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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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라면 가끔은 여자들만이 사는 무인도에 혼자 떨어지는 환상을 꿈꾸곤 한다. 그러면 그곳에서 모든 여성들의 사랑과 인기를 독차지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오죽하면 이슬람에서는 죽은 후에 가는 낙원이 많은 미인들에게 둘러싸인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곳이 낙원일까. [매혹당한 사람들]이란 소설에는 아름다운 여성들만이 사는 외딴곳에 떨어진 한 남성이 나온다. 다만 그곳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만큼 아름다운 낙원은 아니다.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독버섯'처럼 아름답지만 독을 간직하고, 상대를 파멸시키는 아름답지만 위험한 장소이다.

언제부터인가 소설 원작을 영화한 작품을 보려고 하면 꼭 소설부터 읽는 버릇이 있다. 어린 시절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를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원작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내내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 리'가 떠올라 소설 속의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유명한 영화가 개봉하면 원작을 먼저 보는 습관이 생겼다.

[매혹당한 사람들]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조금 더 광범위한 시대와 인물을 다루고 있다면 매혹당한 사람들은 버지니아주 외딴 숲 속에 있던 판즈워스 신학교라는 곳을 배경으로 8명의 여자와 한 명의 부상당한 북군 군인과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버지니아주의 숲 속에 위치한 판즈워스 신학교는 한때 이 지역에서 가장 명망이 있던 판즈워스 가문의 고택이다. 이제 옛 영화는 사라지고 두 자매인 마사 판즈워스와 해리엇 판즈워스만 남아서 여성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말이 신학교이지, 귀족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숙학교 정도의 개념이다. 그나마 남북전쟁의 발발로 많은 여학생들이 떠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오갈 데 없는 5명의 여학생들과 오래전부터 판즈워스 가문에 노예로 있던 '매티'라는 흑인 여자 노예만이 남아 있다.

판즈워스 신학교 근처에서 치열한 북군과 남군의 전쟁이 벌어지고, 부상당한 존 맥베니 상병이 산속에서 어밀리아 대브니라는 이 학교 학생에게 발견된다. 어밀리야는 맥베니를 데려오고, 맥베니는 8명의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소설은 8명의 여성의 시각에서 돌아가면서 맥베니가 판즈워스 저택에 들어오는 과정서부터 그의 파멸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모두들 맥베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맥베니의 워낙 말주변이 좋아서 여성들에게 입맛에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 특히 항상 결단력이 있고, 냉철한 언니 마사 판즈워스보다 모든 부분에서 어리숙하고 친절한 해리엇 반즈워스에게 접근하는 부분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능숙하다. 그는 판즈워스 집에 들어온 다음 날 바로 부상당한 몸으로 누워있으면서도 자신을 간호하는 헤리엇에게 아주 능숙하게 접근해 키스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처음에 그렇게 키스했을 때, 그러니까 그 어린 아가씨와 키스했을 때 난 후회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후회하지 않지만, 거기 서 있는 당신은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겠죠. 내가 신사답지 못하고, 천박하고, 그 외에도 관습에 얽매인 말들을 하겠죠.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하죠. 해리엇 판즈워스, 난 당신을 모욕할 생각이 없어요. 이 상황이 처음 그 당시, 그러니까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와 똑같고, 난 처음과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내가 그래도 되냐고 물었더라면 당신은 안 된다고 하겠죠. 그래서 당신에게 묻지 않았어요. 이제 원하는 대로 하세요. 언니에게 말해도 좋아요. 당신이 원한다면 반란군을 불러 모아도 좋고요." (P184)

언니 마사 역시 맥베니의 교활함을 조금은 눈치채지만, 그에게 호감을 가진다.

"그는 다정하고 솔직했다.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 순수함 이면에 교활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교활함이 소년의 장난기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 그는 분명 교활했다. 그것만큼은 분명했다. 존 맥베니 상병이 무슨 말을 하건, 나는 속으로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P 134)

맥베니는 특히 판즈워스 학교에서 가장 어른이며 미인인 흑발의 에드위나 모로와 여성성이 뛰어나면서도 어머니를 닮아 남성을 유혹하는 재능이 있는 얼리샤 심스에게 호감을 느끼며 접근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런 접근이 파국의 서막이 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밀폐된 공간인 파즈워스 학교에서 벌어지는 남녀 간의 기묘한 감정의 변화와 내밀한 욕망의 표출이 너무나 세밀하고 표현되어 있어 읽는 내내 마치 그 공간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어떻게 남성으로서 그렇게 여성들의 심리를, 그리고 내밀한 욕망을 잘 그릴 수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얽히고설킨 8명의 여성들의 관계와 맥베니의 감정을 그리는 것이 너무나도 섬세해서 읽는 내내 작가가 여성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그럼에도 맥베니가 다시 부상을 당한 후 점점 악의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나 그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마치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소설을 읽고 나서 영화가 더욱 기대가 되었고, 영화를 감상 후 소설과 함께 비교해서 리뷰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과연 영화에서는 이런 치밀하고 섬세한 관계들을 어떻게 긴장감 있게 표현했을까. 거의 50년 전에 씌여진 소설이 이처럼 감성적이고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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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히어로즈
기타가와 에미, 추지나 / 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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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직장을 출근하거나 자기 일을 시작할 때는 누구나 열정이 넘친다. 그러나 일을 하고 사람과 부딪히다 보면 점점 그 열정들이 사라지고, 마지못해 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돈을 벌고, 그렇게 가정을 꾸리고, 그렇게 자녀들을 키운다. 때로는 이런 삶에 회의를 느끼지만 다른 길을 생각할 수는 없다. 오로지 그 길만이 내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할 수는 없을까. 조직의 시스템에 끼어 맞춰진 삶이 아닌, 스스로 기쁨과 즐거움 때문에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이제 이런 생각들을 허황된 생각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가끔은 아직도 이런 삶들을 꿈꿔본다.

일본 작가 기타가와 에미는 바로 이런 꿈을 꾸는 작가이다. 다들 세상은 그런 거야! 직장은 그렇게 다니는 거야!라고 말을 할 때, 이 작가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다른 삶이 있다고 말을 한다. 처음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작품이었다. 하루의 일과가 숨이 막히고 모든 것이 옥죄며, 그래서 육체와 마음이 망가져 가는 직장인이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주식회사 히어로즈]도 직장이나 일과 관련된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자기 분야에서 열정을 잃어버리고 실패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다나카 슈지는 한때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고 인정을 받았다. 또한 사내연애를 하며 여자친구와 만들 행복한 가정도 꿈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버스에서 치안으로 몰려 구타를 당하고, 직장도 잃고 애인도 잃게 된다. 나중에 이것이 누명으로 밝혀지지만 한 번 찍힌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의 병까지 얻어 공공장소나 버스 안에서 숨쉬기 힘든 호흡곤란까지 느낀다. 이제는 세상과 사람 일에 관여하지 않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고 조용히 살려 한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아르바이트 자리가 들어왔다. 주식회사 히어로즈라는 곳에서 잠시 시간제로 일하는 것이다. 이름부터 이상한 이 회사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회사일까. 슈지는 이상한 회사 이름과 이름만큼 이상한 회사 분위기에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서 열정을 잃어 버리고, 지치고, 낙담해 하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슈지가 처음 만난 사람은 꿈과 열정이 넘쳐 만화가 되어 지금은 일본 최고의 인기 만화가가 되었지만, 주변의 기대와 압박에 점점 무너져가는 도조 하야토라는 만화가이다. 그는 슈지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내가 그린 만화를 읽어주는 사람만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 나에게는 만화밖에 없으니까, 나에게 만화라는 재능이 있었다면 그 대신 다른 재능이 부족했던 것 같아. 그 무렵에는 그것조차 행복이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무서워졌어. 만화 말고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P 107-8)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인기 절정의 여자 아이돌이다. 힘들게 인기를 얻었지만 이 인기와 사랑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초조해하고 두려워하는 철없는 소녀이다. 그녀는 우연히 슈지와 애완동물 가게를 지나친 후 이렇게 고백한다.

"애완동물 가게는 정말 싫어. 어린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며 다가오는 모습...... 나를 사랑해 달라고 꼬리를 흔들면서. 꼭 나를 보는 것 같아. 가여워서 못 견디겠어. 이 아이들은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팔리지 않은 상품은 망가진 로봇처럼 버려지고 마는 걸까" (P 207)

"그러니까 재고가 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아양을 떠는 거야. 더 많은 사람들이 귀엽다며 쓰다듬도록. 좋아해 줄 만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지 자신을 데리고 가 평생 귀여워해 주기를 바라면서." (P 208)

주식회사 히어로즈는 이렇게 자신의 일에서 꿈과 열정을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꿈과 열정을 주어 자신의 삶에서 히어로즈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슈지는 이 일을 해 가면서 다시금 자신의 삶에 열정과 꿈을 회복해 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다. 사람이 살아가고 일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돈을 벌고, 가정을 이루고, 그렇게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 전부일까? 아니면 자신의 꿈을 찾아 즐겁게 일을 하는 것이 전부일까?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항상 이 두 가지가 갈등을 일으키고, 대부분은 전자의 일상적인 삶이 후자의 꿈과 열정을 갉아먹는 것이 현실이다. 바쁜 직장인이나 자신의 꿈을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꿈을 꾸게 해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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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미래 - 편견과 한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라
신미남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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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성의 현실을 소설로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이란 작품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임신한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회사를 출근하러 가는데 아무도 자리를 비켜 주지 않았다. 눈치로 인해 마지못해 일어난 대학생 여성이 들으라는 식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배불러까지 지하철 타고 돈 벌러 다니는 사람이 애는 어쩌자고 낳아?"

결국 소설 속의 주인공은 출산과 함께 직장을 관두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기는 너무나 힘든 현실이다. 그러기에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에는 일을 포기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 힘든 과정을 모두 뚫고 여성 CEO까지 이룬 인물이 있다. 바로 [여성의 미래]라는 책을 쓴 신미남이다.

이 책에서는 여성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고, 리더와 CEO의 위치까지 오른 저자의 일생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여성들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여성의 입장에서 편견과 차별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친 한 인간으로서의 노력과 충고가 더 많이 등장한다. 그녀는 코엘료의 소설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누군가 꿈을 이루기 앞서, 만물의 정기는 언제나 그 사람이 그동안의 여정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지. 만물의 정기가 그런 시험을 하는 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네. 그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 말고도, 만물의 정기를 향해 가면서 배운 가르침 또한 정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마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지." (P231)

"그 후로도 아이들을 키우며 피눈물이 날 만큼 가혹한 시험을 치렀다. 그렇지만 나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수도 없이 흔들렸지만, 매 순간 최종 결정은 '그럼에도 계속 일을 한다'였다. 만물의 정기는 엄마가 되는 나의 모든 여정을 시험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나는 모든 시험을 이겨냈고, 여자로서 엄마로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발휘했던 순간순간의 지혜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껏 나를 지탱해준 원동력은 '일하는 엄마로 살겠다'라는 굳은 결심이었다. 나는 단단히 결심했고, 결국 내 삶을 지켜냈다." (P 235)

저자는 앞으로 4차 혁명 시대에는 육체적인 능력이나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사람 대신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시대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창의력과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성은 남성보다 여성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일하기가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이제 여성들이 엄마로서의 역할과 함께 일하는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역할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이 책에서 일하는 여성을 무조건 두둔하고 여성의 장점만을 이야기하고 것만은 아니다. 그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함께 단점을 이야기한다. 유리 인형 증후군, 콩쥐 증후군, 동반자 증후군, 변명 증후군, 공주 증후군처럼 직장에서 여성들끼리 타인의 이야기를 하거나, 여성이 일하면서 남성들에게 양보를 받으려 하고, 공주처럼 대접만 받으려는 태도들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을 한다. 이런 여성들의 태도로 인해 오히려 여성들에 대한 편견들이 더 많아진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여성들은 오늘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딸, 나아가 수많은 후배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심 해야 한다. 우리의 행동이 사회적 편견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그들을 가로막는 벽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주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일하는 여성이 많지 않아서 오늘날 여성들이 각종 편견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미래는 다르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미래의 여성들이 편견 없는 세상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행동을 쌓아 나가야 한다." (P 156)

특히 저자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연 매출 300만 원 밖에 되지 않는 돈으로 외부에 의뢰 해 900만 원짜리 회계감사를 받았다거나, 지하 원룸에서 살면서 두 아이를 돌보는 보모에게는 충분한 대우를 해 주었다는 글을 읽으면서, 남녀의 구분을 떠나서 참 스케일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리더로서 바로 눈앞보다 앞 날을 내다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분은 남녀의 구분을 떠나서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가까운 친척이 아이를 낳고 다니던 은행을 관두었다. 출산과 함께 2년의 출산 휴가라는 남들보다 나은 조건이 있었다. 그럼에도 2년 후 복직을 해서 얼마 일하다가 결국은 버티지 못하고 직장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만큼 여성으로서 아이를 돌보면서 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기는 결코 쉽지 않다. 반면 경제적인 상황은 계속해서 맞벌이를 요구하고 있는 흐름이다. 과연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성이 육아와 일을 동시에 잘 할 수 있을까? 물론 사회적인 시스템이 많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성 스스로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앞 길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여성에게 분명한 비전을 심어주는 책이지만, 남성들에게도 다시 한 번 도전의식들을 심어 주는 좋은 책이다. 남녀를 떠나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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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기록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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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방송에서 아프리카 초원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한 야생 세계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자주 방송되었었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초원이나 밀림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잔인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한가하게 풀을 뜯어 먹는 가젤들 뒤로 몸을 한껏 낮추고 접근하는 표범과 같은 맹수들도 보인다. 아름답기까지 한 늘씬한 몸에 화려한 무늬를 가진 맹수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먹잇감까지 접근하더니 순식간에 목표물을 향해 달려든다. 그리고 주저 없이 약한 먹잇감의 목을 물어뜯는다. 어릴 때는 그런 모습을 보면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때로는 그것이 그런 맹수의 사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 제목이 우행록(愚行錄)인 누쿠이 도쿠로 [어리석은 자의 기록]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이런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잔인한 초원의 약육강식 세계를 떠올렸다.

이 소설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란한 부부와 두 자녀가 하룻밤 사이에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을 취재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처음엔 르포 기자로 알려진 남자가 가족 주변의 사람들을 취재하며 이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부부 모두 일류 대학을 나오고, 남편은 유명한 부동산 회사에 다니고, 도쿄 근처의 맨션에서 살면서, 예의 바르고 공부 잘하는 두 자녀를 키우고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이상적인 가정이고, 주변 사람들도 '행복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가족'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래요 부인이 아주 미인이었어요. 외출할 때마다, 한껏 멋을 부린 느낌은 아닌데 흐트러진 데가 없었어요. 뭐라고 해야 하나,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 같은 분위기랄까. 그래요, 그런 사람을 청조하다고 하죠. 응, 청조한 느낌, 맞아요." (P 18)

"근데 남편도 좋은 사람인 것 같았어요. 만나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더라고. 미인인 부인 못지않게 인물도 훤하고 대기업 엘리트 사원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죠. 대학도 와세다를 나왔다면서요? 대단해요. '행복'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가족이었어요. 그런데도 그런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다니, 사람 인생은 모르는 거예요" (P19)

그런데 이렇게 좋은 평가만 이어지다가 중간중간 아내인 나쓰하라 씨의 섬뜩함이 드러난다. 모든 사람에게 자상한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학벌과 계층을 자랑하고, 타인들을 자신 밑에 두고, 자신에게 대항하는 사람은 철저히 짓밟는 모습들이 드러난다.

남편인 다코 씨 역시 마찬가지이다. 순진한 모습 속에서도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상대를 철저하게 짓밟고, 자신이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 여성들을 이용하는 악랄한 모습들이 보인다. 그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회사 동료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놀랍습니다. 다코한테 그런 명이 있는지는 몰랐으니까요. 제가 아는 다코는 굳이 말하자면 수동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키씨나 야마모토 씨 같은 사람한테 휘둘렸던 거죠. 그런데 자존심을 건드리면 이런 짓까지 하는구나. 이런 인간은 절대 적으로 돌리면 안 되겠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P110-1)

이제 소설은 두 부부의 대학시절의 친구나 옛 애인과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잔인함을 들춰낸다. 자신의 라이벌을 철저하게 짓밟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친구나 애인을 이용했던 모습을... 그와 함께 일본 사회의 대학을 중심으로 한 계층 문화와 따돌림 문화까지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잔인한 약육강식 자체인, 일본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일본이란 사회를 잘 알지는 못하고, 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와세다 대학이나  게이오 대학의 문화에 대해서는 더욱 잘 모른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분위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 역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일본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출신학교와 대학으로 그룹을 나누고, 자신보다 낮은 그룹은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보다 높은 그룹은 동경하고, 이렇게 한 단계씩 오르기 위해 서로를 밟고 올라야 하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 아주 특화된 인간이 바로 다코와 나쓰하라 부부였다. 소설을 읽은 내내 이렇게까지 사회의 어두운 부분과 인간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가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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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 모중석 스릴러 클럽 43
제프리 디버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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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는 내가 좋아하는 스릴러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제프리 디버의 탁월함이란 아마 뛰어난 현장감 묘사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마치 독자를 사건의 현장 속에 던져 놓는듯한 느낌이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혼돈과 긴박함이 넘치는 사건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 대표적인 소설이 [소녀의 무덤]이라는 소설일 것이다. 이 소설은 교도소 탈주범들이 농아학교 학생들을 캔자스의 버려진 도축장 건물로 납치해서 인질극을 벌이는 내용이다. 인질극 현장의 혼돈과 긴박감이 소설 내내 전해진다.

제프리 디버가 창조한 대표적인 두 명의 인물을 꼽자면, 단연 링컨 라임과 캐트린 댄스일 것이다. 둘 다 시리즈로 유명한데, 아마 링컨 라임 시리즈가 훨씬 더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명 모두 아주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데, 링컨 라임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건 현장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법의학자이며 현장 감식 전문가이다. 반면 캐트린 댄스는 상대의 동작을 통해 진실을 가려 내는 동작 전문가이다. 아이들의 엄마이면서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슬픔을 견디는 아이들의 엄마로 나온다. 냉철한 프로파일러이지만 형사인 마이클 오닐과 존 볼링 사이에서 갈등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XO]라는 소설에서 캐트린 댄스는 강적을 만난다. 바로 에드윈 샤프라는 스토커이다. 캐트린에게는 케일리라는 유명한 10대 컨트리 뮤직 가수가 있다. 휴가차 우연히 케일리는 만났는데, 그녀는 에드윈 샤프라는 스토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케일리의 노래 '유어 섀도'(우리 말로 번역하면, 당신의 그림자 정도가 될까?)의 1절 가사가 전화로 들려온다. 그리고 그 1절 가사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서 케일리의 매니저이자, 한때 연인 관계였던 보비가 끔찍한 사고로 죽는다. 그 후 2절 가사가 들려오고, 비슷한 사고가 발생한다. 캐트린과 케일리는 에드윈 샤프를 의심하지만 에드윈 샤프는 전혀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태이다. 오히려 에드윈 샤프를 심문하던 경찰이 절차를 어겨 면직처분을 받기까지 한다.

이제 캐트린 댄스는 에드윈 샤프와의 대결에서 그가 그동안 저질렀던 범죄와 앞으로 저질러야 할 범죄를 알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의 말과 동작은 완벽하다.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결국에는 캐트린까지 흔들린다. 정말 그가 범인일까? 이런 상황에서 에드윈 샤프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캐트린은 자신이 수사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은 아닌지 흔들리게 된다.

과연 에드윈 샤프는 범인일까? 그가 범인이라면 캐트린은 어떻게 그의 동작에서 숨겨진 패턴을 찾을 수 있을까? 소설은 끝으로 갈수록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계속되는 반전과 반전이 거듭된다. 소설을 다 읽기까지 누가 진짜 범인인지를 알 수 없는 긴박함을 가진 소설이다. 거기다가 링컨 라임까지 보너스로 등장한다. [잠자는 인형]과 [도로변 십자가] 이후 캐트린 댄스의 등장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큰 선물이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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