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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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녀에게 반에서 1등을 하지 못했다고 아버지가 욕실로 데리고 가 발에다 뜨거운 물을 부었다. 소녀는 울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다음에는 꼭 1등을 하겠다고 한다. 아버지는 저명한 진보주의 성향의 신문사의 발행인이기도 하고 식음료 업계의 거부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를 마다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어떻게 하나. 가정 폭력으로 어머니는 임신한 아이를 유산했고, 아이들에게는 공부할 시간표를 정해 그 뜻대로 따라야 한다. 캄빌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열여섯 살, 그의 오빠 자자는 서너 살 위가 아닐까 싶다. 정확히 어떤 시대를 나타내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가족이 사는 법을 보면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더욱이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자신의 아버지 즉 캄빌리의 할아버지가 토속 신앙을 믿는다 하여 집에 가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에게도 방문은 하되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입에 대지 말라고 하며 15분내로 돌아오라고 한다. 우상 숭배자라 하여 멸시하는 것이다. 마음 속에 수많은 말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제대로 입밖에 내지 못하는 캄빌리의 일상이 전해진다. 소설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영성체를 하지 않겠다던 오빠의 반항으로 시작된다. 무조건 아빠의 명령에 따라야 했던 오빠가 어떻게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던가. 스스로 아버지에 맞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에게서 아이들을 꺼내려는 주체적인 여성 이페오마 고모의 노력이 있었다. 대학교 교수인 고모는 자자와 캄빌리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물도 잘 나오지 않고 전기도 끊겨 먹을 것도 부족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세 명의 사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아버지의 잘못된 점을 깨닫게 된다. 마음속으로 많은 말들을 생각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입밖으로 내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단어만 사용하면서도 서로의 말을 이해했다. 두 사람을 보면서 내가 절대 가질 수 없을 뭔가를 향한 갈망을 느꼈다. 일어나서 나가고 싶었지만 내 다리가 내 것이 아닌 양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세워서 부엌으로 갔다. (205페이지)

 

아프리카의 삶을 잘 알지 못했다. 아직도 TV에서 비춰지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삶을 생각했던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로서 나이지리아의 삶을 제대로 보여 준 아디치에의 작품을 읽으며 그동안 얼마나 편견에 갇혀 있었나 제대로 깨달았다. 캄빌리의 아버지를 보면 우상 숭배를 하는 가난한 자신의 아버지를 멸시하고 나이지리아의 사람들 앞에서는 일부러 영국식 악센트로 말했다. 이는 그가 영국적인 것을 더 나타내고 싶었고 흑인이라는 것을 감추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집 밖에서는 저명한 인사였음에도 가족들한테는 어떻게 했나. 아내까지 억압했고 아이들에게는 체벌을 가했다. 우상 숭배를 한다 하여 파파은누쿠를 만나지도 않았다. 아버지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던 오빠 자자와 캄빌리는 고모의 집에서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잘못되었음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지 않은 말이 너무 많았다. 독수리 두 마리가 머리 위를 맴돌다 땅에 내려 앉았다. 내가 잽싸게 덤비면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깃털 없는 목이 이른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285페이지)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274페이지)

 

왜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왜 직접 우리를 구원하지 않았을까? (346페이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거다. 고모가 주었던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살아 남았듯 자신들 또한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이페오마 고모의 모습에서 여성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이 비춰졌다. 마음대로 음악을 듣고 종교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모습을 보고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페오마 고모의 모습에서 저자가 추구하는 페미니스트를 살펴볼 수 있다. 고모를 지켜보며 캄빌리의 어머니 또한 자극을 받지 않았나.

 

이 책을 읽기 전 어느 소설에서도 페미니스트를 언급하며 아디치에의 이름을 말했는데 그것 만큼 반가운 감정도 없었다. 이 책을 읽어보시라!  놀랍도록 아름답고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다.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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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0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뷔작으로 이런 책을 썼다는 게
믿을 수가 없더군요.

반면 <아메리카나>는 데뷔작의 신선함
이 쇠락한 느낌이랄까요.

Breeze 2019-08-09 11:46   좋아요 0 | URL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니 놀랍더라고요.
<아메리카나>도 읽고 싶은 책이에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님^^
 
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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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프렌즈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왔으나 잘 알지 못했던 캐릭터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어피치, 라이언을 읽었고 이번에는 튜브다. 사실 튜브란 이름도 몰랐고 오리 주둥이 같이 생겼다라고만 생각했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튜브의 특성을 볼까. 작은 발을 부끄러워하는 소심한 성격이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입에서 불을 뿜으며 밥상을 뒤엎는 미친 오리로 변신한다고 한다. 화가 나 있는 튜브가 초록색인 이유다. 스스로 시팔이라 부르는 하상욱과 카카오 프렌즈 튜브가 만났다. 하상욱 특유의 센스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시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를 읽다가 생각지 못한 것에 파안대소를 터트릴 준비를 해야 한다.

 

 

 

 

싫은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은

서로 안 보고 사는 것뿐이다. (12페이지)

 

 

라고 한 부분을 보라. 사실 싫은 사람과 잘 지내기란 힘들다. 얼굴을 마주해도 껄끄럽고 가장 좋은 건 안 보고 사는 것뿐이다. 살아가면서 그런 사람을 만들지 말자고 생각 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불편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잘못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상욱의 글은 이처럼 허를 찌른다. 입 밖으로 내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을 확 내지른다고 해야할까.

 

 

누군가의 비밀을 지키는 이유는

비밀을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지.

 

 

그 사람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지. (38페이지)

 

 

누군가의 비밀을 알았다고 치자. 어느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그래도 절대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또한 친구를 보호하고 싶어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들이 있다. 때로는 그 친구를, 때로는 연관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상욱은 우리가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아주 짧은 시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학생 : 공부가 하기 싫지만 학교 친구는 좋다.

직장인 : 일은 하고 싶지만 회사 사람이 싫다. (82페이지)

 

위의 사진 속 글과 위의 문장을 읽고는 나도 몰래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하고. 다시 읽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문장들이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퇴사하는 생각을 하고,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것. 모든 직장인들의 비애가 아닐까 싶다.  

 

 

나 보다 어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의 어제를 사는 게 아니더라.

 

같은 오늘을

그저 다른 나이로 살아갈 뿐. (182페이지)

 

나 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과 마주했을 때 그 사람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 볼 일이다. 나 보다 늦게 태어나기는 했지만 나 보다 월등한 생각을 가진 게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군가의 말씀처럼 어린이에게서 배우는 게 많지 않는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느라 그 사람의 진실됨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또한 아이에게서 배운다.

 

 

당신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당신이 모든 사람을

실망시킬 수도 없다. (240페이지) 

 

세상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50%라면 반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50%이게 된다. 100%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싫어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고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에게 실망하고 서운한 감정을 품는다. 반면 나를 좋아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상욱의 위트 있는 문장과 함께 카카오 프렌즈의 오리, 튜브의 갖가지 캐릭터를 보며 즐거웠다. 화 났을 때 초록색으로 변신하는 모습마져 귀여웠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캐릭터, 튜브와 함께 하는 즐거운 여름 한나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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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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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 칸막이로 된 작은 공간에 누워있는 소녀들. 공간 문 밖에서 줄 서 있는 일본 군인들. 하루에 수십 명을 받아내야 했던 열세 살 혹은 열네 살, 열다섯 살의 소녀들. 지옥이 따로 없는 그 공간들. 냇가에서 삿쿠(콘돔)을 빨래하는 소녀들의 얼굴이 그나마 평화로워 보였었다. 영화 「귀향」의 한 장면이다. 김숨 작가는 영화  「귀향」 과 닮은 소설을 펴냈다. 살아돌아온 위안부가 마지막 한 명 남았다는 가정하에 썼던 『한 명』에 이어 『흐르는 편지』는 위안부들이 속해있는 위안소의 그 지옥으로 향한다.

 

비단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동네 아저씨에 의해 트럭에 올라탔던 소녀. 바늘 공장, 고무 공장에 가서 돈을 벌겠다는 말에 혹해 하나라도 입을 덜어주겠다는 마음으로 나섰던 소녀들은 위안소라는 지옥으로 흘러들었다. 머나먼 중국 땅인 만주에서 일본 군인들을 받았다. 제대로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위안소에서 지급하는 모든 것은 그들의 빚이 되었다.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들을 받아냈던 어린 소녀들은 아래가 곪고 헐었다. 삿쿠가 터져 임신이라도 되면 자궁을 들어내었다. 그 어린 소녀들에게 일본은 어떠한 만행을 저질렀는가. 겨우 열세 살, 열네 살에서 열여덟 살의 소녀들에게.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위안소에 있던 소녀들의 사연이 잔혹했다. 입에 풀 칠하기도 어려웠던 가족들, 가난을 피해 나온 길이 지옥인줄도 몰랐다. 소녀들은 말한다. 무슨 죄를 지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고.

 

 

열다섯 살의 소녀 금자, 일본군인들이 붙여준 이름은 후유코. 그 외에도 열 개쯤 되는 일본 이름이 있는 소녀. 임신을 했다. 아기가 죽어버리길 바라며 흐르는 물에 손가락으로 편지를 쓴다. 글을 알지 못해 어머니에게 불러주는 편지다. 닿지 못할 편지를 쓰며 소녀는 아기가 뱃속에서 죽길 바란다.

 

소녀들을 지옥에 있게 한 일본 군인들이 전쟁에서 졌으면 좋겠지만 한 편으로 이기길 바란다. 만약 일본군이 지면 소녀들의 목숨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옥의 한 복판에서도 삶을 꿈꾼다.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일본군이 이겨 돌아오길 바라고, 살아 돌아 와달라고 빌어주라는 말에 마치 그들의 어머니처럼 살아오라는 말을 건넨다.

 

그들의 몸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위안을 해주어야 하는 소녀들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중국인들, 어린 소녀들의 죽음. 죽음앞에 눈을 돌리고 살길 바랐다. 살아서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주소도 모르는 소녀들이지만 집으로 향한 꿈을 매일 꾼다.

 

작가가 『한 명』을 쓸 때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40명쯤 살아있었다면 이 소설이 쓰여진 2018년에는 겨우 27명이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온전한 기억으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몇 명 남지 않았다.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일본은 과거 일제 강점기에 징용에 관련된 일로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헤쳐나가지 않을까 희망에 찬 마음을 품고 있다. 다른 방법을 찾아낼거라고. 고통스러운 지옥에서도 소녀들이 살아남았듯.

 

어머니, 그런데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먼 데까지 끌려와 조선삐가 되었을까요. (291페이지)

 

소녀들의 아우성 때문에 깊은 잠이 들 수 없었다.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계속 들려왔다. 마치 내 귓가에 소리치듯 그렇게. 글을 쓰는 작가 또한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금자가 되어 내레이션을 하듯 말하며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치달은 그 지옥 속에 살았을 것이므로. 살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우리가 그때의 상황을 알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살아남았기에 가능한 일이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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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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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데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알고 있는 인물인데 작가를 어디서 봤더라. 한참을 생각해봤다. 프로필을 보고는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이웃임을 알게 되었다. 미술 관련 자료를 찾다가 작가의 블로그에서 발견했었다. 이웃 신청하고 글이 올라올때면 조용히 지켜보았던 독자였다. 미술관련 글을 쓰는 기자 분들 중 몇 분을 팔로우하고 있다. 마음속에 자리한 미술에 대한 갈망을 타인들에게서 푸는 것처럼.

 

제대로 글을 읽은 기억이 없고 그림만 보았었기에 작가의 글을 잘 알지 못했다. 늦게 꽃핀 대가들을 말하는 글에서부터 작가의 열망이 드러났다. 문학과 예술부분의 많은 작가들이 늦은 나이에 데뷔하여 꽃을 피웠다. 마흔 살이 되어 등단한 박완서 작가나 피에르 르메트르 작가도 꽤 늦은 나이에 데뷔하여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말하며 그 기조에 미술이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미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작가가 언급한 그림들에서 익숙함을 발견했고 반가움이 들었다.

순전히 샐리 호킨스 때문에 본 영화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함께 본 이와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작가가 말한 것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괴생명체를 사랑하게 된 일라이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그녀의 외로움이 괴생명체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말이다. 제임스 진이 그린 <셰이프 오브 워터>가 익숙한 아름다움을 준 그림이라 여겼었지만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참고했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두 그림을 마주하고 보니 전체적인 구도가 닮았다는 게 느껴졌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한다. 벚꽃잎들이 휘날릴때면 그저 마음이 설렌다. 이처럼 벚꽃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자체는 벚꽃축제를 한다. 벚꽃하면 일본이다. 일제 강점기기 생각나서인지 사람들은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임을 밝혔었다. 나 또한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일본에는 벚꽃을 말하는 하이쿠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걸 보면 벚꽃은 일본인들이 사랑한 꽃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말했다시피 우리나라엔 주로 매화나 진달래꽃을 노래했다고 한다. 혜원의 그림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말이다.

 

TV의 코미디 채널에서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왔을 때 웃기려고 참 고생하는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지 인종차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국내에서 바라보는 것과 외국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불편하게 바라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또한 아시아계 인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면 매우 기분나빠하지 않는가. 세계화와 세계시민의식을 일깨우는 말에 뜨끔했다. 아니라고 하지만 은연중에 그런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미술관련 서적에서도 읽은 바 있지만 영국박물관에는 한국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한국관과 일본관, 중국관의 차이점을 말하는데 아무래도 국가의 차이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중국관과 일본관과는 다르게 심플하게 몇 작품만 있는 있어 빈약한 유물 전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백자 달항아리는 많은 예술인들이 아름답다 말하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 고유한 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커다란 달이 떠 있는 듯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의 에세이를 먼저 읽었다. 하정우도 에세이에서 자신의 먹방 이야기를 했었는데 문소영 작가 또한 먹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하정우를 언급했다. 영화 <황해>에서의 하정우의 먹는 장면을 담은 사진과 함께 말이다. 하정우는 먹는 장면을 찍을 때 식은 음식 말고 따뜻한 음식을 주라고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맛있게 먹는다고 한다. 먹방에 대한 이야기를 『제인 에어』 속의 문장을 말하며 고전문학 작품 속에서도 먹는 장면이 꽤 많았다는 걸 말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 대하여 말하는 글이다. 삶의 통찰을 다루는 글들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시였다. 나에게 두 갈래 길이 있을 때 내가 갔던 길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신비로움을 말했다. 인생이란 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그 길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렸다. 훗날 과거를 떠올렸을 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 받았을 때, 어떠한 시기로 가겠다고 답을 하곤 했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역시나 그 시기로 가도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다. 그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예술에 대한 저자의 특별한 감각과 함께 폭력과 문화 또는 유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담았다. 문학과 일상에서 바라보는 수많은 예술적 감각을 기르는 방법들을 말했다. 느리게 혹은 게으르게 가도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할 일이 덜하지 않을까.

우리의 인생도 이런 망설임과 선택의 연속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길을 택하든, 가지 않은 길은 그 미지로 인한 신비와 아쉬움을 황홀한 안개처럼 두르고 저 멀리에 있을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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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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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나이가 들어 조금씩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적 기억들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에겐 선명하게 기억하는 장면들이 몇 있다. 너댓 살의 기억으로 동생이 태어나던 장면은 마치 그림처럼 선명하다. 증조 할머니와 함께 창호지 문밖을 내다보았던 일, 스님이시던 친척 분이 집에 방문하셨을 때 온 방을 갈고 다니던 내 잠버릇 때문에 잡아가겠다고 하셔서 놀라 반듯하게 누워 자던 장면 등. 누군가의 말로 기억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 소설을 정확하게 10년쯤 읽었다. 오래전에 간단하게 썼던 리뷰를 발견하고는 다시 기억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읽으며 이어질 내용을 기억할 수 없었다. 한참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들에 빠져 있었을 때의 독서였다.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학대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게 가졌었던 것 같다. 그때 쓴 리뷰에서도 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던 걸 알 수 있었다. 폭력은 대물림된다는 크나큰 주제였다. 더불어 히가시노 게이고식 퍼즐 찾기에 예전에 읽었던 책임에도 처음 읽는 것처럼 빠져 읽었다.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7년 전에 헤어졌던 사야카 라는 여성의 전화였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사야카는 어릴적 기억을 찾는데 도움이 되어 달라고 했다. 사야카의 아버지가 남긴 유품 속에서 낡은 지도와 열쇠를 가지고 그곳에 찾아갔다. 현관 쪽 보다는 지하실에서 입구를 발견하고 들어간 곳은 전기와 수도를 쓸 수 없는 버려진 집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념이 된 듯한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사야카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없었다. 어떠한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던 걸까. 아버지가 남긴 열쇠에서 자신의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집은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2월 11일 11시 10분에. 미쿠리야 유스케를 기리는 글들과 유스케가 썼던 일기장에서 그 집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들을 찾으려 애쓴다. 초등학교 6학년때 죽음을 맞았던 유스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야카의 아버지는 왜 이 집에 다녀갔던 걸까. 수수께끼를 찾듯 하나씩 드러난 진실과 '나'가 사야캬에서 감췄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그 집의 물건들에서 사야카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분명히 이 집에 왔었던 것 같은 기억들이었다. 사야카는 누구인지, 유스케와는 어떤 사이였는지 독자들 또한 긴장하며 읽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기, 주인공은 알고 있지만 독자는 모르는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감춰졌던 진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목이 섬찟하다. 소설의 내용이 어느 정도 유추가능하기도 하고 어떤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하다. 작가는 크레타 문명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크노소스 궁전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짜릿함과 두려움을 선사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들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작가의 특기 답게 이번 작품 또한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감정이 어디까지 가는지 볼 수 있게 한다. 친부모와 양부모의 관계에서 받는 상처를 드러냈고 또한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잘못된 방법으로 학대를 했던 부모를 냉정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아이들에게 학대를 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했다.

 

초기작이어서 현재에 나오는 작품들보다 다소 인기는 없을지 모르나 꽤 생각에 잠기게 하는 주제를 가졌다. 그토록 많은 작품을 펴내면서도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는 주제를 드러낸다. 10년 만에 다시 읽었지만 마치 처음 읽는 소설처럼 긴장하며 읽었다. 다시 읽어도 역시 좋은 작품. 새로운 번역으로 더욱 젊어진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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