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연습 - 부서진 심장과 고통과 상처와 당신에 관한 에세이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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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세상 사람들에게 무감해지는 우리를 발견한다. 그럼에도 어떠한 사건이 생겼을 때 그 상처에 안타까워하고 그들이 느끼는 고통에 공감하는 것. 그게 우리의 할 일이 아니던가. 아니, 할 일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레슬리 제이미슨의 고통과 상처에 관한 사적인 경험이 마치 르포처럼 펼쳐진 에세이로 저자가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엮은 책이다. 에세이라고 하면 자신의 경험을 말하되 최대한 보편적인 것들을 말하는데 레슬리 제이미슨은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말했다. 첫 소설 발표후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그 중의 하나 의료 배우를 했던 경험이 이 에세이의 제목이며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의료 배우란 의과대학생 앞에서 질병에 관한 연기를 하게 되는데, 대학생들은 의료배우의 연기를 보고 질환을 추측하게 된다. 의료 배우는 연기가 끝난 뒤 의과대학생들의 질문을 통해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올리는 일을 한다. 이 것을 공감시험이라고 하는데 의과대학생들이 환자를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작가들의 다양한 경험이 소설의 새로운 주제가 되고 소설을 쓰는 양분이 되게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마저 소설을 쓰는데 중요한 경험이 되는데,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는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상하지 못했던 삶이었다. 약에 취해 있었고, 낙태 혹은 다른 나라에서 얼굴에 가했던 폭력으로 수술을 해야 했던 경험, 알콜 중독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던져놓고 그것에 관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공감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답을 하게끔 질문하는 것이다. 공감에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질문도 많이 필요하다. 공감하려면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감은 자기 시야 너머로 끝없이 뻗어간 맥락의 지평선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20페이지)

 

 

 

우리가 고통의 근원이 아니라 고통에 관한 사실을 믿을 때 그것을 공감이라고 한다면 잘못된 것일까? 누군가의 고통에 대한 특정한 이해를 함께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가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할 수 있을까? (76페이지)

 

이해와 공감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하는 게 이해고, 남의 감정에 그렇다고 느끼는 것을 공감이라고 한다. 레슬리 제이미슨의 감정에 100퍼센트 공감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 마치 폭력과 상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편한 감정은 아니었다고 해야겠다. 많은 경험이 소설의 자양분이 되지만 저자가 겪었던 일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염증과 가려움, 피로감, 통증 그리고 피부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의 증상이 있는 모겔론스 병에 관한 고찰도 특이했다. 저자 또한 말파리 유충으로 힘들었던 고백을 하게 되는데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병이었다. 예민해질때 피부에 무언가 기어다니는 느낌만 들어도 견딜 수없는데, 실제로 그런 느낌이 계속 된다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저자는 모겔론스 병이 실제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고통에 관한 사실을 믿을 때 비로소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교도소에 있는 찰리 앵글이라는 남자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세 명의 소년을 죽였다는 세 명의 소년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독특했다. 그 어느 것도 그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 사람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즉 공감의 표현이다.

 

설탕이 귀한 시절 단맛을 내는 사카린을 많이 사용했다. 저자는 사카린을 두려움을 나타내는 가장 달콤한 단어라 평했다. 사카린을 문학이라 칭하고 그에 대한 변론을 말했는데 이 부분은 작가로서 그가 가진 생각들을 엿보게 했다. 감미료와 감상성, 비현실적인 달콤함. 때로는 감상성은 반감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문학에 있어 감상성 만큼 중요한 것도 없으리라.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었던 부분이라 여러모로 의미있는 에세이였다. 사실 레슬리 제이미슨의 글이 달콤하지는 않다. 르포 형식의 글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건조한 문체의 글이었다. 과연 달콤한 소설도 쓸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앞섰다면 지나친 우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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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1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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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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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8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스물아홉 명의 작가들이 모였다. 박완서 작가를 직접적으로 지목한 작가는 드물다. 몇몇은 직접적으로 혹은 약칭을 써서 작가를 추모한다. 소설의 방식은 박완서 작가의 짧은 소설 『나의 아름다운 이웃』과 닮았다. 박완서 작가만의 위트와 삶의 애환이 살아있는 그들이 대부분이었다.

 

작품에 속한 작가들의 면면은 마음에 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이다. 짧은 소설들은 박완서 작가의 느낌을 보는 듯 했고 다르게는 작가만의 감성을 그대로 드러나 글을 읽는 즐거움이 컸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한다는 것이다.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금방 알아낼 수 있는 것 또한 박완서 작가만의 글쓰기와 무척 닮아 있다. 스물아홉 명의 작가가 쓴 이야기는 마치 한 사람의 작가가 쓴 듯 그렇게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고 있었다.

 

 

 

지혈제. 이런 독서는 지혈제다.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내면을 떼어놓고,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녀는 책장을 넘긴다.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개념 한두 개가 천천히 뇌 속에 들어와 눈물을 말리기 시작한다. 두꺼운 책들이 불어오는 감정들. 지식이 아닌 감정들. 마음의 주름이 조금 펴지자 그녀는 인터넷으로 책을 두 권 사고, 내친김에 세일 폭이 큰 티셔츠 한 장도 산다. (50~51페이지, 김성중, 「등신, 안심」중에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했다. 지금은 자주 쓰는 표현이 아니다. 부부간의 이별은 매우 어렵고도 또한 쉽다. 지금은 너무 쉬운게 문제인것도 같다. 부부 싸움후 편의상 남편에게 전화를 걸쳐 휴전을 청하고 그에 응하는 부부.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어도 일상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에게 남아있는 절망의 두께가 두꺼워질지언정 사는 동안은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 소설집이 출간되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작가가 이기호였다. 마치 그의 일상을 보는듯한 소설은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있다. 삶이 버거운 아빠, 아이가 원하는 몇십 만원짜리 레고를 사주고 싶은 마음과 아내에 호통에 의해 마트로 반품하러 가는 아들과 아빠의 발걸음이 무척 애틋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과 생활의 힘겨움에 다시 반품을 해야 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였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장난감을 홀리듯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오늘의 아빠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뚝뚝, 눈물방울이 레고 박스 위로 떨어졌다. 아들은 레고 박스 위에 떨어진 눈물방울을 계속 훔쳐내며, 그러면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지만, 그러면서도 또 한편, 어쩐지 이 풍경 자체가 낯익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 또한 그렇게 울었던 봄밤이 있었다 . (183페이지, 이기호, 「다시 봄」중에서)

 

이기호 작가 뿐일까. 김숨 작가의 글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웃는 모습의 유머스러운 글을 주로 쓰는 김종광 작가의 글 또한 여전한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의 여자는 세상 그 누구보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우면서 왜 결혼만 하면 남편들을 애 잡듯 잡을까. 남편들은 또 혼내는 아내한테 주눅들어 있는 모습. 지금의 세태를 다뤄 웃게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씁쓸한 현실임을 자각하게 된다.

 

 

 

전성태 작가의 「이웃」이라는 소설을 읽는데,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말하는 것에서 저 마음 깊숙이 숨겨놓은 우리의 감정을 들킨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캠핑 장비를 챙겨온 아이를 둔 부부. 그들은 정글의 법칙을 찍는 기분이라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도착한 곳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에는 캠핑족들이 그대로 묶어놓고 간 노끈들이 나부껴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리고 밤늦게 그들의 옆에 캠핑장비를 다 갖춘 아빠와 아이가 오게 되고,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애써 신경쓰지 않는 듯 부러운 마음을 감췄다. 이웃 캠핑족보다 우월한 것을 말하고 싶은 아내가 말한 한마디라곤 이웃에는 엄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침이 되자 가위를 들고 소나무에 엮인 노끈들을 제거하는 아빠의 모습에 자신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왜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며 스스로 상대방보다 우월한게 무언가 굳이 찾아내려 하는 것일까. 부끄러운 감정을 부끄러워 해야하는데 자꾸만 시기 질투하며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 하는 것인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왜 계속 누군가와 비교하려 드는 것일까.

 

소설을 읽는다는 건 그 내용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작가 또한 주변에서 바라보는 일상들 속에서 소설의 소재를 찾지 않겠나. 에세이 형식을 소설을 써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면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라며 작가를 다시 기다리게 된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보는 듯 푸근한 마음이 절로 드는 글 모음집이었다. 다양한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덤이다.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글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은 우리 주변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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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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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1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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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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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불빛처럼 퍼져 오르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그리운 순간이다. 아마도 정신없이 바빠 몸이 힘들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기에 무언가로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들, 위로가 되는 이야기들. 이런 건 굳이 거창한 글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에세이처럼 짧은 소설들에서 느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지금과는 시대가 달라 마치 오래전에 유명했던 드라마를 보는 듯도 하지만 우리 부모 세대들이 그 시절을 거쳐왔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외국의 단편 소설 같은 경우 짧은 글들이 많다. 글이 그렇게 심오하지도 않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감정들을 담은 글이 대부분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단편은 무척 어렵다. 감정들을 문장속에 압축해놓아 긴장을 하며 작가가 숨겨놓은 게 뭘까 골몰하며 읽게 된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히면 좋으련만 쉽지 않다.

 

최근의 추세는 이처럼 짧은 소설들이 인기다. 아마도 긴 글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독자들 때문인 것도 같다. 이처럼 짧은 소설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아무 생각없이 읽어도 좋다는 데 있다.  몇 꼭지 씩 읽어도 부담이 없다.

 

 

 

1970년대의 이야기들을 담은 소설은 우리 주변의 이웃들의 삶과 닮았다. 그 시절의 가족의 형태, 결혼의 조건,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이었다. 일단 아들이 귀한 집 딸에 다음 번엔 아들을 낳으라며 후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건 오래전 드라마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좋은 시어머니로 남고 싶어 교묘하게 말을 내비치는 부모가 있는 가 하면, 그 시절에도 시어머니 위에 서서 할 말 하며 사는 며느리들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혼의 풍속 중에서 궁합이 맞지 않아 포기한다는 이야기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에야 그런 경우가 없지만, 예전엔 궁합이 맞지 않는다며 반대를 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궁합이 맞지 않다며 결혼을 반대하는 여자의 말이 이해되지 않은 남자가 점집에 찾아갔을 때 점쟁이가 했던 말은 꽤 일리 있었다. 예부터 궁합이란 원치 않는 청혼을 거절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겨났다는 말이었다.

 

사랑의 소멸과 거기에 따른 편리한 거절의 필요성이라니, 남자가 받을 충격이 이해되는 시점이었다. 지금에야 상대방에게 사랑이 식었다면 문자라던가 카톡으로 헤어지자고 하겠지만 그 시절엔 거절의 말 또한 일종의 서로의 체면을 위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연작 소설들도 몇 편 있었으니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  <마른 꽃잎의 추억>이었다. 주인공 '나'는 남편 모르게 간직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소장품이 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시집인데 그것은 총각 시절의 남편이 바친 시집이다. 다른 게 아니라 그 시집엔 '나'를 열렬하게 추종하던 총각들이 졸업식날 바친 꽃다발 중에서 각각 한 송이씩을 눌러 간직하고 있다. 결혼 생활이 무료해져서 일까 꽃잎을 하나씩 꺼내어 보는데 그 사연이 재미있다. 지금같으면야 몇 번이고 바람 핀 여성과 남성이 등장하겠지만 그 시절 만의 순수성이 보였다.

 

짧은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게 있는데, 이야기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들이 이야기라는 것. 작가는 그 사연들을 수집하고 꿰매어 새로운 이야기들로 탄생시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과 시대는 다르지만 1970년대에는 이런 일들도 있었지 하고 받아들이면 현재 스무살인 친구들도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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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1 1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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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설연휴 잘 보내시고 언제나 감사한 일상이 되소서! ☕️
 
검은 개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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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경의 소설을 청소년 문학으로 먼저 만났다. 『내이름은 망고』와 『벙커』였다. 영화같은 소설, 따스함과 뭉클함이 있는 소설이었기에 추정경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읽고 싶은 작가가 되었다. 작가의 신작이 반가운 이유다. 

 

소설 첫 부분에 박기자가 K 코치와 인터뷰를 시작으로 주니어 테니스 유망주였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파헤치는 르포 형식의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박기자가 임석의 사건을 제대로 파헤칠거라는 예상과 달리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어 청소년 보호소에서 사건이 시작되었던 그 날을 떠올리는 과정들을 임석과 임지선 변호사의 시점으로 말한 소설이었다. 일단 열여덟 살 소년 임석은 그날의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다. 운전도 못하는 제가 운전자가 되어 있었고, 친구를 죽일 뻔했다는 정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이에 자기가 어떤 행동을 했던가. 그날, 그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가 관건이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김유진이 죽게되면 장래 테니스계의 유망주 임석은 살인범으로 기소될 것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양촌의 길가의 흔적은 CCTV에서 찾기 힘들었고, 차량엔 블랙박스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친구라 여겼던 승모와 성구가 자신이 운전했다고 말했다. 테니스 선수로서 호주로 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을텐데, 그의 미래에 먹구름이 가득 끼었다.

 

 

 

임석을 돕는 이가 나타났으니 허름한 회색 티셔츠에 금방 자다 일어나 나온 흐트러진 머리칼을 가진 임지선 변호사다. 엄마가 선임한 변호사는 내뺐고, 외국에 있는 아버지가 선임한 변호사였다. 임지선 변호사는 이혼전문변호사라는 게 임석은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기억나는 그 날의 진실도 기억나지 않은 일들도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알아보는 법인가. 임지선 변호사의 임석에 대한 애틋함은 자기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임석을 버리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매달린다. 어쩐지 임지선 변호사가 임석의 진실을 제대로 파헤쳐 줄 것 같았다. 그런 희망을 기대했다고 봐야겠다.

 

 

성년이 안된 소년들은 형이 확정되기전 분류심사원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이곳 또한 범죄를 저지른 많은 소년들의 있는 곳으로 흔히 영화에서 보는 방장과 완력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다. 드라마 로 방영되었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그야말로 휴먼드라마였을 뿐이고, 이곳에서도 힘과 권력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29호 혹은 25호의 방에 기거하며 꼽이 될 것인가 상납을 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었지만 스스로 꼽이 되어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는 석이었다. 스스로에게 지지않기 위해서였다.

 

임석은 누군가가 쳐놓은 덫에 걸렸다. 제대로 걸려 들었다. 운동 선수에게 아주 중요한 약물에 노출되었으며, 사경을 헤매는 친구를 죽일 뻔 했다는 스캔들에 휘말렸다. 테니스 선수로서 생명을 다했다고 여겼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다. 그를 죽음의 감옥에 가둬놓으려는 자가 누구인가, 예상했으나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족쇄를 만들어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의 행동 또한 자주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 못내 궁금했다. 자신의 과거속에서 쉽게 나오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임석의 사건을 제대로 볼 줄 알았던 임 변의 행동은 꽤 통쾌했다. 누군가를 부숴뜨린다는 것. 대리만족을 여겨도 되는 것일까. 사건이 해결되어 갈 수록 임석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였다. 만약 무죄라는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곁에 누가 남을 것인가도 궁금했고, 테니스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도 궁금했다. 수많은 선수들이 약물에 노출되고, 약물로 인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테니스 선수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꽤 디테일하게 살려 책읽는 즐거움이 컸다. 이걸 보편적인 결말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결말 또한 마음에 들었다. 어른들의 추잡한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성년이 되지 않은 청소년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지 않는다.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얻어야 할지 알만한 나이다. 스포츠를 하므로써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히려 어른들보다 지략이 뛰어나지 않는가. 추정경의 소설이 이토록 재미있다니! 마치 정유정의 소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의 소설도 기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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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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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는 얇은 금속판 한겹만을 남겨둔 채 체공하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환멸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된 거죠. 탈출의 경험을,
내게는 그것이 없어.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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