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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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뉴스 하나가 한국인 중 첫 우주인의 탄생이었다. 한국우주인배출사업에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최종 선발된 우주인이 고산이라는 인물이었다. 유출이 금지된 자료를 반출했다는 이유로 우주인에서 예비 우주인이 되었던 소식이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언가 말했던게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그가 좌절하고 여성인 김소연이 첫 우주인이 되었다는 소식이 한동안 들끓었다. 한동안 강연도 활발히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소설은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게 했다. 작가 또한 2006년 우주인 선발 대회에 직접 나서 취재했던 경험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물론 탈락자의 소식에 안타까움도 있었으리라.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의 시선으로 써서 그런지 꽤 사실적인 소설이었다.

 

치열한 선발 과정을 통해 최종 선발된 네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훈련을 받는지, 네 사람과는 어떤 관계에서 출발하는지 그들의 육성을 통해 우주인이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가장 크게 자리했던 건 누가 우주선에 탑승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그에 따른 질투의 감정을 담았다.

 

 

 

최종 선발된 사람들을 보자. 생태보호연구원의 식물연구원인 이진우가 그 첫 번째다. 그는 연구를 하다 옥상에 올라 우주를 떠올리면 심장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우주인 선발을 하는 공고문을 보고 당연하게 도전했다. 또 한 사람의 인물은 우주인이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고더드 세너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인 김태우다. 그는 우주 마니아다. 우주인에 관해서라면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투어리스트'라는 벤처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우성이 있고, 유일한 여성 후보이며 마이크로로봇연구원인 김유진이 그들이다.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기억하지만 두 번째 우주인이자 지구를 열일곱 바퀴나 돈 게르만 티토프는 존재감이 없다.' 라는 내용이 소설 전체에 흐른다. 무엇이든 첫 번째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첫 번째는 기억하지만 두 번째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첫 번째가 되기 위해 애쓴다. 소설에서 네 사람의 우주인 들도 모두 첫 번째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했던 것이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희망을 안고 훈련했다.  

 

누가 다음 발사 때 탑승 우주인으로 정해질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두 명씩 조를 나눠 활동했고 서로 도와 탑승자가 되길 바랐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관대한 편이라서 모두들 자기가 탑승자가 되길 기대했다. 드디어 탑승자가 정해졌다. 탑승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실망했고, 탑승자로 선발된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 했다. 감기만 걸려도 탑승하지 못하고 백업이 탑승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그러니까 탑승자가 어떠한 사건에 휘말렸을 때, 누군가의 이름을 말해야 할때 탑승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이름을 밝혀야 하지만, 여태 그와 함께 해 온 노력과 우정을 생각하면 밝힐 수 없다. 그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중력을 탓하며 쓰러지지만 중력은 나에게 관심조차 없으리라. 하지만 지금 중력은 누구에게나 힘을 미친다. 누구나 똑같이 바닥에 닿게 하고, 서든 눕든 제 무게를 되살려준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고, 태양도 지녔지만 티끌도 가졌다. 그래서 중력은 모든 것이 제가끔 움직이고 저마다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조건이고 운명이다. (152페이지)

 

삶은 고민의 연속이다. 이진우가 다니고 있는 연구원에서 대기반으로 발령이 나 우주인 탑승자로 선발되지 않으면 그의 거취는 어떻게 될 것인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건 가족이며, 함께 동거동락해온 우주인 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패자가 되는 현실이다. 선의의 노력을 해온 자들의 삶의 방법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그때 우주인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 궁금해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우주인이 되기 위한 훈련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제조업을 하는 벤처 사업을 하고 있는 사진도 만날 수 있었다. 작가는 우주인이 되는 과정을 취재하며 느꼈던 것들을 이렇게 소설에서 다시 한번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주인이 되는 훈련 과정이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음을. 경쟁 관계였지만 서로 돕고 함께 노력해 왔던 과정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승자가 아니라도 좋았다. 승자보다 더 승자다운 것, 승자의 됨됨이를 지니는 것, 그래서 미더움을 주고 소박한 정을 나누는 것이 더 소중했다. (394~395페이지)

 

너는 끝까지 가보았으니까. 그 말이 마치 성큼 걸음을 내딛듯이 나에게로 들어왔다. 너는 끝까지 가보았으니까…… 꿈이 스러져가도 최대치를 다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44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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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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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로서 추리소설 작가로 이름을 알린 작가의 소설이다. 이제는 판사 신분이 아닌 변호사로서 본격 법정 추리물을 다룬다. 법정 추리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더 들어가서는 인간으로서 판사에 대한 수많은 고뇌를 다룬 글이기도 하다. 판사도 인간이다. 죄를 저지른 자를 보면 분명 죄를 저질렀다는 확신이 들지만 증거주의 원칙에 의하는 형사재판의 특성상 증거가 명확하지 않을 때 판결내리기가 쉽지 않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을 따른다'는 원칙에 의거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판사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선에서의 '의심'이 전혀 없는 수준까지 입증되어야 한다는데, 아무리 판사가 피고인에 대해 범인이라는 의심이 든다고 해도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판결내릴 수 밖에 없다는 거였다. 이게 형사재판의 원칙인데, 반면 민사재판은 두 사람이 싸우는 일이기에 상대방보다 많은 증거를 갖고 있기만 하면 유죄로 할 수 있다.

 

 

저자가 판사로 재직당시 있었던 사건을 소설화 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은 여자에서 남자로 바꿨고, 저자 또한 실제로 사건을 담당한 게 아니라 인터넷 기사와 판결문을 보고 쓴 작품이라 하니 독자들과 같은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죽인 사람은 당연히 죄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증거주의 원칙에 따라 증거가 많지 않을 시 무죄로 풀려나기도 한다.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다. 하지만 판사도 인간인지라 생활인으로 봤을 때 분명히 유죄로 보이나 판사라는 법관으로 보았을때는 무죄로 판결할 수 없는 심정들을 담았다.

 

이른바 '젤리 살인 사건'은 스물다섯 살의 남자와 그 보다 연상인 여자가 모텔에 투숙후 젤리가 목에 막혀 질식사 했다. 남자가 죽은후 여자를 수익자로 하는 거액의 보험에 가입되었을 뿐 아니라 그 여자가 3억이라는 보험금을 타서 다른 남자와 여행도 다녀왔다는 것이다. 그 여자의 행실을 보았을 때 누가 봐도 유죄지만 이미 화장해버린 뒤여서 여자에게 불리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는 재판장과 배석 판사 두 명이 있다.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같은 판결을 해야 재판장은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판결을 내린다. 만약 재판장이 유죄라고 추정했을 때 두 배석 판사가 무죄라고 하면 그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 판사는 유죄, 즉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어지는 스토리는 그야말로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이다. 도진기 작가의 추리물의 위력이 발현한다는 소리다.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젤리 사건의 가해자 김유선이 대법원 항소는 당연하고, 대법원에서는 무죄로 판결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피해자 가족은 힘든 상황에서 민사 재판으로 가게 되는데, 김유선이 현민우 부장 판사에게 가하는 행동은 가히 짐작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소설 속 현 판사도 예상하지 못했다.  

 

 

판사라는 직업의 특성을 실제 경험자에 의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검사에 비해 판사는 독립된 기관이다. 그래서 판사를 선택했다는 것과 신임 배석 판사의 강직함을 바라보며 신임 시절의 자신을 마주하는 것 같은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다.  

 

"재판이란 건 말야, 시늉이야, 시늉."

 

"법정이란 말야, 정의 그 자체보다 정의가 행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한 곳이거든."

(204페이지)

 

소설 속 현민우 부장 판사에게 말하는 동료의 말로 듣는 판사들의 애환이다. 법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러 매체속에서 느껴지는 건 역시 법을 이용하는 자들의 법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자부한다. 최선을 다하여 사건을 파악하고 증거를 수집하여 판단을 하지 않는가. 비록 증거불충분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도, 반대로 자유로운 신분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것 같다. 보기에 죄인이 분명함에도 자유로운 몸으로 세상에 날갯짓하는 듯 보이는 걸 보면 억울함을 감출 수 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법은 정의롭다고 여기지만 인간이 판단하는 법이기에 진정으로 정의로운 판결을 하였는가, 이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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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지도
앤드루 더그라프.대니얼 하먼 지음, 한유주 옮김 / 비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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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영화로 보는 것과 뮤지컬 혹은 음성으로 듣는 것 외에 또 뭐가 있을까? 소설을 지도로 보는 방법이라고,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그림으로 표현해놓은 건 자주 본다. 만화로 그려진 것도 많고. 하지만 지도 형식의 소설은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여기 지도로 된 소설책이 있다. 바로 비채에서 나온 『소설 & 지도』 라는 책이다.

 

책 표지에서부터 소설과 지도가 접목된 것처럼 보인다. 얇은 표지를 걷어내면 지도 형식의 그림이 펼쳐져 있다. 바로 이 책의 본모습을 나타낸 거다. 출판사 편집자 이자 작가인 대니얼 하먼과 일러스트레이터 앤드루 더그라프가 함께 문학 작품을 지도로 나타냈다. 더구나 소설가 한유주가 번역한 작품이기도 하다. 앤드루 더그라프는 이 책을 말하길, 이 지도는 해당 작품을 읽은 사람에게만 잘 보일거라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관련 책들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지도가 소설을 부른다고나 할까.

 

 

『소설 & 지도』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총 19개의 작품들을 지도로 나타냈다. 저자가 50개의 작품을 지도로 그리려고 했으나 스스로 정신나간 짓이었다고 밝혔다. 그만큼 힘든 작업이라는 말일 것이다. 19개 작품을 추려 만든 것들 중에서 첫 작품은 역시 문학 작품의 효시인 『오디세이아」다.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가는 여정을 그대로 지도에 표시했다. 우리는 지도 속에서 오디세우스가 지났던 곳들을 만날 수 있다. 칼립소와 키르케가 있던 곳,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섬, 그리고 페르세포네와 아들이 있는 자기의 집 이타카까지 지중해를 넘고넘었던 여정을 만날 수 있었다.

 

지도 속 섬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절로  『오디세이아」의 내용이 연상된다. 이래서 저자가 소설을 읽은 사람에게 더 잘 보일거라는 말이 맞아떨어지는 이유다. 더불어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지중해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문학 작품들 중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아닐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 을 각 장에 맞게 막으로 구성해 여러 장의 지도를 나타냈다. 햄릿의 고뇌를 1막에서부터 5막에 이르기까지를 나타낸 것이다. 각 장에 맞게 내용을 구성할 수 있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보는데 도서관의 구조를 육각형 모양의 벌집을 보는 듯 했다. 각 책장 한칸을 육각형 모양으로 잡고 그 안에 든 책들과 출구를 나타냈다. 이 그림들을 대여섯 개와 여러 개의 책장이 모인 그림을 지도로 나타냈는데, 지도 속 바벨의 도서관이 보르헤스가 나타내고자 하는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절묘하게 닮아있다.  

 

 

또한 빠질 수 없는 작품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다아시 씨와 엘리자베스, 빙리 씨와 제인, 리디아와 위컴 씨 그리고 샬럿과 콜린스의 관계를 아래 그림처럼 나타냈다. 마치 미래의 세계를 보는 듯 커다란 성 위에서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길을 보면 그 끝이 결혼임을 알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 유난히 좋아하는 작품이 「오만과 편견」이다. 영화로도 여러 번, 소설로도 여러번을 읽어 외울 정도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국의 결혼 제도와 결혼을 생각하는 여성과 남성의 입장을 잘 나타냈다. 최근의 로맨스 소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게 중요하다. 오래도록 사랑받은 작품은 이처럼 다 이유가 있다는 거.

 

 

에밀리 디킨슨의 시  「풀 숲의 가느다란 녀석」은 원래는 뱀을 나타낸 거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의 발에 달라붙어 있는 것들과 뱀의 허물 등이 지도에 나타나있는데 뱀을 무서워해서인지 역시 소름끼친다. 꼭 내 발에 닿는 것 같아 도망가고 싶어진다는 거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마크 트웨인이 보여준 대로 강을 따라가는 여행을 담았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증기선의 침몰, 아랍인 환자, 펠프스 농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의 지도로 되어 있어 허클베리 핀의 여정을 알 수있다.

 

 

한 권의 책은 세상을 여행하는 일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며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여정이기도 하다. 한 권의 책 속에 여러 작가의 글이 있는 경우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양한 독서 경험이 우리의 삶을 더 풍족하게 해준다. 여기에서 풍족은 마음의 풍족을 나타내는 일임을 여러분은 알 것이다. 

 

다양한 방식의 독서가 중요한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소설을 영화나 연극으로 보는 일, 혹은 그림으로 보는 일들이 다양한 소설 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을 지도로 읽는다, 이로써 우리는 한 곳에 치우쳐 굳어있던 마음이 어느새 열리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지도로 읽는 『소설 & 지도』는 아름다운 판타지로의 초대다. 어른 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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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THANK YOU 에디션 - 전 4권 (박스 포함)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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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은 한 시대를 관통한다. 우리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이다. 우리의 역사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들 부모 혹은 조부모의 삶이 역사와 맞닿아 있다. 시대를 달리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가는 우리. 우리의 삶이 곧 역사라는 사실을 이토록 감동적으로 경험하는 일도 드물다.

 

만화가인 저자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저자는 어머니의 육성 그대로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늙은 딸과 함께 사는 팔순의 어머니는 과거 어머니의 삶을 그대로 전한다. 그 육성에서 애틋함이 묻어나왔다. 그리운 고향, 그리운 어머니, 형제들. 그리움이 크면 이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법인가.

 

일제 강점기의 1900년대에서부터 해방 그리고 다시 1950년대의 한국전쟁을 겪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질곡의 현대사가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일제가 대규모 국토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인들의 토지를 빼앗은 이야기. 제법 토지를 가지고 있던 저자의 조부모와 여러 자녀들 모두 사랑을 듬뿍 받았던 어머니의 기억들을 만화로 들을 수 있었다.  

 

 

작가의 그림을 보는데 무척 그리운 감정을 느꼈다. 연로하시지만 살아계신 엄마와 함께 일상을 보내는 나이 많은 딸. 엄마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작업이 쉽지않았을텐데도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웠다.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었고, 그런 시간들을 함께하지 못했던 게 못내 안타까웠다. 꽤 오랜 시간동안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그림을 그리는 작업했던 시간이 부러운 거였다.

 

정신대(일본군 위안부)를 피하기 위해 원치않은 결혼을 했던 어머니. 어머니를 사랑해마지 않았던 아버지가 노름과 술에 빠져 고생했던 이야기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딸과 엄마가 함께 아버지 흉을 보는 장면에서는 슬며시 웃음도 났다. 

 

사랑받았던 사람은 시부모님께도 사랑을 받고, 많은 이들에게도 사랑받는 법인가 보다. 어머니가 살아온 삶에서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를 읽는데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내가 부족해도 나눌 줄 알았던 어머니의 삶이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림은 다소 투박하다. 최근에 유행하는 소녀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은 아니라는 거다. 예전 명랑만화를 보는 듯 하다. 더군다나 컬러도 아니고 흑백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겠지만, 이 책을 알게 된게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소개한 책이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꼭 재출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담았다. 이처럼 우리 역사는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만화라고 하면 그림 때문에 금방 읽게 되는데, 판형이 크고 촘촘한 글 때문에 더디 읽힌다. 내용 또한 역사 이야기를 보는 듯 하다. 그럼에도 작가가 들려주는 어머니 이야기에 푹 빠져 읽게 된다. 무엇보다 엄마와 함께하는 저자의 일상이 무척 다정하다. 지나고 보면 함께 했던 일상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

 

 

 

 

할머니와 엄마,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개인의 삶에도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힘이다. 더불어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작가의 고백 또한 뭉클해진다.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또한 독자들에게 잊혀져 사라지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읽히는 책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이 아닐까 한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우리 역사와 맞닿아 있고, 엄마와 딸의 뭉클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함께했던 시간들이 진정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절실하게 깨닫는 때가 곧 올 것임을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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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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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소년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가해자 소년은 떳떳하게 하던대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살아가는데 피해자인 소녀는 칩거했고 말을 잃었다. 소녀는 숲길에서 소년에게 총구를 들이댔고, 두려움에 떨던 소년과 그 가족들은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베어타운은 하키가 전부인 마을이다. 베어타운 소속 하키 선수들은 옆 마을 헤드로 떠났다. 그들을 가르키던 코치마저 떠나고 베어타운의 하키 선수들은 몇 남지 않았다.

 

하키가 전부인 베어타운에 새로운 코치가 왔다. 신임 코치 사켈은 다른 걸 원치 않았다. A팀의 선수로서 보보와 아맛, 벤이(벤야민) 그리고 비다르를 원했던 것. 베어타운 사람들에게 하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하키 선수를 위해 술집에서는 모금함을 채워 아이스하키단 선수를 돕는데 썼고, 검정 양복을 입은 사람들도 베어타운의 하키가 어서 살아났으면 했다.

 

무엇보다 베어타운 아이스하키단 단장 페테르에게 하키는 삶의 전부였다. 그는 어떻게든 하키단을 유지해야 했다. 위원회에서 예산 삭감으로 헤드의 하키단을 지원하고 베어타운의 하키단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그는 한 정치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베어타운의 아이스하키단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었다. 하키단과 평생을 더불어 지낸 사람은 하키단이 없어지면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지는 문제가 생긴다, 고 말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성폭행을 이야기할 때 항상 과거 시제를 쓴다. 그녀가 피해자'였다'고 한다. 그녀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가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일을 겪은 게 아니라 지금도 겪고 있다. 그녀는 성폭행을 당했던 게 아니라 지금도 당하고 있다. (364페이지)

 

성폭행을 당한 마야의 심정이다. 반면 마야의 동생인 레오는 누나를 지키지 못했다며 집밖으로 떠돌고 있다. 그의 자책이 없던 일로 돌아가지 않겠지만, 그는 견딜 수 없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마야를 다르게 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을 챙기라는 말을 건네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는 누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는 누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는 누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38페이지)

 

베어타운 두 번째 이야기는 하키로 똘똘 뭉친 한 마을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키 뿐만이 아니다. 하키로 뭉쳤으나 좀더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하는 것. 비록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고 해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말을 쓴다. 함께 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봐야 했다. 영어권의 외국 사람들이 주로 '내 나라, 내 가족'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 나라, 우리 가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는데, 이 소설이 나타내는 바가 '우리'라는 거다. 우리 즉 베어타운 마을과 그외에 다른 것들이다.

 

인생은 우라지게 희한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가며 인생의 여러 가지 측면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규정한다. 우리는 이해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가장 좋았던 기억도, 가장 나빴던 기억도, 이해는 언제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595페이지)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이며, 한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한 마을이 하나가 되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슬픈 일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다시 어떻게 살아갈까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시련이 때로는 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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