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도무지 이 사람들이 이 나라를 대표하는 정당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도무지, 도무지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내용의 동영상을 버젓이 공개할 수가 있을까? 하긴 공공연히 '못생긴 여자가 접대를 잘한다'는 둥 이런 애기나 하는 사람들의 두뇌 수준으로는 그럴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집단인 한나라다이 현재의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인 것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한겨레신문 2010.5.18 “아는건 쥐뿔도 없어” 한나라 선거동영상 ‘여성 비하’ 

 한나라당이 지방선거 홍보 유시시(UCC) 동영상에서 여성을 뉴스와 정치 현실에 무관심하고 외모로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무식한 존재’로 그려,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은 케이블 텔레비전 인기프로인 <남녀탐구생활>을 패러디한 <선거탐구생활>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8편을 만들어, 이 가운데 ‘여당 편’, ‘후보자 편’을 당 누리집에 공개했다.

‘여당 편’에선 여성을 뉴스를 보려는 남동생을 혐오하는 인물로 그린 뒤 “여자는 뉴스를 바퀴벌레 다음으로 싫어해요”, “여자가 아는 것은 쥐뿔도 없어요”라고 깎아내렸다. 또 남동생이 ‘이명박 정부가 원전 수주 계약을 한 나라는’이라는 문제를 내자 “뉴스는 절대 안 보는 여자에게 이런 문제는 수능보다 더 어려워요”라는 해설을 내보냈다. 그리고 ‘유’(U)로 시작하는 결정적 힌트에 “USA”(미국)라고 대답한 여성에 대해 “여자처럼 무식이 통통 튀는 이들을 위한 막간 상식”이라며 여당의 의미와 한나라당의 업적 등을 집중 홍보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후보자 편’은 여성을 잘생긴 후보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외모지상주의자로 설정했다. 화창한 봄날 길을 걷던 여성은 선거유세 중인 못생긴 야당 후보에게는 “멘트, 외모, 의상이 이상하다”, “저렇게 모양 빠진 후보라니 동정표도 아깝다”는 대사를 날리며 외면한다. 그러나 곧이어 한나라당 남성 후보에게는 “백마 탄 왕자”, “샤방샤방”, “금방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라는 대사를 하면서 한눈에 반해 지지를 결심한다.

야당은 한나라당이 여성을 비하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심재옥 진보신당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만든 홍보동영상에서 나타난 여성비하와 여성에 대한 차별적 표현에 경악할 지경”이라며 “여성유권자들을 이토록 무식하고 철없는 존재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여성들에 대한 모욕이며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성분과위원회도 이날 성명을 내 “여성의 입장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당에서 만든 여성 관련 공약이 진정으로 여성을 위한 정책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한나라당은 진심으로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논란이 확산되자 문제의 동영상을 당 누리집에서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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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0.3.25 [주거의 사회학](1부)뿌리없는 삶-② 가재울 사람들  

ㆍ‘원주민 내모는 뉴타운’ 1300만원에 19년 삶터 빼앗아
ㆍ세입자 30인의 그 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과 북가좌동에 걸쳐 있는 가재울은 서울의 4대 시장 가운데 하나인 모래내시장과 다가구·다세대주택에 2만1662가구의 서민을 품은 곳이었다. 그러나 2003년 2차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이들이 터전을 떠나야 했다. 대가로 손에 쥔 것은 몇 푼 안 되는 보상비뿐이고,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법이 그렇다니 영세가옥주와 주거세입자, 상가세입자들은 마땅히 항의할 곳조차 없다. 2013년까지 10~15층 높이의 149개동, 2만541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나, 돈 없는 이들에게는 방 한 칸 허락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가재울 뉴타운사업을 위해 철거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 남가좌동 118번지 일대의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재개발하는 데로 이사 안 가려고 일산으로 이사왔어요. 여기는 신도시잖아요.”

허모씨(47)는 가재울에서 10년 넘게 편의점을 운영했다. 한달에 600만원 벌이를 했다. 편의점에서 50m쯤 떨어진 다세대주택을 전세 5000만원에 구했다. 2003년 뉴타운 사업이 확정된 이후부터 장사는 서서히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더구나 집과 가게가 모두 재개발 지역에 포함됐다.

보상금은 낮았다. 보증금과 월세 외에 권리금을 5000만원이나 내고 입주한 가게지만 감정가액은 불과 1800만원. 1년6개월 넘게 투쟁한 끝에 상가에 대한 영업손실보상액이 3600만원으로 늘어났지만 같이 장사를 하던 여동생과 절반씩 나눈 뒤 월세와 생활비로 날렸다. 주거 이전비도 4인 가족을 기준으로 1300만원이 다였다. 그는 지금 일산의 20평 빌라에서 월세를 살며, 3년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허씨처럼 재개발사업으로 한층 곤궁해진 세입자 30명의 삶을 들여다봤다.

재개발로 동네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수평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소득이 뚝 떨어지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일산에 사는 허씨의 경우는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다. 주점을 운영했던 이모씨(55)는 지난해 9월 마지막으로 이주에 합의하면서 몸이 나빠지는 바람에 지금은 놀고 있다. 보상금은 2년 넘게 싸우면서 늘어난 빚을 갚는 데 쏟아부었다. 가게를 다시 열 형편이 안 된다. 이렇게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30명 중 7명이다. 23명은 일을 해도 수입이 줄었고, 가게를 열었어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현실성 없는 보상금이다. 16년 동안 벽지 가게를 하던 백모씨(61·여)는 보상금 3000여만원에 합의, 그 돈으로 트럭을 사서 용달업을 하고 있다. 백씨는 “권리금이 너무 비싸서 다른 가게를 구할 수가 없다”며 “보상도 많이 못 받았지, 권리금을 마련할 돈은 없지, 이 나이 먹어서 할 게 뭐가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가재울뉴타운 3구역은 원래 9700여가구였으나 입주 후 3300가구로 줄어들게 된다. 치킨집을 하던 이모씨(35)는 가재울 공사현장을 둘러싸고 있는 ‘서울특별시 뉴타운 사업’ 그림을 떠올리며 “그것만 보면 동네가 아주 좋아질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민들 재산을 빼앗아서 그렇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쓴웃음만 나온다”고 말했다. 이씨는 “뉴타운 얘기가 나오면서 새로운 아파트에는 연봉 5000만원 이상인 ‘수준 높은 사람들’만 입주할 수 있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휘황찬란하게 꾸며 놓은 가재울뉴타운 모델하우스에 가 보고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 덧붙였다.

신모씨(48)는 “개발 때문에 사람들이 싸우고 돈 때문에 이웃 사이에 칼부림이 날 뻔했다. 그 시간들을 기억하는 게 너무 괴롭다”라고 말했다. 염모씨(49)도 “가끔 가재울을 지나가지만 이제는 뭐…. 잊을 건 빨리빨리 잊어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이가 많을수록 개발의 피해는 더 크다.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박모씨(63·여)는 가재울에서 노래방을 6년 넘게 했지만 보상금으로는 다른 곳에서 가게를 열 수 없는데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조차 없다며 허탈해했다. 박씨는 “뉴타운을 안 했으면 한 달에 200만원 벌이는 됐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밥벌이를 하겠어. 나이 먹은 사람은 죽으라는 거냐”고 말했다.

서모씨(54)는 “헌법에 기본권이 보장돼 있다지만 19년씩 생활한 사람을 단돈 1300만원에 나가라고 하는 게 실정법”이라며 “이 나라는 업자들을 위해 법을 적용하고 구청장과 공무원들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월 당시 현동훈 서대문구청장은 기획부동산업자의 청탁을 들어주고 집무실에서 상습적으로 떡값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가재울은 어떤 곳?… 서울의 대표적 서민동네 

ㆍ모래내·서중시장 중심

가재울은 2003년 11월 뉴타운 사업 지역으로 지정됐다. 1구역부터 6구역까지 모두 6개 구역으로 나뉘어졌다.

1구역은 2008년 12월에, 2구역은 2009년 6월에 준공돼 아파트 입주가 끝난 상황이다. 1, 2구역은 비교적 규모가 작어 사업이 빨리 진행됐기 때문이다. 3구역은 철거를 마친 뒤 지반정비 작업 중이고, 4구역은 철거작업이 91% 진행 중이다. 5, 6구역은 현재 조합이 설립된 상태로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재울은 빈손으로 들어온 서민들이 삶을 일구고 가꾼 곳이다. 해방 직후 일본에서 송환되어 온 재일교포들이 먼저 남가좌동에 자리잡았고, 1959년에는 사라호 태풍으로 수재를 입은 한강변 이촌동 주민들이 옮겨왔다. 60년대 초반에는 서울시가 도심 정비를 하면서 철거민들을 강북구 미아동과 가재울의 남가좌동 152번지 일대에 마련한 정착촌으로 이주시켰다. 후암동이나 도동 일대 판잣집에 살던 사람들도 이때 들어왔다. 사람이 모여들고 지역이 활기를 띠면서 쓰레기 매립지로 활용되던 곳에 66년, 73년 각각 모래내시장과 서중시장이 들어섰다. 시장이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사람들은 시장을 키워갔다.

경의선 가좌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교통은 시장을 더욱 번창케 하는 요인이 됐다. 또 수색로가 확장되면서 일산과 능곡 등 경기 서북부지역의 값싸고 싱싱한 농산물이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모래내시장은 품질 좋은 고추와 참깨, 들깨로 유명해 고추방앗간, 기름집이 번성했다. 모래내는 일산, 수색 등지를 아우르는 서북부지역의 중심 시장으로 자리잡아갔다.

가재울에 사람이 모여든 또 하나의 계기는 62년 사천교 개통이다. 다리가 수색과 신촌을 이으면서 경기와 서울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였다. 신촌이나 아현동처럼 서울 시내와 가까운 곳보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가재울로 ‘서울 입성’의 꿈을 안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당시 원주민들은 밭농사를 지어 아현동이나 수색에 내다 팔았고, 농사를 지을 기반이 없던 이주민들은 서울역 주변에서 지게품을 팔거나 건축 현장의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런 가재울이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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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사세요?'라는 답을 하거나, 은행같은 곳에서 자신의 주소를 쓸 때 몇몇 사람들은 묘한 느낌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참고로 봉천6동(현재는 행운동은로 개명)에 산다. 자신의 주소명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으로 인한 자신감내지 소외감 같은 따위의 사소한 감정 변화 ... 문제는 이게 내 개인의 예민함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이다.

경향신문 2010.3.22 [주거의 사회학]어디 사세요?

서울 동대문의 ‘답십리 뉴타운 16구역’. 골목길이 동네 사이를 휘저으며 다세대주택들을 핏줄처럼 잇고 있다. 한때 가족들을 품었던 단독주택들도 올망졸망 들어서 있다. 지금은 유리창과 문짝이 깨지고 뜯겨나간 채 주택도, 골목길도 온기를 잃었다. 벽과 지붕의 뼈대만 남았다. 철거가 시작되자 주민들이 시나브로 떠나 빚어진 살풍경이다.  

 

 "여기 헐리면 유명 건설회사가 고층 아파트를 올린답니다. 브랜드 중에 제일 비싸다는 그 아파트 말입니다. 세입자만도 1000가구가 넘던 동네인데 이제는 마흔 가구만 남았어요. 지난해 10월, 머뭇거리다간 보증금도 못 받을 수 있다는 풍문이 돌자 주민들이 피란 가듯 급하게 짐을 싸서 떠났죠.” 세입자 대표인 이영수씨의 전언이다.

이씨를 따라 유리 파편과 벽돌 부스러기가 밟히고, 담벼락에는 철거 구호가 난무하는 골목 모퉁이를 돌자 확 트인 언덕배기가 나왔다. 맞은 편 배봉산 자락에는 스무 동 남짓한 고층아파트가 병풍처럼 산을 둘러싸고 있다. 산은 제 모습을 잃었고, 아파트 군락은 서서히 죽어가는 이쪽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듯했다. 3월 현재, 이곳의 철거 작업은 ‘백지동의서로 설립된 조합은 무효’라는 법원 판결에 따라 중단됐다. 헐다만 철거현장이어서인지 더욱 을씨년스럽다.

답십리에서 50년을 살았다는 신모 할아버지(79)처럼 영세 가옥주나 세입자들은 두 배 이상 뛴 주변의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규모를 줄이거나 경기 남양주 등지로 옮겨갔다. 신 할아버지는 “딸한테 2000만원을 빌려 남양주 빌라로 이사를 갔다”며 “내 한 몸 누울 수 있는 공간이면 그만인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한 청년이 끼어들었다.

“집을 가진 조합원들도 딱하긴 마찬가지죠. 분담금이 처음보다 평당 500만원까지 올랐대요. 그 정도 비용을 감당할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재개발이 끝나면 집값이 뛸 것이라는 주민들의 희망과 기대는 꺼지지 않았지만 청년의 말처럼 가옥주라 하더라도 정착률은 20% 안팎인 게 현실이다.

‘집’은 이제 주거 이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모든 문제를 농축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당락을 가르는 토건공약, ‘사는 집’이 아닌 ‘파는 집’에 매달려온 건설업체, 여기에 편승해온 우리 안의 욕망이 유착한 결과다. 세입자의 경우 2년마다, 집이 있더라도 5년마다 이사를 가는 ‘신(新) 유목민’ 사회의 주 원인이다. 정치·사회의 지형까지 바꿔놓은 악순환의 3각 고리는 깨지기는커녕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사는 지역과 집 소유 여부, 주택 형태에 따라 계급과 신분이 정해지고, 삶의 질마저 저당 잡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은 ‘현대판 호패’인 양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경향신문은 그러나 그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려 한다. 세계 2위의 집값 상승률, 소득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 임차료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그 집을 욕망하고, 그 욕망에 좌절하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ps :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애착 보다 돈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실태와 관련하여 한겨레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있어 스크랩한다. 독일 예술가가 우리나라의 재개발 열풍을 풍자한 작품인데, 이 작가가 하는 말이 와 닿는다.   

 

한겨레 신문 2010.5.13 청와대 옆에 ‘떴다방’ 떴다?
독일 작가, 한국 재개발 풍자
통의동에 ‘부동산’ 본뜬 작품  

“청와대 옆동네를 재개발한다고? 대통령 결단이여? 평수는 얼만데?”

“아니, 주민도 모르게 재개발을 하나?”

요즘 청와대, 경복궁의 서쪽 맞은편인 서울 통의동 30번지 주택가에서 이런 대화를 두런거리는 행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지난 7일 이 골목 한귀퉁이에 등장한 컨테이너 부동산 사무소가 이곳 일대를 아파트 단지로 전면 재개발하는 조감도를 내걸면서부터다.

사무소는 ‘로얄 블루 부동산’이란 형광등 간판을 달고 인근 건물 공사장 한쪽에 붙어있다. 특이하게도 정면은 모두 유리창이다. 들여다보면 안벽에 통의동 일대 주택가를 헐고 18층짜리 첨단 아파트 단지 수십여동이 청와대와 마주한 미래 모습을 그린 조감도가 빛난다. 간판 전화번호는 ‘02-77*-8888’. 그러나 걸리지 않는 번호다. 그렇다면 가짜? 그렇다. 이 부동산은 죄다 가짜다. 조감도도 부동산 간판도. 알고보니 속임수를 쓴 예술가의 설치 작품이다. 내부 시설또한 탁자와 의자 2개, 난초 화분과 떨어진 딸기, 꽃이 전부다. 옆 공사장도 전시화랑 건물이라 미묘한 울림을 던진다.

작품을 만든 이는 올리버 그림이란 46살의 독일 영상설치 작가다. 건설 현장의 ‘부동산 사무실’과 비슷한 구조물을 설치해 재개발의 ‘몰상식적인’ 아이러니를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 14년전부터 한국에 와 작업하면서 미대 강사로도 일해왔다는 그는 “청와대 앞 재개발 조감도를 보고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 그들이 재개발의 모순을 새삼 느끼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제가 사는 곳이 용산구 보광동인데, 최근 여기서도 한남 뉴타운 재개발 공사가 서민들 반대에도 막무가내로 벌어지는 걸 보고, 작업을 생각하게 됐어요. 컨테이너를 쓴 것도 재개발 때 버섯 피듯 난립하는 가건물 부동산들에서 영감을 얻었지요.”

작가는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게 툭하면 전통을 외치는 한국인 대부분이 아파트에 사는 걸 좋아하고, 자기 살던 동네를 마구 허물어도 돈만 주면 좋아하는 모습들이었다”면서 “재개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통의동 예술공간 쿤스트독의 공간 프로젝트인 이 설치 작품은 27일까지 ‘영업’한 뒤 철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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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 - 아기 안에 잠든 언어 능력 깨우기
로버타 미치닉 골린코프 외 지음, 문채원 옮김 / 교양인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아들의 출생과 옹알이 시작 또한 기면서 아이의 변화에 대해 조금씩 뒤늦은(?)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책과 글들을 읽고 있다. 그 중 아이의 언어 습득에 관련된 책을 두 권 읽고 있는데 그 중 한권이 '아이는...'이다.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평이한 수준의 내용이다. 출생 월령별 단계로 나누어 놓았는데, 난 12개월 까지 읽어 보았다. 우리 규진이가 9개월인 관계로 돌이 지나면 나머지 부분을 읽어 보련다. 중요한 내용을 밑줄 그어본다. 

1장 요람 속 언어 천재, 태아-생후 3개월

 

2장 아기의 발성 연습, 4-8개월 

p.75 이 시기에 아기들은 처음으로 입술을 부르르 떠는 소리(투레질)를 내고 큰 소리로 웃는다. ... 4개월 된 아기가 어른이 함께 있을 때 소리를 더 많이 낸다면 발성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눈맞춤이다. 

p.76 아기가 옹알이할 때 어른이 끼어들면 아기는 소리를 마구 쏟아낸다. 반면 옹알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른이 말을 하면 아기는 조용히 어른을 유심히 쳐다보고는 어른의 말이 끝나면 미소를 짓는다. 그런 다음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 어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아기는 어른이 말을 마치고 나서야 옹알이를 한다. 4개월만 되어도 이미 아기들은 어른이 하는 말을 듣고 대화하기를 즐긴다. 

p78 세상의 모든 언어에서 왜 엄마(마마) 소리가 가장 발음하기 쉽고 비슷한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기들이 초기에 쉽게 낼 수 있는 소리를 이용해 엄마라는 말을 만든 것 같다. 

p.81 옹알이는 그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자신이 내는 옹알이 소리를 듣지 못하면 아기는 나중에 다양한 소리를 내지 못한다. ...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때는 소리 크기와 억양을 다양하게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억양에 따라 똑같은 말이라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 과학자들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15초 동안 녹음된 옹알이를 들려주고 나서 프랑스 아기인지 아닌지 맞혀보라고 요청했다. 참가자들은 옹알이 소리만 듣고도 프랑스 아기를 거의 알아맞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참가자들은 옹알이의 리듬과 억양을 듣고 판단을 한 것이다. 

p.83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볼 수 있지만 시력은 0.1에 불과하다. 하지만 4-5개월쯤 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이 시기에 아기들은 눈앞에 있는 대상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p.91 여러 실험에서 4개월짜리 아기들이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p.93 그렇다면 4개월 된 아기들이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다는 말인가? 아기들은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아기는 자기 이름을 알기 전에 그 이름이 내는 소리를 인식하는 것 같다. 아기가 자기 이름을 알고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려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아기가 고개를 돌리는지를 보면 된다. 만약 아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기대에 차서 쳐다보면 자기 이름을 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가 실험한 결과 이런 반응은 6-7개월에 나타났다. 

p. 97 아기들은 익숙해진 단어의 저장고를 만들어, 나중에 단어와 의미를 연결하는 방법을 배울 때 필요한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놓는 중이다. 아기들은 들은 것을 기억함으로써 언어의 기초를 다진다. 

p.99 이름은 그것이 뜻하는 바와 자의적으로 연결된다. 단어의 소리는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기가 처음 단어와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의 자의적 관계를 배울때, 대상이 움직이는 순간 이름을 말해주어야만 그 관계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이 많이 있었다. 

p.104 아기와 잡담을 나누는 부모는, 언어의 흐름을 만드는데 이용되는 소리와 침묵을 강조함으로써 아기가 말을 배우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p105 가벼운 혼잣말을 아기 말로 해주면 아기가 집중할 것이다. 기저귀를 계속 갈아주는 것처럼 똑같은 말을 계속 해주면 언어로 하루 일과를 구별하는 방법을 아기가 배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자, 이제 다리 들어야지, 우리애기, 엄마가 잠옷 입혀줄게. 그렇지, 아주 잘했어."아기가 이해하는 중요한 의미 몇 가지는 분명 이런 일과라는 맥락에 들어 있다. 잘 짜인 일과 속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는 언어 학습의 밀알이 된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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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2010.3.22 뿌리 없는 삶 -① 신 유랑시대

ㆍ월세·전세… 반지하·옥탑방 전전, 20년을 살아도 서울은 언제나 ‘타향’

뿌리가 없다. 세입자들은 떠밀린다. 소득보다 더 빨리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 보증기간인 2년을 채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집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이 될 집, 보다 큰 집, 아니면 자식 교육에 필요한 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5년이 채 안돼 이사를 하는 건 다반사다. 뿌리 없는 삶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풍토병이라 할 만하다. 자신이 속한 동네와 사회에 관심조차 없어진다. 무관심이 우리 사회의 주된 정서가 된다. 주거는 더 이상 ‘살아가는 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문제다.

3명 중 1명이 세입자…월세 10명 중 6명이 2년이상 거주못해

“늘‘타향살이’하고 있는 것 같죠. 서울에 정착하려고 올라왔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이 내 땅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모상만씨(44·가명·택배업)는 스무살인 1986년 서울로 올라왔다. 24년 동안 8번이나 이사했다. ‘세입자’인 그는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장안동, 신길동, 면목동, 답십리동 등지에서 전세와 월세를 번갈아 살았다. 현재 그의 세 가족이 사는 곳은 동대문구 답십리 1동의 42.9㎡(13평) 크기 옥탑방이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4.0%이자 수도권에 94% 이상이 몰려있다는 ‘옥탑 또는 지하’ 거주 63만8000가구(통계청, 2005년 기준) 중 한 가구인 셈이다.

갓 상경했던 24년 전 그는 착실하게 15년쯤 아껴쓰고 저축하면 집을 장만할 목돈이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내 집’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았다. 늘 임대 보증금 상승폭이 월급을 앞질렀다. “집주인이 옆동네 재개발했다더라, 아파트가 들어섰다더라며 그쪽 집값이 올랐으니 우리도 월세를 올려야 한다는데 세입자 입장에서는 그 말이 그렇게 겁나더라고요. 재개발이 아니더라도 연립주택 3~4동을 밀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으면 그 주변에 금세 여파가 오거든요. 세입자들이 한꺼번에 밀려나니까 인근 월세가 5%쯤 오르는 식이죠. 집주인들끼리 ‘옆동네는 그 평수면 얼마씩 받는다’며 집세 인상을 부추기기도 하죠.”

 

주먹구구식 전·월세 시세는 주변 시세에 따라 춤추기 일쑤다. 몇 ㎡에 얼마 이상은 받을 수 없다는 상한선은 아예 없다.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세입자의 권리도 서러웠다. 반지하가 폭우로 침수돼 누전됐을 때 ‘자연재해 때문인데 왜 나한테 집을 고쳐달라고 하느냐’는 집주인의 말에 울컥했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발소리가 크다며 집주인에게 아이들이 타박당할 때는 속이 상했다. “건물주는 주인으로 돼 있지만 전세로 계약했으면 2년 동안은 나도 공동 공간을 사용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따지고 싶었다. 입에 올리지는 못했다. 집주인 앞에서 한사코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세입자의 설움이다.

개발 바람도 세입자들을 고달프게 한다. 그가 살던 답십리 1동 62.8㎡(19평)의 빌라 전셋집은 2008년 2차 뉴타운 계획에 포함되면서 갑작스레 비워야 했다. 원래 갖고 있던 보증금 4000만원에다 친척에게 3000만원을 빌려 7000만원짜리 집을 구해보려 발품을 팔았다. 면목동, 용답동, 장위동, 사근동 일대를 뒤졌다. 방이 없었다. 재개발 여파로 인근 지역의 전셋값까지 함께 뛰었다. 전에 살던 집과 같은 넓이의 집은 1억~1억2000만원이었다. 7000만~8000만원을 대출받기에는 이자 부담이 너무 컸다. 결국 모씨 가족은 2008년 재개발지역이 아닌 답십리1동의 현 옥탑방으로 이사했다. 그는 “앞으로 또 집값이 오르고 보증금이 더 오른다면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웃인 이종섭씨(40·가명·무직)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2000년부터 보증금 7000만원짜리 전세에 살던 이씨의 네 가족은 전셋값이 오르면서 반지하방으로 밀려났다. 2008년부터 답십리 1동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방 두칸이 있는 42.9㎡(13평) 집에서 산다. 지하 또는 반지하에 산다는 서울시 전체 330만9890가구 중 10.7%인 35만5427가구(통계청, 2005년기준) 중 한 가구에 해당한다.

집에 들어서면 습기로 축 처진 장롱 뒤 벽지에는 검은 곰팡이가 얼룩덜룩하다. 집안에서 해가 드는 날이 없어 한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한다. 환기도 잘 되지 않고 비오는 날이면 하수구 냄새가 흘러든다. 폭우라도 내리면 침수 걱정에 잠이 안온다. 정작 ‘지상’에 방을 얻을 여윳돈이 없다. 중식 요리사인 그는 요즘 일마저 쉬고 있다. “서민 사는 동네가 다 비슷하죠. 정규직이라고 하면 은행에서 대출이라도 받겠지만 비정규직이 어디 은행 문턱을 넘겠어요, 그렇다고 가진 집이 있어서 주택담보 대출을 받겠어요. 집이 없으면 평생 집 없이 사는 세상같아요. 전세 살다가 오르면 월세로 밀려나고, 땅 위에 살다가 반지하나 옥탑으로 떠밀려 가는 거예요.”

두 이웃은 서로의 처지를 자조하며 “‘반지하’ 이씨는 햇빛을 못봐 얼굴이 떴고, ‘옥탑방’ 모씨는 햇빛을 너무 받아 말라간다”며 웃었다.

집 가진 사람들도 투자·교육 때문에 5년에 한 번 이사

세입자들이 한 동네에서 안정적으로 주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05년 인구총조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총 1589만가구 중 전세는 333만가구, 월세는 305만가구에 달한다. 전체 가구의 40%가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세입자들이 한 동네에서 오래 사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월세 사는 사람 10명 중 6명이 한 곳에서 2년 미만 거주한다.(통계청, 2008) 월소득이 179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일수록 ‘집세가 비싸서’, ‘집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집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국토연구원의 ‘2008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자발적 이동 비율은 저소득층이 8.62%로 고소득층 3.46%의 2배가 넘는다. 월소득 179만~350만원인 중소득층도 7.12%가 자기 뜻과 상관없이 떠밀려 이사했다.

임대료는 성큼 성큼 오르는데 소득은 거북이 속도로 느는 게 주 원인이다.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수도권이 2006년 19.9%에서 2008년에는 22.3%로, 같은 기간 광역시는 18.5%에서 19.3%로 상승했다. “1억원짜리 빌라에 전세사는 데 집주인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2000만원을 올려달라는 데 목돈 구하기 힘들다”(서울 강북구 한모씨)거나 “출산을 앞둔지라 집주인이 8500만원짜리 전세보증금을 2000만원씩이나 갑자기 올려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기도 힘들었다”(경기 구리시 이모씨)는 이웃들의 하소연을 어렵잖게 접한다.

임대 가격은 얼마나 올랐을까.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월부터 2010년 1월까지 아파트 전세금은 전국적으로 76.6%, 그중 서울은 81.3%(강북 75.7, 강남 84.9) 올랐다. 서민이 많이 사는 연립주택의 경우도 같은 기간 전국적으로 52.3%, 서울의 경우 55.6%가 올랐다. 평균 잡아서 10년 전 1억원짜리 아파트 전세가 올해에는 1억7000만~1억8000만원, 연립주택은 1억5000만원이 된 셈이다.

서민은 울상이다. 2006~2008년 두 해 사이만 해도 수도권 전셋값이 꿈틀거리면서 8.2%가 올랐다. 1999~2001년 사이에 아파트, 연립주택, 단독주택 모두 임대료 상승률이 해마다 두자릿수였던 적도 있다. 서울에서 ‘싼 전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닥터아파트’는 수도권 안의 1억원 이하 전세아파트가 3월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10만237가구 줄어든 109만199가구라는 조사 결과를 최근에 내놨다.

세입자가 ‘주택 보유자’가 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일하는 사람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일 정도로 고용불안이 심화된데다 물가 상승, 집값 상승이 겹치면서 내 집 마련을 위해 돈을 모으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연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을 봐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사는 1분위 저소득층이 주택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1분위 가격의 주택을 구입하려 할 경우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고, 꼬박 소득을 모아도 무려 19.3년이 걸린다.(2009년 9월 기준) 3분위 중산층이 평균적 가격의 주택을 사는 데도 12.2년이 걸린다. 유엔은 3년에서 5년 정도 연수입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우리는 유엔 권고치의 3~4배를 웃돌고 있다.

전셋값을 잡겠다며 정부와 시장에서는 주택 공급량을 늘렸으나 집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전세 살던 세입자들이 허리띠를 졸라 집세를 더 내거나, 집을 줄이거나, 외곽으로 이사하거나, 월세로 내려앉거나, 반지하나 옥탑방 등 열악한 주거로 밀려나는 현상이 벌어진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손낙구씨는 “2000~2005년에 셋방 사는 가구 비율이 43%에서 41.4%로 1.6% 줄어들었지만, 셋방 사는 가구수는 615만에서 657만으로 42만가구가 더 늘어났다”면서 “같은 기간 주택이 175만가구가 늘었지만 셋방 사는 가구는 증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사갈텐데…” 공동체 관심 없는 이방인의 삶
 

“셋방 가구 중에서 전세 가구가 48만이 줄어든 반면, 월세 가구가 90만이나 늘어난 것”이라는 그의 진단은 주거비용 상승으로 겪는 서민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사실 세입자와 주택보유자를 불문하고 우리나라는 인구의 19%가 해마다 이사를 다닌다.(한국도시연감, 2008) 전 인구 5명에 1명꼴, 한 해에 약 870만여명이 이삿짐을 싸고 푼다는 얘기다. 산술적으로 볼 때는 5년이 지나면 한 동네가 낯모르는 이방인으로 채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읍·면·동’의 경계를 넘는 비율인 17.8%라는 숫자는 일본(4.3%)의 네배에 달한다.

집 가진 사람들도 5년에 한번 꼴로 이사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재산 증식을 고려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경기 김포의 풍무동에 거주하는 주부 윤모씨(38)는 지난 10년간 4번 이사했다. 목돈을 만지는 데 부동산만한 것이 없다고 여겼다. “1999년에 결혼하면서 오피스텔 전세로 신혼을 시작했는데, 집을 못사면 평생 전세를 전전할 것 같아서였죠.” 그는 이어 2001년 경기도 평택에 32평짜리 아파트를 7250만원에 매입했다. 2005년에는 이 집을 되팔아 2배 가까운 이윤을 남기고 서울로 이사했다.

아이 학교와 남편 통근거리도 감안했지만 “부동산으로 한번 큰 돈을 벌고 나니 서울에서 더 큰 이윤을 남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구의동에 25평짜리 아파트를 대출 7000만원을 끼고 산 뒤 2008년에는 경전철 확정 발표가 난 김포 풍무동에 다시 대출을 끼고 2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1가구 2주택자’인 한모씨(49)도 “집만큼 좋은 투자대상이 없다”며 4년에 한번 꼴로 이사했다. 1996년 논현동의 30평짜리 아파트에서 시작해 같은 아파트의 50평형, 그 다음에는 대치동의 50평대 아파트를 5억원의 은행대출을 받아 구입했다. 이자로 한 달에 몇백만원이 나가지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의든 타의든 잦은 이사는 ‘이방인’들을 낳는다. ‘재테크’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윤씨도 “한편으로는 잃은 것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새 동네에 이사갈 때마다 마트와 약국, 빵집을 찾는 사소한 일까지 적응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아이의 경우 유치원에서 ‘친구하자’는 또래의 말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는 이사가기 싫다고 울기까지 해서 미술심리치료를 받기도 했어요.” 그는 한동네 살면서도 이웃과 유대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 반상회에 가도 무관심해진다. ‘또 이사갈 텐데’라는 태도가 몸에 밴 것 같다고 고백했다. 답십리의 모씨는 “주거 안정이라는 게 (임대계약인) 2년으로 정해져있는데, 이후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애향심이 생기겠느냐”고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 동네 정치를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속된 말로 ‘해쳐먹든지’, 국회에서 싸움질을 하든지 의미가 없다니까요. 내 표가 귀중한 표라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ps : 그래도 나에게는 '고향'이라는 마음의 장소가 남아있다. 물론 물리적인 공간은 없어져 버렸지만...위 글에서 나오는 "뿌리 없는 삶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풍토병"이라는 말은 일종의 '심상적 고향'의 부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 인간의 '뿌리'를 고향에 한정지을 수는 없지만 '고향'이라는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인간 관계가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때 현대인들의 '고향'의 부재는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다 못해 맛있는 빵집 찾는 일에서부터 아이들의 친구 사귀는 문제까지...이런 내용에 참고가 될만한 논문이 대한지리학회 제35권 3호에 '한국인의 고향관: 그 지리학적 요인과 정서(ethos)의 관계'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아마도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은 잦은 이사로 인해 고향이란 단어의 의미를 모르지 않을까 한다. 이와 관련해서 읽어보고 싶은, 그리고 읽으려 예전에 구입했던 책이다 얼른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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