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몬 아이스크림
김지운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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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씩 읽어주어야 하는 장르 중에 하나가 로맨스 소설이다. 스트레스가 쌓일때 풀기위해서 소설책을 읽는데 그저 사랑이야기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잊고 소설속 내용에만 집중하게 되는 게 로맨스라는 장르다.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감동받기도 하는데 그 간격이 띄엄띄엄해도 버릴수 없는 게 로맨스 소설 읽기다.

 

동화 작가로, 로맨스 소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운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제목 또한 달콤하다. 『시나몬 아이스크림』이다. 씁쓸하고도 향긋한 계피가루가 뿌려진 아이스크림. 그 향기가 강해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차고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종류다. 여기에서 시나몬 아이스크림은 사랑에 대한 매개체로 나온다. 특별한 사랑을 느끼기 전 자기 마음을 확인했던 순간, 헤어지기 전에 먹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시골의 산속 할아버지의 결정으로 고모할머니의 비서를 따라 서울로 오게 된 크림의 이야기다. 크림은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그래선지 연한 갈색 머리카락과 흰 피부를 가졌다. 고모할머니의 집으로 오게 된 크림. 크림은 그녀와 함께 온 할머니의 비서 도 실장을 의지하고, 말이 없고 차갑기 그지없는 도 실장의 관심을 받는 유일한 사람이다.

 

여기에서 도 실장은 김지운 작가의 전작 『오렌지 하모니카』의 여자 주인공 니은과 약혼한 남자 도국이다. 도국은 고모할머니의 비서실장으로 사채업계의 큰손 이순덕 여사의 오른팔이다. 할머니의 손녀딸과 약혼했으나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핑계로 그 약혼을 파혼시켰다. 물론 할머니가 던진 물건으로 인해 많은 피를 흘리고서 말이다.

 

평생 결혼같은 거 안하고 살겠다는 도 실장에게 크림은 훈풍이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챙겨주어야 할 여자. 처음엔 의무감에서 하는 행동이었겠으나 어느새 마음 한켠에 담아버렸기에 가능했다.

 

 

 

사실 특별한 사건은 없다. 할머니의 돈을 탐내는 친아들이 있을 뿐이며, 할아버지와 고모할머니의 관계가 어떻게 된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도국 실장과 이크림의 관계 또한 무난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도국 실장을 꾹 실장이라 부르며 그의 근처를 맴도는 크림과 어릴적 친구 우재에게 째라고 부를때 강하게 질투하는 도 실장의 행동이 무척 재미있었다.

 

그 흔한 키스씬 조차 없지만, 크림과 국의 사랑이야기는 설렘을 주기에 충분하다. 소설은 이제 막 사랑을 확인하는 찰나에 끝이 난다. 결혼해서 아이가 하나 둘쯤 있는 에필로그 같은 거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운 작가의 사랑이야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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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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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서 다양한 여자의 시각을 알게 되고, 우리는 삶의 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배우가 어떤 역할을 하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듯 우리 또한 작품속 인물들에 강하게 빙의되어 우리의 삶을 반추한다.

 

니콜 키드먼 주연의 동명 영화 <디 아워스>를 놓쳤다. 자세한 이야기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책과 영화는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것을 느낀다. 아마도 책을 읽는 사람과 영화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달랐을 수도 있다. 왜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고민을 제대로 해보기 전에 동명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배우들의 특별한 연기에 힘입어 소설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쓰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클러리사를 죽일지 살릴지 고민이다. 1949년의 로라 브라운,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고 로라를 무척 사랑하는 남편과 리치라 불리는 아이가 있다. 1999년의 클러리사 본은 리처드로부터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린다. 작가인 리처드는 문학상 수상을 앞두고 있고, 클러리사는 리처드의 파티를 준비한다.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세월』의 변주다. 울프 부인은 『댈러웨이 부인』을 쓰고,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클러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린다. 소설은 시대를 달리한 세 여성들의 급박한 하루를 나타냈다.

 

 

 

영화의 시작도 소설과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의 시선을 피해 바닷가로 달려간다. 코트속에 크고 무거운 돌을 넣고서 그대로 들어간다. 다리까지, 허리까지, 목까지 차던 물은 그대로 울프 부인을 삼켜 버린다.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즉각적으로 화면을 달리해가며 세 사람의 하루의 시작을 교차한다.

 

아들 리치와 함께 케이크를 굽던 로라는 이웃집 여성 키티의 방문을 받고 병원에 간다는 그녀를 안고 입술에 키스를 한다. 이 모습을 아들 리치가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다. 로라는 아들을 차에 태워 아이를 돌봐주는 부인에게 맡기고 자기만의 방을 빌린다. 호텔의 침대에 누워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는 어쩐지 처량하다. 자신을 버지니아 울프와 혼동하는 것 같다. 로라가 하루의 몇 시간을 호텔에 머무는 장면은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와 맞닿아 있다. 지겨운 하루의 어떤 시간을 홀로 있고 싶어 아이를 맡기고 침대에 누워 하는 일이라곤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것일뿐인 로라. 우리도 어쩌면 이런 시간을 꿈꾸는 건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소설 속 세 여성들은 모두 남성들보다 여성을 좋아한다는 거다.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클러리사는 샐리와 함께 살고 있고, 클러리사의 딸인 줄리아는 또다른 여성과 함께 한다. 클러리사가 한때 좋아했던 리처드는 루이스와 사랑을 했고, 현재의 루이스는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과 사랑에 빠져있다.

 

 

 

동성애 코드가 있지만 그렇게 거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시간을 사는 여성들의 고민과 삶의 애환이 보인다. 건강을 위해 런던에서 시골 리치몬드로 내려왔지만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만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댈러웨이 부인인 클러리사를 죽일까 말까,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비로소 누구를 죽일지 결정하게 된다.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은 우울하다. 죽음이라는 것이 전체적으로 자리잡고 있고, 모두들 지난 시간에 대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리처드의 죽음이, 갑자기 사라졌던 로라에 대한 리처드의 감정이 애잔하다. 누군가는 사라질 수 밖에 없고, 사라지고 싶어하고, 사라지지 못하는 삶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시간들은 남아 있어, 그렇지 않아? 하나의 시간, 그러고 나면 또 그런 시간. 그 시간들을 당신이 다 견뎌낸다고 해도 또 그런 시간이 있어. 세상에, 또 그런 시간이라니. 지긋지긋해. (293페이지)

 

 

 

 

 

아주 운이 좋더라도 시간 자체에 잡아 먹힌다. 위로할 거라곤 우리 삶이, 그 모든 역경과 기대를 넘어선 우리 삶이 활짝 피어나 상상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어쩌면 아이들까지도) 그런 시간 뒤에는 필연적으로 그보다 더 암울하고 힘든 시간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도시를, 아침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시간들이다. (327~328페이지)

 

영화에서는 이 부분들을 세월로 번역하고 있었다. 시간과 세월은 어쩐지 다른 느낌이다. 시간은 현재를 말하는 것 같고, 세월은 지나간 시간을 말하는 것 같다. 이 모두 우리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들이다. 시간을 거슬러 갈수도, 훌쩍 뛰어넘을 수도 없다. 그저 오늘을 사는 것일뿐. 전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궁금했었는데, 마이클 커닝햄이 소설을 변주할 정도면 얼마나 좋았던 것일까. 궁금함에 잠못 이룰 것 같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가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질 수 밖에 없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고, 이 소설이 퓰리쳐 상과 펜 포크너 상을 동시 수상할 수 밖에 없었는지 동감하게 된 보기드문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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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2-0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근에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설을 바탕으로 쓴 『디 아워스』라는 작품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디 아워스』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다운 받아 봤고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뜻밖에도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던 당시 리치몬드에서 생활하던 버지니아 울프 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정작 원작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클라리사와 피터 월시 사이의 ‘애정이 꽃피던 시절‘을 볼 수 없어서 여간 아쉬운 게 아니긴 했지만요.
 
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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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이토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하나같이 따스함을 나타낸다는 거다. 작가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 그대로 책으로 드러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글이 좋다. 음식을 만드는 식당 이야기를 했다가, 누군가에게 대필해주는 편지를 쓰는 여성의 이야기를 하더니, 이제는 북유럽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라트비아에 사는 일본인의 이야기려니 할수도 있지만, 루프마이제공화국에 사는 마리카 라는 여성의 이야기로 우리를 라트비아의 문화로 이끈다.

 

라트비아가 배경인 추리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추리소설과 오가와 이토의 작품은 매우 다르다. 전혀 같은 나라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또는 그곳에 직접 사는 작가가 쓴 이야기 같다는 게 큰 장점인것 같다. 그림 또한 라트비아의 문화를 그대로 표현해내 책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루프마이제공화국.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빠는 여자 아이에게 마리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마리카에게는 오빠 셋과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 루프마이제공화국은 추운 나라라 엄지 장갑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좋아한다는 표현도 엄지 장갑을 직접 떠서 주었으며, 상대방이 장갑을 끼게 되면 그 마음을 받아준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처음 엄지 장갑이라고 그래서 나는 엄지 손가락에만 끼는 장갑인줄 알았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쓰던 벙어리장갑이었다. 특별한 날에 끼는 게 다섯 손가락이 들어갈 수 있는 장갑이라는 거다. 루프마이제공화국은 지역 특성상 모두 수공예를 할 줄 알아야 공화국에서 살 수 있었다.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한 활달한 마리카도 수공예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실을 잣고, 뜨개질을 해서 엄지 장갑을 떠야 했던 것. 할머니에게 많이 배웠지만 솜씨는 그리 완벽하지 못했다.

 

그런 마리카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그녀보다 한 살 많은 야니스였다. 춤을 배우는 교실에서 만났던 마리카는 그에게 줄 엄지장갑을 뜨기 시작했고, 그것을 받아든 야니스는 수줍게 웃으며 그 장갑을 꼈다.

 

동화같은 소설이지만 루프마이제공화국의 배경인 라트비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얼음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간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 그곳에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랑하는 야니스도 얼음제국으로 가야했다. 이별이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들에게도 피해갈 수 없었던 이별이었다.

 

 

소설의 뒷편엔 일러스트 작가와 함께 라트비아를 방문했던 에세이가 사진, 그림과 함께 실려있다. 소설에서 만나는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의 복장과 축제의 모습. 특별한 날에 끼는 장갑에 대한 이야기와 뜻이 담긴 예쁜 문양들을 실었다. 소설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에세이였다.

 

마리카의 장갑은 누군가를 위한 선물. (110페이지)

 

엄지 장갑을 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엄지 장갑을 뜨다보면 그토록 서툴렀던 장갑의 모양도 어느새 제대로 된 예쁜 장갑을 뜰 수 있었다.   

 

털실은 무언가를 뜨기도 하지만, 다시 풀어 사용할수도 있다. 손재주가 젬병인 나를 생각하지 못하고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조끼를 떠주겠다고 털실을 샀던 적이 있다. 뜨기 시작했다가 겨우 머플러 길이만큼 떴다가 다시 공처럼 둥글게 말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오래전에 떴던 실을 다시 풀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나눠주는 마리카의 모습이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따스한 온기를 내뿜는 사람이라는 거. 동화는 이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마리카가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떴던 예쁜 문양의 장갑 혹은 곰인형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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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07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디자인이 마음에 들더군요. 흔한 털장갑 문양이잖아요. 누군지 아이디러가 좋더군요. 저는 뜨개질 안 해봤는데 보고 있으면 신기하더군요. 실룩거리는 손끝에서 목도리가 나오고 장갑이 나오고 하는 걸 보면.^^

Breeze 2019-01-07 15:53   좋아요 0 | URL
일본판 표지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해요.
정말 이쁘죠?
이 소설 읽으니 라플란드라는 나라도 가고 싶었답니다. ^^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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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문학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한 작가의 산문에서 느꼈다. 발췌 문장에서처럼 아버지가 소를 팔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등록금으로 대주었던 그 마음이 문학으로 표현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소설의 꼭지가 되듯, 문학은 우리 삶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세상이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되는 비장하게 희극적인 삶을 삭제할 수 없는 나로서는 여전히, 문학은 소다. (22페이지)

 

소설가의 산문은 삶의 궤적이다. 작가가 느끼는 문학에 대한 생각과 열정도 어쩌면 삶의 또다른 표현이 아닌가. 산문에서 보이는 작가의 기억은 그가 쓰는 소설의 근간이다. 그의 문학의 뿌리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가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그저 진중한 글을 쓰는 작가로 기억되는 손홍규의 산문은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산문의 시작부터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시골의 버거운 삶은 주로 소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나타나는데, 자식들 대학 등록금이 필요할 때마다 소 한 마리 씩을 팔았다는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준다. 소를 팔아 학자금을 대주었고, 그 학자금으로 공부를 하고 오늘의 작가가 있는 것처럼 '문학은 소다' 라고 말하는 첫 편의 산문에서부터 나는 그저 작가의 글이 좋아졌다.

 

 

가까운 가족을 보내고 난 후의 감정들은 사실 표현하기가 막막하다. 그 슬픔을, 그 아픔을 작가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표현하겠나.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다. 말하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의 차이가 있듯, 작가가 경험한 고모의 장례식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했다. 고모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촌 형제들의 마음을, 그저 엽전 한 잎을 놓고 갈라진 목소리로 그게 외쳤던 고모부의 외침에서 막막함을 보았다. 그 광경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것이다.

 

산문을 보면,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사고를 당해 손가락 끝부분이 잘린 아버지, 팔 한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애틋함. 1톤 트럭을 사서 장에 다니며 물건을 팔았던 아버지의 고단함을 느끼는 자식으로서의 애틋함에 나도 몰래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동안 여러번 절망하였을 아버지가 사고로 팔이 다쳤을때 수술실 앞에서 손을 내민 장면에서 어떤 희망을 보았다. 다 알지 못하는 부모님의 삶을 알아가며 그는 소설을 쓸 것이었다.

 

사실 나는 절망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 가운데 정말 절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싶다. 멀쩡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인데 깊이 절망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75페이지) 

 

그동안 내가 읽었던 그의 소설과 산문이 비로소 접점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느꼈던 삶의 여러 모습들이 진중하고도 묵직한 문장을 만들어 내었다. 그가 쓴 문장들에서 나는 그의 다른 작품들을 상상한다. 상처 투성이의 아이를 입양했던 터키인의 이야기를 그렸던 『이슬람 정육점』 같은 따뜻한 이야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문학은 그가 포기해버린 꿈을 일깨워 줘야 한다. 그가 차마 선택하지 못하고 가슴 한쪽에 숨겨둔 꿈을 꺼낼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한다. 결코 이룰 수 없지만 결코 포기할 수도 없는 꿈에 말을 건네야 한다.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존재 또한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꿈을 꾸어서 인간이기 때문이다. 꿈을 꾸지 못하는 인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91페이지)

 

문장들이 좋다. 그가 말하는 문학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과 책과 독서에 얽힌 이야기가 좋다. 가볍게 말하는 듯 하지만 전혀 가볍지 않다. 일상을 말하는 문장들에서도 진중함이 있다. 함부로 읽어내서는 안되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기울여 진다. 그가 언급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은 마음 깊숙한 곳에 두었던 감정들의 발화였음을 느끼게 된다.

 

밤이 되면 더욱 그렇다. 창문을 열면 밤이 내 작은 방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창문을 닫으면 밤 속에 고립된다. 나는 밤에 포위된 채 헛된 고뇌를 되풀이한다. 문학 말고 다른 가능성이 없는 시간, 밤은 우울하다. (141페이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부모님을 사랑함에도 생전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함께 많은 여행을 다닐 것을 후회해 보지만 생전에 계시지 않음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작가는 말한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손을 내밀라고. 그때 하지 않으면 안되는 말이 있는 것임을 말했다.

 

작가가 말하는 고향과 자식으로서 바라보는 부모님들에 대한 생각, 혹은 함께 자랐던 사촌 형제들에 대한 애틋함이 스며있는 글이었다. 소설을 쓴 작가로서 바라보는 일상과 그것에서 오는 깊은 고뇌와 통찰을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건 고작 두세 편의 소설일 뿐이지만, 산문은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매혹적인 문장들, 깊은 생각들에서 오는 작가의 기억의 저편. 그것들이 그의 문학의 근간이었음을 밝혔다. 나이가 들수록 몸을 다치는 것보다 마음을 다치는 것이 더 아픈 법이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을 달래 줄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때 받았던 부모님의 애정과 애틋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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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31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 좋은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가 지나고 이제 내일이면 2019년이 시작되는데,
가정과 하시는 일에 좋은 일들 가득한 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따뜻한 연말과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reeze 2019-01-07 17:0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인사가 늦어습니다.
서니데이님이 해주신 모든 말씀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8-12-31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7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기 인문학 - 3천 년 역사에서 찾은 사마천의 인간학 수업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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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서적 중에서 꼭 읽어야 할 작품 목록에 들어 있는 게 사마천의 『사기』와 노자의 『도덕경』이다. 수많은 작가들로부터 꼭 읽어야 할 작품이라 소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정주의 작품은 이덕무의 작품을 말한 『문장의 온도』에서 이미 글맛을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사마천의 『사기 인문학』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더군다나 '인간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온 최고의 인간학 교과서'라 일컫지 않는가. 가장 힘든게 인간에 대한 관계다. 리더로서 어떻게 행동한게 옳은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게 바로 사마천의 『사기』다. 사마천은 황제로부터 궁형을 받고도 『사기』를 썼다고 했다. 책을 끝마쳐야 할 의무와 책임을 느꼈다고 하니, 과히 꼭 읽어야 만하는 역사서 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 부와 권력, 리더로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를 사마천의 『사기』에서 찾았다. 성공한 리더는 아랫 사람을 잘 부린다. 아무리 뛰어나고 지혜롭다고 정평이 나 있는 사람도 부하의 말에 귀기울이지 못하면 그는 성공할 수 없다. 저자는 주왕과 항우와 유방, 진시황의 역사를 통해 성공한 리더로서의 표상을 말한다.

 

항우 장사라고 일컫는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을 능가하는 힘과 재주를 지녔지만 혼자만 잘나서 다른 사람을 표용하지 못하는 독불장군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유방은 특별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어 자기 곁에 두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큰 뜻을 품고 있는 리더는 자신의 뜻을 이룰 기회가 찾아왔을 때 유방처럼 대담하게 결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면, 결국 그로 인해 큰 실패와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57페이지)

 

리더가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부하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적재적소에 알맞는 인재를 잘 쓰는게 중요하다. 아울러 저자는 말한다. '인재를 잘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적절한 책임과 권한을 주는 것'(65페이지)이라고 말이다. 인재를 잘 썼던 유방에 비해 독단적인 성정과 기질 문에 그 인재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항우의 실패를 말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어느 시대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향방은 크게 달라집니다. 적재적소에 최고의 인재를 쓰는 것이 일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80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할 만한 사람을 한 명 꼽자면, 바로 고귀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미천한 신분의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도 감수하고 어떤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91페이지)

 

위 문장은 천하를 통일시켰던 진시황에 대한 이야기다. 진시황을 성공한 리더라고 말하며 그의 능력을 세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첫째, 냉철한 현실 인식과 빠른 결단력이었고, 둘째, 경청의 힘이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능력과 그 옳고 그름을 따져 합리적인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던 유방의 능력과 일맥상통한다. 셋째는 자기 통제력이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자기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큰 뜻을 품은 자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기회가 찾아왔을때 과감하게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사람의 심리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은 아무나 쉽게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통찰력과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147페이지)

 

올바른 정치, 그리고 올바른 리더십이란 이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과 기술 그 자체입니다. (174페이지)

 

상대방의 속마음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때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27페이지)

 

리더로서 성공하는 것과 부와 권력을 얻는 것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 저자는 말한다.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을 때 의심을 살 것을 고려하고, 사랑을 받을 때 미움을 받게 될 것을 생각하라고 말이다. 인간은 그 사람의 신뢰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때 변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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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1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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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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