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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평점 :
요즘들어 나라가 온통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시끄럽다. 이 상황을 보면서 '과연 우리 국민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빠진다. 이런 결과는 이미 지난 대통령 선거때 어느 정도 예견되었음에도 많은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이 정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선거나 여론, 의식 등에서 나타나는 국민들의 생각이 때로는 어리석고 집단광기에 빠져 있을 때가 있다. 그렇게 어리석고 집단 광기에 빠진 상태에서 선출된 지도자는 비이성적인 통치를 하게 되고, 그 피해는 모두 국민들이 지게 된다. 왜 국민들은 어리석은 판단을 하거나 집단 광기에 빠지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단지 우리나라 국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도 이런 의문을 제기한 학자가 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Sebastian Haffner)라는 학자이다. 나치정권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그는 후에 근대 독일 역사에 관한 책들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는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이란 책이 있고, 이 책은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히틀러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당시 독일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다루고 있는 역사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왜 독일 민족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는가? 이들이 다른 민족보다 특별히 호전적이어서인가? 작가는 독일민족이 특별히 호전적인 민족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대체 무엇 때문인가 자문하게 된다. 도이치 사람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전쟁을 좋아했더란 말인가?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도이칠란트의 전체 역사를 보면, 그러니까 약 1000년기까지 도이치 사람은 전쟁을 많이 하지 않았고, 특히 전쟁을 도발한 적이 거의 없었다. 유럽의 중앙에 자리 잡은 도이칠란트는 근대 초기 이후로 일종의 거대한, 여러 면에서 완충지대였다. 다른 나라들이 이 안으로 밀고 들어오거나 도이칠란트 내부의 거대한 충돌들이 안에서 벌어지기는 했다. 슈텐칼덴 전쟁, 30년 전쟁, 7년 전쟁 등등...... 하지만 내부에서 이런 전쟁들이 밖을 향한 공격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 도이치 제묵은 20세기에 두 번이나 그런 공격성을 드러냈고 또 그로 인해 몰락했던 것이다." (P 13)
그렇다면 무엇이 독일 민족을 그렇게 전쟁의 광기 속으로 내몰았을까? 저자는 그 원인을 도이치 제국의 성립과정에서찾는다. 저자가 이 책에서 독일이라는 이름 대신, 도이칠란트나 도이치 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비스마르크에서부터 히틀러까지의 제국이 독일의 민족국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도이치라는 단어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포함하는 민족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독일민족주의가 자극을 받고,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북부 도이치 제국이 성립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여러 국가들이 민족주의로 통합이 되어 국가가 형성되었을 때는 그 응집력이 안에서 바깥으로 뛰쳐 나가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평가이다.
이런 도이치 제국의 성립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은 우리에게는 철혈재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비스마르크'이다. 그러나 저자는 비스마르크가 전쟁을 일으키는 인물이기보다는 억제하는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프로이센의 총리였던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의 두 차례 전쟁으로 도이치 제국이 성립된 이후, 팽창주의보다는 현상유지정책을 펼쳤다고 말한다. 당시 통일된 도이치 제국이 가장 염려한 것은 프랑스와의 전쟁이었다. 더 나아가 독일 주변의 강대국들이 프랑스와 연합하여 독일을 공격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했다. 즉 프랑스-러시아-영국 동맹을 통해 독일이 견제 당하는 상황이다. 비스마르크는 그의 통치기간 동안 이런 상황을 가장 피하려고 했고, 그로인해 식민지 확대나 군비확대를 통해 주변 강대국들을 자극하는 일을 최대한 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스마르크 사후 빌헤름2세가 통치하면서 갑자기 낙관주의적인 사고가 독일에 팽배했다. 상업적인 발전을 통해 독일민족의 우수성이 강조되고, 결국 주변 강대국들을 힘으로 누를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들이었다. 당시 독일은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발칸반도와 폴란드 지역에 영토를 확장하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전쟁을 하게 되면, 프랑스와 또한 전쟁을 하게 되어야 했다. 비스마르크 시대는 이렇게 서부와 동부에 두 가지 전투를 만드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더 나아가 영국이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빌헤름 시대의 낙관주의로 인해 그들의 자신감이 넘쳤고, 결국 프랑스와 러시아와 동시에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후에 영국과 미국까지 참전하게 되면서, 빌헤름 제국은 몰락하게 된다.
이런 1차세계대전으로 인한 빌헤름 제국의 몰락이 탄생시킨 기형적인 지도자가 바로 '히틀러'이다. 저자는 도이치 민족이 크게 두 가지의 잘못된 생각이 히틀러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하나는 1차세계대전은 자신들이이긴 전쟁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도이치 정부는 국민들에게 전쟁에 대한 왜곡된 정보들만을 전해 주었다. 그러기에 도이치 민족들은 패망 전까지도 전쟁에서 자신들이 거의 다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패전 소식이 들리고, 치욕적이고 무거운 배상이 담긴 베르사이유 조약을 승인해야 했다. 그들은 이것이 모두 정치가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위대한 정치가가 나타나면 자신들이 주변 강대국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 영토에 대한 집착이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 진정한 목표는 러시아영토 점령이었다고 말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도이치제국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거의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내었고, 심지어는 후에 히틀러가 점령한 러시아의 영토에 버금가는 지역을 점령하기까지 하였다. 이때 도이치 민족과 히틀러의 생각에는 러시아는 쉽게 점령할 수 있는 나라였다. 만약 프랑스와 영국의 방해만 없다면 독일은 방대한 동부 영토를 차지하는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10년 전후의 러시아는 혁명으로 인해 혼란한 상태였고, 1940년대의 러시아는 스탈린 체제의 조직화된 국가였다.
이런 두 가지의 허황된 생각이 히틀러라는 인물을 탄생시켰고, 도이치 민족들을 히틀러가 제시한 허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결국 히틀러와 2차세계대전은 1차세계대전, 더 전에 도이치 제국의 성립과정에서 가졌던 도이치 민족의 낙관주의적인 허상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하찮은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1933년 3-7월에 일어난 일의 증상으로 생각할 수는 있다. 이 시기에 일어난 그 온갖 불법에도 불구하고, 강제수용소 설치나 마구잡이 체포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분명한 반유대주의 정책의 처음 징후들에도 불구하고, 광법위한 주민 계층 사이에서 하나의 확신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위대한 순간이다.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순간, 신이 보내신 한 사람, 민중 한가운데서 일어난 지도자를 찾아낸 순간이다. 그가 기율과 질서를 찾을 거고, 민족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아, 도아치 제국이 새롭고 위대한 시간을 맞이하게 해줄 거다.'라는 확신. 히틀러가 정치 장면 전체를 실질적인 저항도 없이 깨끗이 청소해버리고, 자신의 대열 밖에 있는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에 맞서 저항하거나, 계획을 무산시킬 사람이 없는 상황을 만들도록 해준 것은 바로 이런 분위기였다." (P 228)
저자의 이런 견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책임을 독일민족보다는 당시의 시대적인 흐름이나 상황에 돌리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역사상 많은 국가와 국민들이 이런 시대적 흐름이나 분위기에 빠져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도이치 제국의 성립과 몰락,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패전으로 인한 독일의 혼란과정들을 읽으며, 지금의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게 되었다. 몇 십년 후 역사는 이 시기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 정부가 들어서고, 몰락하는 과정에서 과연 지도자 한 사람의 책임나 국정을 문란케 한 몇 사람의 잘못만을 지적할까? 아니면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집단 광기에 빠져 열광했던 우리들의 잘못을 지적할까? 읽는 내내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곱씹으면서 읽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