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감독
에비사와 야스히사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인간 세상의 무슨 일이든지간에 때가 중요한 법인데, 이 소설 <야구 감독>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나왔습니다.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선보이는 본격 야구소설인 이 작품이 나올 즈음해서 한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가 거의 동시에 개막을 하니 야구라면 밥보다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침을 튀기며 응원하는 팀 자랑에 여념이 없는 열혈 야구팬들은 소설과 실제 경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습니다.

저는 사실 일 년에 한 두번 정도 야구 구경을 가는 그렇게까지 야구팬이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대학교 다닐 때 야구선수가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한 번 썼다가 보기 좋게 낙방한 경험이 있어 경기의 박진감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야구를 어떻게 요리했나, 살펴보고 싶어 읽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손 두 발 다 들고 완전 항복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스포츠소설이구나, 하면서 완전 감탄했지요. 작가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해박한 야구 지식과 마치 지금 야구장 한복판에 있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간결하면서도 박력있는 문체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야구 감독>은 1979년에 나온 작품으로 제 나이와 동갑입니다. 그 시대에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 정도 완성도의 작품을 내다니 확실히 일본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저력은 넓고도 깊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승엽 선수가 맹활약하고 있는 지금도 그렇지만 1970년대에도 최강의 팀이자 모든 팀을 통틀어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쫓겨나다시피 떠난 3루수 히로오카 타쓰로는 최약체 앤젤스의 감독을 맡아 복수전에 나섭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외다리 타법의 홈런왕 왕정치, 재일교포이자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안타를 가장 많이 때렸던 장훈,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투수로 활약해 올드팬들은 잘 알고 계실 김일융 등이 한 팀에 있었던 당시 요미우리는 V9(9연속 우승)을 하는 등 설명이 필요없는 강팀입니다. 그런데 앤젤스 선수들은 경기 중에 코를 후비지 않나, 한 시합에 두세 번씩은 필수적으로 알을 까는 집중력 실종에 근성 제로의 낙오자들입니다. 이 한심한 팀을 한 사람의 야구 감독 히로오카가 어떻게 변모시키는가가 핵심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야구 팀에 관여하고 계시는 분들이 시뮬레이션 삼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시즌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악재를 다 경험하는 히로오카. 그는 이기려는 의지 자체가 없는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제대로 된 훈련법을 가르쳐주며, 때로는 윽박지르고 때로는 다독이며, 가끔은 경기의 세부 하나하나까지 간섭하고 가끔은 선수들을 완전히 믿고 재량을 주는 등 지혜롭고 현명한 방식으로 팀을 정상권으로 만들어갑니다. 눈치빠른 분들은 여기까지 읽고 아마 깨달으셨을 겁니다. 이 책이 아주 훌륭한 경영서일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예컨대 회사에서 부서장직을 맡은 분들이나 사장님들이 만약 이 책을 읽으면 비단 야구만이 아니라 어떻게 한 조직을 이끌어나가 성공할 수 있는가를 실제 현실에서의 상황과 접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똑같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얻어가려면 생각이 필요한 법입니다.

다수의 선수들이 실명으로 출현해(앤젤스 팀은 전원 허구지만, 감독 히로오카 타쓰로는 실존 인물로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명승부를 펼치는 이 소설은 야구를 잘 아는 사람에게는 물론 환상적인 재미를 주고, 저 같은 얼치기에게는 야구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은 히로오카의 팀 메이킹에 흥미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경기 자체의 두근거림을 느끼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이 점 주의하세요. 그리고 아무래도 옛날 작품이다 보니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간혹 나옵니다. 예컨대 앤젤스 구단주인 올림픽 건설회사 사장은 팀이 연이어 승리하자 기분이 좋아져 여비서 엉덩이를 만지는 장난을 치는데, 여비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1979년은 사장님들에겐 좋은 시절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사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성희롱이죠.

번역이 너무 직역투라 약간 아쉽고, 표지가 작품의 격에 맞게 좀더 고급스러우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작품 자체의 재미만은 요즘 나오는 웬만한 소설들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최고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보면서 야구란 단순한 공놀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승리를 향한 열정과 본래 이기적으로 태어난 인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화합의 차원에서 그리고 꿈을 향한 도전 정신을 충족시켜주는 야구는 아마도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선 가장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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