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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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셋이었던 때가 언제던가. 생각해 보면 까마득하다. 회사 생활과 첫 아이 육아를 도저히 병행할 수 없어 직장을 그만둔 때였나. 둘째 아이를 막 낳고 두 아이 때문에 내 생활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그야말로 지쳐있었던 시기다. 서른셋이라는 내 나이가 없었던 때였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얼마나 젊고 좋은 시기인데, 그 시절을 우리는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서른셋의 오영오가 달리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모가 말하는 서른셋의 영오는 힘들면 직장을 그만두어도 되는 정말 좋은 시기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학습지 출판사의 국어과 편집자. 새해가 되어도 참고서를 편집하느라 밤 새우는 건 기본. 피로에 절어있다. 폐암 투병을 하던 어머니가 죽은 후 아버지를 일곱 번 정도 밖에 만나지 않았다. 서로 데면데면했던 아버지가 죽은 후 그가 남긴 것이라곤 수첩 하나와 전기밥통 뿐이었다. 아버지의 수첩 속에는 '영오에게'라는 말고 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홍강주, 문옥봉, 명보라. 이 세 사람의 연락처를 휴대폰에 입력하고, 아버지가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새별중학교 수학 교사인 홍강주를 만나 나머지 두 사람을 찾기로 했다.

 

소설의 화자는 영오와 영오의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 국어 문제와 다른 일상적인 것들을 물어오는 중학생 미지다. 영오와 미지가 번갈아 가며 소설을 진행하는 식인데, 영오와 통화하는 미지를 보면 미지가 영오보다 어쩌면 한 수 위인 것만 같다. 미지는 고등학교를 안가겠다고 버티고, 치킨계의 여왕인 엄마로부터 집에서 쫓겨났다. 물론 직장에서 잘린 아버지와 함께다. 재개발되기를 바라 아직 팔지 않은 개나리 아파트 702호에서 아빠와 함께 기거하게 된다. 우연히 옆집 고양이 버찌가 발코니 틈새로 건너오게 되며 옆집 할아버지 두출의 심부름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소설 속 인물들이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아버지가 피는 담배라고 우겼던 영오, 형의 죽음을 함께하지 못했던 홍강주,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미지 등. 누군가에게 자세히 말하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드러내야 하는 아픔이었다.

 

오영오. 난 너라는 문제집을 서른세 해째 풀고 있어. 넌 정말 개떡 같은 책이야. 문제는 많은데 답이 없어. 삶의 길목마다, 삶의 고비마다, 지뢰처럼 포진한 질문이 당장 답하라며 날 다그쳐. (40페이지)

 

 

누군가의 죽음은 늘 상처와 고통을 남긴다. 그 죽음이 가족일 경우와 타인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죽음에 대한 이유를 찾게 되고, 누군가의 책임을 묻고 싶다. 아마 죽음에 대한 회피를 하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아버지에게 지우고, 형의 죽음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괴로움을 안고 있고, 어떤 아이의 죽음에 대한 고통으로 갑자기 쓰러지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것 모두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뒷편의 모습이었다.

 

상처를 가진 자들이 모여 함께 그 상처를 어루만지고 상처에 가까이 다가가 비로소 마음의 짐을 더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죽음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소설이 슬프지 않고 오히려 따스하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이처럼 하나처럼 움직일 수도 있구나 싶다.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되고 처음에 다하지 못했던 진심을 전한다.

 

 

 

 

사람을 안다는 건 참 어려워. 그렇지? 이해한다는 건 더 어렵고. 그 사람이 나든 남이든 말이야. (193페이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연락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혹은 부모님이 죽었다는지 하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다. SNS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할 수 있는 말들을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못하듯 말이다.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듯 다가갔다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이런 소설이 좋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지도 모른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우리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배운다.

 

벽을 뛰어넘은 우정이라고 해두죠. 나이의 벽, 사고방식의 벽, 살아온 역사의 벽, 집과 집 사이의 벽, 등등. (290페이지)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에게 벽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 볼 일이다. 모르는 사람들과는 친해질 수 있지만 가까이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은 싫은. 그렇지만 나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가까운 곳, 즉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때문에 힘을 내고 함께 이야기하며 즐거움을 얻는다. 그걸 잊지 말자.

 

덧. 이 책을 모집할 때 작가, 표지, 제목, 분야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블라인드 서평단 모집이었다. 최근에 챙겨 본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나왔던 방식.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 소설 만으로도 안도했던. 정작 책을 읽고난 뒤에는 무척 감동한 소설이기도 하다는 걸 밝히고 싶다.

 

난 너라는 문제집을 서른세 해째 풀고 있어. 넌 정말 개떡 같은 책이야. 문제는 많은데 답이 없어. 삶의 길목마다, 삶의 고비마다, 지뢰처럼 포진한 질문이 당장 답하라며 날 다그쳐. (40페이지)


사람을 안다는 건 참 어려워. 그렇지? 이해한다는 건 더 어렵고. 그 사람이 나든 남이든 말이야. (19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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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8 16: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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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탄두리
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 지음, 지명숙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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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이기호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게 특히 좋다. 작가의 아이들이 내 주변에 있을 것만 같아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따스한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작가로서 큰 부담일 것 같다. 숨기고 싶거나 굳이 들어내고 싶지 않은 일들까지 나타내야 제대로 된 소설이 되기에 곤란함에 처하지 않을까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나 같으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들은 말하지 않는다. 이 나이가 되도록 체면이 중요한 것일까.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자란 작가 에른스트 환 데르 크봐스트의 자전적 소설이 그렇다. 이기호 작가처럼 작가의 실명을 드러내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재미있다. 우리 어머니들의  억척스러운 모습을 직접 보는 것 같아 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오히려 우리 엄마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책 표지의 소개처럼 특기는 물건값 깎기, 취미는 남편 닦달하기, 희망은 우리 아들 멀쩡해지기. 극성맞고 애들프고 요절복통 웃기는 이야기다.

 

어머니는 궁색하기 짝이 없는 인도의 가정에서 열한 번째 입으로 태어났다. 인도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가 직업을 새로 구해 네덜란드로 오게 되었다. 여행가방 두 개를 들고 말이다. 여행가방 안에는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의 물건이 실려 있었다. 어머니가 집을 구할 때 남편과 세 아들들은 가만히 앉아 있고 고개만 끄덕거리게 되는데 이 모든 게 어머니의 지시하에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집 한 채 값을 인도에서라면 몇 채라도 사겠다며 사정없이 깎아버린다. 물론 탄두리처럼 불같은 성격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불같은 성격의 엄마에게 아빠는 순한 양처럼 군다. 집을 구할 때도, 세입자를 내쫓을 때도 그의 귓가에 조심하라는 말만 남길 뿐이다. 병리학 의사인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논문이라도 보고 있으면 델리의 생쥐보다도 돈을 못 벌어온다며 아버지를 닦달하고 논문을 찢어버리기까지 한다. 또한 시체 냄새가 난다며 식탁에서 겨드랑이를 딱 붙이고 있으라고 한 어머니다.

 

 

 

그럼에도 지적 장애인인 큰 형을 낫게 하려고 국경을 넘어 프랑스에 까지 가서 성수를 구해온다. 여기에서 장애들에게 무료로 탑승할 수 있는 장애인 통행증을 사용하겠다며 우기는 장면 또한 압권이다. 우리 같아도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아들들과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같다.

 

어머니의 소원이 큰 아들 아쉬르바트가 정상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둘째 아들이 무슬림 여자를 데리고 오고,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는 에른스트가 공부를 포기하고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낙담을 했다. 작가 에른스트가 어머니 이야기를 쓰려고 했을 때 고민 끝에 한 말은 '다 네 마음대로 지어내고 꾸며대고 바꿔도 상관없어. 어떻게 쓰든 다 괜찮아. 하지만 꼭 한 가지, 내가 희망을 포기했다고는 절대로 쓰면 안 돼.' 였다.

 

나는 어머니의 외침을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을 따름이다. "잘디! 잘디!" 잔디밭 위로 튀어오르는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열정 그리고 환희에 넘치는 행복감. (166페이지)

 

극성스러운 어머니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따스하게 읽혀지는 건 비단 나 뿐만 아닐 것이다.  탄두리 화덕처럼 불 같은 성격의 어머니를 극성맞게 그렸음에도 작가와 가족들이 느끼는 따스함과 감동이 있었다. 역시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에른스트의 2세 아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쩐지 계속 이어질 것만 같다.

 

에른스트 환 데르 크봐스트의 이기호식 가족 소설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가족사, 예를들면 평생 직업을 가지지 않은 삼촌과 어머니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성격을 가진 이모들의 이야기에 감동하게 된다. 다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써볼까 생각중이라는 저자의 말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본다.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귓가에 속삭일 뿐인 아버지의 속엣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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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8 16: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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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은 한때 잘나가던 카피라이터였다가 경력이 단절되어 취직을 하지 못했다. 급기야 고스펙을 가졌음에도 학력을 숨기고 입사한 출판사에서 마케터로 거듭나는 과정들을 담은 내용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겠금 알리는 마케터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팔기 위해서는 알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그 상품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즉 상품을 알려야 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야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책만 읽는 내게 마케팅이라는 분야는 아주 생소하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도 아니어서 무슨 말을 해도 귀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 세스 고든은 마케팅에 대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마케팅은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다.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전에는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뿐더러 마케팅을 한 것이 아니다. (13페이지)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면 문화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라. 긴밀하게 조직된 집단을 구성하는 데서 시작하라. 사람들은 한데 엮는 데서 시작하라. 문화는 전략을 이긴다. 심지어, 문화가 곧 전략이다. (36~37페이지)  

 

 

 

 

다른 책에서도 보았지만 연예인들은 팬덤을 형성한다. 즉 연예인들을 좋아하는 팬들이 돈을 쓰게 만드는 것. 그것이 연예인들을 모델로 기용하는 이유다. 저자 세스 고든 또한 책에서 언급했는데, 케빈 켈리의 글을 이용해 가수나 작가의 경우 1,000명의 진정한 팬만 있어도 먹고살기에 충분하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다른 책의 리뷰에서도 언급했었는데, 여동생 또한 좋아하는 배우가 광고하는 옷을 사고, 커피를 사고, 그가 출연한 영화는 열 번 가까이 보는 건 기본이며 그가 보았다는 책들을 다 사서 보곤 한다. 전에 어떤 아이돌이 어느 책 속의 인물과 비슷하다고 하여 그 책이 품절대란 사태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실제로 내 블로그에서 와서도 그 책을 팔라며 비밀 댓글을 남긴 적도 있었다.

 

이처럼 마케팅은 우리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붙잡아 그것을 구매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 이게 마케팅의 효과다. 드라마 주인공이 보았던 책이 다음 날 아침이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절판되었던 만화 세트가 재발간 되기도 하는 것. 역시 마케팅의 효과다.

 

최고의 마케터는 변화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 낸다. 그 방법은 같이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234페이지)

 

눈에 띄지 않는 광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눈에 띄는 광고도 모든 사람이 아니라 일부의 눈에 띈다. 적합한 사람들의 눈에 띄는 광고는 긴장을 창출한다. (246페이지)

 

일을 잘 하는 것, 어떤 대상을 잘 만드는 것, 마케팅을 잘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분명 우리에게는 당신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당신의 변화가 더 필요하다. (357페이지)

 

저자는 마케터가 먼저 변해야 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마케팅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알기 쉽게 설명했으며 실제 마케터로 활동하는 사람이 보면 더욱 좋을 책이다. 마케터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본다면 많은 자극을 받을 만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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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8 1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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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조금씩 너만의 시간을 살아가
유지별이 지음 / 놀(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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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하면 교복인데, 난 공교롭게도 교복 자율화가 시행 되던 시점이어서 중학교 1학년 까지만 교복을 입었다. 남들하고는 다른 일명 세라복. 교복을 입고 입학식을 했던 순간들을 많이 그려볼 텐데. 고등학교 때 사복 때문에 아침마다 고민했었던 시기였다. 그 눈부신 시절이 떠올랐던 그림에세이였다. 그림과 글을 쓴 작가가 아직 대학생이라는 점이 놀랍다. 글과 함께 필체가 고운 여학생을 바라 보는 느낌이랄까.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3년의 시간을 보내고 졸업식을 거쳐 이제 대학생 새내기가 되어 일년을 마친 시간들을 그림과 글로 나타낸 책이었다. 설렘반 두려움 반이 공존하는 입학식. 어떤 친구들이 있을 것이며,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일지. 반 분위기는 또 얼마나 궁금해 했던가.

 

 

하얀 기대 반, 검은 걱정 반, 잿빛 발걸음.

그 위로, 봄바람이 불어오더라.

 

'넌 충분히 빛나고 있어.'

향긋한 꽃향기가 말을 걸어왔어.

봄을 찾아 이끌리듯 다시 힘차게 내디딘 한 걸음.

 

'잘할 거야,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돼.

우린 이제 시작이니까.' (16페이지)

 

봄의 시작은 이처럼 핑크빛이던가. 곧 있으면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가득할 것이다. 매화 개화 시기를 지나 바야흐로 벚꽃의 계절이 곧 다가오지 않던가. 그래서 작가의 그림도 핑크빛이다. 온통 핑크빛으로 가득한 벚꽃의 계절을 봄으로 표현했다. 물론 새침하기 이를 데 없는 꽃샘 추위가 다가올테지만 그래도 설레기만 한 봄이다.  

 

 

설레기만 한 봄과 열정 가득한 여름, 울긋불긋 결실을 맺을 가을, 모든 것이 얼어붙지만 다시 봄을 그리는 마음을 표현해 사계절을 챕터로 그때그때의 감정들을 그림과 함께 글로 풀어냈다.

 

바다 향기를 머금은

여름 길을 보며

한 걸음.

 

푸른 바람이 전하는

잔잔한 파도 소리에

또 한 걸음.

 

그러다

우산에 흘러온 하얀 구름에

내 걸음을 멈추었다.  (94페이지)

 

이미 십 대때부터 그림을 그려온 작가는 글도 어여쁘게 쓴다. 비록 아직 짧은 글들의 모음이지만 언젠가는 긴 글도 쓰지 않을까. 나이에 맞게 성숙해가며 글과 그림이 더 찬란하지 않을까.

 

 

해가 채 뜨지 않은 겨울날.

소리 없이 눈이 내리던 날.

눈물이 날 정도로 시린 칼바람이 불던 날

 

겨울의 문을 열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의 새벽 속에는

 

네 웃음이 담긴 입김이

설렘이 담긴 목소리가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이

따뜻하게 남아 있을 거야.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186페이지)

 

 

 

그림 실력이 꽤 좋은 것 같다. 부드럽게 편안한 그림에서 한때 우리가 겪어 왔던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좋은 시절인가는 그 시절을 지나야만 느낄 수 있다. 얼마전 종영했던 드라마 제목처럼 눈부신 시절이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시절.

 

이 책을 읽으면 찬란한 아름다움을 간직했던 그 시절을 만날 수 있다. 떠오르는 감정들,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추억.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이다. 눈이 부시게 찬란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 시절을 즐기라고. 그 시간 만큼 아름다운 순간도 없다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한 풍경이

지금부터 펼쳐질 거야.

 

깊은 밤의 별빛이 가득한 은하수

그리고 달빛이 스며든 바람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

 

자, 이리 와.

내가 널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나와 여행을 떠나보지 않을래? (223페이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다. 그림도, 글도, 마음도. 한층 더 성숙해서 돌아오길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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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2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2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3 1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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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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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별별 일이 다 생긴다. 모르는 사람인데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곤란한 일을 겪고 있을때 참견해가며 도와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나이가 어린 사람의 경우는 덜한 편인데 나이 든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오지랖이 넓다, 혹은 참견쟁이라고 낮춰부르기도 하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외로워서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한 게 사실이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기에 모르는 사람에게도 말을 건네는 게 아닐까 하는. 

 

삼십 대의 일러스트레이터 가마타미와가 일상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사람들, 특별히 좋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말하는 일기 같은 것이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양한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옷집에서 아주 비싼 물건을 보여준 다음 더 저렴한 물건을 보여주며 사겠금하는 점원이며 수영장에서 마치 오래 알아왔던 사람처럼 수영을 가르쳐주고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할머니들처럼. 그런가하면 전자제품 가게 직원은 IT 부품에 대해서는 아주 정확하게 추천해주지만 물건을 포장하는 것에는 어설퍼 자꾸 실수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은 참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  

 

 

 

일상에서 일어난 일들 뿐 아니라 타이완을 여행하며 보았던 풍경들도 보여주었다. 혼자서 하는 여행. 외롭지만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며 많은 목록을 써와 움직이며 느끼게 되는 건 비록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해도 여행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왔느냐란 물음에 친절한 답변과 함께 일본의 어딘가를 방문해보고 싶다는 대답을 듣고는 국내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을 반성하고 국내 여행도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도 우리와 비슷하다. 우리도 그렇지 않던가. 외국의 풍경을 더 그리워하고 떠날 생각을 하게 되지만 내가 머물고 있던 곳을 누군가에 의해 새롭게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가 타이완의 풍경의 사진으로도 남겼는데, 내가 다녀왔던 익숙한 풍경이 보여 반가움이 일었다. 여행했던 사람들과 함께 방문했던 지우펀의 홍등과 거리들. 여행자의 신분으로 느꼈을 많은 감정들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다음 여행을 위한 팁까지 밝혀놓는 작가만의 센스 또한.

 

 

 

특별히 재미있다는 생각보다는 이런 일상적인 내용도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리니 새롭게 느껴지는 구나 하고 부담없이 읽었다. 그런데 아래 사진에서는 나도 모르게 풋 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수영을 배우는 작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대한 관심으로 수영을 열심히 배우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었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한 작가는 팔과 어깨가 수영에 적합해지고 있다고 했었다. 민소매 차림으로 카페에 앉아 있는데 놀라는 친구에게 '권투하는 것 같아?'라고 묻는 장편에서 큰 소리로 웃었다. 수영이 아주 좋다는 걸 알지만 어깨가 넓어진다는 단점때문에 수영을 꺼리고 있는 게 생각나서였다. 지금도 어깨가 탄탄한 편인데 수영을 하면 어깨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블로그에 일기처럼 일상을 적었던 때가 떠올랐다. 교류하는 이웃들과 함께 일상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때가 문득 그리웠다.

 

오늘도 누군가와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삐지고, 때로는 슬퍼한다. 살아가며 느끼는 많은 감정들을 다 보여줄 수는 없지만, 타인의 일기를 보며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웃었던 것처럼, 오늘도 우리 곁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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