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만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뭐, 최근 몇 년간 안 바쁜 날이 언제였나 싶긴 한데, 지난 주부터 다음주까지는 특히 더 바쁜 듯하다. 지난 월요일엔 아침 출근길과 저녁 퇴근길 모두 캠페인을 하느라 보냈다. 아침엔 세월호 캠페인이었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연대모임에서 매월 16일에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아침 캠페인을 진행한다. 낮에는 일터에서 열심히 일했고, 저녁에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 '을들의 국민투표' 캠페인을 했다.


사실 저녁 캠페인은 예정에 없던 거라,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나갔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 투표 독려를 했는데, 처음엔 좀 버벅거렸다. 투표를 많이 해야할 젊은 층들은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조금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이 자주 관심을 갖고 다가왔다. 투표 방법을 알려주면 박근혜 정책에 표를 찍고 가시더라. 그래도 한 중년의 여성은 국민들의 의견에 표를 주시고, 애써줘서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고 가셨다. 준비 안된 상태로 나갔지만, 점점 하다보니 투표 독려 외침이 점점 나아졌다. 임금피크제, 최저임금, 비정규직 등을 키워드로 조금씩 말을 바꿔나갔다. 환경문제에 대한 발언은 대부분 자신있는데,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발언해본 적이 없다보니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어색했다. 어쨌거나 할당된 시간을 마치고 회의하러 나섰다.


월요일 밤에는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지역 시민신문의 편집회의가 있었다. 퇴근길 캠페인을 마치고 바로 간 거라, 저녁도 못 먹었는데, 다같이 배고파 짜장면을 시켜 먹고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치고 당연하게 편집장님과 맥주 한 잔을 하고 집에 가니 12시였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밤 12시에 들어오다니. 일주일의 첫 날부터 아주 힘들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 일찍 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회의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피곤했지만, 억지로 정신을 차려가며 일을 마친 시간은 대략 3시 쯤이었던가? 씻고 누운 건 아마 4시쯤이었을 것이다.


3시간도 채 못 자고 일어나 출근했다. 일찍 사무실에 와서 새벽에 만든 자료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했다. 아침 회의를 하고, 일터 업무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 아침 회의를 마치고 나면 늘 피곤하다. 준비할 게 많아 전날 늦게까지 자료를 만드느라 그렇기도 하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렇기도 하고, 회의에서 나온 여러 내용들이 지치게 만들어서 그렇기도 하다. 그날만큼은 집에서 좀 쉬고 싶었지만, 퇴근 후 모임이 하나 잡혀있었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퇴근 무렵 확인을 해보니, 다행히 모임이 취소되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수요일엔 일터에서 야근을 했다. 중요한 서류 작업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엔 탈핵 캠페인을 나갔다. 이제 날씨가 추워서 장갑을 안 끼고 서 있으니 손이 시려웠다. 다음 주부터는 아침 캠페인 나올 때는 꼭 장갑을 챙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목요일 저녁에는 전환마을 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연대단위에서 새로 준비하는 로컬푸드 식당에 불려가서 김장 준비를 했다. 퇴근 후 바로 달려가서 밤 11시 넘어까지 일했다. 배추가 무려 300포기였다. 다음날인 금요일에 김장을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바로 그 식당에서 녹색당 지역모임에서 김장을 할 예정이었다. 당원들이 직접 텃밭에서 기른 배추로 당원들이 직접 김장을 하기로 했다.


목요일 밤 자정 무렵 집으로 가면서 몸은 피곤했고, 다음날 일정을 생각하면 쉬어야 하지만, 이상하게 술을 안 마시면 잠이 안 올것 같았다.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취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시기라는  생각에 조금 취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안 취하더라.


금요일에도 일정이 많았다. 아침에 외부 회의가 있었고, 오후에도 또 외근이 있었다. 녹색당 김장 준비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퇴근해서 로컬푸드 식당으로 갔다. 헉! 낮에 끝냈거나 혹은 거의 끝나갈 줄 알았던 식당 김장(무려 300포기)가 거의 그대로 있었다. 전환마을 활동가들(대부분 녹색당 당원들)이 아침부터 열심히 일했음에도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갔다. 저녁엔 녹색당 김장(대략 30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 10배를 해야 했다.


몇 해동안 김장을 하면서 (채칼로)무채를 썰고, 배추에 속을 넣는 일은 손에 많이 익었다. 특히 작년 녹색당 김장 이후로 무채 썰기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그날 평생 만든 무채보다 훨씬 더 많은 무채를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채칼이 지금까지 써오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칼 날 수십개가 위로 삐죽 솟아 있었다. 헉! 이런 채칼은 또 난생 처음 보는구나.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손을 움직여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특히 그날 김장의 총 책임자였던 식당 주방장님은 아주 만족하시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무는 끝없이 쌓여있었다. 결국 손에 힘이 빠져 살짝 무가 겉돌면서 손을 살짝 베었다. 피가 맺히는 것이 보이자 얼른 손을 뺐다.(힘들게 썰어놓은 무채 더미에 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다행히 상처는 별 것 아니었지만, 자꾸 피가 배어 나왔다. 


고무장갑을 구해 끼고 다시 채썰기를 시작했다. 힘도 많이 빠졌기 때문에 처음보다 속도가 많이 느려졌지만, 또 한번 다쳤기 때문에 조심하느라 더 속도가 느려졌다. 조심하느라 노력을 했는데도 그 이후 칼날에 고무장갑이 두 번 더 찢어졌다.


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했다. 여럿이 달라붙어 열심히 속을 넣는데, 가만보니 활동가들과 당원들이 김장 경험이 많지 않아 보였다. 속을 배추 깊숙히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냥 양념을 배추에 묻히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설명을 해줬으나,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뭐 어쩔수 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김장을 끝내고 싶었고, 빠르게 속을 채워나갔다.


김장이 끝난 건 전날과 거의 비슷한 시간이었다. 11시 조금 넘은 시간. 그때부터 엉망이 된 식당을 청소하고 정리를 했다. 몸은 정말 지쳤건만, 빨리 청소를 끝내야 술을 마신다는 생각에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바닥을 쓸고 닦았다. 나 자신도 깜짝 놀랐던 건 군대에서 하던 빗자루 두 개를 이용한 바닥 미싱 솜씨가 그대로 였다는 거다. 제대한 지 18년이 넘었는데 말이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물론 중간에 저녁 먹을 때 막걸리 몇 잔을 마시긴 했지만, 그건 본격적인 술자리가 아니었으니) 다음날에도 또 일정이 있었지만, 맘껏 술을 마시고 취했다.


토요일엔 큰 아이가 다니는 공동육아협동조합 터전 이전 때문에 새 터전 공사를 했다. 다행히 지난번보다는 부모들이 많이 나와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난 이틀간의 300포기 김장으로 몸이 무척 힘들었고, 새벽까지 마신 술이 아직 덜 깬 상태였다. 어쨌거나 다른 부모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저녁엔 함께 힘을 쓴 아빠들과 또 술을 마셨다.


일요일 오후엔 일터에서 일을 해야 했다. 일요일이라 텅빈 사무실에 나와 혼자 일을 했다. 최근엔 거의 매주 주말마다 일이 생겼다. 터전 공사가 주말마다 있었고, 일터 행사 혹은 녹색당 행사 또는 참여하고 있는 다른 단위에서 일이 생겼다. 주말 이틀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오히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요일 하루는 술을 쉴 생각이었다. 사흘 연속으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음날 출근 때문이기도 하고, 마침 저녁에 마땅한 약속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웹서핑을 하고 있는데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전화가 왔다. 옛 일터 후배였다. 지금은 충청도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가끔 주말에 본가인 서울로 올라온다. 그 전에 몇 번인가 주말에 전화가 왔었는데, 바빠서 제대로 연락도 못 받았던 게 기억났다. 녀석은 늦은 시간이지만 가볍게 한 잔 하자고 했고, 난 다음날 아침 중요한 일정이 있어 조금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결국 한동안 못 만났던 게 미안해서 나갔다. 1시경 만나 1시간동안 적당히 먹고 헤어졌다. 확실히 술이 들어가면 술이 술을 마신다는 말이 맞는게, 나갈때만 해도 썩 술이 땡기지 않았는데, 막상 헤어지려니까 한 잔만 더 할까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녀석이 잘 끊어줘서 무리하지 않고 돌아갔다.


이번 주도 월요일부터 쉽지 않았다. 아침 일찍 중요한 미팅이 있었고, 저녁에는 간담회가 있었다. 간담회 뒤풀이에서 또 술을 잔뜩 마셨다. 다음날 아침 회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미리 회의자료를 다 만들어뒀다.


화요일은 아침 회의로 시작해서 중요한 일이 몇 있었다. 확실히 새벽까지 술을 마셔서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오후 늦게 외부 회의가 있었는데, 오후에 마쳐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해 늦어버렸다. 외부 회의가 끝나고 또 가볍게 술을 마셨다. 수요일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저녁을 보내면서 맛있는 걸 먹고 싶어 오리고기를 구웠다. 애들 밥을 먹이면서 난 혼자 술을 마셨다.


어제 목요일 아침엔 또 탈핵 캠페인을 나갔다. 정말 추웠다. 두껍게 입고, 장갑도 챙겼건만, 지하철 역 앞에 서 있는데 손도 시렵고, 발도 시렵고, 다리도 차가웠다. 같이 서 있던 당원은 장갑도 없이 맨 손으로 피켓을 들고 서 있는데, 너무 추워보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어제도 야근을 했고, 오늘 금요일도 야근을 했다. 오늘은 저녁에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송년회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거기 갈 생각이었는데, 퇴근 시간까지 중요한 문서를 다 끝내지 못했다.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다 악몽같은 일정이었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일은 마침내 터전 이사가 있다. 아마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몸을 써야 할 것이다. 일요일엔 일정이 세 개나 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중요한 서류 작업이 또 시작된다. 다음 주에도 적어도 이삼일은 야근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드는데, 이렇게 밤 늦게까지 일정(회의, 토론회, 간담회, 야근 그리고 김장!)을 마치고 자정 무렵이 딱 그런 시간이다. 에이! 술이나 한 잔 하고 자야겠다!
















이반 일리치 신간이 나왔다! 다음주까지 지옥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이 책들을 사서 읽어야지 생각했으나, 12월에도 일정이 만만치않다. 젠장! 그렇다고 1월이라고 쉽진 않을거다. 아! 우울하다. 빨리 가서 술 마시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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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8 0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11-2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내려오다보니 얼마나 고단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신지 짐작이나마 하겠습니다. 김장 300포기라니요, 30포기도 아니고 말입니다. 맡으신 일이 워낙 여러가지이다보니 강행군을 하시게 되나봅니다. 건강하셔야할텐데요.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모든 것의 결론은 건강으로 맺게되네요. 기-승-전-건강 이라고나 할까요.

감은빛 2015-12-08 20:34   좋아요 0 | URL
네, 계속 무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김장 300포기는 저로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2015-11-2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정말 바쁘시군요.
16일 세월호 캠페인을 포함해서 따라 읽다보면 하나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일들이라 너무 힘드시겠어요. 그 중에 김장 300포기 압권이예요.
채칼에 손이 베이셨다니.... 물이 안 닿아야 빨리 아뭅니다.
술은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하고 싶지만,
아.... 일이 너무 고되시니 그럴 수도 없을 것 같구요.
힘내세요~~~~~~~~~~~~~~~~~~~~~~~~~~~~~~

감은빛 2015-12-08 20:36   좋아요 0 | URL
이번 주 주말까지 보내고 나면,
조금(아주 조금은) 여유가 생깁니다.
물론 연말이라 안심할 수는 없겠지만요.

염려해주신 덕분에 금방 나았습니다.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11-28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11-2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며칠전 선풍기 청소하다가 날개에 스쳐서 피가 좀 났는데...완전 수선 떨었던게 창피해지는 순간이예요. 잘 지내시죠? 제가 다독다독~^^ 위로하고 응원해드릴게요. 렛츠 치어~ㄹ 업~!

감은빛 2015-12-08 20:39   좋아요 0 | URL
헉, 저는 선풍기 날개에 스쳐 다친 것이 더 아파 보이는데요.
지금쯤 다 나으셨겠죠.
저도 여러 사람들의 응원과 위로 덕분에 금방 나았습니다.

이번 주 주말까지 계속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지만,
양철님의 응원 덕분에 잘 마무리 할 것 같습니다!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