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읽다, 쓰다 -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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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몽상 속의 세계는 너무나 시적인데 실제 현실은 너무나 속되다. 이런 현실을 계속 외면하던 엠마는 요즘식으로 말해 카드 빚 때문에 파산하고 만다. 사태를 수습하고자 로돌프를 찾아가 때아닌 사랑 타령을 늘어놓고 돈을 구걸하는 모습은거의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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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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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시작 부분을 읽으며 어쩔 수 없이 떠올랐던 게 불사의 삶을 살았던 드라마 <도깨비> 였다. 천 년을 살았던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이야기. 온 국민을 거의 사로잡았던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에서도 불사의 삶을 사는 존재가 나온다. 자신의 일족을 지키고 가꾸며 300년을 살아온 아냥우와 사천 년을 좀더 능력있는 강한 인간들을 만들고자 하는 도로가 그 인물이다. 

 

검은 피부를 가진 아냥우는 자신의 일족을 거느리며 살고 있다. 치유사로서 혹은 어머니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숲 속에서 터를 잡고 있었다. 한 남자가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아닌척 하고 있을때 슬며시 다가온 검은 피부의 젊은 남자. 그는 아냥우를 다정하게 대했고 유혹의 몸짓을 보냈다. 그리고 자신이 터를 잡고 있는 일족들에게로 가자고 제안을 한다. 절대 죽지 않는 아이를 만들어주겠다는 거였다.  

 

도로는 다른 사람의 몸으로 재탄생 되곤 했다. 가지고 있는 몸이 쓸모를 다 하면 다른 사람의 육체를 취했다. 처음 보는 일족의 여성의 몸을 하고 있는 아냥우를 보며 그녀가 야생종 임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능력을 알아 본 도로는 아냥우를 데리고 자신이 원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을 만들고자 아내로 삼았다. 도로를 남편으로 삼은 아냥우는 그를 따라서 그의 일족이 있는 곳으로 노예선을 타고 가게 되었다. 도로를 남편으로 알았던 아냥우에게 그는 아냥우가 자신의 아들은 아이작과 결혼하기를 바란다. 배를 움직이고 하늘을 날며 바닷속을 헤엄치는 능력이 있는 아이작과 아냥우가 짝이 되어 여태 없었던 인간을 만들기를 바란다. 즉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킬 교배종으로 보았던 거다. 죽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도로에게 복종하게 된 아냥우는 그의 뜻대로 아이작과 결혼해 새로운 아이들을 만들어낸다.

 

 

 

 

아무래도 내가 여성이어서 일까. 여성을 한낱 아이를 만드는 교배의 대상으로 보는 도로에게 화가 나 아냥우의 입장에서 소설을 읽었던 듯 하다. 새로운 능력을 가진 아이가 변신을 할 때 찾아와 지켜보며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아냥우를 죽일 생각부터 하는 도로. 그런 도로를 달래며 도로에게 오래도록 함께 할 사람으로 아냥우를 택하라는 말을 했던 아이작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아냥우를 사랑하며 그 둘을 엮어주려 했던 아이작의 현명함에 아냥우는 오래도록 아이작을 그리워한다.

 

 

흑인 작가 답게 아냥우의 원래 모습은 검은 피부를 가진 여성으로 나온다. 아냥우가 처음 도로와 만났을 때도 그녀가 좋아하는 검은 피부를 가진 젊은 남성의 육체로 다가왔었다. 아냥우의 취향은 검은 피부를 가진 키가 작은 남자였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아냥우는 그런 남자에게 호감을 보였다. 자신의 남편으로 삼아도 되겠다 싶었던 거다. 사랑하는 자식을 죽을 때면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아냥우는 새로 변신해 하늘을 날고 싶을 때까지 날았으며, 바다에서는 돌고래로 변신해 파도를 타며 바다를 헤엄쳤다.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서는 표범으로도 변신 가능했다.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냥우였다.  

 

 

 

정령같은 존재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그가 뭐라고 말하든 그는 정령일 뿐이다. 자기 육체가 없는 존재이다. (78페이지)

 

강한 자식을 원했던 도로에게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볼 수 있겠다. 약한 자는 죽이거나 취하고, 강한 자식만을 골라 새로운 교배를 했던 도로였다. 도로나 아냥우처럼 죽지 않은 아이를 만들고자 했으나 그의 욕심이었을 뿐 모든 자식들이 죽어갔다.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반면 아냥우는 자신의 일족을 거느리며 죽어가는 이를 보살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변신을 하는 도중에 누군가를 해할 때도 곁에서 지켜보며 달랬다. 모성 본능으로 인간들을 보살폈던 휴머니즘을 나타내지 않았나 싶다.

 

그 오랜 세월동안 나는 거의 평범해 보일 정도로 하잘것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을 교배시키고 또 교배시켜서 후손들이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했어. 그리고 마침내 아이작 같은 아이를 만들었지. (243페이지)

 

 

 

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정령으로서 힘이 다하면 도로는 아무나 곁에 있는 사람의 육체를 취해 가졌다. 백인으로 혹은 흑인,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취했다. 그가 며칠을 하나의 육체로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그가 나타나면 그의 아들들 혹은 딸들은 그가 도로임을 알아챘고, 여자들은 그의 마음에 들고자 저절로 복종을 하고는 했다.

 

그토록 자신을 아꼈던 아이작은 죽은 후 아냥우는 도로가 알아채지 못하게 자주 동물로 변해 있곤 했다. 검은 개로 혹은 커다란 독수리로 혹은 돌고래로 변화해 도로의 추적을 피했다. 그럼에도 도로는 아냥우의 일족 앞에 나타났다. 늙은 백인 남자의 모습으로 변해있던 아냥우 앞에 나타나 새로운 제안을 하는 도로였다.

 

만약 불사의 몸을 하고 있다면 어떤 삶을 살까. 도로의 바람처럼 더 강한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좋은 교배종을 골라 자기가 원하는 아이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생길까. 이왕이면 더 좋은 아이를 만들자 하고? 어쩌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강한 아이를 만들고자 했던 도로는 인간의 욕망이 농축되어 있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반면 아냥우를 통해 능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이 좋다. 남성적인 시각으로 보는 SF 소설보다 좀더 근원적인 인간의 휴머니즘을 말하는 소설을 읽고 있다보면 감명을 받게 된다. 그의 소설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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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로스라는 이름을 가진 자의 회상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로마의 현자로 불리던 그는 로마 빌라도 총독의 총애를 받았다. 유대인들의 유월절이 시작되기 엿새 전부터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중요한 유월절을 앞두고 일어난 살인사건 때문에 살인자를 찾는 임무를 맡았다. 한편 로마군 백인대장을 죽인 마티아스는 안토니 요새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성전 수비대 대장 조나단으로부터 성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밀정으로 파견된다. 유월절이 되기 전 사건이 해결되면 풀어주겠다는 조나단의 말을 믿었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마티아스는 그가 들어간 집에서 앞서 다녀간 사람을 발견했고, 그가 테오필로스라는 것을 알았다.

 

기독교를 잘 알지 못하는 내게 유월절이 무엇인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주도록 하기 위해 신은 이집트 인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렸다. 마지막 재앙이 이집트에서 태어난 모든 첫째 아이들에게 내린 죽음이었다. 모세는 히브리 인들에게 집의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그 집을 피해가도록 했다. 이게 유월절의 시작이다. 집 밖의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던 장면은 어떤 영화에선가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앞두고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로 성전의 문설주를 발랐던 것과 실로암 샘물를 피로 뒤덮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던 거다.

 

테오필로스와 함께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마티아스는 사건의 실체가 갈릴리 출신의 예수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예수의 제자들을 탐문하던 마티아스는 예수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유월절을 앞둔 예수가 열두 제자들을 이끌고 예루샬렘으로 일주일 전에 왔다. 유대인들의 메시아로 일컫는 예수를 만난 마티아스는 그가 그저 남루한 옷을 입고 있는 힘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성경에서 나온 대로 예수의 제자들은 행동하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음이 드러났다. 마티아스는 예수를 만나 사건을 조사하며 그가 한 말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마티아스는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했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알아버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무언가를 안다는 건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버린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를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1권, 278페이지)

 

유월절에는 로마 총독에게 유대인 죄수를 한 명 풀어주는 관습이 있었다. 빌라도는 자신이 죄인을 선택하지 않고 군중들에게 맡겼다. 군중들은 예수를 선택하지 않고 살인자 바라바를 선택했다. 이 또한 성경에서 나타난 바와 같다. 유월절을 일주일 앞둔 기간부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유월절 기간 까지의 내용을 소설에 담았다. 팩션 형식으로 추리 형식의 글이었다. 살인자를 찾아가는 주제로 되어 있는 것 같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로 다가왔던 예수에 대한 기적과 행적들을 담았다.

우리는 보다 인간적인 예수의 고뇌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로 왔으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여겼던 그의 간절한 마음이 드러나 있다. 인간적으로 다가왔던 예수의 모습이었다.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는 내게 이 책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겠지만 성경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감동으로 다가오리라 여겨졌다. 하나의 소설처럼 성경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알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다고 봐야겠다.

 

'내가 그를 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난다' (2권, 200페이지) 

 

 

'하나뿐인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왔으니 그가 흘린 피로 인간의 죄를 씻을 것이다.' (2권, 215페이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어찌 나를 버리십니까? (2권, 238페이지)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와 픽션을 가미해 팩션 소설을 주로 써온 이정명의 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아 다소 어려운 면도 없잖아 있었으나 기독교적인 소설로 읽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이 글에 대한 리뷰를 써야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에게 자칫 잘못 비춰질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웠다는 점이 컸다. 다른 한편으로 작가는 왜 이 소설을 썼나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인물이 아니고 왜 유월절의 이야기를 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의 의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종교는 마음을 지탱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내세를 기다리는 즉 천국에 도달하는 기쁨으로 가득차 있을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세에 대한 기쁨으로 승화시키는게 종교의 힘이 아닐까 한다. 예수가 하나님에게 갈구했던 삶에 대한 간구가 특별히 다가왔던 이유와도 같다. 예수를 죽임으로써 사람들에게 인간의 죄를 사함을 보여주려 했던 신의 바람을 깨달아서 일까.

 

살 수 있었음에도 직접 진실을 말하겠다며 도망치지 않았던 마티아스의 깨달음과 강한 믿음, 그리고 마티아스에게 내렸던 예수의 축복이 가슴뭉클해지는 느낌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마치 통곡의 눈물을 흘리듯 뭉클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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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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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인종, 차별의 역사를 전복하는 경이로운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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