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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2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인내와 시간,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용사다
‘공격을 하면 우리가 질 뿐이라는 것쯤은 그들이 깨달아야 한다. 인내와 시간,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용사다.’ 꾸뚜조프는 생각했다. 사과는 아직 파랄 때 따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사과는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는데, 파랄 때 따면 사과도 나무도 상하게 되고, 먹어도 이가 시릴 뿐이다. 그는 노련한 사냥꾼처럼 짐승이 부상당했다는 것, 러시아가 전력을 다하여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치명상인지 아닌지는 아직 분명치 않은 문제였다. 지금은 로리스똔과 베르젤레미(나폴레옹의 사자)가 파견되어 왔다는 점이나, 유격대의 보고에 의해서 꾸뚜조프는 적이 치명상을 받고 있다는 것은 거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확증이 더 필요했다. 기다려야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죽인 짐승을 달려가서 보고 싶어하고 있다. 기다려라,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항상 행동, 항상 공격 타령이다!’ 그는 생각했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가, 항상 눈에 띌 생각만 하다니. 마치 싸우는 데에 무엇인가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마치 어린이 같아서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조리 있게 말하지도 못한다. 모두 자기는 싸움을 잘한다는 것을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면밀한, 훌륭한 작전을 제안한다! 그들은 두서너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내면 (그는 뻬쩨르부르그에서 보내온 종합 계획을 상기했다), 그것으로 모든 가능성을 생각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가능성은 무수히 있는 법이다.'(1398-1399쪽)
60년의 경험
보로지노에서 입힌 상처가 과연 치명적이었느냐 아니냐 하는 미해결의 의문이 이미 한 달 동안이나 꾸뚜조프의 머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프랑스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하였다. 그 반면 꾸뚜조프는 자기와 모든 러시아 사람이 힘을 합하여 전력을 다했던 그 무서운 일격이 틀림없이 치명적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이미 한 달 동안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는 점점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자리에 누워서 그는 젊은 장군들이 하고 있는 일, 다름 아닌 그가 젊은 장군들을 비난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확실한, 이미 이루어진 나폴레옹의 파멸을 나타내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내려고 하였다. 그는 젊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그 가능성을 생각해내려고 하고 있었는데, 다만 다른 점은 그는 예상 위에 아무것도 세우려고 하지 않았고, 또 그 가능성을 둘이나 셋이 아니라 무수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생각하면 할수록 그 가능성은 더욱더 많이 나타났다. 그는 나폴레옹군의 전체 또는 그 일부가 뻬쩨르부르그에 접근하고, 노리고, 우회하는 모든 종류의 움직임을 생각하였다. 나폴레옹이 자기와 같은 무기로 자기와 싸울 가능성, 즉 자기를 기다리고 모스크바에 남아 있을 가능성도 생각하였다 (그는 이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 꾸뚜조프는 나폴레옹군이 메드이니와 유흐노프로 후퇴하는 움직임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예견할 수 없었던 단 한 가지 일, 그것은 실제로 생긴 일, 즉 모스크바를 나온 후 처음 11일 동안의 나폴레옹군의 미친 듯한, 단말마의 몸부림 - 이것이야말로 당시의 꾸뚜조프로서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프랑스군의 괴멸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 그는 60년의 경험으로, 소문에 어느 정도의 무게를 두면 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는 인간은, 바라고 있는 것을 마치 뒷받침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정보를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런 경우 모순되는 것은 모두 자진해서 간과해 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꾸뚜조프는 그것을 바라면 바랄수록 더욱더 그것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1399-1400쪽)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조건
프랑스군의 모스크바 철퇴 소식부터 전쟁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꾸뚜조프의 모든 행동은, 오직 권력, 술책, 요망에 의한 자기 군대의 쓸데없는 공격, 행동, 그리고 파멸해 가는 적과의 충돌을 억제하는 데에 있었다.(…)
꾸뚜조프는 도처에서 퇴각했다. 그러나 적은 그 퇴각을 기다리지 않고 뒤돌아 반대쪽으로 도망갔다.
나폴레옹의 사가(史家)들은 따루찌노와 말로야로슬라베쯔에의 교묘한 이동을 기술하면서, 만일 나폴레옹이 풍요한 남부의 여러 현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추리하고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이들 풍요한 남부 지방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러시아군은 그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나폴레옹군은 그때 자신의 내부에 이미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역사가들은 잊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풍부한 식량을 발견하면서도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발밑에 짓밟아버린 이 군대가, 또 스몰렌스크에 침입했을 때도 식량을 정리, 분배하지 않고 약탈한 이 군대가, 어찌 깔루가 현에서 대세를 만회할 수 있었으랴!
이 군대는 어디서도 태세를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보로지노 전투와 모스크바의 약탈 이래 이 군대는 이미 자기 자신 안에, 말하자면 화학적인 분해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군대이기는 했던 이 사람들은 지휘관과 함께 자기들 자신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나폴레옹과 모든 병사들은) 단 한 가지 일만을, 즉 막연하기는 했지만 그들 모두가 의식하고 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빠져나가는 것만을 바라고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로야로슬라베쯔에서 열린 회의에서 장군들이 온갖 의견을 내서 사뭇 협의를 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을 때,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일, 즉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발언한, 병사와 같이 단순 소박한 무똔(프랑스 여단장. 익숙한 길을 지나서 모자이스크에서 니멘으로 퇴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의 마지막 의견이 모두의 입을 틀어막고, 누구 한 사람, 나폴레옹까지도, 모두가 의식하고 있는 이 진리에 대해 한 마디 반대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퇴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창피한 마음은 아직 남아 있었다. 따라서 이 수치심을 이겨낼 수 있는 외면적인 계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필요할 때 나타났다. 그것은 프랑스인이 말하는 ‘황제 돌격’이었다.
회의 이튿날 나폴레옹은 아침 일찍 부대와, 이제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전장을 시찰하고 싶다는 구실 아래 원수들과 호위대를 거느리고 군 배치선의 중간쯤을 말을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사냥감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던 까자크들이 황제 자신과 부딪혀 하마터면 그를 잡을 뻔했다. 그때 까자크가 나폴레옹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은, 프랑스군을 파멸시키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이, 즉 따루지노에서도 여기서도 인간은 제쳐놓고 까자크들이 덤벼든 전리품이 그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폴레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었고, 나폴레옹은 그 틈을 타서 도망가고 만 것이다.
‘돈 강의 아이들’이 황제 자신을 자신의 군대 한복판에서 하마터면 붙잡을 뻔 했을 때, 잘 알고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을 지나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도망가는 일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흔 살의 사나이답게 배가 나온 나폴레옹은 이미 이전과 같은 민첩함과 용기를 자신 속에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암시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까자크한테서 받은 공포에 사로잡혀 곧 무똔의 의견에 찬성하고, 역사가들이 말하는 스몰렌스크 가도에의 퇴각 명령을 내린 것이다.
나폴레옹이 무똔에 찬성하여 군이 퇴각을 시작했다는 것은 나폴레옹이 그것을 명령한 것이 아니라, 모자이스크 가도로 향하도록 전군에 작용하고 있었던 힘이 동시에 나폴레옹에게도 작용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1401-1403쪽)
1,000㎞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인간은 운동 속에 있을 때는 항상 그 운동의 목적을 자기를 위해 생각해내려고 한다. 1,000㎞의 길을 걷기 위해서, 인간은 그 1,000㎞ 저편에 무엇인가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운동하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희망의 땅을 그려낼 필요가 있다.
프랑스군이 공격하고 있을 때의 희망의 땅은 모스크바였고 퇴각 때에는 조국이었다. 그러나 조국은 너무 멀었다. 1,000㎞의 길을 가는 사람은 그 거리가 너무 멀어 아무래도 최종적인 목적을 잊은 채 자기에게 이렇게 타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40㎞를 걸어가면 휴식과 숙박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리고 처음 행정(行程)을 가는 동안에는 이 휴식지가 궁극의 목적지를 가리고, 모든 희망과 기대를 그 자체에 집중시킨다. 각 개인 속에 나타나는 갈망이 군중 속에서는 항상 증폭된다.
구(舊) 스몰렌스크 가도를 퇴각해 가는 프랑스군에게 조국이라는 궁극 목적은 너무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군중 속에서 큰 비율로 증폭되면서 모든 희망과 기대가 가는 가장 가까운 목적지는 스몰렌스크였다. 그러나 스몰렌스크에 풍부한 식량과 새로운 군대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거나 그러한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오히려 반대로 군의 수뇌와 나폴레옹 자신도 거기에는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만이 그들에게 움직이는 힘과 당면한 곤궁을 견디어낼 힘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다 같이 자신을 속이면서 희망의 땅으로서 스몰렌스크를 향하고 있었다.(1403-1404쪽)
시간의 한도
눈 덩어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녹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일정한 시간의 한도라는 것이 있어서 그 어떤 열의 힘도 그보다 빨리 녹일 수는 없다. 반대로 열을 가하면 가할수록 남은 눈은 더욱 굳어진다.
러시아군 지휘관 중에서 꾸뚜조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것을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프랑스군이 스몰렌스크 가도를 따라서 퇴각한다는 방향이 정해졌을 때, 꼬노비니찐이 10월 11일 밤에 예상하고 있던 일이 현실로 되기 시작했다. 군의 수뇌들은 모두 전공을 세우려고 프랑스군을 분단하고, 붙잡아 포로로 하고, 패주시키려고 공격을 요구했다.
오직 꾸뚜조프 한 사람만이 자기의 온갖 힘을(어떠한 총사령관의 경우도 그러한 힘은 그다치 큰 것이 아니다) 공격을 반대하는 쪽에 쏟고 있었다.
그는,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모두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전투를 하고, 도로를 차단하고, 아군의 장병을 잃고, 불행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때려눕힐 까닭이 어디 있는가? 그러한 일이 모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전투도 하지 않고 모스크바에서 뱌지마까지의 사이에서 그 군대의 3분의 1이 사라져버렸는데……. 그러한 일은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노인다운 지혜로 모두가 이해할 만한 것을 끌어내서 말하였다. 그는 황금의 다리를 놓아 적을 계속 도망하게 하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그를 비웃기도 하고 중상하기도 하고 피살된 짐승을 찢고 내던져 창피를 주었다.
뱌지마 부근에서 에르몰로프, 밀로라도비치, 쁠라또프 등은 프랑스군 근처에서 프랑스군의 2개 군단을 차단하여 그들을 패주하게 하고 싶다는 기분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계획을 알리기 위해, 보고서 대신에 봉투 속에 백지 한 장을 넣어 꾸뚜조프에게 보냈다.
그리고 꾸뚜조프가 아무리 군대를 제지하려고 하여도 아군은 적의 퇴로를 차단하려고 공격을 가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보병대는 군악을 연주하고 북을 치면서 돌격을 감행하여 수천, 수만의 인명을 죽이거나 잃거나 했다.
그러나 분단시키려고 해도 결국 한 사람도 분단할 수 없었고 패주시킬 수가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군은 위험 때문에 더욱 굳게 굳어져 일정한 속도로 녹으면서 여전히 스몰렌스크를 향해 파멸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1404-14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