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지도
앤드루 더그라프.대니얼 하먼 지음, 한유주 옮김 / 비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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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영화로 보는 것과 뮤지컬 혹은 음성으로 듣는 것 외에 또 뭐가 있을까? 소설을 지도로 보는 방법이라고,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그림으로 표현해놓은 건 자주 본다. 만화로 그려진 것도 많고. 하지만 지도 형식의 소설은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여기 지도로 된 소설책이 있다. 바로 비채에서 나온 『소설 & 지도』 라는 책이다.

 

책 표지에서부터 소설과 지도가 접목된 것처럼 보인다. 얇은 표지를 걷어내면 지도 형식의 그림이 펼쳐져 있다. 바로 이 책의 본모습을 나타낸 거다. 출판사 편집자 이자 작가인 대니얼 하먼과 일러스트레이터 앤드루 더그라프가 함께 문학 작품을 지도로 나타냈다. 더구나 소설가 한유주가 번역한 작품이기도 하다. 앤드루 더그라프는 이 책을 말하길, 이 지도는 해당 작품을 읽은 사람에게만 잘 보일거라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관련 책들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지도가 소설을 부른다고나 할까.

 

 

『소설 & 지도』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총 19개의 작품들을 지도로 나타냈다. 저자가 50개의 작품을 지도로 그리려고 했으나 스스로 정신나간 짓이었다고 밝혔다. 그만큼 힘든 작업이라는 말일 것이다. 19개 작품을 추려 만든 것들 중에서 첫 작품은 역시 문학 작품의 효시인 『오디세이아」다.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가는 여정을 그대로 지도에 표시했다. 우리는 지도 속에서 오디세우스가 지났던 곳들을 만날 수 있다. 칼립소와 키르케가 있던 곳,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섬, 그리고 페르세포네와 아들이 있는 자기의 집 이타카까지 지중해를 넘고넘었던 여정을 만날 수 있었다.

 

지도 속 섬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절로  『오디세이아」의 내용이 연상된다. 이래서 저자가 소설을 읽은 사람에게 더 잘 보일거라는 말이 맞아떨어지는 이유다. 더불어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지중해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문학 작품들 중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 을 각 장에 맞게 막으로 구성해 여러 장의 지도를 나타냈다. 햄릿의 고뇌를 1막에서부터 5막에 이르기까지를 나타낸 것이다. 각 장에 맞게 내용을 구성할 수 있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보는데 도서관의 구조를 육각형 모양의 벌집을 보는 듯 했다. 각 책장 한칸을 육각형 모양으로 잡고 그 안에 든 책들과 출구를 나타냈다. 이 그림들을 대여섯 개와 여러 개의 책장이 모인 그림을 지도로 나타냈는데, 지도 속 바벨의 도서관이 보르헤스가 나타내고자 하는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절묘하게 닮아있다.  

 

 

또한 빠질 수 없는 작품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다아시 씨와 엘리자베스, 빙리 씨와 제인, 리디아와 위컴 씨 그리고 샬럿과 콜린스의 관계를 아래 그림처럼 나타냈다. 마치 미래의 세계를 보는 듯 커다란 성 위에서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길을 보면 그 끝이 결혼임을 알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 유난히 좋아하는 작품이 「오만과 편견」이다. 영화로도 여러 번, 소설로도 여러번을 읽어 외울 정도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국의 결혼 제도와 결혼을 생각하는 여성과 남성의 입장을 잘 나타냈다. 최근의 로맨스 소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게 중요하다. 오래도록 사랑받은 작품은 이처럼 다 이유가 있다는 거.

 

 

에밀리 디킨슨의 시  「풀 숲의 가느다란 녀석」은 원래는 뱀을 나타낸 거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의 발에 달라붙어 있는 것들과 뱀의 허물 등이 지도에 나타나있는데 뱀을 무서워해서인지 역시 소름끼친다. 꼭 내 발에 닿는 것 같아 도망가고 싶어진다는 거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마크 트웨인이 보여준 대로 강을 따라가는 여행을 담았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증기선의 침몰, 아랍인 환자, 펠프스 농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의 지도로 되어 있어 허클베리 핀의 여정을 알 수있다.

 

 

한 권의 책은 세상을 여행하는 일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며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여정이기도 하다. 한 권의 책 속에 여러 작가의 글이 있는 경우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양한 독서 경험이 우리의 삶을 더 풍족하게 해준다. 여기에서 풍족은 마음의 풍족을 나타내는 일임을 여러분은 알 것이다. 

 

다양한 방식의 독서가 중요한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소설을 영화나 연극으로 보는 일, 혹은 그림으로 보는 일들이 다양한 소설 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을 지도로 읽는다, 이로써 우리는 한 곳에 치우쳐 굳어있던 마음이 어느새 열리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지도로 읽는 『소설 & 지도』는 아름다운 판타지로의 초대다. 어른 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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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1~4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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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은 한 시대를 관통한다. 우리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이다. 우리의 역사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들 부모 혹은 조부모의 삶이 역사와 맞닿아 있다. 시대를 달리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가는 우리. 우리의 삶이 곧 역사라는 사실을 이토록 감동적으로 경험하는 일도 드물다.

 

만화가인 저자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저자는 어머니의 육성 그대로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늙은 딸과 함께 사는 팔순의 어머니는 과거 어머니의 삶을 그대로 전한다. 그 육성에서 애틋함이 묻어나왔다. 그리운 고향, 그리운 어머니, 형제들. 그리움이 크면 이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법인가.

 

일제 강점기의 1900년대에서부터 해방 그리고 다시 1950년대의 한국전쟁을 겪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질곡의 현대사가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일제가 대규모 국토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인들의 토지를 빼앗은 이야기. 제법 토지를 가지고 있던 저자의 조부모와 여러 자녀들 모두 사랑을 듬뿍 받았던 어머니의 기억들을 만화로 들을 수 있었다.  

 

 

작가의 그림을 보는데 무척 그리운 감정을 느꼈다. 연로하시지만 살아계신 엄마와 함께 일상을 보내는 나이 많은 딸. 엄마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작업이 쉽지않았을텐데도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웠다.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었고, 그런 시간들을 함께하지 못했던 게 못내 안타까웠다. 꽤 오랜 시간동안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그림을 그리는 작업했던 시간이 부러운 거였다.

 

정신대(일본군 위안부)를 피하기 위해 원치않은 결혼을 했던 어머니. 어머니를 사랑해마지 않았던 아버지가 노름과 술에 빠져 고생했던 이야기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딸과 엄마가 함께 아버지 흉을 보는 장면에서는 슬며시 웃음도 났다. 

 

사랑받았던 사람은 시부모님께도 사랑을 받고, 많은 이들에게도 사랑받는 법인가 보다. 어머니가 살아온 삶에서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를 읽는데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내가 부족해도 나눌 줄 알았던 어머니의 삶이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림은 다소 투박하다. 최근에 유행하는 소녀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은 아니라는 거다. 예전 명랑만화를 보는 듯 하다. 더군다나 컬러도 아니고 흑백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겠지만, 이 책을 알게 된게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소개한 책이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꼭 재출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담았다. 이처럼 우리 역사는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만화라고 하면 그림 때문에 금방 읽게 되는데, 판형이 크고 촘촘한 글 때문에 더디 읽힌다. 내용 또한 역사 이야기를 보는 듯 하다. 그럼에도 작가가 들려주는 어머니 이야기에 푹 빠져 읽게 된다. 무엇보다 엄마와 함께하는 저자의 일상이 무척 다정하다. 지나고 보면 함께 했던 일상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

 

 

 

 

할머니와 엄마,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개인의 삶에도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힘이다. 더불어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작가의 고백 또한 뭉클해진다.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또한 독자들에게 잊혀져 사라지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읽히는 책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이 아닐까 한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우리 역사와 맞닿아 있고, 엄마와 딸의 뭉클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함께했던 시간들이 진정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절실하게 깨닫는 때가 곧 올 것임을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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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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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소년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가해자 소년은 떳떳하게 하던대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살아가는데 피해자인 소녀는 칩거했고 말을 잃었다. 소녀는 숲길에서 소년에게 총구를 들이댔고, 두려움에 떨던 소년과 그 가족들은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베어타운은 하키가 전부인 마을이다. 베어타운 소속 하키 선수들은 옆 마을 헤드로 떠났다. 그들을 가르키던 코치마저 떠나고 베어타운의 하키 선수들은 몇 남지 않았다.

 

하키가 전부인 베어타운에 새로운 코치가 왔다. 신임 코치 사켈은 다른 걸 원치 않았다. A팀의 선수로서 보보와 아맛, 벤이(벤야민) 그리고 비다르를 원했던 것. 베어타운 사람들에게 하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하키 선수를 위해 술집에서는 모금함을 채워 아이스하키단 선수를 돕는데 썼고, 검정 양복을 입은 사람들도 베어타운의 하키가 어서 살아났으면 했다.

 

무엇보다 베어타운 아이스하키단 단장 페테르에게 하키는 삶의 전부였다. 그는 어떻게든 하키단을 유지해야 했다. 위원회에서 예산 삭감으로 헤드의 하키단을 지원하고 베어타운의 하키단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그는 한 정치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베어타운의 아이스하키단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었다. 하키단과 평생을 더불어 지낸 사람은 하키단이 없어지면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지는 문제가 생긴다, 고 말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성폭행을 이야기할 때 항상 과거 시제를 쓴다. 그녀가 피해자'였다'고 한다. 그녀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가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일을 겪은 게 아니라 지금도 겪고 있다. 그녀는 성폭행을 당했던 게 아니라 지금도 당하고 있다. (364페이지)

 

성폭행을 당한 마야의 심정이다. 반면 마야의 동생인 레오는 누나를 지키지 못했다며 집밖으로 떠돌고 있다. 그의 자책이 없던 일로 돌아가지 않겠지만, 그는 견딜 수 없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마야를 다르게 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을 챙기라는 말을 건네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는 누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는 누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는 누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38페이지)

 

베어타운 두 번째 이야기는 하키로 똘똘 뭉친 한 마을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키 뿐만이 아니다. 하키로 뭉쳤으나 좀더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하는 것. 비록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고 해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말을 쓴다. 함께 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봐야 했다. 영어권의 외국 사람들이 주로 '내 나라, 내 가족'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 나라, 우리 가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는데, 이 소설이 나타내는 바가 '우리'라는 거다. 우리 즉 베어타운 마을과 그외에 다른 것들이다.

 

인생은 우라지게 희한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가며 인생의 여러 가지 측면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규정한다. 우리는 이해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가장 좋았던 기억도, 가장 나빴던 기억도, 이해는 언제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595페이지)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이며, 한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한 마을이 하나가 되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슬픈 일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다시 어떻게 살아갈까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시련이 때로는 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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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연습 - 부서진 심장과 고통과 상처와 당신에 관한 에세이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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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세상 사람들에게 무감해지는 우리를 발견한다. 그럼에도 어떠한 사건이 생겼을 때 그 상처에 안타까워하고 그들이 느끼는 고통에 공감하는 것. 그게 우리의 할 일이 아니던가. 아니, 할 일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레슬리 제이미슨의 고통과 상처에 관한 사적인 경험이 마치 르포처럼 펼쳐진 에세이로 저자가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엮은 책이다. 에세이라고 하면 자신의 경험을 말하되 최대한 보편적인 것들을 말하는데 레슬리 제이미슨은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말했다. 첫 소설 발표후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그 중의 하나 의료 배우를 했던 경험이 이 에세이의 제목이며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의료 배우란 의과대학생 앞에서 질병에 관한 연기를 하게 되는데, 대학생들은 의료배우의 연기를 보고 질환을 추측하게 된다. 의료 배우는 연기가 끝난 뒤 의과대학생들의 질문을 통해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올리는 일을 한다. 이 것을 공감시험이라고 하는데 의과대학생들이 환자를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작가들의 다양한 경험이 소설의 새로운 주제가 되고 소설을 쓰는 양분이 되게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마저 소설을 쓰는데 중요한 경험이 되는데,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는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상하지 못했던 삶이었다. 약에 취해 있었고, 낙태 혹은 다른 나라에서 얼굴에 가했던 폭력으로 수술을 해야 했던 경험, 알콜 중독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던져놓고 그것에 관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공감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답을 하게끔 질문하는 것이다. 공감에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질문도 많이 필요하다. 공감하려면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감은 자기 시야 너머로 끝없이 뻗어간 맥락의 지평선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20페이지)

 

 

 

우리가 고통의 근원이 아니라 고통에 관한 사실을 믿을 때 그것을 공감이라고 한다면 잘못된 것일까? 누군가의 고통에 대한 특정한 이해를 함께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가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할 수 있을까? (76페이지)

 

이해와 공감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하는 게 이해고, 남의 감정에 그렇다고 느끼는 것을 공감이라고 한다. 레슬리 제이미슨의 감정에 100퍼센트 공감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 마치 폭력과 상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편한 감정은 아니었다고 해야겠다. 많은 경험이 소설의 자양분이 되지만 저자가 겪었던 일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염증과 가려움, 피로감, 통증 그리고 피부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의 증상이 있는 모겔론스 병에 관한 고찰도 특이했다. 저자 또한 말파리 유충으로 힘들었던 고백을 하게 되는데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병이었다. 예민해질때 피부에 무언가 기어다니는 느낌만 들어도 견딜 수없는데, 실제로 그런 느낌이 계속 된다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저자는 모겔론스 병이 실제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고통에 관한 사실을 믿을 때 비로소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교도소에 있는 찰리 앵글이라는 남자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세 명의 소년을 죽였다는 세 명의 소년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독특했다. 그 어느 것도 그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 사람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즉 공감의 표현이다.

 

설탕이 귀한 시절 단맛을 내는 사카린을 많이 사용했다. 저자는 사카린을 두려움을 나타내는 가장 달콤한 단어라 평했다. 사카린을 문학이라 칭하고 그에 대한 변론을 말했는데 이 부분은 작가로서 그가 가진 생각들을 엿보게 했다. 감미료와 감상성, 비현실적인 달콤함. 때로는 감상성은 반감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문학에 있어 감상성 만큼 중요한 것도 없으리라.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었던 부분이라 여러모로 의미있는 에세이였다. 사실 레슬리 제이미슨의 글이 달콤하지는 않다. 르포 형식의 글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건조한 문체의 글이었다. 과연 달콤한 소설도 쓸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앞섰다면 지나친 우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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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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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8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스물아홉 명의 작가들이 모였다. 박완서 작가를 직접적으로 지목한 작가는 드물다. 몇몇은 직접적으로 혹은 약칭을 써서 작가를 추모한다. 소설의 방식은 박완서 작가의 짧은 소설 『나의 아름다운 이웃』과 닮았다. 박완서 작가만의 위트와 삶의 애환이 살아있는 그들이 대부분이었다.

 

작품에 속한 작가들의 면면은 마음에 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이다. 짧은 소설들은 박완서 작가의 느낌을 보는 듯 했고 다르게는 작가만의 감성을 그대로 드러나 글을 읽는 즐거움이 컸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한다는 것이다.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금방 알아낼 수 있는 것 또한 박완서 작가만의 글쓰기와 무척 닮아 있다. 스물아홉 명의 작가가 쓴 이야기는 마치 한 사람의 작가가 쓴 듯 그렇게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고 있었다.

 

 

 

지혈제. 이런 독서는 지혈제다.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내면을 떼어놓고,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녀는 책장을 넘긴다.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개념 한두 개가 천천히 뇌 속에 들어와 눈물을 말리기 시작한다. 두꺼운 책들이 불어오는 감정들. 지식이 아닌 감정들. 마음의 주름이 조금 펴지자 그녀는 인터넷으로 책을 두 권 사고, 내친김에 세일 폭이 큰 티셔츠 한 장도 산다. (50~51페이지, 김성중, 「등신, 안심」중에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했다. 지금은 자주 쓰는 표현이 아니다. 부부간의 이별은 매우 어렵고도 또한 쉽다. 지금은 너무 쉬운게 문제인것도 같다. 부부 싸움후 편의상 남편에게 전화를 걸쳐 휴전을 청하고 그에 응하는 부부.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어도 일상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에게 남아있는 절망의 두께가 두꺼워질지언정 사는 동안은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 소설집이 출간되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작가가 이기호였다. 마치 그의 일상을 보는듯한 소설은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있다. 삶이 버거운 아빠, 아이가 원하는 몇십 만원짜리 레고를 사주고 싶은 마음과 아내에 호통에 의해 마트로 반품하러 가는 아들과 아빠의 발걸음이 무척 애틋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과 생활의 힘겨움에 다시 반품을 해야 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였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장난감을 홀리듯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오늘의 아빠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뚝뚝, 눈물방울이 레고 박스 위로 떨어졌다. 아들은 레고 박스 위에 떨어진 눈물방울을 계속 훔쳐내며, 그러면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지만, 그러면서도 또 한편, 어쩐지 이 풍경 자체가 낯익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 또한 그렇게 울었던 봄밤이 있었다 . (183페이지, 이기호, 「다시 봄」중에서)

 

이기호 작가 뿐일까. 김숨 작가의 글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웃는 모습의 유머스러운 글을 주로 쓰는 김종광 작가의 글 또한 여전한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의 여자는 세상 그 누구보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우면서 왜 결혼만 하면 남편들을 애 잡듯 잡을까. 남편들은 또 혼내는 아내한테 주눅들어 있는 모습. 지금의 세태를 다뤄 웃게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씁쓸한 현실임을 자각하게 된다.

 

 

 

전성태 작가의 「이웃」이라는 소설을 읽는데,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말하는 것에서 저 마음 깊숙이 숨겨놓은 우리의 감정을 들킨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캠핑 장비를 챙겨온 아이를 둔 부부. 그들은 정글의 법칙을 찍는 기분이라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도착한 곳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에는 캠핑족들이 그대로 묶어놓고 간 노끈들이 나부껴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리고 밤늦게 그들의 옆에 캠핑장비를 다 갖춘 아빠와 아이가 오게 되고,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애써 신경쓰지 않는 듯 부러운 마음을 감췄다. 이웃 캠핑족보다 우월한 것을 말하고 싶은 아내가 말한 한마디라곤 이웃에는 엄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침이 되자 가위를 들고 소나무에 엮인 노끈들을 제거하는 아빠의 모습에 자신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왜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며 스스로 상대방보다 우월한게 무언가 굳이 찾아내려 하는 것일까. 부끄러운 감정을 부끄러워 해야하는데 자꾸만 시기 질투하며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 하는 것인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왜 계속 누군가와 비교하려 드는 것일까.

 

소설을 읽는다는 건 그 내용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작가 또한 주변에서 바라보는 일상들 속에서 소설의 소재를 찾지 않겠나. 에세이 형식을 소설을 써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면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라며 작가를 다시 기다리게 된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보는 듯 푸근한 마음이 절로 드는 글 모음집이었다. 다양한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덤이다.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글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은 우리 주변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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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7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