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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
E. 벤저민 스키너 지음, 유강은 옮김 / 난장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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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노예(奴隸)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격으로서의 권리와 자유 없이 주인의 지배하에 강제·무상으로 노동하며 또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인간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했거나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들중 유일하게 같은 종을 노예라는 개념으로 활용하는 종은 인간이라는 종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즉 이 말은 인간 만큼 잔인하고 비정한 종도 없다는 말고 일맥상통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노예제도에 대한 역사적인 기원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경의 개발과 청동무기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들은 평등 수렵경제에서 불평등 정복경제 시스템으로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다른 씨족 부족을 정복 하면서 전재노예라는 관행으로 시작된 노예제도는 그 이후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하나의 축으로 존재해 왔다. 이런 노예제도는 인류가 문명화되지 못했던 시기의 일이고 인류 역사에 극히 적은 부분을 차지 할 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랑과 평화, 자비를 주 모티브로 하는 기독교사회, 이슬람사회, 불교사회를 거치고 인본주의를 내세운 르네상스시대등 화려한 시대를 거치면서도 유독 인간 자신에 대한 족쇄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결국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접어 들면서 공식적으로 노예제도에 대한 진지한 인류의 고민이 이루어졌다. 너무나 잘 알다시피 링컨에 의해 공식적인 노예제도는 사라졌다. 흔히들 링컨이 노예해방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지만 사실 링컨은 노예제도를 남북전쟁에 이용했다는 견해도 상당하다. 그 만큼 마음속 깊은곳에서 논의된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여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 시점에서 노예라는 단어는 거의 모든이에게 잊혀진 과거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노예제도는 박물관에나 가야지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지금 이 지구상에 노예는 살아진 것인가? E.벤저민 스키너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잊고 있는 노예에 대한 현장 보고서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노예들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확대 재생산된 자본주의 시스템속에서 이러한 노예제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에서 활기차게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노예는 주로 강제, 무상노동에 촛점이 맟춰 있다면 현대의 노예는 이러한 노동이외에 성적인 강압까지 더 받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주력이 성인 노예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아동들이 주 타킷으로 변해있다. 그리고 삐툴어진 성욕의 충족대상으로 수많은 아동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결국 자본이라는 거대한 괴물앞에서 오늘 지금 이시간에도 세계의 곳곳에서 노예 사슬에 얽혀가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250여년전에 노예해방 당시에는 그래도 인간적인 연민의 정과 불의를 참지못하는 정의로움이 그마나 존재했다면 지금은 그런 감정은 아예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티의 아동 노예 매매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아동을 공급하는 인간이나 소비하는 인간이나 그 어떠한 자책감을 가지지 못하고 그저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인간성 상실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아동들이 미국 본토로 공수되어 가정도우미라는 미명하에 각종 노동에서 부터 성적인 확대까지 당하고 있다는 것은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한쪽에서는 이런 아동 노예제도를 근절시키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이러한 자금은 정권 유지로 흘러 들어가고 아동의 매매는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하할지도 모를 정도로 점조직으로 마치 암세포가 번져가듯이 사회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예라는 개념을 조금만 확대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그동안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수적으로만 따지면 가장 많은 노예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이라는 어마어마한 힘 앞에서 굴복하여 준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이처럼 지금의 우리는 오히려 과거의 노예해방 시절보다 더 악화된 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대외명분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이러한 명분조차 필요없는 오로지 자본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노예해방을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다들 살아가기 바쁘고 힘들다 라는 핑계하에 이제는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않을려고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상생의 길을 걷자고 하면 억지 논리로 보일 수 있겠만 최소한의 상대를 핍박이라도 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언제가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