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1973년 8월 스톡홀름의 크레디트 은행에서 6일간에 걸친 인질극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서 인질들은 묘하게도 인질범들과 정서적으로 밀착되는 현상을 보였고, 인질범들이 체포된 후 오히려 그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범죄심리학자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74년 2월 4일 당시 19살의 퍼트리샤 허스트는 소총으로 무장한 좌익 과격파인 공생 해방군(Symbionese Liberation Army)에 의해 납치되었다. 퍼트리샤를 납치한 SLA는 거액의 몸값을 요구했다. 두 달 후 SLA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은행을 습격하여 현금 및 귀중품 등을 훔쳤는데 당시 은행 CCTV에 찍힌 영상에서 소총을 들고 은행 직원과 고객들을 협박하고 있었던 퍼트리샤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한 달 후 FBI가 이들의 근거지를 급습하여 6명의 SLA 단원을 사살하자, 도주한 퍼트리샤는 타니아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조직의 일원이 되었음을 밝힌다. 공공연하게 자신의 부모와 사회에 대한 반감을 담은 카세트테이프를 보내오기도 했다. 납치 사건이 벌어진 지 1년 반이 지난 후 퍼트리샤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퍼트리샤는 자신은 협박을 당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 역시 그녀가 세뇌당했다고 말했지만 배심원들은 그녀에게 징역 35년의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카터 대통령의 가석방 허가를 받았다. 이 실화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녀가 언론 재벌이자 백만장자의 상속녀가 아니었다면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 퍼트리샤가 이후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책도 쓰고 다큐멘터리도 제작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는 말에 왠지 씁쓸한 뒷맛이 전해진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말그대로 인질이 범인들에게 정서적으로 동화되어버리는 현상이다. 풍족한 집안에서 부족할 것없이 사랑을 받으며 자랐을 퍼트리샤가 SLA에 납치되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세뇌되었다기 보다 인간의 본성에 의해 그들에게 자신을 맡기려고 하는 심리상태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17일 동안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사건’을 조사해 보고서를 쓰는 임무를 맡은 두 여자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뒷면을 한번 파헤쳐보고 싶어하는 듯 하다. 30대 미국인 진 네베바와 10대 프랑스인 비올렌은 그 사건을 다룬 기사를 하나하나 스크랩하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퍼트리샤의 심리상태를 추측해본다. 이 사건은 세뇌를 당했는지, 아니면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었는지에 따라 사람들이 느낄 결말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었다면 기성사회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높다는 뜻일테니 말이다. 더구나 풍족하게 자란 백만장자 상속녀의 당당한 선택이었다면 그만큼 더 큰 파장을 불러왔을 것이다. 그러니 정치권에서 나섰을 터다. 그런데 글 속에서 세뇌를 당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이었을거라고 믿고 싶어하는 듯한 분위기가 은근하게 풍겨져 나온다. 마치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반감이라도 있는 것처럼 페미니즘에 관한 말들이 책속에서 많이 보인다. 페미니즘도 좋고 페미니스트도 좋고 다 좋은데 제3자의 시선으로 처리된 것이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가 되었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유분방한 영혼의 진 네베바와 뭔가 답답한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비올렌의 시선뿐만 아니라 마지막 부분에서 뜬금없이 또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화자가 등장한다. 세대간의 느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기엔 뭔가 좀 부족하다.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진 네베바와 비올렌의 경우처럼. 말하고 싶어하는 메세지가 있는 듯 한데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 아이비생각

스톡홀름신드롬까지는 아니겠으나 1988년 10월에 있었던 지강헌사건은 거기에 좀 가깝지 않을까 싶다. <홀리데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사건이다. 탈주범들이 일반 가정집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였지만 그들이 잡히고 난 후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은 그들을 도와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들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바로 '有錢無罪無錢有罪' 였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인질이 되었던 사람뿐만이 아니라 많은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가슴으로 느꼈을 말이 아니었나 싶다. 그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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