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난민 - 한국의 난민 여성 이야기 마이너리티 리포트 1
문경란 지음 / 서울연구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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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인간 존중을 헌법의 최고 가치로 규정하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발전되어 온 인간 존중은 오늘날 여성, 어린이, 근로자, 장애인, 난민 등 사회의 약자에 대한 인권 보호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난민 문제에 대한 대응이 소극적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국제난민협약에 가입했다. 난민협약은 국제협약으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으므로 한국 정부는 난민에 대한 보호 의무가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1명의 난민을 정식으로 받아들인 연도는 2001년이다.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한 신청자들은 ‘인도적 지위(humanitarian status)’에 속한다. 그들은 난민이 될 수 있는 법적 요건이 부족하지만, 일정 기간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누적 인도적 지위자 수가 천 명을 넘어선다.

 

우리나라에서 난민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난민’으로 생활하려면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난민이 되기 위해선 ‘박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공개해야 한다. 난민협약이 규정한 ‘박해’는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협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성폭력, 강제 결혼, 할례 의식 등 성적 박해에 벗어나려는 여성들도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목숨 걸고 가까스로 한국으로 건너온 난민 신청자들의 손에 근거 자료가 있을 리 없다. 여기서부터 난민 신청자들은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한다. 난민으로 인정받아도 그들의 삶은 순탄치 않다. 정부가 다문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차별받는 난민과 인도적 지위자 들이 많다. 인도적 지위자는 진학과 직업의 자유가 없어 공장에서 단순 노동직으로 살아간다. 난민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뿐이고, 서울에 있다. 지방에 거주하는 난민들은 서울에 가기 위한 교통비를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사실상 혼자서 외출이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녀들 역시 활동에 제약이 따르고 외톨이로 지내기 쉽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오전 시간에 한정되어 있어서 일하는 난민들은 사실상 배울 기회를 받지 못한다.

 

최근에는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면서, 난민들의 삶을 가로막는 장벽이 더욱 견고하게 높아지고 있다. 갈등과 분쟁이 국지화하면서 국경을 넘지 못하는 국내 난민이 급격히 증가하고, 박해를 피해 탈출한 난민들을 사회에 해를 끼치는 불법 이민자로 바라본다. 난민 문제에 대한 더 근본적인 비판은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 자체에 대한 것이다. 《우리 곁의 난민 : 한국의 난민 여성 이야기》(서울연구원, 2017)는 이 문제를 지적한다. 외국인에 대한 이중 잣대. 한국인들은 평등과 관용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종 및 국적 차별이 몸에 배어 있다. 미국, 유럽 출신의 외국인이 방송인으로 활동하거나 정계에 진출하면 ‘푸른 눈의 한국인’이라며 환영하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그런데 필리핀 출신의 이민자인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이 됐을 때 악의적인 인종차별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이자스민을 비난한 사람들은 그녀의 국정 활동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인터넷으로 떠돌던 허위 정보를 믿고 혐오 발언을 내뱉었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잘 사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백인에게는 호의를 보이면서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로 분류되는 동남아 출신 유색인종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 여성도 성차별의 피해자가 된다. 고국의 기나긴 내전을 피하고자 한국으로 온 난민 여성들이 있다. 전쟁은 약자에 대한 억압과 폭력이 극단적으로 증폭되는 끔찍한 상황이다. 전쟁 속에서 여성은 자국 남성을 위한 성 노리개가 되거나 점령세력 남성이 가하는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된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의 폭력은 우리 역사에서도 전혀 낯설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여성들은 강제로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 여성들은 한순간도 전쟁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난민 여성들은 전쟁이라는 고통을 피하고자 한국으로 왔지만, 이곳에서도 이중삼중의 고통이 그녀들을 위협한다. 난민 여성은 ‘외국인’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며 경제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안정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차별과 고통을 겪는 난민 여성에게 한국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녀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욕해도 우리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난민 여성들은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있는 입’이 없다. 부당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사회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어려움에 처한 난민 여성은 점점 고립되고, 사회는 난민 여성의 인권 문제를 외면한다.

 

이 책에 7명의 난민 여성들은 용기 있게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의 사연을 보게 되면 타자에 대한 관용을 말로만 외치던 우리 사회의 위선적인 민낯을 확인할 수 있다. 난민 여성의 인권 문제는 ‘한국 여성이 처한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페미니즘 열풍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려면 난민 여성을 소외하면 안 된다. 따라서 난민 문제는 ‘인간’의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

 

 

 

 

※ 리뷰의 제목은 할란 엘리슨(Harlan Ellison)의 단편소설 제목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를 차용해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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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0-13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첨에 이런 알찬 리뷰 쓰려고 그런거거든요? 근데 쓰고나니 무도사 배추도사. 와......

비결 좀 알려주세요.

cyrus 2017-10-14 15:44   좋아요 0 | URL
syo님의 글에는 syo님만의 개성이 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제 글을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양념과 기름기를 뺀 싱거운 음식’입니다. syo님의 글을 음식으로 비유하면, ‘맛있는 음식’입니다. 지금처럼 syo님이 만들고 보여줄 수 있는 글의 맛을 계속 유지하십시오. 이 알라딘 마을에 각자의 개성을 내세워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저에게 배워야 할 점은 1도 없습니다. ^^

서니데이 2017-10-1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금요일 밤 되세요.^^

cyrus 2017-10-14 15:47   좋아요 2 | URL
잘못된 편견으로 한 번 낙인찍힌 사람일수록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편견에 갇힌 사람들은 발화자를 무시하고 차별합니다.

2017-10-14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4 15:48   좋아요 0 | URL
중요한 기사를 잘 보셨군요. 이 기사를 모르거나 못 본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거예요. ^^


임모르텔 2017-10-14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닿네요
제겐 아는 베트남 여동생이 있어요. 저보다 한국어구사력이 더 좋아서 자주 수다를 떨죠.
올 가을 함께 여행가자고 그러는데~ 이 글읽고 시간내어 같이 가을여행을 가야겠단 생각이..문득!!! .^^

cyrus 2017-10-14 15:52   좋아요 1 | URL
제 외숙모가 베트남 사람입니다. 시골에 사는 외삼촌과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어요. 저도 외숙모를 가족처럼 대하다 보니 다문화 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올빼미님의 소원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AgalmA 2017-10-14 0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별적이지도 민족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난민 수용 상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라고 하면 가짜들 많이 드러나죠. 여차하면 애국심이 강한 것도 죄냐 등등으로 주위의 표도 모으면서....글로는 감출 수 있어서 이건 산파술이 필요한 영역ㅎ

cyrus 2017-10-14 15:57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난민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요. 난민 문제도 복잡해요. 종교, 문화적 차이 등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편견을 걷어내야 합니다. 일반인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난민 문제를 접근할 때 가짜 정보, 허점이 있는 정보를 걸러내는 일입니다.

2017-10-14 0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4 16:02   좋아요 4 | URL
탈북자도 난민입니다. 밀당 중인 트럼프와 김정은이 전쟁 한 판 하자고 제대로 뜨면 대한민구 인구도 난민이 됩니다. 전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전을 피해 우리나라로 건너 온 난민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웃긴 일이에요. 우리나라도 언제 전쟁 날 지 모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난민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요.

sprenown 2017-10-14 0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민여성이 그러고 보니 우리사회의 최고 약자네요
관용의 미덕은 언제쯤?

cyrus 2017-10-14 16:04   좋아요 2 | URL
난민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지 않는 한 난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난민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sprenown 2017-10-14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뿌리깊은 인종차별에 우리 먹고 살기도 힘들다..일자리문제까지.
못할짓 많이 하고 있네요.
사실 얼마전까지 고아수출 하고 베트남 전에서 양민 도 많이 학살했었던 나란데..최소한의 양심과 인류애 회복을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17-10-17 0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민이면서 여성이라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한국은 난민 뿐 아니라 사실 인종차별문제도 심각한데 사회적으로는 별로 인식을 못하고 있는 상황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트럼프 때문에 난민인정/이민권이 나빠지고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우호적인 난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여 정착시키는 제도의 활용, 그리고 민간단체의 활동으로 그나마 나은 형편입니다. 특히 난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여서 인구감소가 심각한 지역으로 이주시켜 지역을 활성화시킨 사례도 있어 인구감소가 이미 현실인 한국도 적극적인 검토와 제도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관용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바탕인 종교에서조차 일상적인 차별과 인권탄압이 이루어지는 나라라서, 그리고 국민의 다수가 그 종교에 적을 두고 있는 상태에서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종교만의 문제는 아니구요).

cyrus 2017-10-17 12:56   좋아요 1 | URL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주기 위해서는 정부가 난민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