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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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개국과 동시에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한세기를 보냈습니다. 15세기 그 화려했던 시기의 중심에는 태종과 세종이라는 거출한 두 군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입니다. 자 이렇게 초창기부터 화려하게 불꽃을 태웠던 군주국가는 세계사를 통틀어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조선은 그 첫발자국이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이면에는 언제 터지질 모르는 폭탄이 잠재해 있었고 그 폭탄은 마침내 다음 세기인 16세기에 가서 사정없이 터져 버립니다. 그 폭탄은 『성리학』이라는 고고한 이름으로 그 자체가 폭탄이지도 모른체 조선을 강타하게 됩니다.

 

           초장의 출발부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조선왕조 개국사상 궁궐에서 태어나 세자로 간택된 두번째 왕인 연산군, 왕실의 총애와 기대감으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아버지 성종과 폐비 윤씨 그리고 할머니 인수대비 한씨, 공신과 기존세력들인 훈구파와 이에 견제세력으로 성종이 히든카드로 키웠던 사림파 이렇게 연산군은 외우내환이라고 할 정도로 주변환경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불우한 군주의 길로 가게 되고 결국 조선역사상 최초로 폐위되는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 등장한 중종, 비록 왕이 되고자하는 갈망했던 후대의 인조와는 달리 자신의 의사와 반하여 용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16세기 선조와 더불어 가장 오래기간을 용상에 앉아있어지만 결국 16세기 조선의 폭탄놀음에 일등공신 역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역사상 인수대비에 버금갈정도로 대가 센 여인이 등장하여 다시한번 조선의 생명줄을 뒤흔들게 되면서 조선은 성릭학이라는 미명아래 사화로 만싱창이 일보직전까지 내몰리게 됩니다.

 

           결국 16세기의 정점을 찍은 인물을 선조라고 봐도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앞대의 군주들이 그나마 재기할수 있을정도의 여력을 남겨놨다면 이 양반은 한방에 조선을 그로키상태로 내몰죠. 망명까지 불사했던 조선의 군주 후대 인조와 더불어 이 나라를 말아먹을뻔 했던 군주이고 그 재위기간도 정말 길게 용상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나마 몇몇 제정신이었던 신하들과 백성들의 도움으로 지옥의 문턱일보직전에서 구제되었죠. 성리학의 긍정적인 면이라면 가장 크게 작용했던 위기탈출상황이 아니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후대에 의적 (아마도 그 당시 서민층들 사이에는 분명히 의적이라고 불렸을 테죠) 이라 불린 임꺽정에 대한 역사적 시각이 참신하게 수록되어있습니다. 명종대(참고로 그의 모후인 문정왕후 윤씨가 나라를 쥐락펴락했습니다) 발생했던 도적의 무리에 대한 실록과 야사를 근거로 왜 이런형상이 발생했으며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땠는가에 대한 시각이 나오는데요 이부분에서 특히 주목할 수 있는것은 『성리학 유토피아』라는 대전제와 병행해서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왕과 왕실, 관료와 이들의 모집단인 사족세력이 임꺽정무리를 바라보고 생각했던 부분이 자신들의 커다란 틀인 성리학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역시 이번에도 임꺽정을 기화로 세계각지에서 출현했던 역사속의 도적이나 의적에 대한 리뷰가 곁들어져 있다는 점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네요.

 

          자 그럼 여기서 왜 부제를 『성리학 유토피아』 라고 했을까? 한번즘은 생각해볼만 한데요. 흔히들 16세기하면 조선의 근간을 뒤흔든 미증유의 사건인 임진왜란을 가장 먼저 떨올리고 임진왜란이후 조선사회의 변화에 대한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지만 이번에 보는 시각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 대한 성리학이라는 사유가 얼마나 지대했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는가에 대해서 바로 보는 논저가 깊습니다. 대게의 경우 임지왜란같은 전쟁을 겪고 나면 거의 멸망의 길을 걷게 되지만 조선은 그대로 그 명목을 이어갑니다. 다음 세기 다시한번 양대호란을 통해 전 국토가 초토화되는 위기에 봉착해도 오뚜기처럼 재기하여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데 그 가장 소중한 원동력이 바로 성리학에 있다는 논거중에 하나입니다. 전혀 틀린 논거는 아니죠. 사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리학이라는 사유가 왕과 관료 및 사족의 마지막 끝이었고 사실 이러한 명분이 조선을 지탱했던거나 마찬가지 이니까요. 여기서 우리는 성리학이 한반도내로 유입된 배경과 시기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고려말에 도입된 성리학의 주된 목적은 친원계를 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체제유지의 교학으로 인지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조선이 개국하고 훈구파가 날뛰던 시기까지 이어집니다. 사림들은 이들과 정쟁에서 게임이 될 수 없었고 현실또한 백전백패하면서 사화라는 선비죽이기 게임에서 완패를 하게 됩니다. 조광조가 『도학정치』라는 슬로건를 들고 나와서 나름 선방을 했지만 결국 이 벽을 넘지 못했죠. 조선의 4대 사화중 명종때 발생한 소윤과 대윤과의 정쟁을 빼면 이러한 사림들의 슬로건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지만 명종과 선조대를 오면서 일대 변혁이 일기 시작합니다. 성리학을 체제의 교학이 아닌 일생일대 절대적인 관념으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는 캐치프레이즈를 찾아내는 거죠. 이 중심에 익히 알려져 있는 이황과 기대승이라는 걸출한 이미지 메이커가 있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게 되면서 성리학의 유토피아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죠. 임진왜란이라는 환란을 그나마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성리학의 힘이였던 것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요.

 

           이황과 기대승의 편지는 그 동안 일반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이라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이언적의 『서망기당무극태극설후』란 생소한 글을 수록하고 해석해 놔서 이부분에 관심많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번에도 다양한 자료들과 화보들로 인해 16세기 조선을 이해할수있는 첨병 역활을 하고 있으며, 저 개인적으론 조선의 성리학 학맥을 한눈에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뒷부분 16세기의 창에서 언급된 청자와 백자에 관한 자료는 보기 드문 자료들로 당시 문화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참 그리고 연산군에 대한 서술에서 기존에 대한 오해중 숙모격인 박씨부인과의 간통설, 모후(법적)인 정현왕후를 핍박했고 배다른 동생 진성대군(훗날 중종)을 죽음의 궁지로 몰았다는 내용에 대해서 색다른 견해를 보여주고 있는점이 눈에 띄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오희문의 『쇄미록』이라는 일기를 통해서 많은 사대부 양반들이 상업활동을 통해서 부를 축척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당시대나 지금이나 지배세력의 딴지는 여전했던것 같네요. 

          이렇듯 이번 <16세기-성리학 유토피아> 역시 전편과 비교해서 전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독자들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다변화를 갖게 해줍니다. 여기에 그 동안 역사의 주연에 묻혀 조명받지 못했던 조연들의 활약상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어 한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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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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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과 그의 저작들을 대면하게 되면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합니다. 우선 우리시대 한국사에 대한 역사인식의 시각을 새롭게 조명해준다는 점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그 동안 식민사학과 노론계열에서 부터 뿌리 내려온 기득권 위주의 사학이 기반이 된 대한민국 강단사학계의 피동적이고 왜곡된 사관만을 강요받았던 독자들에겐 상당한 임팩트 같은 역활과 동시에 가슴속 울분이 씻겨 내려가는 속 쉬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역사 왜곡이 되었고 그것도 자국사에 대한 일말의 자부심마저 앗아가 버린 기존의 사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시각으로 우리 한국사를 새롭게 인식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러한 시각에는 몇몇 사초나 사실등을 기반으로 억지로 끼워맞추지식이 아니라 치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서 펼처가는 논거가 베이스로 깔려 있기에 더욱 더 그와 그의 저작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죠. 여기에 독자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막연하게 암기해야하고 지루하고 따분하게만 느껴졌던 역사라는 영역을 대중속으로 끌어왔다는 점이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 동안 수많은 저작을 집필하고 출간하면서 쟁점 내지는 왜곡되었던 한국사를 대중과 더불어 같이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함으로서 역사는 그저 지나간 세월의 기록물이 아니라 현 시대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는 점이 독자들로 많은 호응과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한국사에 대해서 이만큼 고뇌하고 연구하는 학자를 요즘같은 시대에 찾아보긴 힘들고 그런 학자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한국사를 좀더 알게되었다는 점이 행운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런 면에서 이번 저서 역시 독자들에게 신선함과 동시에 역사의 궁금점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왕과 나> 는 절대권력과 이를 떠받치고 있는 지근의 신하들을 살펴보면서 왕이라는 어떤 존재이면 왕을 보필하는 신하는 또한 어떤 존재였는가라는 왕과 신하들(혹은 왕의 지근거리에 있는 왕족들)의 관계성을 살펴볼 수 있는 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이라는 존재는 인력보다는 천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개념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왕권신수설이라던지 특히 동양권에서는 천자라는 개념으로 인력의 범주를 벗어나 있는 존재이기도 하죠. 하지만 실상은 이런 담론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되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부재에서 보듯이 '왕을 만든 사람들' 왕과 신하들과의 관계는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내지는 수레바퀴의 바퀴처럼 쌍생의 구족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이번 저서는 왕과 그를 둘러싼 킹메이커들의 삶과 옥좌에 올린 정당성 내지는 그 사유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저서에는 저간에 알려지지 않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하는데요, 사대부라는 특권층 출신이 아니면서 왕에 대한 충성심과 토목건축 방면의 전문 기술로 1품의 자리까지 올랐던 박자청이라는 인물은 일반 독자들에겐 생소한 인물입니다. 현존하고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물 태종은 박자청의 충심과 차별화된 기술력을 인정하고 그를 중용함으로써 수도 서울의 마스트플랜을 착실히 세워나가죠. 비록 기득권층의 탄핵과 비난등이 있었지만 왕은 보호자로서의 왕 나름대로의 역활을 하고 신하인 박자청은 자신 나름대로의 충심과 기술력으로 태종을 보필하는 쌍생의 관계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왕과 신하의 성공적인 사례를 말해주는 일례일 것입니다. 또한 김유신편에서 신라의 통일과정을 어느 한쪽의 시각으로 편향되게 보지 않고 있는 서술은 신라와 김유신에 대한 올바른 판단의 근거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굳이 폄하하여 평가할 필요성도 없지만 그렇다고 삼국통일이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확대해석하는 부분도 경계해할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 저자의 예리한 해석이 돋보였습니다.

 

           왕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지만 왕을 제대로 왕답게 만드는 것은 하늘이 아닌 사람임을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굳이 현대적인 시각에서 접목하더라도 최고권력자를 어떻게 보필해야 제대로된 틀이 정립되는지는 굳이 역사를 통해서 반면교사로 삼지 않더라도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저자는 9가지의 사례를 들어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사건과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왕과 신하의 관계성을 들어 거칠지만 한번쯤 통찰해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아니였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저서입니다. 군데 군데 그동안 한쪽의 시각으로 익숙해져있던 사관들의 새로운 해석도 눈여겨볼 만한 논거들이고요, 무엇보다 요즘의 시대와 비견해볼 수있는 시의적절한 사례들이라 독자들의 눈길이 사로잡는 기획이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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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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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수상이 일급전범이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는 발상이나 행동자체가 요즘에야 흔히들 뉴스를 통해서 접할수 있었만 불과 수십년전만 해도 그런 생각자체를 하지 못했죠. 일본국인 자체나 한반도 침탈과 태평양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국에서도 일본의 자숙적인 분위기를 극히 상식적인 측면에서 당연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파워를 발판으로 세계적인 입김이 세지면서 일본의 숨겨졌던 마각이 서서히 들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독도문제를 국제적인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유리한 카드로 사용할려고 하는 의도가 짙게 나타나고 있고, 중국과의 영토분쟁, 러시아와 영토분쟁 그야말로 역사의 추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의도를 만천하에 공표하고 나셨죠. 그러면 한번쯤 우리는 왜 이 족속들이 이런 망발을 금치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대내외적으로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일본이 이렇듯 국제적인 언론 플레이에서도 당당하게 밀어붙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국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교육(비록 그 놈의 역사가 사실과는 거리가 먼 픽션으로 점철되어 있더라도요) 을 통해서 일본자국민들에게 나름의 긍지감을 심어왔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뭐 중국도 이런 일본에 영향을 받아 뒤늦게 동북공정프로젝트라는 요상한 역사왜곡을 감행하고 자국민들의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는 실정이죠.  자 여기서 그러면 대한민국은 무엇을 했을까요라는 극히 상식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이 자리에서 얼마전까지 자국사를 대학입학시험에서 선택으로 실시했다느니 식민사관이 어찌되었다니 왈가불가할 성격은 아닙니다만 딱 한마디로 제단 한다면 정말 한국사다운 한국사를 접해보지 못했다는 점이 정답일 것입니다. 학계의 파벌이나 정치적인 색체와 무관하게 진정한 한국사를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시도도 미비했다는 점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면에서 작금의 역사관련 문제는 어쩌면 예견된 사태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점은 학계나 출판계 그리고 국가 전체의 잘못이었다는 점 통감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역사문제로 어수수선한 시점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역사서가 출간되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여집니다.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민음사의 한국통사 시리즈 <민음 한국사> 는 여러모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우선 그동안 출판계에서 <세계문학전집> 으로 문학쪽에는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민음사에서 한국사쪽에 비중을 둔 논픽션을 선보였다는 점에서부터 상당히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기획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그동안 출간된 논픽션은 많았지만 한국사를 집중적으로 다룬 기획물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더 여타 메이저급 출판사들의 독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듭니다.

 

        먼저 <민음 한국사> 의 스팩을 살펴보면 크게 두가지 측면으로 독특한 면을 볼 수 있는데 먼저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역사에 관심있는 독자들이라면 이번 시리즈의 연대기적 분류에서부터 눈길을 사로 잡다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게 상고사. 삼국시대(열국시대)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감정기 근현대등으로 한국사를 분류하는 것에 익숙해져있고 어찌보면 당연시 받아들였던 연대기적 분류를 과감히 탈피하여 100년이라는 단위의 세기로 단락하여 한국사를 조명했다는 부분에서도 뭔가 색다른 느낌의 한국사를 접한다는 느낌마저 가져오게 하나는 것입니다. 뭐 이런 연대기적 분류가 큰 의미가 있겠는가 할 수 도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20세기니 21세기이 하는  세기의 표현방식이 오히려 역사를 인식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란 모년 모월 모일에 아무개가(주로 대게의 역사가 군주위주이지만요) 무엇을 했다라는 식의 사건 서술이 대부분이죠. 그러다보니 역사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외울것 많고 어렵고 고리타분한 영역으로 비쳐지기가 쉽고 실제로 그 동안의 역사교육이라는 것이 이렇게 진행되었던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나마 최근들어 일부 소신있는 소장파 학자들의 테마성 역사평설이 선보이면서 역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지만요. 대부분의 역사서가 딱딱한 문체와 사건중심의 나열로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민음 한국사> 의 경우 일단 부담없이 책장을 술술 넘길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우선 정말 다양한 화보와 사진 도표등 비주얼이 여타의 한국사보다 훨씬 많다는 점에서 시각적인 부담감을 줄였습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부실하다는 느낌이 전혀 오지 않을 정도로 내용도 상당히 깊이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해당 연대기와 연관된 세계사 부분을 같이 언급하고 있어 한국사와 세계사를 동시에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거양득이라고 보여집니다. 왜 그 당시 우리는 이런 결정을 했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세계사와 연동하여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대게 한국사에 빠져들어 독서를 하게되면 단점이 시각자체가 한국사로 좁아 진다는 것인데요. 이점에 대해서도 새롭게 보완장치를 달아놓다는 것입니다. 해당세기 중에서 핵심 키워드만 몇가지 간추려 그 세기의 흐름을 세계사적 관점과 비교할 수 있도록 언급하고 있는 구조를 갖고 있어 한국사와 더불어 해당 세기의 세계사의 흐름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여타의 한국사 서술 방식과는 차별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키워드가 그 세기를 집중 조명 한다는 것을 파악하게 하기도 하구요. 예를들어 '1488년(성종 19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했다' 와 같은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왕조사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해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동케 하는배려도 눈에 띄인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이번 15세기 한국사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을 살표보겠습니다. -조선의 때이른 절정- 이라는 부제를 통해서 직감할 수 있듯이 조선의 경우는 다른 국가의 라이프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혼탁한 개국시기를 거쳐 중세에 가서 그 꽃을 피우는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라는 기본단위의 궤도라면 조선이라는 국가의 경우는 이미 개국초창기인 태종과 세종시대에 조선 500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개화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릭학이라는 개념이 군주와 사대부사이에서 큰 역활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태종이라는 강력한 왕권지향주의 군주가 출현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태조 이성계나 정종의 시기는 여타의 신생국가에 보여주는 권력누수의 현상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하지만 태종이라는 카리스마가 강한 군주가 출현하면서 조선은 급속도록 정권의 안정화를 가져오고 혼란의 시기를 최대한 절약하는 효과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태종의 후계자 선택(물론 많은 우여곡절이 있지만요) 은 한국사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안목을 보여주기 때문에 세종조의 르네상스가 꽃을 피울 계기를 마련해주는 발판역활을 했다는 점에서 저 개인적으로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고(조선 개국에도 많은 부분 활약을 하죠) 꽃을 만개하게 한 기틀을 마련한 군주라는 점에서 재조명을 받아야할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돋보이고 독창적인 소프트웨가 바로 이점인데요. 한국사 15세기를  시작하는  도입부에 명나라 정화의 대항해를 등장시킨 집필진의 의도가 색다르게 보인다는 것이죠. 이 부분은 뒤에 바로 이어지는 조선의 최초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탄생 배경과 지도속에 담겨진 신생국 조선의 국가관(사실 처음으로 이 지도에 대해서 상세한 내막과 배경을 알게되었습니다다만) 그리고 이후 세종조에 펼쳐지는 화려한 성장과 좀 더 멀리 눈을 돌리면 세조이후 하락세로 돌아선 조선의 실상을 보여주는 복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세계적인 석학인 니얼 퍼거슨은 자신의 저서에서 동양세계가 서양세계에 헤게모니를 빼앗긴 시점을 정화의 대항해 포기(혹은 중단)시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비단 명나라 뿐만 아니라 신생국 조선에도 적용될 수 있는 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점에 여타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는 다른 유니크한 구조라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한국사를 시작하면서 굳이 정화의 대항해와 그동안 단순하게 언급되었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부분을 상세하게 서술한 것이 향후 조선 500년의 역사의 변화를 서두에 깔아놓았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우리는 조선의 정치사를 언급하면서 훈구파 vs 사림파라는 구도를 보수와 진보,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등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인식해왔는데 이번 저서에서는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조선후기 족보의 일종인 <양공양문 외예보>를 통해서 훈구파와 사림파가 적대적인 관계내지는 권력의 헤게모니관계라기 보다는 같은 줄기에서 파생된 그들만의 리그일 확률이 오히려 더 높을 수 있다는 점을 검증하게 합니다. 이러한 논거는 그동안 때묻지 않는 사림이라는 그동안의 이미지를 새삼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번 저서의 또다른 볼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운 점은 집필진들은 예종의 갑작스런 죽음을 "인위적인 사고는 아니지만" 이라고 단정하면서도 예종사후 자을산군이 보위에 오르는 과정이 마치 정해진 수순에 의거하여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처럼 서술하고 있는 부분에서 이덕일이 주장하는 예종암살론을 오히려 더 신빙성있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차라리 이러이러한 설도 있지만 그래도 여러가지 정황상 인위적인 사고로는 보여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논거를 펼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은 향후 출간예정인 세기에서 한국사 논쟁거리와 비교해볼 수 있다는 흥미를 자아내기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점을 알고 읽게 되면 상당히 흥미있고 기대감을 갖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들어 전반적으로 이번 <민음 한국사> 시리즈를 개괄해서 살펴보면 상당히 유니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통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안 한국사는 솔직히 말해서 정치사에 그 비중이 높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뭐 역사란게 비단 한국사뿐아니라 세계사적인 관점에서도 정치사의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요. 이렇다 보니 독자들은 역사하면 상당히 고리타분한 영역으로 받아들수밖에 없기도 한 것이죠. 이런면에서 이번 민음 한국사 시리즈는 기존의 틀을 탈피한 독특한 구조의 한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단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생활 문화사, 사회사, 과학사등 그동안 군주중심의 정치사에서 외면당했던 일반 민중의 역사가 새롭게 수면위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저서라고 보여집니다(여기에 생생한 화보가 가독성과 이해도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가교역활을 하고 있다는 점). 그렇다고 정치사부분이 축소되었다거나 누락된 것이 아니라 정치사와 문화사가 절묘하게 융합되어 역사서를 읽는 가독성과 이해도를 높여 주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비주얼이 가미되어 있어 시너지 효과를 배가시킨다는 점이죠. 이런 부분들은 성인뿐아니라 온 가족이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제아무리 역사를 제대로 올바르게 고찰하고 논거하고 있어도 역사서라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은 일반 독자층에게는 버겁기 마련이고 통독을 하는데 상당한 인내와 진통을 가질수 밖에는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점에서 이번 <민음 한국사> 시리즈는 일반 독자층에게 상당한 반향을 가져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저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주얼하고 이해도를 높인 하드웨어적인 구성과 여타 한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의 소프트웨어가 절묘하게 믹싱되어 있어 정말 표지만봐도 그 내용이 절로 궁금해지고 본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가져오게 하네요. 읽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점이죠. 사족이지만 "정화의 대항해" 를 서두에 언급했던 집필진의 의도가 개방적이고 다원주의 사회에서 배타적이고 일원주의 사회로 흘러갔던 지난 역사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반영하고 향후 출간 예정인 시리즈의 큰 맥락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화의 대항해' 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에 담긴 개방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사고로 우리 한국사를 고찰하겠다는 집필진의 의도로 받아들여지고 싶고 향후 출간될 시리즈에 기대를 잔뜩 걸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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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황윤 지음, 손광산 그림 / 어드북스(한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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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신에 대해서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삼국통일의 선봉장(물론 이 부분은 아직도 왈가불가 하는 지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연 삼국통일이라는 표현이 맞는것일까에서 부터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정당성등) 으로 김춘추와 더불어 대업을 달성한 신라 최고의 장군, 그리고 자신의 애마를 벨정도로 확고한 신념의 사나이, 화랑을 대표하는 선주주자 이런 수식이 뒤따르면서 유년시절부터 위인전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죠. 그런데 이후 김유신의 발자취는 보이지 않습니다. 거의 사라져버렸다 할 정도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책속에는 보이질 않는것도 사실이죠. 그만큼 김유신이라는 인물은 피상적으로 남아있고 그에 대한 평가 역시 상당한 이견이 있다는 반증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녀시절 읽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도 고착화되어 제대로된 평가나 진위에 대해서 세월과 함께 묻혀 버린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황윤의 <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는 이런 의미에서 상당히 주목성 띄는 책인것 같습니다. 김유신의 일대기를 평전형식으로 주변 국(고구려,백제,당나라,일본) 과의 정치적 맥락 그리고 신라 내부의 사정등 다양한 사료를 기반으로 독자들에게 제대로된 김유신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것 같습니다.

 

   특히 고대사 관련 자료를 한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사실 그 동안 우리는 고대사에 대한 부분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는데(물론 이를 기록한 현존하는 사료들이 너무 빈약했다는 점도 일조를 했지만요) 이번 책을 통해서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한 우리측 사료와 중국측 사료, 그리고 일본사료등을 막간이라도 엿볼수 있고 이러한 사료들을 기반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나름대로 한번즘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단 그 포커스는 김유신과 신라에 맞추어져 있으나 한반도를 위시한 당시 삼국의 흥망성쇄에 대해서 계략적인 감을 잡는데는 크게 무리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화랑제도와 천관에 대한 상세한 논거와 무엇보다 골품제도에 대한 불교적 사유를 유효적절하게 서사하고 있는 점이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하네요.  

 

   한편으로 <삼국사기>, <삼국유사> 의 인용과 그 해석부분에서 약간의 형평성을 좀 더 고려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우리가 고대사를 건론하면서 이 두 역사서를 빼놓고 왈가불가 하기 힘들 정도로 현존하는 역사서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보니 그 기준점에 있기는 하지만 <삼국사기> 나 <삼국유사>의 경우 김부식이나 일연의 개인적인 시각이 상당히 많이 반영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죠. 신라의 정통성에 그 무게 중심을 두다보니 사실 고구려나 백제의 경우 들러리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역사서의 기준으로 당시 신라나 김유신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백제 의자왕 치세에 관한 사료들은 상당히 왜곡되었다는 점 그리고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해석자의 개인적인 시각에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설화같은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곡해의 소지가 있을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한정적인 사료활용이다 보니 다소 중복되는 부분으로 인해 분량만 늘어난 느낌을 받게 하는점도 있기 합니다.

 

   전체적으로 스토리텔링 기법(마치 한편의 역사소설을 대하는 것 같은 편안함과 긴장감을 느낄수도 있습니다)과 중간 중간 독자들의 휴식을 위한 배려(삽화) 등으로 인해 가독성을 상당히 높여 자칫 지루하고 중도 포기할 수 있을 내용들을 깔끔하게 마무리해 놓아 높은 호응이 예상됩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등 역사서등을 인용하면서도 현대적인 문체에 작가의 필체를 곁들여 놓아 이해력을 높였다는 장점이 보이네요. 물론 이 부분은 양날의 칼과 같은데요. 역사적 사료에 대한 신빙성과 개인시각이 가미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있을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했다고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가장 장점은 당시 시대상을 고구려, 백제, 신라, 당, 일본등 다방면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들을 한데 묶어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편적인 시각이 아닌 종합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사실 고대사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다니보니 해석상의 문제나 행간의 의미에 대해서 학자들의 개인적인 견해가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맥락에서 이해를 한다면 그렇게 눈에 거슬리는 부분은 많지 않은듯 합니다. 이번 책을 계기로 당신 고구려,백제,신라 삼국간의 치열했던 사투와 역사적 맥락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는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하네요. 김유신 개인가 신라의 삼국 부분 통일과정과 그 의미등은 아무래도 독자들 몫으로 남아야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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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평전 - 조선 중기 최고의 경세가이자 위대한 스승
한영우 지음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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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 이이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인물입니다. 현행 한국은행권 5천원 지폐의 표제 인물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 신사임당의 아들이고 뭐 이렇게 보니까 모자간에 지폐인물로 디자인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네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성리학의 대가이며 장원을 9번이나한 천재학자이자 관료로서 조선후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물론 이 부분은 본인의 의지와는 너무 멀리 가버렸지만요 후학들은 두고두고 율곡을 우려먹죠). 워낙 출중한 인물이다 보니 유년시절 위인전을 비롯한 각종 역사 교과서등에 단골인물로 등장하고 수 많은 아우라로 인해 후대인들에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사실 이러하다 보니 '율곡 이이' 에 대한 판단 자체를 하는 것이 난센스이고 성역정도로 굳어져 버린 것 역시 현실이고요, 하지만 이래서야 제대로된 한 인간의 본 모습과 평가에 대한 제대로된 판단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죠. 역사를 상고해 보는 가장 중요한 점이 지나간 일들을 반면교사로 보다 나은 현재와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고 고언을 구하기 위함이를 모르는 이가 없을테지만 정형화된 인물이나 사건등에서 올바른 인식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수도 없이 지켜보고 왔고 이래저래한 시행착오를 가져왔기에 '율곡 이이' 와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는 더욱 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율곡 이이 평전> 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상당히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율곡이라는 한 인간의 정수를 엿볼수 있는 편집으로 구성되어 있어 출생에서부터 가정환경, 그리고 성장하면서 느꼈던 고뇌들과 관료의 길을 걸으면서 군주에게 올리는 상소와 그의 정치관 마지막으로 학자로서의 자질과 철학등 율곡의 거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특히 그 동안 율곡 하면 자연히 떠올랐던 이미지들이 상당부분 새롭게 정립될 것으로 보여지구요. 무엇보다 그의 학문세계(제9장)를 일반독자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네요. 그 동안 퇴계와 더불어 조선성리학의 양대산맥을 이룬 이기이원론적 일원론에 대해서 상당히 난해 하게 접근했다면 이번 기회에 저자는 이 부분을 청소년도 알기 쉽게 부연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옵니다. 또한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향약> 에 대한 율곡의 헌신과 노력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네요. 이 중에서도 일반 서민대중을 위한 <사창계약속> 편은 조선의 현실에 맞춘 제도로 벤치마킹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획력과 추진력이 보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율곡의 안민에 기반을 둔 철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그 동안 위인으로 너무 한쪽면만을 바라보았던 시각을 다양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줍니다.

 

   평전이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저자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한쪽의 면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왕왕있고 한 위인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만 이번 율곡의 평전은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제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몇몇 부분에서는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율곡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 동안 다소 경직되고 딱딱한 정치, 철학적인 율곡을 보아왔다면 이번 평전을 통해선 부드럽고 대중지향적인 율곡을 보게 된다는 점이 가장 눈에띄입니다. 이번 평전에 가장 강점이 바로 이런 점진적 개혁의 일환인 '경장' 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만언봉사나 성학집요 그리고 항교와 교육과련 자료를 살펴보면서 요즘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이 아닌 율곡 자신의 철학이 담겨져 있는 경장내용들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뭐 이런 내용들이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 도 있지만 당시 철저한 신분제사회에서 이러한 발상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한 것이기 때문에 율곡의 경장내용과 철학을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기도 하죠. 이렇듯 각계 분야에서 쇠퇴기에 접어든 조선을 살리기 위한 그의 노력들이 한편으론 애잔하게 보일 정도로 율곡은 치열하게 경장을 부르짖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선조의 반응은 냉담했고 나머지 신하들은 동서로 나뉘어 결승매치를 준비하면서 결국 임란이라는 조선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율곡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모친인 신사임당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고가 화폐의 주인공이자 여류화가, 시인을 그야말로 '현모양처' 의 대명사로 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변함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 허균의 누나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추앙받고 있죠. 그래서 후대의 우리들은 이런 공식에 반기를 제시하지 않는 것이고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러면 정말 사임당이 '현모양처' 의 표본일까요? 여권신장등 여성계 입장에서라면 당연한 논거라고 보여지지만 실상 그 내막을 살펴보면 절대 '현모양처' 는 아니였다는 것이죠. 율곡이라는 대석학의 기본기를 완성했다는 측면에서 '현모' 의 상은 맞을지도 모르지만 '양처' 라는 개념은 100% 수용하기 힘들죠. 이 부분에 대해서 마치 저자는 현대의 시각으로 사임당의 친정살이를 정당화하는 것 같지만 당시 16세기 조선사회에서 이러한 사임당의 행태는 사대부가에서 받아 들이기 녹녹치 않는 행동이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견해가 아닐까 싶네요. 저자는 율곡의 부친 이원수의 무능함과 홀시어머니의 집안살림에 대한 무관심등의 '이중고의 고난' 으로 인한 사임당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지만 당시 시대상으로 사임당이 처한 환경보다 더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좌시해서는 아니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다름아닌 율곡 이후 후학 서인(향후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 되죠)들에 대한 평가에 대한 부분들이 못내 아쉽네요. 저자는 마치 율곡이라는 대석학의 명성을 그대로 후학(김장생,송시열등)이 이어받아 조선후기를 이끈 것 같은 뉘양스를 주고 있다는데 여긴 다소의 함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후기 극심한 붕당정치를 낳은 산파는 아니지만 서인들에 의해서 교조로 추앙받는 이가 다름아닌 율곡이라는 점에서 그의 정치,학문,안민등의 다양한 담론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식의 평가는 잘못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그들의 정치행태를 보면 땅속에 있는 율곡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자신의 가치관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말이죠) 사실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율곡과 이후의 서인들과의 연결고리를 굳이 하나의 몸통과 머리처럼 연관지을 이유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청렴결백한 선비의 표본인 율곡의 이미지가 오히려 후대의 정치판에 눈이 먼 후학들로 인해 퇴색될 우려가 클뿐더러 저자의 견해가 맞다면 율곡이 서인의 거두로서의 역활보다는 민생을 먼저챙긴 경세가의 모습으로 비쳐지지 위해서도 이러한 연결고리는 오히려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소지가 충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후학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율곡을 끌여들였다라는 평가가 맞는 것 아닐까 싶네요.

 

   전체적으로 그 동안 율곡에 대한 아우라 즉 뛰어난 정치가, 대석학, 효자등의 각인된 관념에서 이번 <율곡 이이 평전> 을 통해서 새로운 율곡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특색인 것 같네요. 향약이나 처가와 친가의 재산분배과정과 '만언봉사', '성학집요' 등을 통해서 점진적 개혁인 '경장' 과 '안민' 을 최우선시한 철학은 범인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위치했던 율곡을 세인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자리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후학과의 연결고리와 모친인 사임당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에 대한 비판이 부족하였지만 특별나게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은 발견할 수 없었던 것 같고 무게중심이 어느 정도 잡힌 평전으로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율곡 이이' 을 재해석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없는 것이지만 만약에 율곡이 좀더 생을 이어갔다면 동서 양진영으로 피튀기는 붕당정치나 임란같은 전란은 피할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게 할 정도로 그의 재능이 아쉽게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이번 평전을 통해서 율곡의 본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더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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