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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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 칸막이로 된 작은 공간에 누워있는 소녀들. 공간 문 밖에서 줄 서 있는 일본 군인들. 하루에 수십 명을 받아내야 했던 열세 살 혹은 열네 살, 열다섯 살의 소녀들. 지옥이 따로 없는 그 공간들. 냇가에서 삿쿠(콘돔)을 빨래하는 소녀들의 얼굴이 그나마 평화로워 보였었다. 영화 「귀향」의 한 장면이다. 김숨 작가는 영화  「귀향」 과 닮은 소설을 펴냈다. 살아돌아온 위안부가 마지막 한 명 남았다는 가정하에 썼던 『한 명』에 이어 『흐르는 편지』는 위안부들이 속해있는 위안소의 그 지옥으로 향한다.

 

비단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동네 아저씨에 의해 트럭에 올라탔던 소녀. 바늘 공장, 고무 공장에 가서 돈을 벌겠다는 말에 혹해 하나라도 입을 덜어주겠다는 마음으로 나섰던 소녀들은 위안소라는 지옥으로 흘러들었다. 머나먼 중국 땅인 만주에서 일본 군인들을 받았다. 제대로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위안소에서 지급하는 모든 것은 그들의 빚이 되었다.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들을 받아냈던 어린 소녀들은 아래가 곪고 헐었다. 삿쿠가 터져 임신이라도 되면 자궁을 들어내었다. 그 어린 소녀들에게 일본은 어떠한 만행을 저질렀는가. 겨우 열세 살, 열네 살에서 열여덟 살의 소녀들에게.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위안소에 있던 소녀들의 사연이 잔혹했다. 입에 풀 칠하기도 어려웠던 가족들, 가난을 피해 나온 길이 지옥인줄도 몰랐다. 소녀들은 말한다. 무슨 죄를 지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고.

 

 

열다섯 살의 소녀 금자, 일본군인들이 붙여준 이름은 후유코. 그 외에도 열 개쯤 되는 일본 이름이 있는 소녀. 임신을 했다. 아기가 죽어버리길 바라며 흐르는 물에 손가락으로 편지를 쓴다. 글을 알지 못해 어머니에게 불러주는 편지다. 닿지 못할 편지를 쓰며 소녀는 아기가 뱃속에서 죽길 바란다.

 

소녀들을 지옥에 있게 한 일본 군인들이 전쟁에서 졌으면 좋겠지만 한 편으로 이기길 바란다. 만약 일본군이 지면 소녀들의 목숨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옥의 한 복판에서도 삶을 꿈꾼다.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일본군이 이겨 돌아오길 바라고, 살아 돌아 와달라고 빌어주라는 말에 마치 그들의 어머니처럼 살아오라는 말을 건넨다.

 

그들의 몸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위안을 해주어야 하는 소녀들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중국인들, 어린 소녀들의 죽음. 죽음앞에 눈을 돌리고 살길 바랐다. 살아서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주소도 모르는 소녀들이지만 집으로 향한 꿈을 매일 꾼다.

 

작가가 『한 명』을 쓸 때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40명쯤 살아있었다면 이 소설이 쓰여진 2018년에는 겨우 27명이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온전한 기억으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몇 명 남지 않았다.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일본은 과거 일제 강점기에 징용에 관련된 일로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헤쳐나가지 않을까 희망에 찬 마음을 품고 있다. 다른 방법을 찾아낼거라고. 고통스러운 지옥에서도 소녀들이 살아남았듯.

 

어머니, 그런데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먼 데까지 끌려와 조선삐가 되었을까요. (291페이지)

 

소녀들의 아우성 때문에 깊은 잠이 들 수 없었다.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계속 들려왔다. 마치 내 귓가에 소리치듯 그렇게. 글을 쓰는 작가 또한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금자가 되어 내레이션을 하듯 말하며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치달은 그 지옥 속에 살았을 것이므로. 살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우리가 그때의 상황을 알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살아남았기에 가능한 일이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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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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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데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알고 있는 인물인데 작가를 어디서 봤더라. 한참을 생각해봤다. 프로필을 보고는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이웃임을 알게 되었다. 미술 관련 자료를 찾다가 작가의 블로그에서 발견했었다. 이웃 신청하고 글이 올라올때면 조용히 지켜보았던 독자였다. 미술관련 글을 쓰는 기자 분들 중 몇 분을 팔로우하고 있다. 마음속에 자리한 미술에 대한 갈망을 타인들에게서 푸는 것처럼.

 

제대로 글을 읽은 기억이 없고 그림만 보았었기에 작가의 글을 잘 알지 못했다. 늦게 꽃핀 대가들을 말하는 글에서부터 작가의 열망이 드러났다. 문학과 예술부분의 많은 작가들이 늦은 나이에 데뷔하여 꽃을 피웠다. 마흔 살이 되어 등단한 박완서 작가나 피에르 르메트르 작가도 꽤 늦은 나이에 데뷔하여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말하며 그 기조에 미술이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미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작가가 언급한 그림들에서 익숙함을 발견했고 반가움이 들었다.

순전히 샐리 호킨스 때문에 본 영화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함께 본 이와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작가가 말한 것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괴생명체를 사랑하게 된 일라이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그녀의 외로움이 괴생명체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말이다. 제임스 진이 그린 <셰이프 오브 워터>가 익숙한 아름다움을 준 그림이라 여겼었지만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참고했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두 그림을 마주하고 보니 전체적인 구도가 닮았다는 게 느껴졌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한다. 벚꽃잎들이 휘날릴때면 그저 마음이 설렌다. 이처럼 벚꽃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자체는 벚꽃축제를 한다. 벚꽃하면 일본이다. 일제 강점기기 생각나서인지 사람들은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임을 밝혔었다. 나 또한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일본에는 벚꽃을 말하는 하이쿠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걸 보면 벚꽃은 일본인들이 사랑한 꽃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말했다시피 우리나라엔 주로 매화나 진달래꽃을 노래했다고 한다. 혜원의 그림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말이다.

 

TV의 코미디 채널에서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왔을 때 웃기려고 참 고생하는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지 인종차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국내에서 바라보는 것과 외국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불편하게 바라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또한 아시아계 인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면 매우 기분나빠하지 않는가. 세계화와 세계시민의식을 일깨우는 말에 뜨끔했다. 아니라고 하지만 은연중에 그런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미술관련 서적에서도 읽은 바 있지만 영국박물관에는 한국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한국관과 일본관, 중국관의 차이점을 말하는데 아무래도 국가의 차이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중국관과 일본관과는 다르게 심플하게 몇 작품만 있는 있어 빈약한 유물 전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백자 달항아리는 많은 예술인들이 아름답다 말하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 고유한 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커다란 달이 떠 있는 듯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의 에세이를 먼저 읽었다. 하정우도 에세이에서 자신의 먹방 이야기를 했었는데 문소영 작가 또한 먹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하정우를 언급했다. 영화 <황해>에서의 하정우의 먹는 장면을 담은 사진과 함께 말이다. 하정우는 먹는 장면을 찍을 때 식은 음식 말고 따뜻한 음식을 주라고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맛있게 먹는다고 한다. 먹방에 대한 이야기를 『제인 에어』 속의 문장을 말하며 고전문학 작품 속에서도 먹는 장면이 꽤 많았다는 걸 말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 대하여 말하는 글이다. 삶의 통찰을 다루는 글들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시였다. 나에게 두 갈래 길이 있을 때 내가 갔던 길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신비로움을 말했다. 인생이란 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그 길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렸다. 훗날 과거를 떠올렸을 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 받았을 때, 어떠한 시기로 가겠다고 답을 하곤 했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역시나 그 시기로 가도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다. 그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예술에 대한 저자의 특별한 감각과 함께 폭력과 문화 또는 유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담았다. 문학과 일상에서 바라보는 수많은 예술적 감각을 기르는 방법들을 말했다. 느리게 혹은 게으르게 가도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할 일이 덜하지 않을까.

우리의 인생도 이런 망설임과 선택의 연속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길을 택하든, 가지 않은 길은 그 미지로 인한 신비와 아쉬움을 황홀한 안개처럼 두르고 저 멀리에 있을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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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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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나이가 들어 조금씩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적 기억들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에겐 선명하게 기억하는 장면들이 몇 있다. 너댓 살의 기억으로 동생이 태어나던 장면은 마치 그림처럼 선명하다. 증조 할머니와 함께 창호지 문밖을 내다보았던 일, 스님이시던 친척 분이 집에 방문하셨을 때 온 방을 갈고 다니던 내 잠버릇 때문에 잡아가겠다고 하셔서 놀라 반듯하게 누워 자던 장면 등. 누군가의 말로 기억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 소설을 정확하게 10년쯤 읽었다. 오래전에 간단하게 썼던 리뷰를 발견하고는 다시 기억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읽으며 이어질 내용을 기억할 수 없었다. 한참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들에 빠져 있었을 때의 독서였다.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학대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게 가졌었던 것 같다. 그때 쓴 리뷰에서도 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던 걸 알 수 있었다. 폭력은 대물림된다는 크나큰 주제였다. 더불어 히가시노 게이고식 퍼즐 찾기에 예전에 읽었던 책임에도 처음 읽는 것처럼 빠져 읽었다.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7년 전에 헤어졌던 사야카 라는 여성의 전화였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사야카는 어릴적 기억을 찾는데 도움이 되어 달라고 했다. 사야카의 아버지가 남긴 유품 속에서 낡은 지도와 열쇠를 가지고 그곳에 찾아갔다. 현관 쪽 보다는 지하실에서 입구를 발견하고 들어간 곳은 전기와 수도를 쓸 수 없는 버려진 집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념이 된 듯한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사야카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없었다. 어떠한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던 걸까. 아버지가 남긴 열쇠에서 자신의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집은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2월 11일 11시 10분에. 미쿠리야 유스케를 기리는 글들과 유스케가 썼던 일기장에서 그 집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들을 찾으려 애쓴다. 초등학교 6학년때 죽음을 맞았던 유스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야카의 아버지는 왜 이 집에 다녀갔던 걸까. 수수께끼를 찾듯 하나씩 드러난 진실과 '나'가 사야캬에서 감췄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그 집의 물건들에서 사야카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분명히 이 집에 왔었던 것 같은 기억들이었다. 사야카는 누구인지, 유스케와는 어떤 사이였는지 독자들 또한 긴장하며 읽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기, 주인공은 알고 있지만 독자는 모르는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감춰졌던 진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목이 섬찟하다. 소설의 내용이 어느 정도 유추가능하기도 하고 어떤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하다. 작가는 크레타 문명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크노소스 궁전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짜릿함과 두려움을 선사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들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작가의 특기 답게 이번 작품 또한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감정이 어디까지 가는지 볼 수 있게 한다. 친부모와 양부모의 관계에서 받는 상처를 드러냈고 또한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잘못된 방법으로 학대를 했던 부모를 냉정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아이들에게 학대를 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했다.

 

초기작이어서 현재에 나오는 작품들보다 다소 인기는 없을지 모르나 꽤 생각에 잠기게 하는 주제를 가졌다. 그토록 많은 작품을 펴내면서도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는 주제를 드러낸다. 10년 만에 다시 읽었지만 마치 처음 읽는 소설처럼 긴장하며 읽었다. 다시 읽어도 역시 좋은 작품. 새로운 번역으로 더욱 젊어진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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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0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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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 작가를 처음 만난 게 해리 홀레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 <스노우맨>이었다. 추리소설을 꽤 읽었지만 북유럽 추리소설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짜릿함은 기본이고 전혀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 뿐만 아니라 요 네스뵈의 작품을 다 읽어본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만난 해리 홀레 시리즈 중 대망의 열 번째 작품이 바로 <폴리스 POLICE>다. <폴리스 POLICE>는 어떤 작품일까? 어떤 내용을 다루었을까?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 전 작품이 <팬텀>이었다. 해리 홀레의 부성애를 부각시킨 작품. 그가 사랑했던 여자 라켈 페우케의 아들 올레그가 훌쩍 크고 망가진 모습으로 나왔었다. 그 귀여웠던 올레그가,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던 올레그가 마약으로 망가진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더군다나 살인범 용의자로 말이다. 해리 홀레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머나먼 홍콩에서 올레그를 지키기 위해 오슬로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올레그를 구했다. 해리 홀레에게 라켈은 첫사랑과도 같은 존재다. 늘 그리워하지만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던 연인이었다.

 

 

 

<팬텀>의 다음 내용이 <폴리스 POLICE>다. 즉 경찰이었던 해리 홀레와 해리 홀레를 도왔던 많은 경찰들의 이야기. 그에 맞게 해리 홀레를 도와주었던 우리에게 익숙한 경관들의 이름이 나열된다. 여러 시리즈에서 도움을 주었던 이름 하며, 아주 잠시였지만 사랑을 느꼈던 경관들의 모습까지 만날 수 있다.

 

어쩐지 대망의 결말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경찰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새로운 해리 홀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경찰이 피해자가 되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며 우리는 해리 홀레를 기다리게 된다. 해리 홀레의 기막힌 수사 기법을 그리워하는 건 우리 뿐만이 아니다. 그를 그리워하는 오슬로 경찰청 강력반 최고 책임자인 군나르 하겐과 과학수사과를 이끄는 베아테 뢴 그리고 비에른 홀름, <스노우맨>에서 활약했던 카트리네 브라트 까지 그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더군다나 오슬로 경찰청 대부분의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했던 해리 홀레를 사모하는 여성들까지 등장한다. 바로 경찰대학에서 그의 강의를 듣는 여성이다. 과연 해리 홀레는 오슬로 경찰청의 형사들에게 도움을 주게 될까, 아니면 라켈과 올레그와 약속했던 대로 형사와는 거리를 두는 강사로서의 해리 홀레로 남게 될까.

 

 

소설의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어떤 결말을 맞을까. 내가 상상했던 대로의 결말일까. 아니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의 이러한 예상을 뒤엎기라도 하듯 요 네스뵈의 반전이 준비되었다. 이 맛에 추리소설을 읽는다.

 

소설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떤 사건에 관계했던 경찰들이 차례로 목숨을 잃는다. 이 사건에 관계된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경찰들을 죽이는 지가 관건이다. 과거 미성년인 소녀들을 성폭행하고 죽인 발렌틴 예트르센의 용의자로 떠오르지만 그는 교도소에서 누군가에 의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맞아 죽었다. 도대체 경찰 살인범은 누구란 말인가.

 

7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읽느라 어깨 혹은 목뒤가 아파 한나절 동안 부항뜨는 걸 반복할 정도였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상할 수 없었기에 거의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읽었던 듯 하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 예상하지 못했던 살인자의 발견이었다.

 

 

 

모든 살인 사건엔 동기가 필요하다. 살인 사건의 동기가 무엇인가가 관건이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경관들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이런 걸 기대했던 게 아니었다. 주인공 즉 해리 홀레를 도왔던 자들이 살아 남아 아주 오래도록 그의 곁에 남아있기를 바랐다. 사건 현장을 바라볼 때 뭔가를 찾으려하지 말고 탐색하라던 해리의 수상 방식.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의 말이 맞았음을 떠올린다.

 

신적일 정도로 수사에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던 경찰을 그렸던 동시에 직업인으로서의 경찰, 개인으로서의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그렸다. 경찰인 직업이지만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 실수를 반복하느냐 반복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 즉 살인 동기를 찾는 작업이 중요하다. 동기를 알게 되면 사건이 어떤식으로 이어지는지 알아챌 수 있다. 다양한 가설을 세울 수 있는 거다.

 

그럼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있다. 다음 시리즈를 예상할 수 있는 인물이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아 찜찜함으로 남아 있고 다음 내용을 기대하게 만든 인물, 해리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이야기도 시작될 것 같다.

 

#폴리스 #요네스뵈 #비채 #해리홀레 #해리홀레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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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 맺힘 문지 에크리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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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문학평론가 김현의 글을 드디어 읽었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물론 핑계에 가깝지만 이처럼 읽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가. 이미 작고한 작가이기에 그의 글을 만나지 못하는 수도 있기 때문에 이처럼 그의 산문에서 가려 뽑은 『사라짐, 맺힘』은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큰 의미가 있겠다.

 

첫 문장에서부터 마음을 울리는 감정을 가졌다.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에 대한 비평을 한다는 것, 여행하며 보고 느꼈던 것들, 문화적인 다양한 생각들, 미술관을 방문하며 화가의 그림과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들로 엮여졌다.

 

작가들의 에세이가 사랑받는 이유는 작가의 생각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것 때문이다. 아파트에 생활하며 땅집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어도 아파트를 고집하는 아내때문에 땅집에 대한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감정들. 그리고 한때 많은 아이들에게 '니네 집 몇 평이냐?'로 계급을 갈랐던 평형에 대한 일화는 그때 그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물론 지금도 빈부의 격차를 가르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내가 생에 못 견디도록 싫증이 날 때 나는 또 어디로든지 가는 방황의 여행을 시도하리라. 거기에는 그러면 또 나에게 그의 내밀한 설화를 보내주는 불빛이 있으리라. 하여 나는 이 진저리 나는 생에서 순간적으로나마 '진정한 생'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16페이지)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많은 여행을 하고 비평적인 시각으로 쓴 글임에도 따스하면서도 명쾌한 사유가 들어있었다. 우린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내 삶의 한 순간을 그려본다. 직시하지 못했던 나의 속마음을 알아채기도 한다. 내가 진정 꿈꾸는 삶이 무엇인가. 생에 대한 좀더 근원적인 질문을 건네게 된다.  

 

 

 

사람의 사람됨은 그 문화적인 두께에서 나온다. 그 두께는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에 같은 처소에서 살면서 쥐는 체험의 두께이다.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가 보이고 돼지의 살을 자르면 그 겹이 보이듯이 사람의 두께도 또한 조심스럽게 자르면 그 결이 보인다. (52페이지)

 

위 발췌 문장은 "'라면' 문화 생각"이라는 부분에서 라면에서 느끼는 문화적인 면과 사람의 두께에 관하여 말한다. 라면 하나에서 이처럼 문화적인 면과 사람의 두께와 결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란 매우 힘든 연상 작용인 것 같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처럼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사유를 펼친다.

 

책은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책읽기가 괴로워질 때에는 그것을 고쳐야 한다. 때때로 책읽기가 일종의 정신적 도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괴로운 일이 생길 때 대개의 경우 책을 읽으면 그 괴로움이 많이 삭는다. (69페이지) 

 

책을 읽는다는 걸 즐거운 고통이라고 말하는 문장들이다. 맞는 말이다. 때로 나에게 책읽기는 정신적 도피다. 괴롭고 힘든 일이 있을 수록 책읽기에 빠져든다. 책의 내용에 집중해 있노라면 내가 가졌던 고민, 고통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일들은 한낱 과거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경험을 자주 해봤기에 이처럼 좋은 문장이 없다며 이 문장 만큼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많은 독서가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다만 다시한번 알리고 싶을 뿐이었다.

 

문학평론가라고 하면 만화 같은 건 아주 우습게 생각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뉴스와 문화 영화를 상영하는 대신에(예전에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뉴스와 문화 영화를 상영했다) 짤막한 만화 영화를 상영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했다. 1984년에 개봉되었던 최인호 원작의 동명 영화 <깊고 푸른 밤>을 보고 나서 드는 여러 생각들을 담은 글에서 나타낸 말이다. 그는 문학 뿐만 아니라 영화와 미술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음악의 산조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과히 감탄할 만 했다. 해금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해금 연주곡에 빠져 정신없이 음원을 구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글이었다.

 

여행이란 자고로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 비로소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느끼는 것들. 문학평론가 김현에게서도 느껴지는 감정들처럼. 삶의 무게, 시간의 두께, 문학과 글쓰기의 두께가 총 망라된 주옥같은 문장들의 집합체였다. 그의 글을 이제라도 읽어, 다행이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 있고 싶다. 매일 나무 우거진 공원길을 산보하고 싶다. 오후 7시면 카페에 나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맥주를 마신다. 그래 네가 그토록 원하던 모든 것을 이제는 할 수 있다. 그러니 행복한가?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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