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난생 처음으로 휴대폰을 갖게 된 것은 1999년도였다. 그때쯤 휴대폰 값이 많이 내려(그전에는 대당 100만원도 넘었다) 전 국민의 휴대폰 소지화가 가속화되었고, 지금은 아시다시피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부터 가정주부, 팔순 노인까지 온 가족이 휴대폰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 내가 뭐 그다지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살면서 휴대폰 만큼 빠르게 확산된 물건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휴대폰이 널리고 널렸으니 이것에 관계된 에피소드들도 몇 가지씩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아주 공포스런 일이 하나 있었으니 누군가를 뒤에서 씹는 문자를 실수로 그 욕 먹는 당사자에게 보내 버린 적이 있다. 수습하느라 고생 좀 했다.
 
스티븐 킹의 <셀>은 본인의 휴대폰 공포담과는 차원이 다른 무시무시한 전율과 긴장감을 안겨주는 특급 공포소설이다. 아마도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은 휴대폰이라는 현대 문명의 이기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가 공중을 가득 메우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맹목적인 고리가 되고 있는 현실에 일말의 공포감을 느꼈던 것 같다. 등장한 지 몇 년 만에 세상을 온통 뒤덮는 데 성공한 이 휴대폰이라는 물건에 대한 생리적인 혐오감과 더불어 60년대 유행했던 <새벽의 저주> 같은 좀비 영화, <나는 전설이다> 같은 좀비 소설을 결합함으로써 스티븐 킹은 고전적인 좀비 호러와 휴대폰이라는 최신 트렌드를 하나로 엮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역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솜씨다.
 
메인 주(스티븐 킹의 소설은 거의 항상 메인 주를 배경으로 하는 것 같다)의 만화가 지망생 클레이는 몇 년의 고생 끝에 마침내 보스턴의 유명 출판사에 작품을 팔게 된다. 클레이는 아내와는 별거 중이지만 사이가 나쁘지는 않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조니 보이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눈 앞에 찾아온 성공에 기뻐하며 보스턴에서 묵고 있던 호텔로 돌아오는 중인데, 갑자기 평화로운 공원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휴대폰 통화 중인 여자가 아이스크림 트럭 아저씨를 공격하며, 멀쩡한 신사가 개의 귀를 물어뜯는다. 자동차끼리 서로 부딪쳐 도로는 베이루트처럼 되어버렸으며, 창공을 날던 경비행기가 9.11 때처럼 빌딩으로 추락한다. 클레이는 식칼을 들고 날뛰는 사이코에게서 곁에 있던 톰이라는 남자를 구해주는데, 두 사람은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가를 추론하다, 사이코들이 모두 휴대폰으로 통화 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휴대폰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고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리는 전파가 퍼져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 클레이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메인 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클레이의 곁에는 톰과 자기 손으로 미친 엄마를 때려 눕히고 탈출한 십대 소녀 엘리스가 있다. 폰 사이코들이 활동하는 낮에는 빈 집에 숨어서 자고, 밤에는 수십 킬로미터를 행군하는 강행군을 펼치는 세 사람. 그러나 폰 사이코들은 맹수 같은 폭력성만을 보였던 초기 몇 일과는 달리 점점 집단 행동을 하고, 텔레파시 같은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하는데...클레이는 진화하는 폰 사이코에게서 살아남아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만약 아들을 만난다 해도 아들 역시 폰 사이코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클레이가 아들에게로 가까워질수록 독자의 심장 역시 거칠게 고동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인류를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도구가 휴대폰이라는 것은 부두교 주술이나 죽은 사람들이 공동묘지에서 단체로 깨어나는 옛날 좀비 책들보다는 훨씬 효과적인 설정이다. 전술했다시피 대부분 가지고 있기에 확산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고, 책에도 나오지만 마침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전부 미쳐 날뛰면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 빌어먹을 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멀쩡하던 사람도 2차로 폰 사이코로 변해버리는 거고. 작디 작은 휴대폰 하나가 온전히 좀비를 양산하는 공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셀>에서는 이 전파를 누가 쏘았는지에 대해서는 추측만 할뿐 시원스레 전모를 밝히지 않아 한층 더 궁금하게 만든다.
 
예전에 읽은 스티븐 킹의 작품 <애완동물 공동묘지>와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 중 '안개'라는 작품과도 느낌이 비슷한데, 세 작품이 모두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부정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유독 부자관계에 천착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셀>을 잡으면서 뭐야, 또 아버지와 아들이야, 하며 약간 실망하긴 했다. 그러나 그 뻔한 부자간의 사랑 이야기에 이렇게 또 가슴 저린 감동을 담아내는 능력을 보고 다시 한 번 작가에게 케이오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마치 두 번 연속 직구에 당하고, 세번째도 직구라는 걸 알면서도 완벽하게 제압당하는 미련한 타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주말 내내 <셀>을 읽으며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와 감동, 문학성과 오락성의 조화에서 완벽했던 다른 몇몇 걸작들에 비교하면 약간 떨어지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속도감 있는 진행과 아슬아슬한 탈출을 비롯해 재미만은 최고 수준이다. 현재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다른 스티븐 킹의 작품과는 달리 스펙터클한 장면들(대화재, 대폭발 등)이 많아 영화로도 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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