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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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와 우스개 사이


'이건 위대하다!' 역사가는 말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있는 것은 다만 '위대한 것'과 '위대하지 않은 것'뿐이다. 위대는 좋고 위대하지 않은 것은 나쁘다. 위대한, 그들의 개념에 의하면 자기들이 영웅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어떤 특별한 동물들의 성질인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따뜻한 모피 코트를 입고, 파멸에 처한 동지는 물론 (그의 생각에 의하면) 자기가 그곳에 끌고 온 사람들을 버리고 그의 나라로 도망가면서, 이것은 위대한 일이라고 느끼고 그 마음은 편안한 것이다.

"숭고에서 (그는 자기 내부에 무슨 숭고한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스개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발짝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온 세계가 50년에 걸쳐서 '숭고! 위대! 위대한 나폴레옹! 숭고와 우스개 사이는 단 한 발짝이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선악의 기준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은 다만 자신의 무가치와 한없이 비소(卑小)함을 인정하는 데에 지나지 않은다는 것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진 선악의 척도가 있으므로 측정 못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소박, 선, 진실이 없는 곳에 위대함은 없는 것이다.(1460쪽)


 

경험 있는 소몰이

러시아군은 반이나 죽으면서 러시아 민족에게 어울리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모든 일을 했다. 그러므로 따뜻한 방에 앉아 있는 다른 러시아 사람들이 하기를 바랐던 일을 다 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은 러시아군의 책임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묘한 사실과 역사 서술 사이에 오늘날 이해할 수 없는 차질이 생기고 있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역사가들이 여러 장군들의 아름다운 감정이나 말의 역사를 쓰고 있을 뿐 사건의 역사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에게는 밀로라도비치의 말이나 어느 장군이 받은 포상이나 그들의 생각이 매우 흥미 있게 여겨지지만, 각처의 야전 병원과 무덤에 남겨진 5만 명의 문제는 그들의 연구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흥미를 끌지도 못한다.

그런데 상신서나 종합 계획 등의 연구에 등을 돌리고, 사건에 직접 참가한 무수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내려가 보면, 이제까지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문제가 순식간에, 또 매우 손쉽고 간단하게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해결된다.

나폴레옹을 군과 함께 분단하려는 목적은 열 명 정도의 머릿속 외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의미하고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가 없다.

국민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자기들의 영토에서 침략자들을 소탕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은 첫째, 프랑스군이 퇴각하고 있었으므로 저절로 실현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단지 그 움직임이 멈추지 않도록 하기만 하면 되었다. 둘째로, 이 목적은 프랑스군을 괴멸시키고 있던 국민 전쟁 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또 셋째로는, 프랑스군의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에는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러시아의 대군이 프랑스군의 뒤를 밟는 것으로 수행되어가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달아나는 동물에 대한 채찍과 같은 작용을 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경험 있는 소몰이는 동물을 위협하면서 채찍은 들어 올린 채, 뛰고 있는 동물의 머리는 때리지 않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1465쪽)

 

 

 

존재를 그만두는 것


사람은 죽어가는 동물을 보면 공포에 사로잡힌다. 바로 그 자신, 자기의 본질이 눈앞에서 소멸해간다ㅡ존재를 그만두는 것이다. 그러나 죽어가는 것이 인간이라면, 더욱이 사랑하는 또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삶의 소멸을 앞둔 공포 외에 단절감과 정신적인 아픔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상처는 육체적인 상처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죽음에 이르고 때로는 완치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또 아픔을 북돋우는 외부로부터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이 죽은 뒤 나따샤와 마리야는 똑같이 이것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몸을 웅크리고 머리 위에 다가오는 무서운 죽음의 구름에 눈을 반쯤 감고, 삶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차 없이 아픔을 불러일으키는 접촉을 피하고 조심스럽게 벌어진 상처를 감싸고 있었다. 거리를 재빨리 지나가는 마차, 식사를 재촉하는 목소리, 준비할 양복을 묻는 하녀의 물음, 더 나쁘게는 상처의 아픔을 쑤셔대는, 마음이 깃들지 않은 동정의 말 등, 모두가 모욕으로 느껴졌다. 또 그 모든 것들은 두 사람이 아직도 자기의 뇌리에서 울리고 있는 무섭고 엄숙한 합창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정적(靜寂)을 교란하고, 두 사람 앞에 순간적으로 나타난 불가사의하고 끝없이 먼 저편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었다.(1466쪽)



 

인생은 멈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순수하고 완전한 슬픔이라고 하는 것은 순수하고 완전한 기쁨과 마찬가지로 있을 수가 없다. 마리야는 자기 자신이 자기 운명에 대한 단 한 사람의 의지할 데가 없는 주인이며 조카의 후원자이자 양육자라고 하는 입장 때문에, 처음 2주일 동안 살아왔던 슬픔의 세계에서 나따샤보다 먼저 실생활로 돌아왔다. (⋯) 인생은 멈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리야는 이제까지 자기가 살아온 혼자만의 명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또 나따샤를 혼자 남겨두는 것이 아무리 마음이 허전하고 마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심정이었다고 해도 생활의 여러 가지 까다로운 일들에 자기가 관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몰두하고 말았다. 그녀는 알빠뚜이치와 수지(收支)를 확인하고, 조카의 일에 대해 데사르와 상의하고, 모스크바로 옮기기 위한 지시나 준비를 하였다.(1467쪽)


 

 

뻬쨔의 전사


그녀가 홀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빠른 걸음으로 백작 부인의 방에서 나왔다. 아버지의 얼굴은 주름투성인 데다가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는 분명히 목구멍에 솟구치는 통곡을 실컷 소리 내어 터뜨리기 위해서 방에서 뛰어나온 것 같았다. 나따샤를 보자 아버지는 절망적으로 두 손을 흔들고 별안간 발작적인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둥글고 부드러운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뻬 ⋯⋯ 뻬쨔가 ⋯⋯ 가봐라, 어머니가, 어머니가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어린애처럼 울부짖으면서 쇠약한 다리로 급히 의자 쪽으로 다가가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자 거의 그 위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갑자기 전류 같은 것이 나따샤의 온몸을 스쳐갔다. 무엇인가 무서운 힘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도록 내리쳤다. 그녀는 무서운 아픔을 느꼈고, 무엇인가가 그녀 안에서 찢겨나가 자기는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픔에 뒤이어 그녀는 그때까지 자기 위에 얹혀 있던 삶의 금제(禁制)에서 순식간에 해방되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를 보고 문 안쪽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무서우리만큼 거친 외침 소리를 듣자, 그녀는 순식간에 자기와 자기의 슬픔을 잊고 말았다. 그녀가 아버지 옆으로 뛰어갔지만 그는 힘없이 손을 흔들고 어머니가 있는 방의 문을 가리켰다. 마리야가 창백한 얼굴로 아래턱을 떨면서 문에서 나오자, 무슨 말을 하면서 나따샤의 손을 잡았다. 나따샤는 마리야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과 싸우는 듯 잠깐 걸음을 멈췄다가 어머니 옆으로 달려갔다.

백작 부인은 기묘하고 보기 흉하게 몸을 뻗으면서 안락의자에 누워 머리를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쏘냐와 하녀들이 그녀의 손을 누르고 있었다.

“나따샤! 나따샤를! ⋯⋯” 백작 부인이 외쳤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 ⋯⋯ 나따샤를!” 그녀는 주위 사람들을 밀어젖히면서 소리쳤다. “모두 저쪽으로 가줘요, 모두 거짓말이야! 전사! ⋯⋯ 핫, 핫, 핫! 거짓말이야!”(1471쪽)

 

 

 

마음의 상처


어머니의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뻬쨔의 죽음이 그녀의 생명의 절반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뻬쨔의 전사 소식을 받았을 때는 아직 발랄하고 씩씩한 쉰 살의 여자였던 그녀가 한 달 후에 방에서 나왔을 때에는 반은 죽은, 인생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한 노파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백작 부인을 절반쯤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상처가, 그 새로운 상처가 나따샤를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였다.

마음의 살이 찢어져서 생기는 상처는 육체의 상처와 마찬가지여서, 깊은 상처가 낫고 양끝이 붙은 후, 육체의 상처와 마찬가지로 안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에 의해서 비로소 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따샤의 상처도 나았다. 그녀는 자기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그녀에게 인생의 본질인 사랑이 아직 자기 내부에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사랑이 눈을 떴다. 그리고 생명도 눈을 뜬 것이다.(14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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