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에 출연하는 허지웅은 자기 입으로 무성욕자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자신은 연애 의지가 없어서 스스로 무성욕자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허지웅의 무성욕자 발언 이후 그런 얘기를 쉽게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예전엔 무성욕을 쉬쉬했지만, 허지웅의 무성욕자 발언 이후 무성욕이란 단어를 말하기 쉬워졌다. 그러나 평생 성욕의 유혹을 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세계 4대 무성욕자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붓다, 사마천, 토마스 아퀴나스, 루이스 캐럴. 붓다는 악마 마라의 유혹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반을 준비해 나갔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을 쓰기 위해서 남자로서 치욕스러운 형벌인 궁형을 받았다. 아퀴나스는 신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자,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희망에 못마땅했다. 그래서 아들을 강제로 감금시켜서, 방 안에 매춘부 두 명을 들여보냈다. 아버지는 아들이 매춘부의 유혹에 못 이겨 세속적인 욕망을 따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퀴나스는 벌거벗은 매춘부의 도발에도 몸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고 한다.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로 더 유명하다. 그가 무성욕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캐럴은 독신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말더듬이에 수줍은 성격 탓에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과 잘 어울렸다. 그가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면 생전에 다방면으로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수학교수였고, 유클리드 기하학에 관한 책도 몇 권 발표했다. 비록 공식적으로 성직자 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사제 서품을 받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자신과 친분을 맺는 사람들의 모습을 멋지게 담는 사진가가 되었다. 그가 찍은 소녀들의 사진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만약에 캐럴이 연애 혹은 결혼을 했더라면, ‘아동 성애자라는 오명이 따라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벌거벗은 소녀들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캐럴은 아동 성애자로 의심받았고,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은 그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실제 모델 앨리스 리델과의 관계를 주목했다. 연구가들은 캐럴이 앨리스 리델을 알고 지내는 소녀 이상으로 좋아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캐럴이 만난 사람 중에 여성도 있었다. 그렇지만, 캐럴은 이성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 문화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답게 도덕적인 삶을 살아왔다. 당시 유행하는 패션에 무관심했다. 또한, 신체적 결함은 캐럴의 연애 감정을 싹 틔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는 말을 더듬을 뿐만 아니라 오른쪽 귀가 질병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캐럴은 자신의 모습이 여성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에밀리 거트루드 톰슨 (1850~1929)

 

 

 

이성과의 만남 횟수가 적은 사람일수록 연애 세포가 쉽게 죽고 만다. ‘연애 못 하는 남자캐럴은 반려자를 만나뻔할 운명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는 삽화가인 거트루드 톰슨이라는 여성을 알게 된다. 캐럴은 그녀의 삽화 실력에 감탄하여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냈고, 두 사람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관계가 돈독해진다. 이때 톰슨의 나이는 스물아홉, 캐럴은 곧 지천명에 눈앞을 두고 있었다. 나이 차가 꽤 많이 나는데도, 톰슨은 캐럴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캐럴을 처음 만났던 당시 상황을 기록했는데, 그가 어린아이에게 상냥한 신사였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함께 연극 공연을 보고, 전시회도 다녔다. 그러나 캐럴은 톰슨을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으로 생각했다. 캐럴의 지인으로부터 이 사실을 안 톰슨은 전혀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하며 쿨한 모습을 보였다. 시간이 지난 후에 톰슨은 캐럴의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톰슨이 먼저 적극적으로 구애한다고 해도 캐럴은 그녀의 애틋한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캐럴은 사람들 앞에 자신의 능력을 펼쳤지만, 자신의 말 더듬는 버릇을 들춰내는 어른 사회가 불편했다. 반면 마음이 순수한 아이들은 캐럴의 말 더듬는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말 더듬는 횟수가 많아질까 봐 조바심을 냈던 캐럴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유난히 행복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지은 이야기나 재미있는 농담을 들려주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캐럴은 모든 아이를 사랑했다. 판매되지 않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책들을 어린이 병원에 기부한 적이 있다. 캐럴은 어린이 환자들이 자신의 책을 읽으면 병이 빨리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캐럴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후에 어린이들은 캐럴의 따듯한 성품을 기억하기 위해서 직접 모은 돈을 기부했다. 이 기부금은 어린이 병원에 새로 마련되는 침대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그 침대에 루이스 캐럴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런 멋진 일을 했는데도, 여전히 캐럴이 소녀 한 사람만 바라보는 특이한 어른으로 보이는가. 요즘 아동 성범죄가 지속해서 늘어날수록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아이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껴안으면 의심받을 수 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나쁜 어른들 때문에 순수한 의도의 행위가 변질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선행을 펼치는, 캐럴 같은 착한 어른들이 오해를 받을까 봐 걱정된다.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이런 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루이스 캐럴 상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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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9-24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람들이 짝짓기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좀 불편할때가 있습니다~
무성욕자라고 이야기할수 있는 사람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cyrus 2015-09-25 15:28   좋아요 0 | URL
남자들 사이에서 동정남이라고 고백하면 놀림 받습니다. 군 복무했을 때 제가 동정남이라는 이유로 선임들에게 갈굼 먹기도 했어요. ‘혼전순결’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세실 2015-09-2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지웅도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지요.
루이스 캐럴상 좋은데요~~

cyrus 2015-09-25 15:3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는 방정환 선생이 유명하죠. 그분의 이름을 딴 상이 있어서 좋습니다. ^^

보슬비 2015-09-24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에밀리 거트루드 톰슨과 캐럴과 그런 만남이 있었군요. 알고 보니 엽서 그림이 더 마음에 드네요. ㅎㅎ

cyrus 2015-09-25 15:31   좋아요 0 | URL
구글에 ‘Gertrude Thomson’으로 검색하면 그녀가 그린 삽화 몇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잘 그렸습니다. ^^

초록장미 2015-09-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이스 캐럴상 좋네요~ 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하는 어른은 분명 전체에 비하면 소수일 텐데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제 눈도 흐려져가는 것 같아 슬플 때가 있어요. 루이스 캐럴상 같은 것을 만들어서 널리 홍보하면 아이를 귀여워하는 어른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cyrus 2015-09-25 15:3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 ‘방정환 문학상’, ‘마해송 문학상’ 같은 아동문학에 기여한 작가들에게 주는 상은 있는데, 방정환 선생처럼 아이들을 위해 선행을 베푼 사람들에게 주는 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달걀부인 2015-09-25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잘 몰라서 묻는건데요. 사마천처럼 궁형을 받았다해도 성적 욕망은 느낄수 있는건 아닌지.. 내시들끼리 성적인 결합들이 있었다고 하지않나요? ^^ 그냥 뜬금없는 댓글..

cyrus 2015-09-25 15:41   좋아요 0 | URL
부인님 말씀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거세가 되어 남성 호르몬 분비가 줄어든다면 성적 욕망도 감소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거세된 남성은 성적 욕망을 느끼지 않는지 궁금하긴 해요. 그렇다고 제가 직접 실험해볼 수가 없고...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9-25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확실히 그 행위에 대한흥미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용될 수 있겠네요.ㅎ 일단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사실 무성욕이든, LGBT든 상관이 없지요. 다만 여기에 붙는 label이 문제이고 편견 때문에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게 이슈네요. 루이스 캐럴에 대한 이야기가 참 흥미롭습니다.

cyrus 2015-09-25 15:51   좋아요 1 | URL
캐럴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 그 다음에 사진을 찍는 일인데 여기에 몰두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성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어요. 남들에게 크게 미운 털 한 번도 박힌 적이 없을 정도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는데도, 캐럴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아요.

해피북 2015-09-2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할아버지가 유치원에서 하원하는 손녀기다렸다가 데리고 가는 모습 참 훈훈했는데 요즘은 자꾸 의식하게 되는거같아요. 사회가 점점불안하니 불안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든것들이 다 그렇게 비춰지는것만 같아요. 인식이 하루 빨리 바뀌면 좋겠어요. 루이스 캐럴상 깊은 공감한표 ㅋㅂㅋ!

cyrus 2015-09-25 15:58   좋아요 0 | URL
아동 성범죄가 많아지니까 예전에 가능했던 일들이 추억이 되고 말았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출입하려면 먼저 경비실에 가서 출입절차 확인을 받아야 해요. 예전에 집에 가는 지름길로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가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못 가요. 뭣도 모르고 지나가다가 경비 아저씨한테 쫓겨난 적이 있어요. ^^

stella.K 2015-09-25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성욕자는 의외로 많지 않을까? 교회나 성당, 사찰에도...
교회를 다니는 걸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성욕을 견디지 못해서란
말도 있던데 꼭 성욕은 모든 사람이 다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성욕은 젊은 사람에게 왕성하게 있고, 노인은 없을 거란 식의 이분법적
사고도 문제지만, 사회가 성욕을 부추기기도 하잖아. 마치 그게 정상인 양.
그건 옳지 않은 것 같은데 반대로 성욕을 어떻게 해결하고 제어해 나갈거냐에
대해서도 논의는 있어야 한다고 봐.
무성욕자를 무슨 병이나 미성숙으로 바라보는 건 정말 문제가 있지.
이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끌리고 그러는 건 아니잖아. 그럼에도 우린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사람과도 우호적으로 잘 지내기도 하고 반대로 싸우기도 하고.
그런 거지 뭐.ㅋ


cyrus 2015-09-25 21:56   좋아요 0 | URL
<마녀사냥>이 섹스 장려 프로그램이잖아요. 요즘은 이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예전에 ‘낮이밤이’, ‘낮져밤이’가 유행했을 때 게스트에게 항상 먼저 이런 걸 물어봤잖아요. <마녀사냥>이 처음에 시작했을 때 좋았어요. 구성애 성교육 강의 이후로 성 담론을 소재로 한 방송이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