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랜드
신정순 지음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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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땅이었다. 어떻게든 미국만 가면 삶이 순식간에 바뀐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고생하더라도 학위만 따오면 각 분야에서 모셔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꿈으로만 생각하던 미국의 삶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무조건 학위를 위해 유학을 가거나,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서 몸부림치다가 수렁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드림랜드]라는 책은 오랜 미국 이민생활을 한 작가가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연관하여 쓴 이민자의 아픈 삶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총 5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모두 미국 생활의 애완을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다.

첫 번째 [드림랜드]라는 소설은 학위를 얻기 위해 미국에 유학 온 부부의 삶을 다루고 있다. 남편은 한국에서 수재로 인정을 받았지만, 막상 미국에서는 일을 풀리지 않아 학위를 따지를 못하고 막노동을 전전한다. 어느 순간 남편은 폭력적으로 변하고, 딸아이를 폭행한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대신해 감옥생활을 한다. 그 후 그녀는 드림랜드라는 흑인 거주 지역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며 자신이 드림랜드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래들 사이에 드림랜드라고 불리던 자그마한 놀이공원이 있었다. 아이들은 주말이면 아빠 엄마 손을 잡고 그곳에 모여들곤 했다. 나는 혼자 느리게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케이블카와 사선을 그리며 빠르게 달리는 롤러코스터가 대조를 이루는 모습을 담 너머로 지켜보곤 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꿈나라처럼 보였다. 쉴 새 없이 바쁘고 가난했던 엄마는 나를 딱 두 번 그곳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 한 번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일찍 돌아왔고 다른 한 번은 고사 중이라 문을 열지 않아 돌아와야 했다. 내가 대학 시절 혼자 그곳을 찾아갔을 때 이미 그곳은 폐쇄되었고, 놀이기구들은 녹슨 고철더미로 변해 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남들이 흔히 꿈꾸는 드림랜드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 아닐까, 드림랜드는 오직 선택받은 사람들만 입장이 허락되는 그런 곳이 아닐까." (P 13)

두 번째 소설 폭우는 한 이미자 여성이 유학 온 남성을 만나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지만, 버림을 받고 멕시코 남성과 사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산체스라는 멕시코 남성의 어머니 역시 한국 여성이었다. 소설은 먼 타국 땅에서의 불행이 덮친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특히 산체스가 사고로 입원한 병원에서의 주변 환경의 묘사는 여성의 상황을 너무나 잘 묘사한다.

"문득 대기실 구석에서 히터가 쉬익쉬익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ㅗ 몰래 숨어 남을 엿보는 짐승의 숨소리 같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로 공기청정기와 필라멘트로 빛을 흘러 보내는 전등, 평소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조용한 것들이 우우우, 즈즈즈,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그동안 얼마나 우리 삶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는지 알려주기 위해 소동을 벌이는 것처럼" (P 62)

세 번째 [선택]이란 소설은 가장 가슴 아프게 읽은 소설이다. 읽고 나서도 그 먹먹함이 떠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한 여성이 미국 이민자와 결혼해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 여성이 미국으로 떠난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과정을 너무나도 담담한 필치로 가슴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

네 번째 [살아나는 박제]는 무척 종교적인 소설이었다. 저자는 이 소설을 제일 먼저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마치 모든 소설에서 불행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 종교적인 해석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섯 번째 [나호바의 노래]는 한국 이민자의 쓸쓸한 삶을 미국 인디어의 삶과 겹쳐셔 그리고 있는 소설이었다.

다섯 개 소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민자의 삶과 그 삶을 따라다니는 불행일 것이다. 첫 번째 소설 [드림랜드]에서 주인공이 감옥에서 같은 한국인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한때 한국에서 잘 나가는 모델이었지만,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이민 온 후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 왔었다. 그녀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 와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 사람이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 불행에 발목을 잡혔을 뿐이다. 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왜, 발목을 잡는 덫이란 게 있잖아요.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해지지 않는 그런 운명 같은 거요. 여기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운명의 덫에 걸려 여기 온 것 같아요. 안 그래요?" (P 40)

저자는 화려해 보이는 소수의 이민자들 삶 속에 가려져 있는 덫에 발목이 잡힌 대다수의 이민자의 애완을 그리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전부 불행이나 어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끝에는 불행 속에서도 마지막 희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들의 몸부림이 느껴진다. 비록 소설이지만 읽는 내내 이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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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08-1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는 대다수의 이민자들 삶 속에 가려져 있는 소수 이민자의 애완을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뉴스나 어디서든 올리신 소설의 내용은 듣기 어렵덴데 한국에서 오히려 더 익숙한 얘기 인가봐요. ^^;;;

가을벚꽃 2017-08-11 00:33   좋아요 0 | URL
저는 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곳에서의 이민자들의 정서는 잘 모르겠네요^^ 라로님 말처럼 저자가 힘든게 사시는 소수분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네요... 그럼에도 저자가 말미에 자신의 소설들의 등장 인물들이 주변의 실제 인물들임을 사례를 통해 밝히고 있더라구요... 마지막 언급한 미국인 남편을 죽인 모델도 실제 인물이라더라구요... 다음에는 이민자의 밝은 삶을 그리는 소설도 읽어보고 싶네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스페셜 에디션)
박민규 지음 / 예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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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순수하고 단아한 이미지의 여배우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고고하고 변치 않는 기품으로 사랑과 신념을 이야기하던 모습을... 그런데 우연치 않은 기회에 이 배우들의 삶의 실제 모습이 언론에 드러났다. 내가 알고 좋아하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이미지였다. 과연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나는 그 배우의 실체를 좋아했을까? 아니면 미디어가 만든 그 배우의 이미지를 좋아했을까?

그 후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만들거나, 그 사람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사랑하는 걸까? 욕망도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고급스러운 아파트나 세련된 이미지의 자동차를 욕망할 때, 나는 정말 그 자체를 가지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것들을 파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욕망하는 걸까?

사실 평상시 이런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이미 출간된 지가 오래되었고, 이번에 출판사에서 스페셜 에디션 판으로 새롭게 출간되게 되었다. (핑크색의 고급스러운 양장 이미지였다. 문득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이 책을 좋아하는 걸까, 이 책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좋아하는 걸까?) 이 책은 여러 번 지인들로부터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는 평을 들었고, 여러 서평으로 접해서 줄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이 책을 세상에서 못생긴 여자로 낙인 찍힌 한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의 순애보로 읽고 있었다. 나 역시 이런 관점으로 이 책을 읽다가, 저자가 이야기하는 현대문명에 대한 강렬하고 신랄한 비판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혼자 생활을 한다. 아버지는 무명 배우일 때 못생긴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다 한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유명해지자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다.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못생겼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그런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가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한다.

"아버지는 참 열심히 극장을 찾았었다. 대게 사람이 별로 없는 이른 아침 극장이었고, 또 언제나 내 손을 잡고서였다. 영화를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집에 두고 올 수 없는 어린 아들을 앉히고... 그는 자신만의 딴 세상 속으로 아버지가 아닌 딴 사람처럼 스며들곤 했었다. 술술 대사를 읊고 술술 사람을 노래하던 은막의 스타들이 떠오른다. 마치 이 땅의 인간이 아닌 것 같던 금발의 여우들과... 그런 그녀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아버지의 옆모습도 떠오른다. 그때의, 황홀에 잠겨 있던 눈빛을 떠올리며... 나는 흔들리는 기차의 진동에 몸을 맡긴 채 아버지를 생각했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아버지는 끝내 끝내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한 인간이었다." (P 60)

아버지가 떠난 후 어머니는 강릉으로 내려가서 식당을 하고, 서울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은 백화점에 취직을 한다. 그곳에서 요한이라는 형을 만난다. 그리고 또 백화점에서 일하는 여성 중 가장 못생겼다는 '그녀'를 만난다. 소설은 한국의 물질문화와 그 욕망을 숭배하기 시작하던 80년대 백화점을 배경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주인공과 그녀와 주인공을 이어주는 요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특히 이 소설에서 요한은 단순히 주인공과 그녀를 이어주는 역할을 넘어 80년의 속빈 욕망 덩어리인 백화점 문화와 그 욕망의 노예가 되어가는 사람들을 냉철한 눈으로 독자에게 바라보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그에게 주차안내를 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한다.

"통로나 코너에 차 세우는 놈들 있지? 절대 여기 대시면 안 됩니다,라고 이야기하지 마. 고객님, 이 자리에 대시면 차를 빼실 때 굉장히 불편하실지 모릅니다 ......그런 인간들은 오로지 자기 이익만 생각하거든. 그래도 차를 안 뺀다! 손님 이 자리는 코너가 좁아 다른 차가 긁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저쪽 안전한 자리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해. 그래도 안 뺀다! 손님 이곳은 일반 고객들이 대는 곳입니다. 저쪽 VIP 코너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하는 거야. 무식한 인간일수록 명예에 약한 거니까." (P 87)

또 백화점에 온 연예인들 보기 위해 열광하는 직원들을 보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주인공에게도 이렇게 대화한다.

"이봐 아미고, 진정하라고 진정, 아저씨는 그저 이쁜이가 좋았을 뿐인 거잖아. 누구나 그런 거라고. 너도 나도... 세상의 모든 아미고들은 이쁜이들을 좋아하게끔 만들어졌다고. 아무리 그래도 뻔히 보이잖아요, 한두 번도 아니고... 글쎄 그런 거라니까, 지구 반대편의 여배우에 빠져 팬 레터를 쓰는 게 아미고들의 운명이야. 이쁜 언니들 앞에선 어쩔 수 없다니까, 티브이에 나온 어니를 쫓아다니고, 함성을 지르지만 뭐 어니는 사랑해요 여러분... 하겠지만, 그 언니가 사랑할까? 아미고들이 아무리 히죽대고 음료수를 건넨다 해도... 그렇다고 어머 뭐 이런 것들이 다, 별꼴이 반쪽이야라고도 말할 수 없는 거잖아? 뭐예요, 그건 너무 바보 같잖아요. 몰랐어? 모두 바보란 걸? (P 104)

이렇게 마치 세상과는 상관없다는 것처럼 시니컬하게 말하는 요한이지만, 요한이 역시 세상에서 버림받고 상처받은 사람이었다. 요한은 그가 일하는 백화점 소유주와 여배우에서 난 아들이었고, 그 역시 주인공이나 그녀처럼 상처 입고 찢긴 존재였다. 결국 요한은 자살을 시도하다가 식물인간이 되고, 그 일이 있은 후 주인공과 그녀도 점점 멀어진다. 그녀는 요한이 자신 안의 어둠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주인공에게서 떠나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주인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지 아름다움에 대한 반발로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인공은 그녀 안에 있는 상처를 사랑했다. 자신처럼 세상에서 찢기고 상처 입은 그 여자의 내면을 사랑하고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소설은 세상의 기준으로 찢기고 상처 입은 영혼들의 절실하면서, 처절하기까지 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은 우리 사회가 소비사회로 흘러가던 80년대를 배경으로 현대의 욕망과 그 욕망의 노예가 되어가는 대중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물론 80년대의 문화이 밥 딜런이나 비틀지의 노래 가사들도 계속해서 등장하며 그 시대를 회상하게 한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 당연하게 되어버린 외모지상주의와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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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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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작품 중에서 [일대종사]라는 영화가 있다. 무술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무술영화라기보다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 인물들을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소룡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고 중국인들에게 영웅시되는 엽문(양조위 분)이다. 그러나 영화 내내 주목을 받는 주인공은 따로 있다. 여성의 몸으로 자신의 가문의 무술을 지켜가는 궁이(장쯔이 분)라는 여인이다. 영화에서 궁이는 무술을 통해 엽문과의 교감도 나누기도 하지만, 평생 혼자의 몸으로 가문의 무술을 자키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혼란한 중국 근대 시대에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과 홍콩으로 피난 등이 이어지지만 궁이는 시대의 흔들림 속에서 끝까지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며 살아간다. 이 영화의 압권은 기차역에서의 궁이와 궁이의 아버지를 죽이고 친일파가 된 일석천과의 대결이다. 시대의 변혁을 상징하는 달리는 기차 옆에서 구시대의 유물이라 할 수 있는 쿵푸로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매우 처연(凄然) 하면서도 비장(悲壯) 하게 그려진다.

줄리언 반스의 신작 [시대의 소음]을 읽으면서, 전혀 다른 배경과 전혀 다른 주제의 영화인 [일대종사]를 떠올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시끄러운 기차역에서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한 음악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대표적인 음악가로 알려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과 작곡 실력으로 소련의 대표적인 음악가가 되었지만, 스탈린 시대에 계속해서 비판을 당하고 숙청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다. 후르쇼프 이후 그는 더 인정받는 음악가가 되었지만, 공산당의 이념과 본인의 음악 추구에 대한 갈등으로 고통 당해야 했다.

소설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의 제목은 모두 특정한 장소를 가리킨다. 1부는 '층계참에서', 2부는 '비행기에서', 3부는 '차 안에서'이다. 이 제목들은 모두 주인공 드미트리의 인생에서 특정한 시기와 장소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특정한 시기의 장소에서 지나 온 삶을 돌이켜 보는 내용이다. 이 장소들은 매우 함축적인 이미지로서 주인공의 그간을 삶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1부 '층계참에서'는 어느 정도 음악적 성공을 거두고 가족도 이룬 드미트리가 자신의 집 엘리베이터 옆 층계참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주인공이 스탈린 시대에도 인정을 받지만,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형식주의라는 비판에 몰려 숙청의 위기에 몰린다. 그는 엘리베이터 옆의 층계참에서 자신을 잡으러 오는 군인들을 예상하며 공포에 떨고 주인공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2부의 '비행기에서'는 중년이 된 드미트리가 미국에서의 공연과 연설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간의 인생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그는 숙청 위기에서 어찌 보면 비굴하게 권력층의 예술 방향에 수긍하면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소련을 대표하는 예술가로서 미국에서 공연과 연설을 하고 온다. 그는 미국에서 자신의 예술가적 신념과는 다른 공산당의 이념을 선전 도구로서 연주를 하고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그런 자신의 삶을 돌아다보며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을 한다.

3부에서 '차 안에서'는 이제 노년이 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드미트리가 주인공이 스탈린 사후 권력을 잡은 후르쇼프 시대를 회상한다. 자신의 평생의 동반자 니나가 죽고, 그는 후르쇼프에 의해 러시아 연합 작곡가 조합 의장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시대가 그를 몰아붙인다. 그는 평생 가입하지 않던 공산당에 가입헤 되는 날, 아내가 죽었던 날처럼 슬피 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는 사람을 죽이는 당에는 가입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마지막 신념마저도 지킬 수가 없었다.

각 내용마다 권력자와 시대는 바뀌지만 소설의 시작 내용은 비슷하다. "그가 아는 것은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다는 것뿐이다.(1부, P17)" "그가 아는 것은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다.(2부, P91)) "그가 아는 것은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쁜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3부, P67) 각 시대마다 시대의 권력은 그를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도록 놔두지를 않았다. 심지어는 마지막 남은 예술가로서의 영혼까지도 통제하고 짓밟으려 한다. 그럼에도 드미트리는 묵묵히 시대의 공포와 소음을 뚫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세상은 그를 겁쟁이라고 하고, 드미트리 스스로도 자신을 겁쟁이로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인 줄리언 반스는 그를 겁쟁이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저자는 주인공 드미트리를 자신의 예술을 지키려고 몸부림친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이면서도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이중적인 면을 그리고 있다.

"그는 자존심을 지킬 수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표현에 불과했으나 정확한 표현이었다. 권력층의 압력을 받다 보면 자아는 금이 가고 쪼개진다. 남들 앞에서 겁쟁이는 마음속으로 영웅으로 살아간다. 혹은 그 반대거나, 아니면,  더 흔한 경우는 남들 앞에서 겁쟁이는 마음속으로도 겁쟁이로 산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사람의 생각은 도끼날에 반으로 쪼개진다. 차라리 산산이 쪼개져 조각들이 한때는 딱 들어맞았음을 헛되이 기억 하려고 애쓰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과연 드미트리가 자신의 음악과 자신의 영혼을 지켰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 노년에 공산당에 가입하고 나서야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만큼 울었다는 것은 마지막 자신이 지켜야 할 것까지도 권력층에 의해 모두 빼앗겼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니다! 울 수 있다는 것, 시대의 소음 속에서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몸부림쳤던 것, 그런 망므을 가졌던 것, 그것만으로도 그가 마지막 예술가의 양심은 지킨 것이 되지 않았을까?

몇 천만 명을 학살한 스탈린의 광기의 시대에는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도 혼란스러운 시대는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어떤 예술가는 대우를 받고, 어떤 예술가는 핍박을 받는다. 근대와 현대의 격변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예술 자체보다는 권력과의 관계로 평가절하되기도 하고 과대포장되기도 했다. 과연 권력과 시대와 무관한 예술가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자신의 마지막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을 존재하지 않을까?

줄리언 반스는 전작 [예감을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받았다. 위대한 문학상을 탄 작가가 이처럼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이런 줄리언 반스의 흡입력을 기대하고 [시대의 소음]을 읽는다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다. 전작보다 주제는 무거워졌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소설가는 영화감독들이 초기에는 인기를 위해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지만, 성공한 후에는 인기와는 상관없이 진정 자신이 하고 싶었던 주제를 다루는 것을 많이 보았다. 어쩌면 줄리언 반스도 이 책에서 진정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을 쓰고 있지는 않을까. 시대의 소음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을 삶을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남자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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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이웃 2017-09-03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소설입니다.
번역에 대해 어렵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번역자는 번역에 충실한 것 같습니다.

엄혹한 시대에 처한 예술가들과 권력과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평소 궁금했습니다.
저자의 단편을 읽을 수 있어 좋네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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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오래전에 개봉했고 그렇게 큰 인기를 얻은 영화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 감우성이 주연한 [거미 숲]이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시작에서 기자인 강민(감우성 분)이 유령이 나온다는 거미 숲을 취재하러 갔다가 남녀를 죽이는 살인 사건을 목격한다. 그곳에서 도망 나오던 주인공은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게 되고, 겨우 정신을 차려서 자신이 목격한 사건을 경찰에게 이야기를 해 준다. 경찰이 정말 그곳에 가니 남녀의 시체가 있는데, 그 시체는 강민의 연인이었던 아나운서와 방송국 국장이었다. 당연히 강민은 살인 용의자로 의심을 받게 되고, 그는 살인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잊어버린 기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상처와 그 상처로 그가 벌인 끔찍한 살인사건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 당시 결론에서 매우 충격을 받았던 영화로 기억이 난다.

이 영화는 인간이 자신이 경험한 끔찍한 과거를 잊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조작해 나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페데리코 아사트의 소설 [다음 사람을 죽여라]는 [거미 숲]이라는 영화보다 더 정교한 플롯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이지만, 주제는 비슷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자신의 경험했던 끔찍한 어린 시절과 자신이 행한 끔찍한 일을 잊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은 그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 기억이 하나하나 어둠 속에서 드러날 때마다 독자들은 계속해서 충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 '테드'가 자살을 하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판결 받고, 아내와 두 딸을 여행을 보낸 후 혼자 남은 집에서 권총 자살을 하려 한다. 그런데 그가 자살하기 전에 누군가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린다. 잠시 자살을 미루고 문을 열어 주자 '린치'라는 남자는 그에게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

'린치'는 테드가 자살하려는 모든 과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조직은 사법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악인들을 처단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로 테드와 같이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통해서이다. 자살 직전의 사람이 사회의 악인을 죽여주면, 다음 선택된 사람이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죽여주는 것이다. 물론 테드는 애인을 살해하고도 완전범죄로 법망을 빠져나간 인간쓰레기인 '블레인'과 또 자신의 앞선 자살 대상자인 '홀리'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뒤에 선택된 자살 대상자가 테드를 죽여주는 것이다. 테드의 입장에서는 남은 가족이 자신이 자살했다는 것보다 살해당했다고 믿는 것이 남은 생을 살아가는데 훨씬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비록 어려움은 있었지만 블레인과 홀리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다음 장에서 테드는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 장소 역시 자신의 서재와 똑같다. 그리고 똑같이 린치가 문을 두드린다. 린치가 하는 제안 역시 똑같다. 테드는 이것이 여러 번 반복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금 테드가 정신을 차렸을 때 테드는 정신병원에서 깨어난다. 이 모든 것은 테드가 만들어 놓은 환상이었다. 테드 옆에서는 로라라는 의사가 테드가 이 환상의 동굴에서 빠져나오는데 계속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 사실 이만큼만 이야기해도 이 소설의 스포가 반절 정도는 공개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더 이상 이야기는 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로라의 도움으로 테드가 자신의 왜곡된 기억에서 빠져나오면 나올수록 점점 더 끔찍한 현실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빙산을 통해서 설명한다. 인간의 의식은 마치 수면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처럼 10분의 1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기억의 심연 속에 무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꿈의 해석]라는 책에서 이런 무의식을 탐사하는 과정을 지형 지도를 그리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꿈과 여러 가지 기억의 단편들을 통해 인간 내면 깊은 곳은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도의 실체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방어기재들과 싸워야 한다.

이 소설은 테드라는 한 인간의 기억의 심연을 탐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테드는 여러 가지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 왜곡된 기억, 즉 방어기제를 만들어 놓는다. 독자는 로라와 함께 테드의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테드의 끔찍한 기억의 실체를 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면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과연 테드는 연쇄 살인마일까? 아니면 단지 기억을 왜곡한 피해자일까? 속도감과 완벽한 구조, 그리고 계속되는 반전들, 독자를 숨을 쉬게 하지 못하는 내가 올해 읽은 최고의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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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 왕이 되려 한 남자 외 24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6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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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을 이야기할 때면 [정글북]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정글북]이라는 만화를 자주 보고나 동화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도 나는 그곳의 배경이 아프리카인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이 작품의 저자가 키플링이라는 사람이고, 그가 성장 시절 인도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인도에서 자랐지만, 그에게 인도는 영원히 이해가 되지 않는 숙제와 같은 나라일 것이다. 힌두교의 수많은 신들, 당시에 구석구석 남아있는 인신 제사와 같은 끔찍한 풍습들, 영국인과 인도인의 반목으로 계속되는 암살과 학살... 키플링의 단편집을 읽다 보면 그가 느꼈을 혼돈과 공포가 그대로 소설 속에 담겨 있는 것을 느낀다.

이 소설집에는 키플링의 25편의 단편집이 실려 있다. 시기별로 실려 있는데 주로 초기작에는 인도에서 느꼈을 혼돈과 공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초기작인 [백 가지 슬픔의 문]에서는 '풍칭'이라는 인도 노인의 아편굴에서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한 백인 남자의 독백이 그려져 있다. [무서운 밤의 도시]에서는 마치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한 인도의 뒷골목의 혼돈과 공포를 담고 있다.

초기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이 남은 소설은 [모로비 주크스의 기이한 사건]이라는 작품이다. 마치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연상시키듯 한 영국인이 모래 구덩이 속으로 빠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곳은 전염병에 걸려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인도인들을 버려두는 구덩이였다. 이 소설은 그 구덩이에서 벌어진 괴이하고 공포스러운 일들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초기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을 보여주는 소설은 [짐승의 표시]라는 책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술김에 인도의 신을 조롱했다가 한 괴기한 문등 병자에게 저주를 받아 점점 짐승으로 변해가는 괴기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얼마 전 읽었던 댄 스미스의 [칼리의 노래]를 연상시킬 만큼 인도의 신들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역자는 이 소설을 해석하면서 키플링의 소설이 단지 인도의 야만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야만성까지 동시에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키플링의 중기나 후기의 소설로 가면 배경이 인도에서 영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바뀐다. 또한 해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다루는 소설들이 아닌, 남녀 간의 사랑이나 동성 간의 우정 등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소설이 [그린하우 언덕의 추억]이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인도에 파병된 영국인 병사가 탈영한 현지인 병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국에서의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매우 낭만적인 분위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 내면의 광기와 사랑의 충돌을 그리고 있는 매우 깊이 있는 소설이다. 읽는 내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연상되기도 했다. 키플링의 소설을 좋아하던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읽고 [여자 없는 남자들]이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대해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 있게 읽은 소설은 이 단편집의 대표작이기도 한 [왕이 되려 한 남자]이다. 이 소설은 마치 허황된 꿈을 좇는 것 같은 두 명의 남자가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에 있는 카피리스탄이란 나라에서 왕이 되기 위한 꿈을 까지고 여행하는 모험소설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둘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소총 20정을 가지고 카피리스탄으로 가서 신(神) 행사를 하면서 자신의 군대를 만들고 왕이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묘하게 패러디 하는 부분도 있고, 제국주의의 야망을 비꼬는듯한 내용도 담긴,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가 담기 아주 기묘한 소설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을 받았다. 알고 보니 오래전에 숀 코넬리 주연한 [왕이 되려 던 남자(원제: The man who would be king)]의 원작이었다. 어린 시절에 이 영화를 보고 이런 모험적인 상황을 무척 동경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소설은 끝은 끝없는 욕심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조금은 허망한 결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키플링을 제국주의자이며 동양문화에 대한 색안경을 가진 작가로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자신이 이해할 수 인도 문화와 힌두교 종교의식에 접했을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이것이 작가의 내면에 해석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남아서 그의 소설 세계를 지배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책의 역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잠시 가치판단을 중지하고 선입관을 버리고 읽는다면 무척 훌륭한 문학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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