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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ㅣ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조선은 개국과 동시에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한세기를 보냈습니다. 15세기 그 화려했던 시기의 중심에는 태종과 세종이라는 거출한 두 군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입니다. 자 이렇게 초창기부터 화려하게 불꽃을 태웠던 군주국가는 세계사를 통틀어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조선은 그 첫발자국이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이면에는 언제 터지질 모르는 폭탄이 잠재해 있었고 그 폭탄은 마침내 다음 세기인 16세기에 가서 사정없이 터져 버립니다. 그 폭탄은 『성리학』이라는 고고한 이름으로 그 자체가 폭탄이지도 모른체 조선을 강타하게 됩니다.
초장의 출발부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조선왕조 개국사상 궁궐에서 태어나 세자로 간택된 두번째 왕인 연산군, 왕실의 총애와 기대감으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아버지 성종과 폐비 윤씨 그리고 할머니 인수대비 한씨, 공신과 기존세력들인 훈구파와 이에 견제세력으로 성종이 히든카드로 키웠던 사림파 이렇게 연산군은 외우내환이라고 할 정도로 주변환경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불우한 군주의 길로 가게 되고 결국 조선역사상 최초로 폐위되는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 등장한 중종, 비록 왕이 되고자하는 갈망했던 후대의 인조와는 달리 자신의 의사와 반하여 용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16세기 선조와 더불어 가장 오래기간을 용상에 앉아있어지만 결국 16세기 조선의 폭탄놀음에 일등공신 역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역사상 인수대비에 버금갈정도로 대가 센 여인이 등장하여 다시한번 조선의 생명줄을 뒤흔들게 되면서 조선은 성릭학이라는 미명아래 사화로 만싱창이 일보직전까지 내몰리게 됩니다.
결국 16세기의 정점을 찍은 인물을 선조라고 봐도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앞대의 군주들이 그나마 재기할수 있을정도의 여력을 남겨놨다면 이 양반은 한방에 조선을 그로키상태로 내몰죠. 망명까지 불사했던 조선의 군주 후대 인조와 더불어 이 나라를 말아먹을뻔 했던 군주이고 그 재위기간도 정말 길게 용상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나마 몇몇 제정신이었던 신하들과 백성들의 도움으로 지옥의 문턱일보직전에서 구제되었죠. 성리학의 긍정적인 면이라면 가장 크게 작용했던 위기탈출상황이 아니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후대에 의적 (아마도 그 당시 서민층들 사이에는 분명히 의적이라고 불렸을 테죠) 이라 불린 임꺽정에 대한 역사적 시각이 참신하게 수록되어있습니다. 명종대(참고로 그의 모후인 문정왕후 윤씨가 나라를 쥐락펴락했습니다) 발생했던 도적의 무리에 대한 실록과 야사를 근거로 왜 이런형상이 발생했으며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땠는가에 대한 시각이 나오는데요 이부분에서 특히 주목할 수 있는것은 『성리학 유토피아』라는 대전제와 병행해서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왕과 왕실, 관료와 이들의 모집단인 사족세력이 임꺽정무리를 바라보고 생각했던 부분이 자신들의 커다란 틀인 성리학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역시 이번에도 임꺽정을 기화로 세계각지에서 출현했던 역사속의 도적이나 의적에 대한 리뷰가 곁들어져 있다는 점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네요.
자 그럼 여기서 왜 부제를 『성리학 유토피아』 라고 했을까? 한번즘은 생각해볼만 한데요. 흔히들 16세기하면 조선의 근간을 뒤흔든 미증유의 사건인 임진왜란을 가장 먼저 떨올리고 임진왜란이후 조선사회의 변화에 대한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지만 이번에 보는 시각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 대한 성리학이라는 사유가 얼마나 지대했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는가에 대해서 바로 보는 논저가 깊습니다. 대게의 경우 임지왜란같은 전쟁을 겪고 나면 거의 멸망의 길을 걷게 되지만 조선은 그대로 그 명목을 이어갑니다. 다음 세기 다시한번 양대호란을 통해 전 국토가 초토화되는 위기에 봉착해도 오뚜기처럼 재기하여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데 그 가장 소중한 원동력이 바로 성리학에 있다는 논거중에 하나입니다. 전혀 틀린 논거는 아니죠. 사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리학이라는 사유가 왕과 관료 및 사족의 마지막 끝이었고 사실 이러한 명분이 조선을 지탱했던거나 마찬가지 이니까요. 여기서 우리는 성리학이 한반도내로 유입된 배경과 시기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고려말에 도입된 성리학의 주된 목적은 친원계를 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체제유지의 교학으로 인지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조선이 개국하고 훈구파가 날뛰던 시기까지 이어집니다. 사림들은 이들과 정쟁에서 게임이 될 수 없었고 현실또한 백전백패하면서 사화라는 선비죽이기 게임에서 완패를 하게 됩니다. 조광조가 『도학정치』라는 슬로건를 들고 나와서 나름 선방을 했지만 결국 이 벽을 넘지 못했죠. 조선의 4대 사화중 명종때 발생한 소윤과 대윤과의 정쟁을 빼면 이러한 사림들의 슬로건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지만 명종과 선조대를 오면서 일대 변혁이 일기 시작합니다. 성리학을 체제의 교학이 아닌 일생일대 절대적인 관념으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는 캐치프레이즈를 찾아내는 거죠. 이 중심에 익히 알려져 있는 이황과 기대승이라는 걸출한 이미지 메이커가 있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게 되면서 성리학의 유토피아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죠. 임진왜란이라는 환란을 그나마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성리학의 힘이였던 것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요.
이황과 기대승의 편지는 그 동안 일반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이라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이언적의 『서망기당무극태극설후』란 생소한 글을 수록하고 해석해 놔서 이부분에 관심많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번에도 다양한 자료들과 화보들로 인해 16세기 조선을 이해할수있는 첨병 역활을 하고 있으며, 저 개인적으론 조선의 성리학 학맥을 한눈에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뒷부분 16세기의 창에서 언급된 청자와 백자에 관한 자료는 보기 드문 자료들로 당시 문화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참 그리고 연산군에 대한 서술에서 기존에 대한 오해중 숙모격인 박씨부인과의 간통설, 모후(법적)인 정현왕후를 핍박했고 배다른 동생 진성대군(훗날 중종)을 죽음의 궁지로 몰았다는 내용에 대해서 색다른 견해를 보여주고 있는점이 눈에 띄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오희문의 『쇄미록』이라는 일기를 통해서 많은 사대부 양반들이 상업활동을 통해서 부를 축척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당시대나 지금이나 지배세력의 딴지는 여전했던것 같네요.
이렇듯 이번 <16세기-성리학 유토피아> 역시 전편과 비교해서 전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독자들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다변화를 갖게 해줍니다. 여기에 그 동안 역사의 주연에 묻혀 조명받지 못했던 조연들의 활약상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어 한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