 에르몰로프, 밀로라도비치, 쁠라또프 등은 프랑스군 근처에서 프랑스군의 2개 군단을 차단하여 그들을 패주하게 하고 싶다는 기분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계획을 알리기 위해, 보고서 대신에 봉투 속에 백지 한 장을 넣어 꾸뚜조프에게 보냈다.

그리고 꾸뚜조프가 아무리 군대를 제지하려고 하여도 아군은 적의 퇴로를 차단하려고 공격을 가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보병대는 군악을 연주하고 북을 치면서 돌격을 감행하여 수천, 수만의 인명을 죽이거나 잃거나 했다.


그러나 분단시키려고 해도 결국 한 사람도 분단할 수 없었고 패주시킬 수가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군은 위험 때문에 더욱 굳게 굳어져 일정한 속도로 녹으면서 여전히 스몰렌스크를 향해 파멸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1404-14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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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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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보통인데...

 

까쩨리나 뻬뜨로브나가 왈츠와 에꼬쎄즈를 타기 시작하고 댄스가 시작되자 니꼴라이는 그의 민첩한 동작으로 더욱더 이곳의 상류 사회를 매료시키고 말았다. 그는 독특하고 분방한 댄스로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니꼴라이 자신도 이날 밤의 자기 춤솜씨에 약간 놀랐다. 그는 모스크바에서는 이렇게 추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이와 같이 너무나 분방한 춤 태도는 버릇없는 악취미라고까지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을 무엇인가 기발한 것으로, 서울에서는 보통인데 시골에 사는 자기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밤새도록 니꼴라이는 현의 어느 관리의 아내이자 파란 눈의 살이 찐 귀여운 금발 미인에게 가장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남의 아내는 자기를 위해서 만들어져 있다는 신멋이 든 젊은이들의 순진한 신념으로, 니꼴라이는 이 부인으로부터 떠나지 않고 남편에 대해서도 마음을 터놓고, 그러면서도 속에 무엇인가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 즉 니꼴라이와 그 남편의 아내는 서로 마음이 잘 맞을 것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말로는 하지 않지만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남편 쪽은 그러한 신념에는 동감이 가지 않는 듯, 애써 니꼴라이에게 언짢은 태도를 취하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니꼴라이의 사람이 좋은 순진성에는 끝이 없었기 때문에, 때로는 남편은 저도 모르게 니꼴라이의 매우 들뜬 기분에 끌려들 뻔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티가 끝날 무렵에 아내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상기되어 생기를 띠어 가자 남편의 얼굴은 더욱더 침울하고 창백해졌다. 그것은 마치 활기의 분량이 두 사람에게는 일정하고, 그것이 아내 쪽에서 증가함에 따라서 남편 쪽에서는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니꼴라이는 얼굴에 미소를 계속 띠고 안락의자에 약간 몸을 숙이고 앉아, 금발의 여인에게 몸을 가까이 하고 그녀에게 뮤즈네 비너스네 하며 겉치레의 말을 하고 있었다.

 

다리의 위치를 힘차게 바꾸기도 하고 향수 냄새를 사방에 풍기며 상대방 부인과, 자기 자신에게 꼭 맞는 승마 바지에 싸인 자기의 아름다운 다리 모양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니꼴라이는 금발의 여성에게, 자기는 이 보로네시에 있는 어느 여성을 유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분은 어떤 분이에요?"

 

"매력적이며 여신 같은 분입니다. 그분의 눈은(하고 니꼴라이는 상대 여성을 바라보았다) 파랗고, 입은 산호 같으며, 하얀 살결 ……" 그는 어깨를 보았다. "어깨나 가슴은 다이애나 여신입니다 ……."

 

남편이 두 사람한테로 다가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어두운 얼굴로 아내에게 물었다.

 

"아! 니끼따 이바노이치." 니꼴라이는 예의 바르게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리고 니끼따 이바노이치도 자기의 농담에 참가해 주기를 바라는 듯이, 그에게도 어떤 금발 미인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들려주었다.(1293-1294쪽)

 

 

그분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그들은 모두 안드레이가 더욱더 깊이, 천천히, 조용히, 자기들 곁을 떠나서 어딘가 멀리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으로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성사를 받았다. 모두가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하러 왔다. 아들을 데리고 왔을 때, 그는 아들에게 입술을 대고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괴롭거나 불쌍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마리야와 나따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들에게 축복을 주라고 하자, 그는 하라는 대로 하고 더 이상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묻는 듯이 돌아보았다.


영혼이 떠나가는 육체의 마지막 경련이 일어났을 때, 마리야와 나따샤가 그 자리에 있었다.


“임종이군요.” 안드레이의 육체가 이미 몇 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차가워지면서 두 사람 앞에 누워 있자 마리야가 말했다. 나따샤는 가까이 가서 죽은 눈을 보고 급히 그 눈을 감겨주었다. 그녀는 눈을 감겨 주고 거기에는 키스를 하지 않고, 안드레이의 가장 가까운 추억이었던 것에 몸을 기댔다.


‘그분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지금은 어디 계실까?’(1348쪽)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일 중에서 나폴레옹은 가장 어리석고 파괴적인 것


그는 이러한 것을 하나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눈앞에 있었던 몇 가지 행동 중 가장 어리석고 파괴적인 것을 선택하기 위해 자기 권력을 사용하였다. 나폴레옹이 할 수 있었던 모든 일들ㅡ모스크바에서 월동하는 일, 뻬쩨르부르그 방면으로 나아가는 일, 니지니 노브고로드 방면으로 나아가는 일, 북으로 더 가든가, 남쪽으로 치우쳐 후에 꾸뚜조프가 지나간 길을 따라 후퇴하는 일 등ㅡ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일 중에서 나폴레옹은 가장 어리석고 파괴적인 것을 선택하고 말았다. 즉, 군이 약탈하는 대로 내버려둔 채 10월까지 모스크바에 머무르고 나서, 수비대를 남길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채 모스크바를 나와 꾸뚜조프에게 접근하면서, 전투도 시작하지 않고 남서쪽으로 향하여 말로야로슬라베쯔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역시 돌파할 기회가 없이 꾸뚜조프가 통과한 길과는 다른 길을 지나 모자이스크 방면으로, 황폐한 스몰렌스크 가도를 지나 후퇴한 것이다. 결과가 나타내는 것처럼 이보다 어리석고, 군에 대한 파괴적인 일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폴레옹의 목적이 자기 군을 파멸시키는 데에 있었다고 가정하고, 누구보다 노련한 전술가에게, 러시아군이 무엇을 기도하더라도 그것에는 일체 상관없이 프랑스군을 전멸시킬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한다면, 나폴레옹이 한 일보다 더 완전하고 확실한 다른 일련의 행동을 생각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1369쪽) 

 

 

치명상을 입은 동물의 단말마적인 도약과 경련을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


전군의 상태는, 마치 자신의 파멸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모르고 있는 상처를 입은 동물과 같았다. 모스크바 입성에서부터 군의 괴멸에 이르기까지의 나폴레옹과 그 군대의 교묘한 작전이나 그 목적을 연구하는 것은, 치명상을 입은 동물의 단말마적인 도약과 경련을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처를 입은 짐승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사냥꾼의 총소리 쪽으로 돌진하기도 하고 전후로 뛰기도 하여,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 흔히 있다. 나폴레옹도 군 전체에 끌려 그와 마찬가지 일을 하였다. 따루찌노 전투라고 하는 바삭거리는 소리가 짐승을 겁먹게 하였다. 그리고 짐승은 앞으로 뛰어나가 총소리 쪽으로 달려갔다가 뒤로 되돌아오고, 또 앞으로 갔다가 뒤로 되돌아와 마침내 모든 짐승과 마찬가지로 가장 불리하고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잘 알고 있는 옛 발자국을 더듬어 뒤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움직임을 지휘한 것처럼 여겨지는 나폴레옹은 (뱃머리에 새겨져 있는 조각상이 야만인에게는 배를 움직이는 힘처럼 생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행동의 전체 기간을 통해서, 유개마차 안에 매 놓은 줄을 붙잡고 자기가 마차를 조종하고 있다고 공상하는 어린애와 비슷했다.(1377쪽)

 

 

조그마한 톱니바퀴야말로

기계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움직임을 보고, 그 기계의 가장 중요한 부품은 우연히 그 속에 들어가서 움직임을 방해하면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는 나무 부스러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계의 구조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움직임을 해치고 방해를 하는 나무 부스러기가 아니라, 소리도 없이 돌고 있는 조그마한 톱니바퀴야말로 기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의 하나임을 이해하지 못한다.(1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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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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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꽝스러운 입장

한편, 황제 시종들의 뒤편에서는 장군과 원수들 사이에서 나직한 음성으로 소곤소곤 걱정스러운 상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표단을 맞으러 간 사람들이 돌아와서 모스크바는 텅 비어 있고, 주민은 모두 나가버렸다고 알려온 것이다. 상의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파랗게 질리고 불안에 싸여 있었다. 그들을 겁먹게 한 것은, 주민이 모스크바를 포기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 일이 제아무리 중대하게 느껴졌다고 해도). 그것은 바로, 황제 폐하를 프랑스어로 ‘우스꽝스러운 입장’이라고 불리는 무서운 입장에 세우지 않고 어떻게 이 사실을 전할 것인가, 그가 이토록 오랫동안 헛되이 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술 취한 사람은 있어도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리면 좋은가 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하여간 누가 되었든 대표단 비슷한 것을 긁어모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의견에 반대하여, 신중하게 잘 황제에게 마음을 준비하게 해서 진실을 말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198-1199쪽)



 
여왕벌이 없는 벌집

그러나 모스크바는 텅 비어 있었다. 거기에는 아직, 이제까지 있었던 시민의 50분의 1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죽어가는 벌집이 텅 비어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여왕벌이 없는 벌집은 이미 생명이 없는 것이지만, 겉으로 보면 그것은 다른 벌집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낮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꿀벌들이 생명이 있는 다른 벌통과 마찬가지로, 여왕벌이 없어진 벌집 둘레를 즐거운 듯이 날아다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멀리에서 꿀 냄새가 풍기고 있고, 꿀벌들이 그 속으로 드나들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주의해서 들여다보면, 그 벌집에는 이미 생명이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생명이 있는 벌통은 벌들이 나는 방법이 다르다. 향기도, 날개 소리도 다르다는 데에 양봉가는 놀란다. 병든 벌집 벽을 양봉가가 두들기면 이제까지처럼 순간적이고 일제히 일어나는 반응 대신에, 엉덩이를 움츠리고 날개를 허둥대며 생명력이 있는 공기 소리를 내는 수만 마리 꿀벌의 윙윙 거리는 소리 대신에, 텅 빈 벌집의 여기저기서 둔하게 울리는 제각각의 날개 소리가 날 뿐이다. 벌집 입구에서는 이제까지처럼 알코올 성분을 머금은 향기로운 꿀과 독소의 냄새가 나지 않고, 벌이 가득 찬 온기(溫氣)도 나오지 않고 꿀 냄새에 공허(空虛)와 부패의 냄새가 섞여 있다. 입구에는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어 경보를 울리는 파수벌도 없다, 물이 끓는 소리와 비슷한, 저 완만하고 조용한 소리와 기세 좋게 노동하는 소리는 이제 없고, 고르지 않은 제각각의 무질서한 소음이 들릴 뿐이다. 꿀에 젖은 검고 가느다란 도둑벌이 남몰래 재빨리 벌집 속을 드나들고 있다. 그러한 벌은 쏘지도 않고 위험해지면 도망가 버린다. 이제까지는 반드시 꿀벌이 먹이를 가지고 들어왔다가 빈손으로 나갔는데, 지금은 먹이를 가진 벌이 나간다. 양봉가는 아래 뚜껑을 열고 벌집 밑 부분을 들여다본다. 이제까지처럼 검게 살찐 벌들이 서로 다리를 붙잡고 끊임없이 일하는 소리를 내면서 밀랍을 내며, 축축한 벌집 밑바닥까지 가지처럼 늘어져 있는 대신에, 마르고 졸린 듯한 벌이 벌집 바닥이나 벽을 정처없이 여기저기 헤매고 있다. 깨끗하게 아교를 촘촘히 바르고 날개로 깨끗이 쓸어낸 바닥 대신에, 밀랍 조각과 벌똥과 다 죽게 되어 발버둥치는 벌들이 완전히 죽은 벌들과 함께 아직 치워지지 않은 채 뒹굴고 있다.(1201-1202쪽)


사태가 본격적이고 역사적인 규모가 되었을 때

 

러나 사태가 본격적이고 역사적인 규모가 되었을 때, 프랑스인에 대한 증오를 말로만 표현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전투를 통해서까지도 그 증오를 표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모스크바의 문제에 관해서 자신이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전 시민이 마치 한 사람의 인간처럼 자기 재산을 내던지고 모스크바에서 나가고, 이 부정적인 행위에 의해서 자기들의 민중 감정의 힘을 남김없이 나타냈을 때ㅡ그때 라스또쁘친이 택한 역할은 갑자기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고독하고, 무력하고, 우스꽝스럽고, 발밑의 지반을 잃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1216-1217쪽)

 


폭풍이 일고 바다가 거칠어지고 배 자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행정관은 누구나 안정된, 동요가 없는 시기에는 자기 지배하에 있는 주민 전체가 자기의 노력만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자기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의식 속에, 자신의 노고와 노력에 대한 최대의 보상을 느끼는 법이다. 위정자나 행정관은 역사의 바다가 잔잔할 동안에는, 불안한 작은 배를 타고 민중이라는 배에 삿대를 짚어 자기쪽이 움직여지고 있는데도, 그가 지탱하고 있는 민중의 배가 그의 힘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이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폭풍이 일고 바다가 거칠어지고 배 자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제 그런 착각은 불가능하게 된다. 배는 혼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삿대는 움직이기 시작한 배까지 닿지 않으며, 위정자는 갑자기 지배자나 힘의 원천이라는 자기 입장에서 보잘것없고 쓸모없는 약한 인간으로 바뀌고 만다.(1218-1219쪽)


 

그들은 이미 군대가 아니었다


프랑스 병들은 옷은 찢어지고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서 그 병력도 애초의 3분의 1까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은 정연하게 모스크바로 들어왔다. 그들은 극도로 지쳐 있기는 했지만 아직 전투력이 있는 무서운 군대였다. 그러나 그것이 군대였던 것은 이 군대의 병사들이 각기 숙사로 분산할 때까지였다. 각 부대의 병사들이 텅 빈 호화스러운 집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영원히 군대는 없어지고 주민도 병사도 아닌, 약탈병이라고 불리는 중간적인 것이 되고 만 것이다. 5주일 후, 같은 사람들이 모스크바에서 나갔을 때, 그들은 이미 군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약탈자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 각자가 값이 있거나 필요하다고 여기는 물건을 수레에다 산더미처럼 쌓거나 어깨에 메기도 했다. 모스크바를 나갈 때 그들 누구나가 가지고 있었던 목적은 이전과 같이 싸워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약탈한 것을 지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마치 목이 가는 병에 손을 집어넣어 호두를 한 주먹 잔뜩 쥐고, 모처럼 쥔 것을 잃지 않으려고 주먹을 펴지 않아 그 때문에 자신을 망쳐버린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모스크바를 나갈 때의 프랑스군은 약탈한 것을 메고 가는 결과로서 분명히 파멸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약탈한 것을 버린다는 것은 원숭이가 호두를 쥔 주먹을 펼 수 없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프랑스군의 각 연대가 모스크바 시내의 어느 구로 진주하여 10분이 지난 후에는, 이제 병사나 장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집들의 창문에는 웃으면서 방 안을 걸어다니는, 제복 코트에 군화를 신은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움과 지하실에서도 이와 같이 사람들이 식료품을 제멋대로 취하고 있었다. 뜰에서는 같은 패들이 헛간과 마구간의 문을 열기도 하고 부수기도 하였다. 부엌에선 불을 피우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굽거나 반죽을 하거나 끓였다. 혹은 여자와 아이를 위협하기도 하고, 웃기고 달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이 도처에, 가게에도 집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군대는 어디에도 없었다.(1231쪽)

 


마른 땅위에 물을 부으면

 

물을 마른 땅 위에 부으면 물도 마른 땅도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굶주린 구낻가 풍요한 텅 빈 도시로 들어간 결과, 굶주린 군대는 없어지고 풍요로운 도시도 없어졌다. 그리고 진창이 생기고 화재와 약탈이 일어난 것이다.(1232쪽)



모스크바 화재의 원인

 

프랑스 사람은 모스크바의 화재를 라스또쁘친[모스크바 방위 책임자]의 광폭한 애국심 탓으로 돌리고, 러시아 사람은 프랑스군의 잔인성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 화재를 한 사람 또는 몇몇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뜻이라면 실제로는 그러한 원인은 없었고 또 있을 수도 없었다. 모스크바가 불탄 것은 시내에 130개의 허술한 소화 호스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상관 없이, 목조 도시라면 모두 불탈 것이라는 조건하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모스크바는 주민들이 나가버린 결과 타는 것이 당연했다. 그것은 수일 동안 불똥이 계속 떨어진 산더미 같은 대팻밥이 당연히 타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 주인이 있고 경찰이 있어도 여름에는 거의 매일 화재가 있는 목조 도시에서 주민이 없어지고, 파이프 담배를 피워대며, 대심원 광장에서 대심원 의자를 태워서 불을 피우고 하루에 두 번 음식을 취사하는 군대가 있다면 불타지 않을 수가 없었다.(1232-1233쪽)



톨스토이의 진실을 말하는 능력

 

러시아가 국토의 절반까지 점령당하여 모스크바 시민들도 멀리 여러 현으로 피난가고 민병대가 조국 방위를 위해서 잇달아 궐기했을 때에는, 러시아인은 모두 늙은이나 젊은이나 오직 자기 한 몸을 내던져 조국을 구하거나 또는 조국의 파멸을 한탄하고만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에 살지 않은 우리들은 흔히 그렇게 상상하기 쉽다. 당시의 일을 이야기하거나 묘사한 것은 예외 없이 러시아인의 자기 희생, 조국애, 절망, 슬픔, 영웅적인 활약만을 들추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에게 그렇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지나간 일들 중에서 당시의 일반적인 역사적 관심만을 보고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개인적인 인간적 관심을 보지 않은 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실은 눈앞의 개인적 관심은 일반적 관심보다는 훨씬 중요하므로, 그것에 방해되어 일반적 관심은 결코 느껴지지 않는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태반은 전반적인 사태의 행방에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다만 눈앞의 개인적인 관심에 지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야말로 당시의 가장 쓸모 있는 활동가였던 것이다.

 

한편, 전반적인 사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자기 희생이나 영웅적인 행위로 여기에 참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가장 쓸모 없는 사회의 구성원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거꾸로 보고 있었고, 그들이 유익하다고 생각해서 한 일은 모두 러시아의 마을들을 약탈한 삐에르나 마모노프의 민병대처럼, 또 귀부인들이 천을 풀어서 만들었는데도 부상자들에게까지 도달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붕대용 무명처럼, 실제로는 쓸모없고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똑똑한 체하고 자기 감정을 나타내는 것을 좋아하며 러시아의 현황에 대해 여러 설명을 하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자신들도 모르게 자기 말 속에, 겉치레나 거짓말, 또는 아무런 책임이 있을 리가 없는 일로 책망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쓸데없는 비난이나 증오를 나타내고 있었다. 지혜의 나무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역사상의 사건인 경우에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오직 무의식적인 행위만이 성과를 가져오는 것이며, 역사상의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 역사적 사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에 그 인간이 그 뜻을 이해하려고 시도한다면, 그것에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당시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던 사건의 의미는 어떤 인간이 거기에 가깝게 관련되어 있으면 있을 수록 눈에 띄지 않았다. 뻬쩨르부르그나 모스크바로부터 멀리 떨어진 현청 소재지에서는 귀부인들이나 민병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러시아와 수도의 비운을 탄식하고 자기 희생 등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스크바 밖으로 퇴각하는 군대에서는 거의 모스크바 이야기를 하거나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고, 모스크바의 화재를 봐도 누구 한 사람 프랑스군에 대한 복수를 맹세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다음 달 분의 봉급과, 다음 숙영지와, 주보(酒保) 마나님 여자 마뜨료쉬까 등을 생각할 뿐이었다. (1289-1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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