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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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초를 태워버렸기 때문

 

그런데 1812년에 갑자기 프랑스군이 모스크바 근교에서 승리를 거두고 모스크바를 점령했는데도, 그 후 새로운 전투가 없는 상태였는데 멸망하게 된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60만의 프랑스군대였고, 더 나아가 나폴레옹의 프랑스제국이었다. 역사의 법칙에 억지로 사건을 발라 맞추어서, 보로지노에서 전장을 유지한 것은 러시아군이고, 모스크바 이후 나폴레옹군을 섬멸시켰다고 말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프랑스군이 보로지노에서 승리를 거둔 후 전면적인 전투는커녕 전투다운 전투는 한 차례도 없었는데, 프랑스군은 소멸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가령 이것이 중국 역사의 예라면, 이 현상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 자기 기준에 맞지 않은 것이 있을 경우 역사가가 도망가는 상투적인 수단이다). 소수의 군대가 참가한 단기간의 전투라면 그 현상을 예외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우리 조상들의 눈앞에서 생긴 것으로 우리 조상들의 사활이 걸린 것이었고, 게다가 이 전쟁은 인간들이 알고 잇는 모든 전쟁 중에서 최대의 것이었던 것이다.

 

1812년의 보로지노 전투로부터 프랑스군을 쫓아낼 때까지의 전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은, 전투의 승리는 정복의 원인이 아닐 뿐 아니라 정복에 반드시 수반되는 증후도 아니라는 것이며, 또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은 정복자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나 전투 속에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인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가들은 모스크바로부터 나오기 전의 프랑스군의 상태를 말하면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위대한 군대는 기병, 포병, 마차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정연했지만 소와 말을 먹일 사료가 없었다. 이 불운은 어떻게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주변의 농민들은 건초를 모두 태워 버리고 프랑스군에 내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의 승리는 여느 때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프랑스군이 모스크바로 들어온 뒤 짐마차를 끌고 도시를 약탈하러 왔을 때, 개인적으로는 영웅적인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던 까르프나 블라스와 같은 수많은 농민들이, 아무리 좋은 값을 준다고 해도 모스크바로 건초를 가지고 오지 않고 태워버렸기 때문이다.(1408쪽)

 


 

국민 전쟁이라는 몽둥이

 

스몰렌스크의 화재 이래, 종래의 어떠한 전쟁의 전설에도 적용되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시와 마을의 소실, 몇 가지 전투 후의 후퇴, 보로지노에서의 손해, 두 번째의 후퇴, 모스크바의 포기와 화재, 약탈병의 체포, 수송차의 탈취, 유격전 등ㅡ이 모든 것은 규칙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검술가의 정규적인 자세로 모스크바에 남아, 상대방이 검 대신에 자기 머리 위에 쳐든 몽둥이를 본 바로 그 순간부터, 꾸뚜조프와 알렉산드르 황제를 향해서 전쟁하는 방법이 규칙에 어긋난다고 (마치 사람을 죽이는 데도 무슨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불평을 계속했다. 지위가 높은 러시아인에게는 몽둥이로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가 창피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프랑스 측의 규칙 위반의 불평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제4의 자세나 제3의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제1의 자세로 보기 좋게 찌르고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 전쟁이라는 몽둥이를 무서운 힘으로 번쩍 들어올려 그 누구의 기호나 법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둔하리만큼 거칠게, 그러나 목적에 따라서 무조건 내리쳐 침략자 전체가 박멸될 때까지 프랑스군을 후려갈긴 것이다.(1409쪽)


 

 

군대의 사기


이러한 모순이 생기는 것은 군사학이 군의 힘을 그 수와 동등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학에 의하면, 군이 크면 클수록 그 힘도 크다. 커다란 군은 항상 도리에 합당한 것이다.


이렇게 주장할 경우, 군사학은 힘을 그 질량과의 관계만으로 고찰하여 질량이 같다, 또 같지 않으니까 그 힘은 같다, 또는 같지 않다고 말하는 역학과 같은 것이다.


힘(운동량)은 질량과 속도를 서로 곱한 것이다.


전쟁에서 군의 힘은 역시 질량과 무엇인가를, 무엇인가 알 수 없는 x를 곱한 것이다.



그 x란 군대의 사기다.
즉 군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싸우려는 의지, 일신을 위험에 드러내놓으려는 의욕의 대소(大小)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병사들이 천재이거나 천재이지 못한 지휘관의 명령으로 싸우고 있는가, 3열 또는 4열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가, 몽둥이로 또는 1분간에 30발 쏠 수 있는 총으로 싸우고 있는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기야말로 힘을 도출해 내기 위해 질량에 곱하는 승수(乘數)인 것이다. 군의 사기라고 하는 이 알 수 없는 승수의 수치를 밝혀내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학문의 과제인 것이다.(1410-1411쪽)



 

사기의 고양이나 저하가 강하게 나타날 경우

 

공격 때는 집단으로 행동하고 퇴각 때는 분산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전술 법칙이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군의 힘은 그 사기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인간을 포탄 아래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는 공격군을 격퇴하는 일 이상의 규율이 필요하며, 그것은 집단으로 행동함으로써 비로소 얻어진다. 그러나 이 법칙은 군의 사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옳지 않은 경우가 많고, 특히 사기의 고양이나 저하가 강하게 나타날 경우, 즉 모든 국민적 전쟁의 경우에는 놀라울 정도로 현실과 차질을 가지고 오게 된다.

1812년 퇴각할 때의 프랑스군은, 전술에 따르자면 분산해서 몸을 지켜야 했는데, 집단이 아니면 군을 하나로 유지할 수가 없을 정도로 사기가 저하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덩어리가 되어 몰려다녔다. 그런데 러시아군은 반대로 전술에 따르면 집단으로 공격해야 했는데 실제로는 분산했다. 그것은 사기가 크게 높아져서 개개인이 명령 없이 프랑스군을 공격하여, 자기 몸을 고생과 위험에 노출시키는 데에 강제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1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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