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양들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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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래. 그해 봄 이야기로 시지하자. 40여년 전 내가 예루살렘에서 보낸 7일, 살인과 음와 배신과 사랑이 폭풍처럼 뒤섞이던 그해 유월절, 이곳에서 내가 보고 들었던 기이한 일과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뜨거운 삶을, 그리고 그 삶보다 뜨거웠던 그들의 죽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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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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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을 가지고 있으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즉 광장공포증을 앓는 것인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극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마는 증상을 가진다는 것인가.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소설 속 주인공 애나 폭스가 가진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였다. 청소년 심리 상담을 했던 박사가 어떤 고통을 안고 있기에 집 안에서만 기거하는지. 그것도 창밖의 세상을 탐하는지 몹시 궁금했었다. 그녀가 창문밖 세상을 카메라의 눈을 통해 바라보았던 것. 그녀가 목격한 살인사건으로 보였던 장면들은 뒷전이었다. 애나 폭스가 무슨 일을 당했는가 였다.

 

할렘가의 저택. 딸 올리비아와 남편 에드가 떠난 집에서 홀로 기거하고 있는 애나 폭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공원 건너편의 집을 염탐하는 것 뿐이다. 카메라를 통해 창문 안의 세상을 바라보며 내심 가슴을 쓸어 안는다. 공원 건너편 207번지로 한 가족이 이사왔다.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직 어려보이는 십대의 아들이 있는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207번지의 아내인 제인 러셀이 우연히 집밖에 나가 정신을 잃고 있는 애나를 구해준 뒤 애나의 집에 제인이 찾아와 하룻밤을 머문다. 우연히 207번지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제인의 가슴에 무언가가 꽂혀 있었고, 피를 흘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약물과 술을 마시며 공포영화를 보고 있었던 환각을 보았다며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애나는 특히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즐겼다. 흑백 영화의 컬렉션 중 공포 영화가 다수를 이루었고, 프랑스어 회화 공부와 인터넷으로 심리 상담을 해주지 않을 때는 늘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것도 공포 영화를.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공포영화는 이 소설이 가진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는 애나 폭스. 그녀가 살인 사건을 목격했다고 신고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저 술과 약물로 인한 환각증세를 앓았다는 말로 일축한다. 실제로 그녀가 제인 러셀이라고 알고 있었던 여성은 사라졌고, 알리스타 러셀은 진짜 제인 러셀을 그녀 앞에 데리고 나타났다. 애나 폭스가 보았던 장면은 환각 뿐이었을까. 영화 속 화면을 진짜라고 생각했던 건가. 애나는 처음엔 알리스타 러셀

을 의심했었고, 그녀의 지하층에 사는 데이비드를 의심했다. 데이비드가 지하로 연결하는 문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작가의 트릭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애나 폭스랑 별거하는 남편 에드와 올리비아 외에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그녀가 의지할 정신분석의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저 창문안에 갇혀 창문밖 세상을 카메라로 바라보는 게 다인 그녀를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다소 어리게 보이지만 잘생기고 착해보이는 이선 러셀이 애나를 도울 수 있을까?

 

스스로 자기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바깥의 세상을 두려워하는 그녀를 도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진짜 제인의 죽음을 밝히려고 가짜로 보이는 제인의 뒤를 밟기 위해 우산 안에 갇혀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녀의 발걸음이 못내 안타까웠다. 스스로 집안이라는 알에서 깨어 세상 밖으로 나가길 간절히 바랐다. 결국 이웃집의 남자 아이의 손에 이끌려 자기 집안으로 오기까지의 시간은 영겁 같았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애나가 상담해주는 리지 할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 청소년을 상담했던 그녀의 이력을 제대로 사용했지만 애나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누구나 그렇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실제로 보았지만 약물 중독이나 술을 마시는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나 폭스의 말은 믿고 싶다. 우리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았던 장면이 환각이 아님을, 실제로 보았던 장면임을 믿고 싶다.

 

누구를 의심해야 하나. 누가 그녀가 제인으로 믿었던 사람을 죽인 것일까? 알리스타? 아니면 진짜 제인? 그들도 아니면 그녀의 지하층에 살았던 데이비드? 데이비드가 커터 칼을 빌렸을 때, 그리고 애나 모르게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을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은 의외의 결말을 맞이한다. 그녀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된 이유를 아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조금쯤은 아니 소설 읽는 몇몇 순간에도 생각했으나 안타까울 뿐이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애나가 보았던 흑백 영화 리스트들이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날짜 순서에 맞춰 제목과 간단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인다. 에이미 아담스와 게리 올드만 주연으로 영화 제작중이라고 한다.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짜릿함을 선사할 것 같다. 배우들의 눈빛과 풍경 그녀가 보았던 공포 영화들이 살인 장면과 함께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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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만 해도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커다란 행복인 것처럼 말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써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우리나라의 휴가제도 또한 초임자에 한해서는 추가 발생 휴가를 줘 좀더 여유있는 삶을 권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누군가는 힘들어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고 해도 늘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의 바람은 휴가를 가는 것이다. 집에서 쉬든 어딘가로 여행을 가든 쉬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여가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가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게을러야 한다. 이는 많은 사람의 바람이지만 실제로는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질 뿐이지만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누려야 할 여가에 관해서 많은 문학 작품들을 거론하며 말한다. 일단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 『리플리』 속 톰 리플리를 말하는데 꿈꾸었던 삶의 많은 것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나 싶다. 디키 그린리프를 죽이고서라도 그의 여유로운 삶을 훔치고 싶었던, 그래서 마침내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는 리플리였다.

 

나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 저자가 말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낮잠, 책 읽기, 바라보기, 대화, 걷기, 빈둥거림, 깃들이기, 그루밍, 놀이, 외국어 공부하기, 쇼핑, 여행 등이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을 오죽하면 불금이라고 표현했을까. 직장인 만이 가지는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주말 오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다가 졸다가 음악을 듣는 시간은 무척 귀하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거나 하면 그 시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지에서도 즐길 수 있지만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와 놓치기 십상이다.

 

바야흐로 음식이 화두인 시대다. TV를 틀면 어딘가의 방송은 항상 음식을 먹고 있다. 외국을 여행하며 혹은 셰프가 만들어주는 음식 또는 캠핑을 다니면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또한 방송인이 아닌 일반인 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음식은 필수적이다. 산에서 채취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 모습.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건 많은 것을 함께하는 일이다.

 

음식에 관련된 방송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인지 저자도 그 말을 언급하며 그에 앞서 정원을 가꾸던 이야기를 한다. 바라보기 위해 만드는 정원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정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지지 않나. 그래서 제주의 어떤 곳이나 태국의 치앙마이 어떤 곳은 정원을 바라보며 차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인기다.

 

수천 년 동안 일부 사상가들과 작가들은 '게으름'이 어떤 형태로든 삶의 최고 형태라고 여겨왔다. 일이 아무리 즐겁고 보람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일이란 노예제의 다른 이름이다. 반면에 여가는 자유다. 더러 빈둥거림이란 가능한 한 적게 일하는 것을 뜻한다고 이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힘들게 일하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 들에 핀 백합처럼 말이다. (22페이지)

 

진정한 의미의 한량과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빈둥거리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명심할 점은, 부르주아 게급 혹은 지주나 고용주는 자기 여가를 일정한 '생산 네트워크'에 통합시키길 원치 않는 사람에게 '나태하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42페이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욕심을 내어 투어상품을 예약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를 보냈더니 몸이 무너진 것 같았다. 하루만 타이트하게 보냈을 뿐 다음 날부터는 여유롭게 보냈는데도 평소보다 피로가 쌓여 마지막 날엔 장에 탈이 나고 말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반성이다. 게으름을 피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평소보다 더 부지런을 떨었던 탓이다.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143페이지)

 

순간을 산다는 것은 죽음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물론 당신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으리라. 그건 미친 짓이니까. 그러나 창조적인 놀이는 순간순간을 몇 시간, 몇 달, 몇백 년으로 만들어준다. (244페이지)

 

좀더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게 여유고 진정한 여가가 아니겠는가. 내가 하는 책 읽기, 좋아하는 여행, 친구와 함께 정원의 나무 혹은 숲을 바라보는 즐거움. 함께 차를 음미할 수 있는 여유. 진정한 삶이 주인이 되는 게 아닌가.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P143

진정한 의미의 한량과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빈둥거리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명심할 점은, 부르주아 게급 혹은 지주나 고용주는 자기 여가를 일정한 ‘생산 네트워크‘에 통합시키길 원치 않는 사람에게 ‘나태하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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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걸 클래식 컬렉션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공보경 옮김 / 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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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클래식 컬렉션 세트』는 소녀들이 좋아했던 작품만 엄선했다. 『작은 아씨들』, 『빨강 머리 앤』, 그 시절엔 『소공녀』로 통했던 『작은 공주 세라』, 그리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 이렇게 네 권이 들어 있다. 이 작품 모두는 어렸을 적 매우 좋아했던 작품이고 애니메이션으로 혹은 영화로도 보았던 작품들이다. 세부적인 내용까지 모두 기억하는 작품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에 제대로 읽었던 작품이 『작은 아씨들』이다. 최근에 1994년작 위노나 라이더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었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도 갖고 있지만 그 후의 이야기가 나오는 책은 처음 읽은 것 같다. 그래서 두께가 900페이지를 훌쩍 넘는다. 예쁘게 생긴 큰 딸 메그와 남자애처럼 행동하는 조,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지만 수줍어하는 베스 그리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막내 에이미까지. 아빠에게 작은 아씨들이라 불리는 네 자매의 이야기는 메그가 로리의 가정교사인 브룩 선생님과 결혼하고, 조는 신문사에 투고해 글이 실려 작가로 데뷔, 막내인 에이미는 돈 많은 친척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리게 되는 이야기로 끝맺는 부분까지 읽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후의 이야기까지 나온다. 

 

동화는 결혼하고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하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읽었다고 해서  『작은 아씨들』 내용을 다 안다고 하면 안된다. 우리가 읽었던 건 제1부의 내용이고 제2부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말한다. 이를테면 조의 언니 메그가 로리의 가정교사 브룩 선생님과 결혼하고 조와 로리는 핑크빛 기류를 내보여 분명 둘이 커플이 맺어질 것처럼 여겼었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조는 결혼 생각이 없고 로리를 친한 친구로만 여길 뿐이었다. 즉 1부가 동화였다면 2부는 현실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걸 극복하는 게 우리의 삶이란 걸 표현한 작품이었다.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마치 양'이라고 불리면서, 긴 치마를 입고 과꽃처럼 칙칙하게 살아야 한다니 딱 질색이야. 난 남자애들이 하는 놀이와 일이 좋고 남자 같은 태도가 좋은데, 여자답게 살라고 하니까 미치겠어.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한스러워. (22페이지) 

 

 평소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들과 어울리는 걸 즐겼던 조다. 마치 대고모의 시중을 들었지만 자신의 일을 하고 싶었다. 다락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일을 즐거워했고, 드디어 신문사에 투고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을 위해서 자극적인 글을 썼지만 점점 진짜 원하는 자신만의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나는 『작은 아씨들』 중에서 조 마치가 좋았다. 미래의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했던 시쳇말로 걸 크러시인 인물이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아씨들』에서 조 마치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글을 쓰는 일은 하지 않지만 조 마치의 활달한 성격, 올곶은 생각이 좋아 나를 조 마치로 여기며 읽었던 것 같다. 다시 읽어도 조 마치가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감사하는 마음은 자존심을 이기는 법이다. (137페이지)

 

 

 

 

엠마 왓슨과 시얼샤 로넌 주연,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94년작 로리 역엔 크리스찬 베일이 맡았었는데 최근에 개봉하는 로리 역엔 퇴폐미의 정석이라고 할 만한 티모시 샬라메가 맡는다. 크리스찬 베일의 풋풋함과 티모시 샬라메의 퇴폐미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겠다.  

 

"세월이 참 빨라.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너도 아직은 어리지만 곧 네 차례가 올 거야. 그럼 우린 또 아쉬워서 한탄을 하겠지." 로리는 인생의 황금기가 저무는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489페이지)

 

 

 

책을 읽으며 아무래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속 베넷 가의 다섯 자매들이 떠올랐다. 메그와 제인, 조세핀과 엘리자베스. 물론 자매들의 결혼으로 끝나는  『오만과 편견』과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적극적인 여성상을 보여준 『작은 아씨들』의 조는 무척 다르다. 마치 가의 어머니도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보다 꽤 현명하다. 결혼후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의 불편함을 느끼는 메그에 대해서도 지혜로운 조언을 하며 딸들 스스로 생각하고 일어설 수 있게 만든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에게 자신을 투영했고, 조 또한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글을 쓰는 생활을 한다. 보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나타냈다. 더불어 방향을 잃지 않고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네 자매를 통해 보여준 수작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마치 양‘이라고 불리면서, 긴 치마를 입고 과꽃처럼 칙칙하게 살아야 한다니 딱 질색이야. 난 남자애들이 하는 놀이와 일이 좋고 남자 같은 태도가 좋은데, 여자답게 살라고 하니까 미치겠어.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한스러워.- P22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감사하는 마음은 자존심을 이기는 법이다.- P137

˝세월이 참 빨라.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너도 아직은 어리지만 곧 네 차례가 올 거야. 그럼 우린 또 아쉬워서 한탄을 하겠지.˝ 로리는 인생의 황금기가 저무는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P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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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클래식 컬렉션 세트 - 전4권 - 작은 아씨들 × 빨강 머리 앤 × 작은 공주 세라 × 하이디 걸 클래식 컬렉션
루이자 메이 올콧 외 지음, 고정아 외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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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세계명작 동화를 사랑한 사람들은 지금도 그 기억때문에 작품을 다시 찾아 읽는다. 우리가 좋아했던 『빨강 머리 앤』 도 판본별로 소유하고 일 년에 한두 번쯤은 꼭 찾아 읽는 이유다. 거의 매년 한 번씩 읽는 편인데 올해엔 두 번이나 읽게 되었다. 물론 월북에서 나온 『걸 클래식 컬렉션 세트』 때문이다.

 

『걸 클래식 컬렉션 세트』는 소녀들이 좋아했던 작품만 엄선했다. 『작은 아씨들』, 『빨강 머리 앤』, 그 시절엔 『소공녀』로 통했던 『작은 공주 세라』, 그리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 이렇게 네 권이 들어 있다. 이 작품 모두는 어렸을 적 매우 좋아했던 작품이고 애니메이션으로 혹은 영화로도 보았던 작품들이다. 세부적인 내용까지 모두 기억하는 작품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에 제대로 읽었던 작품이 『작은 아씨들』이다. 최근에 1994년작 위노나 라이더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었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도 읽었지만 그 후의 이야기가 나오는 책은 처음 읽은 것 같다. 그래서 두께가 900페이지를 훌쩍 넘는다. 예쁘게 생긴 큰 딸 메그와 남자애처럼 행동하는 조,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지만 수줍어하는 베스 그리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막내 에이미까지. 아빠에게 작은 아씨들이라 불리는 네 자매의 이야기는 메그가 로리의 가정교사인 브룩 선생님과 결혼하고, 조는 신문사에 투고해 글이 실려 작가로 데뷔, 막내인 에이미는 돈 많은 친척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리게 되는 이야기로 끝맺는 부분까지 읽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후의 이야기까지 나온다.

 

동화는 결혼하고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하다. 메그가 브룩 선생님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을거라 예상하지만 아이를 낳고 서로 소원해지는 시기도 생기기 마련이다. 또한 조 마치가 옆집 사는 부잣집 손자인 로리랑 결혼할 것 같지만 도무지 결혼생각이 없는 조는 로리를 그냥 친구로만 생각한다는 게 문제다. 1부가 동화였다면 2부는 현실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걸 극복하는 게 우리의 삶이란 걸 표현한 작품이었다.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마치 양'이라고 불리면서, 긴 치마를 입고 과꽃처럼 칙칙하게 살아야 한다니 딱 질색이야. 난 남자애들이 하는 놀이와 일이 좋고 남자 같은 태도가 좋은데, 여자답게 살라고 하니까 미치겠어.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한스러워. (『작은 아씨들』, 22페이지) 

 

이래서 나는 『작은 아씨들』 중에서 조 마치가 좋았다. 미래의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했던 시쳇말로 걸 크러시인 인물이어서였다.

 

오래전 기억때문인지 우리가 『소공녀』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작은 공주 세라』를 가장 먼저 읽었다. 최근에 박신영 작가의 책에서도 언급해서 그런지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부잣집의 딸로 어려움없이 자란 세라가 아버지가 돈 한 푼 남겨주지 않고 죽었을때도 자기보다는 오히려 며칠은 굶어보이는 아이에게 빵을 건네줄 줄 알았던 마음 착한 소녀였다.

 

'듣지 못해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세라의 생각이었다. "창문과 문과 벽이 있어도 다정한 생각은 그 너머까지 전달돼. 이 추운 날 내가 여기에 서서 아저씨가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고 다시 행복해지기를 빌면, 아저씨는 영문도 모른 채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위로를 받을지도 몰라. 아저씨 때문에 마음이 아파." (『작은 공주 세라』, 199페이지)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친구가 살아와 하필이면 세라가 머물고 있는 민친 학교 옆집으로 이사 왔으리라. 자기 먹을 것을 생쥐에게도 나눠주는 아이였으니 원숭이에게도 먹을 것을 건네주고 하룻밤 재워줄 수 있었던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착한 아이가 어디있겠냐만 오래된 동화속 공주들은 늘 착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사실 어릴적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클라라와 하이디가 함께 알프스의 언덕을 오르던 장면만 기억할 뿐이었다. 이번 책을 읽으며 하이디가 이모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장면과 자연속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던 하이디를 만날 수 있었다. 더불어 하이디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클라라의 말동무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집을 그리워하는 장면들이 애틋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집에 가고 싶어요. 제가 여기 있으면 눈송이가 울테고 그래니도 저를 보고 싶어하실 거예요. 여기에서는 해님이 산에게 밤 인사를 하는 것도 볼 수 없어요. (『하이디』, 132페이지)

 

『하이디』에서 오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는 게 중요하다. 하이디가 향수병에 걸려 우울해하고 있을때 클라라의 아버지나 의사 선생님이 집으로 보내게 해주는 것도, 슬픔에 휩싸인 의사 선생님이 알프스의 언덕에 와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것도, 클라라가 휠체어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알프스의 대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었다.

 

읽을 때마다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읽게 되는 게 『빨강 머리 앤』이다. 이번엔 책 속의 문장들에 파고 들었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좋다. 『빨강 머리 앤』은 책 속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속 앤의 그림들이 좋은데, 이번 책엔 없어 조금 아쉬웠다.

 

그 순간 마릴라는 깨달았다. 심장을 찌르는 격심한 공포속에 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마릴라는 자신이 앤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하지만 언덕을 정신없이 달려 내려가는 동안 이제 자신에게는 앤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빨강 머리 앤』, 289페이지)

 

다이애나 배리의 지붕 용마루를 걷다 떨어진 앤을 발견한 뒤의 마릴라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매슈 아저씨가 그랬듯 마릴라도 처음부터 앤이 마음에 들어 블루웨트 부인에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던 앤이었다.

 

 

 

 

마릴라가 마음을 열고 사랑하게 된 어린아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제 키 크고 눈빛이 진지한, 이마에는 신중함이 드러나고 고개는 꼿꼿하게 든 열다섯 살 소녀가 있었다. 마릴라는 그 어린아이를 사랑한 것처럼 이 소녀도 사랑했지만 기이하고 서글픈 상실감은 어쩔 수 없었다. (『빨강 머리 앤』, 384페이지)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훌쩍 큰 숙녀의 모습으로 변한 앤보다 처음 그린게이블스로 왔던 앤의 모습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동화책 소녀들은 왜 그렇게 고아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걸 클래식 컬렉션 세트』에서 마치 가의 소녀들만 부모가 있었고, 앤이나 하이디, 세라는 차례로 고아가 된 소녀들이다. 하지만 작품 속 소녀들은 모두 용기를 가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좌절하지 않고 꿈과 희망을 지녔으며 가난해도 기죽지 않고 품위를 지키려 했다는 거다.

 

어딘가에 돈 많은 부모님이 존재할 것 같았고, 실은 네가 공주라는 환상을 품었던 어릴적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책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속 소녀들과 함께 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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