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평전 - 조선 중기 최고의 경세가이자 위대한 스승
한영우 지음 / 민음사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율곡 이이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인물입니다. 현행 한국은행권 5천원 지폐의 표제 인물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 신사임당의 아들이고 뭐 이렇게 보니까 모자간에 지폐인물로 디자인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네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성리학의 대가이며 장원을 9번이나한 천재학자이자 관료로서 조선후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물론 이 부분은 본인의 의지와는 너무 멀리 가버렸지만요 후학들은 두고두고 율곡을 우려먹죠). 워낙 출중한 인물이다 보니 유년시절 위인전을 비롯한 각종 역사 교과서등에 단골인물로 등장하고 수 많은 아우라로 인해 후대인들에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사실 이러하다 보니 '율곡 이이' 에 대한 판단 자체를 하는 것이 난센스이고 성역정도로 굳어져 버린 것 역시 현실이고요, 하지만 이래서야 제대로된 한 인간의 본 모습과 평가에 대한 제대로된 판단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죠. 역사를 상고해 보는 가장 중요한 점이 지나간 일들을 반면교사로 보다 나은 현재와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고 고언을 구하기 위함이를 모르는 이가 없을테지만 정형화된 인물이나 사건등에서 올바른 인식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수도 없이 지켜보고 왔고 이래저래한 시행착오를 가져왔기에 '율곡 이이' 와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는 더욱 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율곡 이이 평전> 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상당히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율곡이라는 한 인간의 정수를 엿볼수 있는 편집으로 구성되어 있어 출생에서부터 가정환경, 그리고 성장하면서 느꼈던 고뇌들과 관료의 길을 걸으면서 군주에게 올리는 상소와 그의 정치관 마지막으로 학자로서의 자질과 철학등 율곡의 거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특히 그 동안 율곡 하면 자연히 떠올랐던 이미지들이 상당부분 새롭게 정립될 것으로 보여지구요. 무엇보다 그의 학문세계(제9장)를 일반독자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네요. 그 동안 퇴계와 더불어 조선성리학의 양대산맥을 이룬 이기이원론적 일원론에 대해서 상당히 난해 하게 접근했다면 이번 기회에 저자는 이 부분을 청소년도 알기 쉽게 부연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옵니다. 또한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향약> 에 대한 율곡의 헌신과 노력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네요. 이 중에서도 일반 서민대중을 위한 <사창계약속> 편은 조선의 현실에 맞춘 제도로 벤치마킹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획력과 추진력이 보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율곡의 안민에 기반을 둔 철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그 동안 위인으로 너무 한쪽면만을 바라보았던 시각을 다양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줍니다.

 

   평전이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저자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한쪽의 면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왕왕있고 한 위인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만 이번 율곡의 평전은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제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몇몇 부분에서는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율곡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 동안 다소 경직되고 딱딱한 정치, 철학적인 율곡을 보아왔다면 이번 평전을 통해선 부드럽고 대중지향적인 율곡을 보게 된다는 점이 가장 눈에띄입니다. 이번 평전에 가장 강점이 바로 이런 점진적 개혁의 일환인 '경장' 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만언봉사나 성학집요 그리고 항교와 교육과련 자료를 살펴보면서 요즘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이 아닌 율곡 자신의 철학이 담겨져 있는 경장내용들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뭐 이런 내용들이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 도 있지만 당시 철저한 신분제사회에서 이러한 발상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한 것이기 때문에 율곡의 경장내용과 철학을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기도 하죠. 이렇듯 각계 분야에서 쇠퇴기에 접어든 조선을 살리기 위한 그의 노력들이 한편으론 애잔하게 보일 정도로 율곡은 치열하게 경장을 부르짖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선조의 반응은 냉담했고 나머지 신하들은 동서로 나뉘어 결승매치를 준비하면서 결국 임란이라는 조선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율곡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모친인 신사임당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고가 화폐의 주인공이자 여류화가, 시인을 그야말로 '현모양처' 의 대명사로 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변함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 허균의 누나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추앙받고 있죠. 그래서 후대의 우리들은 이런 공식에 반기를 제시하지 않는 것이고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러면 정말 사임당이 '현모양처' 의 표본일까요? 여권신장등 여성계 입장에서라면 당연한 논거라고 보여지지만 실상 그 내막을 살펴보면 절대 '현모양처' 는 아니였다는 것이죠. 율곡이라는 대석학의 기본기를 완성했다는 측면에서 '현모' 의 상은 맞을지도 모르지만 '양처' 라는 개념은 100% 수용하기 힘들죠. 이 부분에 대해서 마치 저자는 현대의 시각으로 사임당의 친정살이를 정당화하는 것 같지만 당시 16세기 조선사회에서 이러한 사임당의 행태는 사대부가에서 받아 들이기 녹녹치 않는 행동이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견해가 아닐까 싶네요. 저자는 율곡의 부친 이원수의 무능함과 홀시어머니의 집안살림에 대한 무관심등의 '이중고의 고난' 으로 인한 사임당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지만 당시 시대상으로 사임당이 처한 환경보다 더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좌시해서는 아니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다름아닌 율곡 이후 후학 서인(향후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 되죠)들에 대한 평가에 대한 부분들이 못내 아쉽네요. 저자는 마치 율곡이라는 대석학의 명성을 그대로 후학(김장생,송시열등)이 이어받아 조선후기를 이끈 것 같은 뉘양스를 주고 있다는데 여긴 다소의 함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후기 극심한 붕당정치를 낳은 산파는 아니지만 서인들에 의해서 교조로 추앙받는 이가 다름아닌 율곡이라는 점에서 그의 정치,학문,안민등의 다양한 담론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식의 평가는 잘못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그들의 정치행태를 보면 땅속에 있는 율곡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자신의 가치관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말이죠) 사실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율곡과 이후의 서인들과의 연결고리를 굳이 하나의 몸통과 머리처럼 연관지을 이유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청렴결백한 선비의 표본인 율곡의 이미지가 오히려 후대의 정치판에 눈이 먼 후학들로 인해 퇴색될 우려가 클뿐더러 저자의 견해가 맞다면 율곡이 서인의 거두로서의 역활보다는 민생을 먼저챙긴 경세가의 모습으로 비쳐지지 위해서도 이러한 연결고리는 오히려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소지가 충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후학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율곡을 끌여들였다라는 평가가 맞는 것 아닐까 싶네요.

 

   전체적으로 그 동안 율곡에 대한 아우라 즉 뛰어난 정치가, 대석학, 효자등의 각인된 관념에서 이번 <율곡 이이 평전> 을 통해서 새로운 율곡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특색인 것 같네요. 향약이나 처가와 친가의 재산분배과정과 '만언봉사', '성학집요' 등을 통해서 점진적 개혁인 '경장' 과 '안민' 을 최우선시한 철학은 범인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위치했던 율곡을 세인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자리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후학과의 연결고리와 모친인 사임당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에 대한 비판이 부족하였지만 특별나게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은 발견할 수 없었던 것 같고 무게중심이 어느 정도 잡힌 평전으로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율곡 이이' 을 재해석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없는 것이지만 만약에 율곡이 좀더 생을 이어갔다면 동서 양진영으로 피튀기는 붕당정치나 임란같은 전란은 피할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게 할 정도로 그의 재능이 아쉽게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이번 평전을 통해서 율곡의 본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더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 같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