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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소설이란 무릇 재미있어야 하고,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물론 생각할 거리를 주는 건 당연하다. 감동의 파도만큼 우리를 이루는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부모와 자녀, 이모와 조카, 정사원과 인턴사원, 후배와 선배. 교수와 학생. 모든 관계가 그렇듯 좋은 관계였다가 불편한 관계로 변하는 건 순간이라 할 수 있다.
2018년부터 발표한 단편을 모든 작품으로 총 일곱 편이 실려 있다. 일곱 편의 작품 중 주제가 몇 갈래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어떤 사건과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다룬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과 치유를 말한다. 더불어 여성으로서의 위상과 그에 따른 차별과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민낯을 발견할 수 있다.
「답신」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교사로서 도움이 필요한 소녀의 마음을 빼앗아 유린하고, 그것도 모자라 결혼한 언니에게 폭력을 가했다. 그 순간 동생은 형부를 죽이고 싶었다. 또 다른 연약한 소녀에게 같은 짓을 저질렀던 그를 벌하고자 했던 거다. 쌍방폭행이 아닌 일방 폭행이 되어 있었다. 구치소에 수감 되어 재판받을 때 언니는 반대 증언을 했다. 그렇게 증언할 수밖에 없었겠으나, 고모할머니의 장례식 때 제대로 대화라는 것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들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마주할 수 없었던 거다. 사랑하는 언니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했던 조카의 생일을 축하하는 쓰는 글은 사회 전반에 깔린 여러 형태의 폭력을 고발하는 글이었다.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배운다. 엄마 아빠를 대신해 희진을 키웠던 「이모에게」에서 희진은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던 이모를 통해 삶을 배웠다. 희진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올 때 데리고 나가서 자랑했던 이모는 칭찬을 삼갔다.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삶을 살았기에 희진에게도 같은 것을 원했다. 아빠는 아빠보다 열일곱 살이 많았던 이모를 은근히 무시했다. 희진은 수영을 할 때면 자신을 느리게 나는 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 공군 소위가 되어 비행기를 조종했다. 날아가는 비행기를 그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이모였기에 희진을 자랑스러워했다.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 우리가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고, 슬프면 울고 애써 웃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것처럼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몫」은 대학 교지 편집부원으로서 글을 쓰는 것과 그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심리를 말한 작품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주제를 정하고 취재한 내용을 취지에 따라 정확한 논점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해진은 정윤의 취재에 기반한 글을 보고 빠져들게 되어 교지 편집부원이 되었다. 수습 세미나 간사였던 정윤이 희영과 해진의 주제 도서에 대한 발제문을 평가했다. 희재의 글에 자주 칭찬했고 날카롭고 유려한 희영의 글에는 매번 비판했다. 셋은 세미나를 끝내고 자주 어울렸으나 정윤은 희영이 쓴 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해진은 희영의 글을 아주 좋아했다. 아내 폭력에 대한 주제를 함께 준비해보자는 희영의 제안이 좋았다. 어떤 이유로 희영이 정윤을 보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희영이 떠난 뒤 정윤과 마주한 희재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상대방을 이해하는 수도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편협해지고 마는 게 사람이라는 거다. 관대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일 년」의 지수와 다희는 스물일곱 살의 동갑내기로 정사원과 일 년 계약 인턴사원으로 만났다. 중국어에 능통한 다희는 지수의 어시스턴트로 다희를 태우고 공사 현장에 다녔다. 차 안에서 대화를 자주 나눴던 그들은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정사원이 인턴사원을 두고 인사 문제로 이야기할 때의 불편함이 있다. 별다른 뜻 없이 뱉었던 말이 타인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일 수도 있다. 속마음과 달리 와전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관계의 변화까지 생긴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들 없는 집의 여섯 번째 딸이었던 기남은 가족들에게 버려져 운영하는 공장의 주방에서 일했다. 둘째 딸 우경의 초대로 홍콩에 오게 된 기남은 한국 반찬이 들어있던 수화물 가방 하나를 분실했다. 기남은 우경이 불편했다. 다만, 우경의 아들 마이클은 착하고 다정다감하여 기남을 잘 따랐다. 딸에 대한 미안함과 서운함이 마이클의 말 한마디로 사라졌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52페이지, 「몫」 중에서)
여성 서사의 작품으로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들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비춘다. 희진, 희영, 희재 등의 이름이 주인공으로 나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작품으로 읽혔다. 끈끈한 관계였다가 다시는 마주치지 않는 냉정한 사이로 돌변하는 관계, 결핍을 채워가는 관계에서는 오는 뜨거운 감정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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