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산성 여행 - 역사의 흔적
최진연 글.사진 / 주류성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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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왜곡을 경험하면서 한국사에 대한 재인식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네들의 역사왜곡을 질타하고 바로 잡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보다 먼저 우리 자국사에 대한 올바른 고증과 인식이 선행되어야지 않을까 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문가 집단에서부터 일반대중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한국사를 바로 재정립할 수 있을까라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최진연 사진작가의 <경기도 산성 여행> 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오리라 여겨지네요. 그동안 우리는 역사하면 모년모월모일에 누가 어떤 일을 행했다는식의 역사적 사실에 주안점을 두었죠. 즉 사건과 인물중심의 역사를 접하다 보니 암기식 위주와 따분한 역사적 행위들의 나열속에서 진정한 역사의 참맛을 느끼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는 현실 세계와 괴리된 죽은 학문으로 낙인찍히면서 오죽하면 대학입학능력평가시험에서 선택과목으로 치부 받는 수모까지 겪고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교육제도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역사를 시험과목이나 교육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관념자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기존의 역사교육 방법론을 혁신하지 않는한 이러한 현상은 되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일이니까요.

 

이런측면에서 이번 <경기도 산성 여행>은 역사에 대한 접근방식이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오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현존하는 유물이나 서지학적 문헌등이 극히 적은 상고사 부분을 대하면서 그저 지도한장으로 그 시대를 제단해야 했고 그렇게 배워야했던 기존 접근방식과는 180도 다른 방향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산성에 국한되어 있지만 달리 보면 삼국시대의 정치,경제,문화등의 전반적인 사안을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산성연구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만큼 성을 중심으로 국가기반이 성립되었기에 이러한 성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상당할거라 여겨집니다. 그동안 아차산성, 풍납토성등 몇몇 알려진 산성이나 성에 대한 발굴과 연구는 많이 이루어 졌지만 이번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산성들을 접하면서 새삼 우리의 역사를 재발견한다는 기쁨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여기에 각각의 산성에 관련된 전설적인 구비문학과 사초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등을 효과적으로 부연설명하고 있어 독자들의 이해력을 높이고 있습니다(전 개인적으로 성과 보루의 차이점을 이번에 확실히 인식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비쥬얼이 환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화보들만 들여다 보더라도 수준높은 예술사진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 없는 한편의 풍경화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정말 시각적으로도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옵니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그동안 활자나 어려운 용어 그리고 낯설은 한자어로 점철된 역사서만 바라본 독자들이라면 이번 책은 그야말로 재미있게 역사를 쳐바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네요. 오히려 이러한 뷰주얼이 역사인식에 오래토록 각인되어 현실감 있게 남으리라 여겨 집니다. 특히 항공촬영으로 수록된 사진들은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네요. 자연과 더불어 지형지물이 완벽하게 조화된 일체감은 수성이나 방비 차원을 떠나서도 귀감이 될 만한 사레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이번 산성투어를 통해서 다시 한번 느끼지만 우리의 문화재관리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이고 엉망진창인지 정말 낯뜨겁게 다가 옵니다. 발굴하고 경제개발논리로 훼손되고 방치된 산성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게 합니다. 이동통신 안테나망, 군용 이동로와 참호 그리고 농경지가 버젓이 자리한 문화유산들을 보면서 새삼 누구를 탓하고 무엇을 한탄할까라는 생각만이 머리속을 감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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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 산책 1 - 20세기, 유럽을 걷다
헤이르트 마크 지음, 강주헌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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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온 발자취이고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을 사실로서 그리고 객관적으로 기록한 산물의 총체를 지칭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에는 시간이란 개념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고, 대게 역사를 통찰하고 고찰한다는 의미 한켠에는 시대에 대한 상고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아프리카 대평원에서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하여 불을 사용하고 뗀석기와 간석기를 이용하여 수렵과 채집을 했던 선사시대에서 부터 4대문명의 탄생과 멸망 그리고 고대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년 모월에 발생했던 기록물들을 근거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게 당연시 되어왔고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독자들 뇌리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고찰(연대기적 기술)은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 고찰의 요소를 간과하기 십상이다. 그것은 바로 시간과 같이 병존해야할 공간적인 개념인 것이다. 물론 시간적 흐름속에 공간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별도로 공간적인 의미를 부각시킬수 있는 동력은 개발한다거나 부족하다. 결국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아우러서 판단해야 정확한 역사인식이 가능한 것임을 알게 해준다. 또한 역사적 기록의 산출물들에 대한 경중을 부여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제단하게 되면서 포멀과 인포멀의 경계점을 모호하게 만들어 왔던 것 역시 사실이다. 왕의 기록은 중차대 하지만 일반 대중의 기록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인식 즉 제도권내의 역사에 대한 믿음등이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헤이르트 마크의 <유럽사 산책>는 20세기(시간적 개념)의 유럽(공간적 개념)을 다룬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뭐 이렇게 보면 여태 출간된 유럽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동안 독자들은 20세기 유럽사의 장을 연 알프레드 드레퓌스이 복권과 관련된 드레퓌스 사건을 필두로 제1차 세계대전과 나치즘과 파시즘의 탄생 그리고 또 다른 세계대전 이어 이데올로기의 연장인 냉전과 냉전의 붕괴로 맞이한 유럽의 통일이라는 굵직굵직한 사건과 시간의 연속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출간된 20세기 유럽사의 대부분이 드레퓌스사건의 원인과 그 전개 그리고 향후 세계사에 미치는 영향등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시각에서 각각의 사건을 분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교훈적인 사고을 심어주는 역활을 수행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엄밀히 보면 이러한 역활이 역사를 고찰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역사 기술은 왠지 일정한 공식속에 전개되는 사례증명 같은 느낌을 강하게 준다. 일정하게 정해진 패러다임이라는 거푸집에 의해 재생산되는 상품으로서의 역사, 쇼윈도에 전시된 항상 웃고만 있는 마네킹과 같은 역사, 이미 그 수명을 다하여 폐기처분된 그런 역사였는지도 모른다.

 
또한 <유럽사 산책>는 그동안 우리가 수 없이 접해왔던 기존의 거대하고 웅장한 패러다임(포멀하고 제도권내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된 형식)속이 역사가 아닌 20세기 유럽의 시작을 파리 국제박람회장의 분위기를 전하는 앙드레 지드의 목소리에서 세기의 발견을 시작하는 상당히 유니크하게 독자들에게 역사를 받아들이게 하는 저작이다. 언론종사인으로 저자는 20세기 유럽사를 거대한 담론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기술한 것이 아니라 당시대를 온전하게 겪어던 개개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술하고 있는 르포르타주 형식을 가미하고 있는 민중사(각 개인의 합)라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역사서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왠지 서술의 기법이나 방식등이 역사서 보다는 신변잡기를 다루고 있는 유사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발생했던 일련의 사건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일반대중의 시각을 절묘하게 연결하여 또 다른 시각의 유럽사를 보게 한다. 저자가 1년에 걸쳐 유럽전역을 돌면서 인터뷰하고 현장을 재 조명했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산책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게 된다면 한결 자자의 의도을 이해하기 쉬울 것으로 보인다(그렇다고 이 책이 표방하는 전반적인 의미가 가볍게만 느껴진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사건중심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위주의 역사기술에는 공적인 영역과 그 영역을 판단하기 위한 시도로 점철되어 왔지만 이번 <유럽사산책>는 과감하게 이러한 공적영역을 걷어내고 일반 대중속으로 융해해버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것이다. 가난뱅이 짚시가 내뱉는 한마디가 역사와 역사기술에 있어 무슨 대수가 있을까라는 생각 보다는 바로 이러한 사유들이 모인 것이 진정한 역사와 그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이다는 것을 보여는 주는 의미있는 사례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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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 콜럼버스 이후 정복과 저항의 아메리카 원주민 500년사
로널드 라이트 지음, 안병국 옮김 / 이론과실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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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학자들이나 일반인들에게 1492년 의미있는 해로 기억되고 있다.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 아메리카(물론 콜럼버스 자신은 죽을때까지 '인도'인줄 알았지만)를 발견했던 해로 이를 기점으로 세계사는 커다란 변혁을 거치게 된다. 콜럼버스이 행보가 왜 세계사적으로 거대한 변혁을 가져오게 됬느냐 하면 이후 유럽대륙은 꿈과 허영에 부푼 포식자들의 의욕을 돋구면서 신대륙 아메리카라는 새로운 먹이감을 향해 끊없는 질주가 성행되었고 우리가 다 주지하고 있듯이 세계사는 신대륙 발견(이 '발견'이라는 표현 역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을 기점으로 상상도 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현대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유럽세력의 신대륙 접령은 세계사에서 서구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였고 영향력 또한 더불어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1492년을 동서양 어디를 막론하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에 대한 그 어떠한 이의를 제기치 않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 자체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일까? 발견이라는 용어 자체가 가져오는 의미나 그에 함축되어 있는 메타포는 어찌보면 유럽세력의 자기 합리화내지는 정당화의 다른 표현은 아닐까 콜롬버스 이전에 몇차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인 세력들이 존재했고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스테카(아스텍),마야,잉카라는 제국과 체로키나 이로쿼이라는 연방체 형식의 국가 엄연히 존재하여 아메리카 대륙 자체를 지배하고 있었는데도 우리는 이에 대한 아무런 비판 없이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을 서스럼없이 사용하는 데 익숙해 져있다. 그리고 기존의 세계사 서적들이 철저하게 기술하고 있는 방식 역시 '신대륙의 발견'과 프란시스코 피사로 페드로 데 알바라도 에르난 코르테스(반면에 잉카제국의 황제 와이나 카팍,아스테카 황제인 목테수마, 망쿠 잉카 유팡키,앉은 소,세쿼이아등은 낯설기만 할 뿐이다) 등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과정의 무용담과 기존 미개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쾌거에 대한 찬사로 점철된 세계사를 접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세계사 기술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과 관련된 세계사의 기술은 정말 제대로된 것 일까 정말 '발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무리수가 없으며 유럽의 탐험가들의 활약상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 것이며, 북아메리카에서 속칭 토종인 인디언들이 자행했던 잔학행위가 정말로 존재했으며 사실이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로널드 라이트의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기존의 세계사에 제시했던 관점을 180도 뒤집는 담론을 담고 있는 한마디로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내용들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등을 위시한 서구에서 보면 상당히 불편하고 위험스러운 담론들이라 여겨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가져오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저자는 남북아메리카 전반에 걸쳐 존재했던 문명세계인 아스테카,마야,잉카,체로키,이로쿼이 5개집단의 흥망성쇄를 통해서 콜롬버스이 신대륙 발견이 얼마나 잘못된 표현이며 그동안 서구인들이 서술한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증을 들어 새로운 시각(정확하게 표현하면 원래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이들 5개 집단의 시각)으로 아메리카史를 재정립하고 있는 정말 보기드문 명저이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에 절어 있는 오만방자한 서구중심적인 시각에 반기를 제대로 든 역자이기도 하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가 출간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사의 진보라는 개념은 문명인인 서구인들이 나머지 절반의 미개인들의 개화시켜고 보살펴 세계사를 끌어왔다는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이에 대한 반증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런 패러다임을 받아 들였다. 하지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종의 우월성이나 문명의 진보가 아닌 생태지리학적 이유로 인해 세계의 문명 편차가 존재할 뿐이라는 가설을 발표했고 이러한 가설은 이제 거의 정설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동안 서구세력에 짓눌려 있던 세력들이 독립과 눈부신 발전 그 자체가 이런 말도 안되는 말들을 쏙 들어가게 했다. 그러나 아직도 아메리카를 바라보는 서구의 시각은 그 옛날의 그들이 울겨 먹던 버전 그 자체로 존재하고 근현대에 와서야 제대로 대접 받았던 세력들 역시 대리만족이라는 요상한 심리로 아메리카를 바라 보고 있다.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고... 그 만큼 아메리카 역사의 진실은 진실이고픈 측만의 역사였던 것이다. 

 

이번 책에서 눈여겨볼민한 것은 그동안 정직함의 대명사로 위인전에서 까지 알려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실상이다. 사실 그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과의 수 많은 약속을 헌신짝 벋어 던지듯 저버린 대표적인 인물이었다는 점과 지금 미국의 국가조직 형태인 연방제는 다름 아닌 이로쿼이연방을 모태로 벤치마킹한 사실 그리고 이러한 벤치마킹을 마치 자신들이 처음 고안한 것처럼 포장했다는 점이다. 또한 잉카와 이로쿼이 연방은 우리네와 상당히 흡사한 방식 및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단고기에서 언급되어진바 있지만 신라시대 화백제도를 연상케하는 5개부족 만장일치 제도와 품앗이 내지는 향약과 유사한 농촌 공동체 조직인 아이유 그리고 번역상의 유사성이겠지만 한울님이라는 제천의식은 많은 공감대를 나누게 하기도 한다.


그만큼 서구인들이 바라보았던(그리고 그렇게 생각했던) 미개하고 발전되지 못한 민족이 아니었음을 그들 스스로가 시인하는 셈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는 그동안의 굴곡을 거치면서 대부분이 자기 대륙의 주인들이 제자리를 찾아갔지만 유독 아메리카 대륙만이 이방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형국이다. 주객이 전도되어 180도 다른 역사를 서술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대륙의 주인인 그들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해왔던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이제와서 새삼 이러한 구도를 뒤집을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단지 주인이 못나고 능력이 미천해서 자신들의 땅을 빼앗겼다는 식의 오명에서는 벗어나야하지 않을까라는 의도에서 제대로된 아메리카 역사를 제단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기존의 세계사 상식을 뒤집는 획기적인 서술들이 산재해 있어 다소 의아하고 생뚱맞게 다가올 수 도 있겠지만 바로 이점이 그동안 너무나 우리식으로만 역사를 제단했다는 잘못된 반증을 표현하는 것일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아메리카 역사는 그야말로 '신대륙 발견'이라는 화려하고 조명받는 일대의 사건이 아니라 생존권과 더불어 역사의 흔적을 지우는 기막힌 사건이었음을 지금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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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주실록 - 화려한 이름 아래 가려진 공주들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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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이었던 <조선왕비실록>는 그동안 조선시대 역사를 접하는 일반 독자 대중들에게 군주 즉 왕이 아닌 또 다른 시각에서 조선시대를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역사의 서술은 왕주국가인 경우 대게 아니 필연적으로 왕을 중심으로 서술될 수 밖에 없고 최고 권력자인 왕과 그 주변 지배층을 위주로 기술되어 왔고, 현대의 독자들 역시 이러한 역사서술에 친숙해 질 수 밖에 없는 구조 였다. 그러다 보니 남성중심의 사관으로 역사를 통찰하게 됨으로써 역사의 한 축이었던 여성에 대한 인지부족이라는 또 다른 병폐를 낳게 되었다. 어찌보면 그동안 우리는 반쪽짜리 역사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각에서 <조선왕비실록>은 궁중궁궐속에서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왕비들의 삶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또 다른 역사보기에 흥미를 배가 시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번 <조선공주실록>은 이런 연장선에서 왕, 왕비가 아닌 그들의 딸들이었던 공주와 옹주들의 삶을 통해서 조선시대를 한번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태종의 딸이었던 정선공주에서 조선의 마지막 옹주였던 덕혜옹주에 이르기까지 7명의 공주/옹주들의 삶을 당시대와 연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시대적으로도 조선의 개국초기인 태종대와 세종조를 거치면서 기틀을 잡았지만 수양대군의 쿠테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을 거슬린 시기인 문종대 부터 세조조, 조선 최대환란기인 선조와 광해군, 인조, 효종조,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영,정조시대 그리고 종말 맞이한 고종,순종대등 조선사 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시대와 맞물려 그 시대의 대표적인 공주와 옹주들의 삶이 당시대 역사과 어떻게 관련되고 그리고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어 공주 개개인들의 개인사에 집중된 것 같지만 실상 역사전반을 아우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왕실 의례와 궁중생활 전문가 답게 저자는 공주와 옹주들의 출산에서 부터 혼인에 이르기까지의 궁중의례 전문지식을 일반독자층에게 알게 쉽게 설명하고 있어 새로운 지식의 확장의 장으로도 다가온다. 또한 그동안 남성중심의 역사에서 다루어 지지 않았던 각종 비사와 어리니,계향,애순등 공주들 유모나 궁녀들의 실명과 그들의 막후 역활등 소소한듯 부분들이 역사에서 잊혀졌던 개인들(소외 되었던 여성들)의 무대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한층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또한 왕비나 세자빈의 간택에 익숙해 있던 독자들에게 사위인 부마의 간택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조의 딸인 효명옹주를 다루는 장에서 인조반정의 명분을 마치 광해군이 후궁격인 김개시의 치맛폭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서술이 눈에 거슬린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은 연산군의 치세와 더불어 도매값으로 인지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신중한 서술이 아쉽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공주 개개인들의 삶을 당시를 전후한 시대적인 고찰을 통해서 역사전반과 같이 고찰할 수 있어 독자들에게 역사적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다는 점에선 높이 평가된다. 그동안 왕실의례나 궁중생활에 문외했던 독자들에게 조선왕실과 관련된 또 다른 목마름을 풀어 주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쉬우면서 세세한 설명들이 독자들 뇌리에 각인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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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그녀들의 내밀한 역사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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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TV드라마 <대장금> 이나 <동이>를 통해서 궁궐에 사는 여성들의 모습이 다소 진취적이면서 화려하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게 됨과 동시에 그네들이 마치 역사의 주인공처럼 다루지는 것을 본다. 또한 무수리에서 왕의 생모로 탈바꿈한 숙빈최씨, 일개 궁녀의 신분에서 왕후의 자리까지 올라간 희빈장씨, 왕과 거의 다름없는 수렴청정을 했던 세조비 정희왕후윤씨와 정조비 문정왕후윤씨등 그야말로 여인천하같은 인상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들의 역활은 드라마상의 스포라이트만큼 결코 화려하지도 주목받지도 못했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조선시대 역사를 다루어왔지만 거의 통사나 사건중심의 역사통찰이 주를 이루었고 더욱이 남성중심의 역사 고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이나 이수광의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을 통해서 조선 왕비들의 삶을 대략적으로나마 고찰했던 역사서가 나와서 일반독자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역시 왕비라는 상징성에 국한되어 있어 구중궁궐속에 평생을 살아야했던 수 많은 여인들의 삶을 재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역시 사실이다.

 

이번 김종성의 <왕의 여자>는 조선시대 궁궐에서 거의 모든 삶을 살았던 왕의 여인들인 왕비, 후궁, 그리고 궁녀들의 삶을 재조명해 본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먹의사슬의 가장 하위층에 속했던 궁녀들의 삶과 애환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 되었다고 보인다. 물론 그동안 남성중심적인 역사서에 비해 여성들을 다루었던 서적들이 작았지만 그나마 왕비나 후궁과 관련하여 일반독자들에게 선보였던 적은 간혹 있었지만 궁녀들을 다루었던 경우는 아마도 없었으리라 여겨질 정도로 구중궁궐의 삶속에 필수적이었던 그네들은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는 돋보인다.

 

어린 나이에 입궐하여 죽음마저도 마음대로 궐내에서 생을 마감할 수 없었던 그녀들은 어찌보면 조선 5백년 역사 궁궐의 안방 마님이나 마찬가지의 역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왕을 비롯한 권력층의 사대부층이나 역사의 조명을 받았던 왕비나 후궁보다 온 몸으로 조선의 역사를 지탱해 왔던 것이다. 비록 현대 우리가 각종 매체로 부터 인지된 화려한 삶이 아닌 치열한 생존의 역사를 살아왔지만 궁궐의 움직이는 실질적인 역활을 해왔던 것이다. 전반적으로 <왕의 여자>는 궁녀을 비롯한 왕의 지근에서 생을 살았던 여인들의 삶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또 다른 역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무수리,항아,나인,상궁등 그동안 잘못 알려진 궁녀들의 위계질서나 용어의 정리 그리고 그녀들이 맞았던 업무에 대한 이해등 궁녀와 관련된 많은 의문점을 해소해 주고 있고 숙종제위시 '후궁은 왕후가 될 수 없다'는 법이 제정된 동기가 단순하게 희빈장씨의 개인적인 사건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점등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는 팁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눈에 거슬리는 부분은 역사서라는 입장에서 오탈자나 각종 도표상의 표기들에 오류가 제법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혼란케 하고 있다는 점은 필히 다시한번 제고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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