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희망이다>를 리뷰해주세요
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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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희망이다>이 책은 작금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좌우양측의 승인을 받지 못한 개혁이 가져왔던 부작용으로 인해 단순하게 실용주의와 경제살리기라는 화두를 전면에 내세운 MB정권을 탄생시킨지 1년하고 반정도가 흘러간 시점에서 우리의 실상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그야말로 지금의 시대를 표현하라면 혼돈의 시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의 가치조차도 보이지 않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가치관이 역전된 시대, 한마디로 희망이라는 단어가 사전적인 의미로만 국한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공안경찰의 부활, 과도한 시위억제, 소통의 부재는 결국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자아내고 어느것이 진정한 가치인지도 구분하기 힘든 그야말로 정체성의 부재인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저자들의 강연내용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단순한게 저자들의 면모를 보면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있는 상당히 불온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야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의 성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은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견지보다는 지금의 시대를 혼돈의 시대로 파악하고 바로 이 혼돈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가에 대한 담론들이 모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면 4.19, 5,18, 6.10이라는 굴직한 변혁의 시대가 바로 숨죽여 있던 일반민중들에게 의해서 촉발되었고 그 기화점으로 세상을 바꾸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최소한 그런 민중의 구심점하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속에서 오직 차별화된 개인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우리라는 개념은 살아진지 오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타인에 대한 그 어떠한 배려나 자비는 있을 수 없는 삶을 강요하는 사회적 구조가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 들여야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인 것이다. 청년실업, 경제대란, 가치관의 공동화가 가져오는 폐단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종착점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시대에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고 희망일까? 물론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항거하고 비판하여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해야하는 것 역시 국민의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임은 두말 할 필요성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들 역시 그동안 만연되어 왔던 신자본주의의 색체와 개인주의의 색깔부터 먼저 걷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로지 앞만 보고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질주 했던 삶에 대해서 그 근본적인 생각을 제고해야 만이 희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기만큼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없다는 것은 다 인지 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의 가치관을 한번쯤 뒤집어서 거꾸로 생각해 볼 필요성이 이제는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촌에 희망이 있다, 여성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 조직적인 대기업이 아닌 사회적 기업, 신자주의주의 시스템의 극복, 문화 콘텐츠의 다양성, 역사인식의 문제 등 저자들이 거론하고 있는 현문제와 극복방안은 한발자국만 뒤로 물러나 보게 되면 누구나 다 인지하고 있는 현실이고 대안으로 알고 있다. 단지 그에 대한 실천방안이 현 사회구조내에서 각 개인의 위치와 저울질 되면서 고뇌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책 한권으로 지금의 거대한 강요된 담론에 반기를 들수는 결코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번쯤은 지금의 담론에 거꾸로 생각하는 자생적인 힘을 가질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발전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듯이 시대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오기가 기폭제가 되어 거대한 담론을 형성해왔다는 것을 볼수 있듯이 작은 실천에서 부터 그 시작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거꾸로보는 관점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고민들의 흔적들이 결국 큰 강줄기를 만들듯이 지금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겠지만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서 결국 희망을 가져오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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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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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학자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세번째 이야기 <고뇌의 원근법>은 예술작품 특히 미술작품에 대한 시각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책이다. 특히 우리가 미술 작품을 보고 감상하면서 그 미술 작품에 대한 최우선의 가치를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에 작은 돌맹이 하나를 던져준다. 모든 예술 작품의 본연적인 가치이자 추구하는 이상은 다름아닌 미학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미학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최상의 그리고 마지막 도구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미학이 잘 구현된 작품을 보게 되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고 예술작품에 빠져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 본성중의 하나인 미에 대한 추구는 고대에는 신화를 창조하였고 문명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예술작품이라는 시각적인 보조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면 이런 미술작품은 미학이외 다른 가치는 없는 것일까? 미학만인 미술 작품이 추구하는 절대적인 가치일까? 이에 대해 필자는 에밀놀데,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카라바조등의 독일화가들을 통해서 미술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또 다른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또한 인상파의 거두인 고흐의 원근법을 통해서 고흐의 작품속에 들어있는 살아있는 고흐의 정신을 말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 화가들은 흔한 잣대인 미학으로 제단 한다면 잘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도 없고 더구나 예쁘다라는 표현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작품들이다. 오토 딕스를 비롯한 독일작가들의 작품은 세계양차대전의 한복판에서 느낀 폭력, 잔혹,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인간성상실에 대한 상처와 좌절로 표현되는 작품들이다. 나치즘이라는 거대한 파도속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한 인간의 심성을 고스란히 작품에 표현했다. 이들 보다 앞선시대를 살아갔던 고흐 역시 자신의 작품에서 자신과의 삶에 대한 투쟁과 극복 그리고 화해를 담은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가 고흐의 작품을 보면서 원근의 묘사나 색채의 선택, 터치의 질감등이 후대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래서 그의 작품이 후대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고흐는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이승을 떠났다. 그 이유는 아마도 미학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그자신의 표현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흐는 그림을 잘그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각을 그렸을 뿐이다.  

이처럼 미술작품은 미학을 전제로서만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한장의 사진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듯이 이들의 작품속에서 우리는 역사의 숨겨진 이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역사라는 거대한 담론은 아닐지라도 작가가 살아갔던 그 시대의 삶을 투영해 볼 수 있는 것 또한 미학 못지 않게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예술 또한 시대적 담론에 거역할 수 없지만 그런 담론을 온몸으로 거부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시대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에서 우리의 예술계는 아쉬운점이 많은것 역시 사실이다. 잘 그리고 예쁜그림만이 대접받는 풍조가 못내 아쉽다. 필자는 이들 화가들을 통해서 진정한 미학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고 있다.

이번 필자의 서양근대미술 기행을 통해서 기존의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미학이 고려되지 않는 작품은 우리들의 시각적인 감각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학만이 최고의 가치로 형성된 작품은 우리의 가슴속에 오래 기억되지 못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예술작품을 평가할때 어느 부분이 상위의 가치인지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릴수는 없는 것이지만 작가의 시대적인 담론과 삶에 대한 투영이 없는 작품은 단지 그림으로서의 가치만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눈으로 보는 그림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그림이 진정한 예술작품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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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리뷰해주세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
E. 벤저민 스키너 지음, 유강은 옮김 / 난장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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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奴隸)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격으로서의 권리와 자유 없이 주인의 지배하에 강제·무상으로 노동하며 또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인간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했거나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들중 유일하게 같은 종을 노예라는 개념으로 활용하는 종은 인간이라는 종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즉 이 말은 인간 만큼 잔인하고 비정한 종도 없다는 말고 일맥상통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노예제도에 대한 역사적인 기원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경의 개발과 청동무기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들은 평등 수렵경제에서 불평등 정복경제 시스템으로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다른 씨족 부족을 정복 하면서 전재노예라는 관행으로 시작된 노예제도는 그 이후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하나의 축으로 존재해 왔다. 이런 노예제도는 인류가 문명화되지 못했던 시기의 일이고 인류 역사에 극히 적은 부분을 차지 할 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랑과 평화, 자비를 주 모티브로 하는 기독교사회, 이슬람사회, 불교사회를 거치고 인본주의를 내세운 르네상스시대등 화려한 시대를 거치면서도 유독 인간 자신에 대한 족쇄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결국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접어 들면서 공식적으로 노예제도에 대한 진지한 인류의 고민이 이루어졌다. 너무나 잘 알다시피 링컨에 의해 공식적인 노예제도는 사라졌다. 흔히들 링컨이 노예해방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지만 사실 링컨은 노예제도를 남북전쟁에 이용했다는 견해도 상당하다. 그 만큼 마음속 깊은곳에서 논의된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여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 시점에서 노예라는 단어는 거의 모든이에게 잊혀진 과거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노예제도는 박물관에나 가야지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지금 이 지구상에 노예는 살아진 것인가? E.벤저민 스키너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잊고 있는 노예에 대한 현장 보고서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노예들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확대 재생산된 자본주의 시스템속에서 이러한 노예제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에서 활기차게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노예는 주로 강제, 무상노동에 촛점이 맟춰 있다면 현대의 노예는 이러한 노동이외에 성적인 강압까지 더 받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주력이 성인 노예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아동들이 주 타킷으로 변해있다. 그리고 삐툴어진 성욕의 충족대상으로 수많은 아동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결국 자본이라는 거대한 괴물앞에서 오늘 지금 이시간에도 세계의 곳곳에서 노예 사슬에 얽혀가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250여년전에 노예해방 당시에는 그래도 인간적인 연민의 정과 불의를 참지못하는 정의로움이 그마나 존재했다면 지금은 그런 감정은 아예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티의 아동 노예 매매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아동을 공급하는 인간이나 소비하는 인간이나 그 어떠한 자책감을 가지지 못하고 그저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인간성 상실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아동들이 미국 본토로 공수되어 가정도우미라는 미명하에 각종 노동에서 부터 성적인 확대까지 당하고 있다는 것은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한쪽에서는 이런 아동 노예제도를 근절시키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이러한 자금은 정권 유지로 흘러 들어가고 아동의 매매는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하할지도 모를 정도로 점조직으로 마치 암세포가 번져가듯이 사회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예라는 개념을 조금만 확대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그동안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수적으로만 따지면 가장 많은 노예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이라는 어마어마한 힘 앞에서 굴복하여 준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이처럼 지금의 우리는 오히려 과거의 노예해방 시절보다 더 악화된 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대외명분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이러한 명분조차 필요없는 오로지 자본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노예해방을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다들 살아가기 바쁘고 힘들다 라는 핑계하에 이제는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않을려고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상생의 길을 걷자고 하면 억지 논리로 보일 수 있겠만 최소한의 상대를 핍박이라도 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언제가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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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동양철학사 청소년을 위한 역사 교양 22
임선영 지음 / 두리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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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델레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흄, 칸트, 헤겔, 하이데거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양철학를 대표하는 이들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그동안 많은 자료나 책들을 통해서 읽혀져 왔던 이들이다. 철학을 입에 담을려면 이들의 이론을 모르고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사상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이들이다. 철학이나 사상을 논할 때 이들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으면 왠지 그 진지성이나 신빙성에서 흠집을 받게 마련일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이들이다.


그러면 공자, 맹자, 장자, 한비자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교양수준에서 대충을 알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왕충, 이지, 암베르카르, 혜강, 완적등을 거론하면 도통 이들이 무슨일을 했던 사람인가 하고 의야해 한다. 그리고 몰라도 되는것으로 치부하고 그게 정상이다고 생각한다.

근대화라는 물결이 동양세계에 밀어 닥치면서 동양은 많은 변화를 경험 했다. 근대화==과학화==기독화라는 논리에 의거하여 기존 동양의 유수한 사상들은 낡고 부패하고 비합리적인 사유로 낙인 찍히게 되고 너도 나도 할것없이 근대화의 정신적인 논리인 서양철학사상을 익히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양의 근대화는 긍정적인 요인을 준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당시 동양에서(지금도 진행중이다) 가장 절실한 점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서양열강의 동양침략은 바로 이런 논리에 의거하여 정당화 되었던 것이다. 동양의 입장에서도 서양보다 못한 시스템적인 문제로 인해 침탈 받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근대화는 동양세계를 180도 바꿔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화의 이면에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편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은 당초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기 위한 논거로 시작 되었지만 오히려 동양내에서 확대 재생산되어 식자층들에서 부터 일반인들에까지 당연시 받아졌던 것이다. 서양은 우수한 것이고 동양은 미개한 것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은 제도,법류,경제등 과 심지어 사상에 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양사상이나 철학을 연구는 제대로 이루지지 못하였고 그 평가 또한 절하되었던 것이다. 

이번< 청소년을 위한 동양철학>는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있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를 준다. 물론 이 책은 고대 종교와 신화에서 그 사상의 기원을 잡고 출발하여 동양사상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 공자시대인 제자백가시대와 인도의 불교철학,주자학과 양명학등을 다루고 있다. 또한 서양사상이 전래되면서 동양사상에 일대 변화를 주는 근대의 철학자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물론 동양철학은 그 깊이나 내용면에서 서양철학과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그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이 책의 근본적인 취지에
맞추어 핵심적인 내용들만 수록하고 있다. 물론 이 책 한권을 통해서 동양철학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이러한 리뷰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동양사상의 근간을 심어주기에는 안성맞춤인 책이다.

서양철학의 기반 역시 신화에서 시작하듯이 동양철학 역시 신화에서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만 동양은 서양에 비해 일찍이 사유의 무게 중심을 신에서 인간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모든 사유의 중심을 인간에 초점을 두고 인간사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는 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의 공격 목표가 된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철학이나 사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점에서 그 우수성은 대단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동양철학이 서양철학보다 우수 하다는 것을 인지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동서양철학의 균형있는 사고를 가지는데는 바람직해 보이는 책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편협되지 않는 사고를 위해서 동서양철학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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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리뷰해주세요.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권진.이화정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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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말해 주듯이 이 책은 뉴욕에서 온 파란눈의 영어 강사 로버트 프리먼 그리고 도쿄에서 온 아티스트 곤도 유카코를 비롯한 이방인들이 바라 보는 서울의 이야기이다. 서울이란 도시의 역사는 600여년전의 조선 창업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그리고 현재 한반도의 중심이다. 지리적뿐만 아니라 정치,문화,경제등의 거의 모든면에서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런 서울을 자국민의 눈이 아닌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 이야기 정말 흥미롭다.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그네들이 본 서울은 과연 어떻게 다가 오는 것일까?

뉴욕에서 무작정 아무런 특별한 계획없이 서울로 온 로버트 프리먼, 싸이월드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에밀 고, 일본에서 추상화를 주로 그렸던 화가이자 아티스트 곤도 유카코, 재현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로 친숙한 얼굴인 젠 아이비, 대학교수이자 아시아 영상문화 연구소 소장등을 역임하고 있는 얼 잭슨 주니어등 7인의 이방인이 바라 보고 생활하면서 느끼는 서울 이야기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연신내 재래시장과 달동네같은 무질서한 주택가에 서울의 의미를 찾고 우리가 외면했던 색에 대해서 강렬한 감동을 느끼는 이들의 서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과는 상당한 이질감마저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서울의 모습은 그동안 개발과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우리가 철절히 외면해왔던 우리들의 참 모습 중 하나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우리도 알고 있듯이 마천루같은 고층빌딩과 IT산업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지만 다른 이면에 일종의 고유 전통이라는 신구가 함께 자리 잡고 있는 몇안되는 도시중에 하나이다. 그만큼 서울이라는 도시는 근대와 중세가 함께 살아숨쉬고 있는 곳이다. 또한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포스터모던과 전통 문화가 함께 믹스되어 있는 복잡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서울의 겉모습과 서울속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적인 콘텐츠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화두아래 그 개발과 발전으로 자리매김했고 대신했던것이 사실이다. 또한 굳이 이러한 경제논리를 배제하고 서울의 참 모습을 보지 않을려고 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와는 상당한 문화적 차이를 가진 이들의 눈에 비친 서울에서 새삼 우리의 진정한 서울을 보게 된다. 


이들의 눈으로 보는 서울을 통해서 과연 그동안 우리가 알아 왔던 서울의 참 모습을 투영시켜준다. 진정한 문화의 모습은 그 국적을 넘어서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에게는 정확히 보이는가보다 그러면에서 우리의 눈은 그동안 너무 화려하고 모습들만 찾아다녔던것은 아닌가 하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몰랐던 서울의 살아있는 이야기 이들의 눈으로 보는 서울은 여전히 생기넘치고 아름다운 도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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