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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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작가님 하면 현직 판사라는 신분으로 법정 추리소설을 써온 작가다. 내가 읽었던 작가의 소설은 두 권쯤 되는 것 같은데, 최근에 읽었던 <합리적 의심>을 읽고 판사라는 신분으로서의 죄와 일반인으로서의 죄를 바라보는 입장이 첨예하게 다르다는 걸 느꼈었다. 분명히 죄를 지었다고 확신하였으나 증거가 충분치 않을 때 판사들 또한 많은 고뇌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에서 나타나는 건 한 사건일 뿐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판사 시절 사건을 책으로 엮는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다. 그렇다. 이 책은 판사 시절, 유명했던 사건들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논픽션이었다. 소설보다 오히려 더 흥미롭게 읽혀진다.

 

물론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모티프로 소설화 되는 건 아주 단편적이라는 걸 다시한번 깨달았다. 책 속에서 다룬 수많은 사건들을 마치 옆에서 보는 것처럼 울분을 토하고, 분명히 살인자가 맞는 것 같은데 증거불충분으로 혹은 사건을 깊게 생각하지 못해 충분히 조사하지 못했던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법인 일명 '태완이법'이 시행되었다.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이나 '삼례 나라슈퍼 사건' 처럼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살인 사건이 그대로 묻히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의 가족의 울분을 샀었는데 다행이다 싶다. 몇 년 전에 TV 프로그램에서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시그널> 이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형사로서 미제 사건을 수사한다. 공소시효가 지나기 전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인물들이었다.

 

그때 들려온 소식이 바로 '태완이법'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경찰서에서 미제사건을 수사하는 부서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수많은 사건들의 살인범을 잡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사라진 변호사 사건도 그렇고, 대구 어린이 황산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사건 들이 돈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돈에 관해서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누군가를 죽일 수 밖에 없는가. 내연남이나 내연녀가 있든, 금전적으로 힘든 상태이든, 모두들 돈 때문에 살인을 교사하고 직접 죽이기까지 했다. 또한 증거불충분으로 용의자가 무죄로 풀려나기도 했다. 살인을 행함에 있어 감정 보다도 오히려 돈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번에 책 속에서 자세히 알았던 게 듀스 전 멤버 김성재 사건이었다. 나는 여태 약물중독으로 죽은 가수라고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살인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함께 있었던 사람이 여러 명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있었던 사람이 여자친구라고 했다. 무죄로 선고되었고, 아직까지도 누가 죽였는지 밝혀지지 않아 안타깝다는 설명이었다.

 

판사의 눈으로 본 범죄 사건의 현실을 다룬 글이라 다소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법정 추리소설을 쓴 작가의 글이어서 그런지 소설처럼 재미있었고, 사건에 빠져들게 만든다.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앞으로도 이런 판사의 시각으로 보았던 사건 이야기가 계속 나왔으면 싶다.

 

책 속에는 사건 이야기 외에 작가가 좋아했던 책이나 작가들에 대한 에세이가 실려 있어 그 즐거움을 더한다. 그가 판사임에도 추리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작가가 좋아했다는 소설 중 읽지 않은 게 있어 검색해보고 메모했다. 나중에 시간되면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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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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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준비하며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요리책이었다. 열몇 권으로 된 책. 컬러판으로 되어 간단한 레시피가 적혀 있어 해보지 않은 요리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요리책 특성상 여러 요리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꽤 간단한 설명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다 이해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해보기는 하지만 요리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요리가 되기 때문이다. 요리를 할 때 여러 번 참고했다. 지금은 인터넷 요리 블로거들이 많아 그들의 레시피를 참고하기도 한다. 사진과 함께 요리의 과정을 꽤 상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맨부커상 수상 작가에게도 요리는 필수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하는 작가라니. 어쩐지 까칠하다기보다는 다정한 작가인것만 같다. 에세이에서 말하길 저자는 요리책을 이천 권 가량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책장의 한 면을 요리책으로 채운 작가. 요리를 하기 위해 요리책을 보고, 책 속의 레시피를 따라 해보다가 이해할 수 없으면 책을 쓴 저자에게 전화로 확인까지 한다고 했다. 물론 현학자가 요리해주는 그녀의 친구였기에 가능했을 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소설가의 경우 130여 페이지의 소설을 읽어보고 의견을 달라고 했을 때의 곤혹스러움을 알면서도 레시피에서 이해되지 않을 경우 전화로 물어볼 수 밖에 없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더불어 요리책을 고르는 방법까지 말한다. 열 가지의 조언을 하는데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조언은 '텔레비젼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요리의 비결을 알려주는 책은 사지 말 것'이라고 했다. 최근의 이슈는 음식과 요리다. 텔레비젼의 수많은 채널에서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유명한 셰프에서부터 골목길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 또 한 배우는 셰프들과 함께 요리를 하며 그들을 가르친다. 함께 만든 음식을 평하고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며 따라해보고 싶어하기까지 한다. 실제로 그 배우는 요리책을 내기도 했다. 이웃 분 중의 한 분도 이 책을 읽고 요리를 만들어보고 책의 이점을 말했다. 이 분 책은 예외로 두어야 하나.

 

최근에 본 영화 중의 하나가 <줄리 & 줄리아> 였다.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와 그녀의 요리를 만들어 블로그에 올리는 줄리의 이야기였다. 요리에 대한 열정과 상황 그로 인해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따스했다. 요리라는 게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에 저절로 감동하게 마련이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줄 요리를 하는 줄리언 반스의 글을 읽는데 그 영화가 떠올랐었다. 마음을 다해 요리를 만들고 함께 먹으며 마음을 전해 받는다. 

 

 

 

작가의 까칠함이 돋보였다. 요리에 대한 열정이 컸고,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요리를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엿보여 그의 까칠함이 따스함으로 변했다. 책장 한가득 요리책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요리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지만 요리를 썩 잘한 것 같지는 않았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노예처럼 일해서 지친 주인 보다는 상점에서 산 것을 우리가 만든 것처럼 보일 필요도 있다고 했다. 메인 요리는 라자냐를 샀고,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만 직접 만들어 대접했다는 거다. 그때 손님으로 왔던 이가 라자냐가  맛있었다며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다. 작가는 뻔한 재료를 열거하고 레시피를 말해 넘어갔다고 했다. 까칠함 속에서 발견한 위트였다.

 

성실한 요리는 평온한 마음, 상냥한 생각, 그리고 이웃의 결점을 너그럽게 보는 태도(유일하게 진실한, 낙관의 형태)를 은밀히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는 우리에게 경의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193페이지)

 

음식 재료를 준비한다. 두툼하게 썬 돼지 목살을 준비하고, 거기에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한다. 버터와 월계수 잎을 넣고 목살을 굽는다. 다른 한쪽 프라이팬에는 껍질을 깐 감자와 양파, 소금물에 한 번 데친 브로콜리에 약간의 소금과 후추를 뿌려 약한 불에 구워 식탁에 내놓는다. 뜨거운 밥과 함께 먹는 가족들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게 요리를 하는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요리를 책으로 배우는 작가의 소중한 일상에서 그리움을 느껴진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엿보여 어쩐지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이 이처럼 요리에 대한 글로 나타나 우리를 즐겁게 한다. 작가와 우리의 경험을 동일시하며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에 대한 감사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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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파파와 바다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7
토베 얀손 지음, 허서윤.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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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 얀손의 무민 이야기를 읽은 건 작년 한여름에 읽었던  『무민의 겨울』이었다. 폭염 경보가 내리는 와중에 차가운 북풍이 부는 한겨울의 이야기를 읽으니 조금쯤은 시원한 느낌이었다. 겨울잠에 빠졌으나 갑자기 눈을 뜨게 된 무민이 골짜기에서의 모험을 말하는 소설이었다. 그동안 캐릭터로만 보았던 무민의 이야기를 제대로 읽었던 귀한 경험이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무민 골짜기가 지긋지긋해진 무민파파가 가족을 이끌고 새로운 곳 등대가 있는 섬으로 이사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정든 곳을 떠난 가족들은 새로운 장소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정작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등대의 불을 밝히는 등대지기는 어딘가로 사라졌고, 섬은 새까만 어둠에 싸여있다. 등대가 있는 섬에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만 있는 말없는 어부가 있을 뿐이었다.

 

등대의 가장 위에 자리한 곳에 짐을 부려놓고 등대지기의 모자를 쓰고 등대의 불을 밝히려는 무민파파는 자신만의 경험을 글로 쓰려하고, 정든 골짜기를 떠난 무민마마는 외로움에 무민 골짜기를 그림에 담는다. 무민 또한 덤불숲에서 혼자 만의 시간을 가지려 하고 무민과 함께 온 미이는 자기가 원할 때에만 불쑥불쑥 나타난다. 

 

 

 

세 명 뿐인 가족이지만 모두들 각자의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하고 있다. 무민은 덤불숲에서 밤이면 등불을 밝혀 그로크를 기다리고, 달빛이 비출때 춤을 추던 해마들을 기다린다. 그 이야기를 무민마마에게도 무민파파에게도 하지 않고 자신만의 비밀로 두었다.

 

여기에서 무민을 보면 부모에게서 스스로의 삶을 찾는 시기로 보였다. 자신만의 비밀을 만들고 좋아하는 친구를 기다리고 자신만의 장소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 스스로 오두막을 짓겠다는 것도 낯선 장소에서 성장했다는 이야기다. 가족을 위해 모든 짐을 지려는 아빠, 그런 아빠를 이해되지 않아 아름다웠던 추억을 그림으로 남기려는 엄마. 각자 자기만의 생활을 하며 점점 서로를 이해하고 낯선 장소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무민은 해마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음속에 뭔가 변화가 일어난 무민은 혼자 있길 좋아하고 새로운 생각에 잠기길 좋아하는 전혀 다른 트롤이 되었다. 요즘 무민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노는 편이 훨씬 흥미진진했다. 자기 자신과 해마들을 상상하거나 그로크가 몰고 온 어둠 덕분에 오히려 더 아름다워진 달빛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160페이지)

 

토베 얀손은 책의 첫머리에 '아버지께'라고 썼다. 낯선 장소에서의 무민의 성장기로도 읽혔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나타낸 글로도 읽혔다. 새로운 곳을 찾아 모든 물건들을 가지고 등대가 있는 섬으로 왔지만 정작 등대지기로서 불빛을 밝히지도 못했던 무민파파에 대한 안쓰러움이 곳곳에 묻어났다.

 

 

자기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 여겨 떠났지만 정작 다른 길이었음을 알았을때 느끼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저마다 생각에 빠져 있는 가족들 틈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던 무민파파의 마음이 조금쯤은 이해되었다. 낯선 곳에 정착해야 했지만 무민파파를 탓하지 않았던 무민마마의 행동도 우리 삶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 않는가.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생활을 꿈꾸었던 무민네 가족은 폭풍을 만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등대의 섬으로 찾아와 적응하며 다시 등대의 불을 밝히는 힘을 발휘했다. 이제 제자리를 찾게 되었으니 등대의 섬에서 무민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고 행복할 수 있을까. 무민연작소설의 마지막이 『늦가을 무민 골짜기』이니 다시 무민 골짜기를 그리워하는 무민 가족이 상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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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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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때 지구의 종말을 말하는 시기도 있었으나 그저 한 점성가의 예언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벌써 새천년의 시대를 맞이했고,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이러한 체제가 계속될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려를 해보아야 할지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단 이야기다.

 

유토피아라는 게 무엇인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을 가리킨다. 『유토피아 실험』은 문명이 붕괴된 종말 이후의 삶을 사는 실험을 실제로 했던 딜런 에번스의 고백이다. 직장과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해 부지를 얻어 유토피아의 삶을 꿈꿨다. 자신의 계획을 확실히 하기 위해 연구했던 학교와 연구 자료에 대하여 비판의 글을 게재했고, 모든 준비를 끝냈다. 혼자 가려고 했으나 아이가 있는 여자 친구를 알게 되어 그들이 살 지역과 가까운 곳에 기거하게 했다.

 

스코틀랜드의 한 곳에 기거할 곳을 정했고 지원자를 모집했다. 이상향을 꿈꾸는 애덤과 애그릭이 들어왔고 다르지만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그들이 기거할 유르트를 짓고 식량을 자급자족하기로 했다. 딜런이 유토피아 실험 기간을 1년여로 정했지만, 점점 자신이 꿈꾸었던 유토피아 보다는 자신의 자리 직장과 집을 다 팔아버리고 공동체를 시작했던 것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실험이 끝나면 집도 없는 떠돌이가 될 운명이 불안했다.

 

몇 개월씩 다녀가는 참가자들과 어지러진 유르트 안, 자신이 꿈꾸었던 유토피아 실험은 저만치 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를 우울증으로 이끌었다. 이 실험은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1년 넘게 이어졌다. 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공동체에 적응해 가는 듯 보였으나 이 실험의 주체였던 딜런은 자꾸만 회의가 들었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은 소로처럼, 또는 몬태나주에 오두막을 지은 유나바머처럼 이 실험을 혼자 했다면 더 즐거웠을까? (중략) 예전에 코츠월드의 작은 시골집에 살 때 나는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 시간이, 몇 주씩이나 이어지기도 했던 그 나날이 그리워졌다.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거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독서를 하거나, 혼자 시골길을 오래오래 산책하곤 했다. 이제 나는 문명과 멀리 떨어져서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 중 하나에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었다. (213~214페이지)

 

나는 더 귀중한 것을 배웠다. 비록 내가 무적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310~311페이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자신들만의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삶의 모든 것들을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여전히 진행중일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바라보는 건 낙관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머니와 동생도 방문했지만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어머니의 엄려스러운 눈빛을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을 것 같다.

 

그가 했던 유토피아 실험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험을 종료하기까지 많은 번민을 했지만, 종료를 결정하고 나서 그가 느꼈던 많은 생각들은 경험한 사람만이 가진 감정이었으리라. 그가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마음이 간절해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직접 경험했기에 이런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며 문명이 주는 혜택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다. 자기 집의 안락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는 것.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꺼내놓았던 찻잔.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것도 그가 공동체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비로소 알았다는 거다. 그럼에도 딜런은 귀중한 것을 배웠다고 했다. 문명이 붕괴되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해 봤기에 스스로 헤쳐갈 수 있음을 알았던 까닭이다.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바로 유토피아의 현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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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다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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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관심을 가진 이유 중의 하나가 나영석 피디의 프로그램 <윤식당> 부터였다. 배우들이 음식을 배워 외국에서 식당을 경영한다. 본연의 일이 아니기에 무척 어려운 일임에도 기꺼이 성공을 시켰던 바다. 출연진들이 걷던 길, 그 거리가 스페인의 장소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 유해진과 함께 차승원, 배정남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막바지의 마을에서 하숙집을 열었다. 순례자들을 위해 순례자 숙소 즉 알베르게를 운영한다는 모토였다. 깨끗한 침구,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니 누가 거부를 할까. 순례길에서 <스페인 하숙>을 찾는 순례자들은 모두 만족의 얼굴을 하고 쉬다 떠났다. 출연진과 제작진들이 <스페인 하숙>을 연 장소가 순례길의 막바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라는 마을이다.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스페인 하숙>의 김대주 작가의 이름만 보고는 그가 쓴 이야기인줄 알았다는 거.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직접 걷기도 했던 건축가 김희곤의 책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알려진 '산티아고의 길'은 스페인어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 부르고,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길을 일컫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또 걷는다. 걷는 동안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걷기만 하며 모든 시름을 잊는다. 힘들다고 했던 일, 고민같은 건 모두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 길에 선 대성당과 대성당을 잇는 길을 따라 순례자들은 지금도 걷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부제도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라 붙여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건축물을 살피게 된다. 인간과 신을 잇는 장소인 대성당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지역만 다를 뿐 산티아고라는 이름을 쓰는 대성당은 여러 곳에 위치해 있다. 건축가 답게 장면들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 나타냈고 사진 자료와 함께 수록되어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는 대성당과 대성당이 가진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실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어디서부터 걸었느냐고 물으면 프랑스의 생장(생장피드포르)에서 걸었다고도 하고 팜플로나에서 걷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물론 TV 프로그램에서 순례자들의 말을 통해서였다.

 

저자는 특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 속의 문장을 발췌해 산티아고 순례길과 그에 관련된 것들을 말했다. 성모 마리아 품에 안긴 아기 예수의 모습이 보인 절벽에 있는 거친 동굴의 성소 뿐만 아니라 레온 현대 미술관등의 건물의 웅장함을 소개한다. 오랜 시간을 지나 온 건물들은 그야말로 웅장하다. 역사와 문화가 건물에 그대로 살아 있어 저자의 건축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책 속에서 <스페인 하숙>의 촬영지인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성당과 풍경들을 은근히 기대했다. 저자가 언급한 거라고는 마르케스 후작의 궁전과 산 프란시스코 성당 뿐이었지만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정경 사진만으로도 반가웠다. 순례길에서 순례자들은 성별과 국적을 떠나 모두가 친구가 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루에 몇십 킬로를 걷다보면 지치고 힘들다. 그렇기에 서로의 힘듦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인간이 만든 종교 건물 중에서 수도원 중정보다 더 내면을 비추는 공간을 보지 못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듯이 시간의 그릇으로 빛을 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수도원의 복도처럼 빛과 어둠 사이로 걸어가는 일상의 연속이다. (261페이지)

 

 

 

대성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에너지는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던 절대 사랑이었다. 인간이 대성당을 지었지만 대성당이 인간의 성장시켜주었음을 산티아고 순례길의 건축이 사랑의 온기로 증명해주었다. (333페이지)

 

 

 

최근에 한 가수 부부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TV 프로그램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떠날 수 있을까 싶었다. 하루에 30킬로미터에서 40킬로미터를 걷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 길에서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성당과 대성당을 잇는 길을 따라 우리 스스로 순례자가 되려는 사람이 나 뿐만 아닐 것 같다. 다녀온 사람도 많았고, 앞으로 계획한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대성당과 대성당을 잇는 길을 따라 걷는 일, 이 책과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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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6 1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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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7: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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