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모음사, 1992년)라는 제목의 단편 추리소설 모음집을 알라딘 온라인 중고에서 샀다. 책 상태가 ‘중’이라서 주문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을 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는 출간 연도가 꽤 오래된 절판본이지만, 나름 희귀 가치가 있다. 헌책방이나 온라인 중고 책 사이트에서 구하기 힘든 책인 데다가 故 물만두님이 생전에 이 책의 서평을 남겼다. 사실 물만두님의 서평을 통해서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를 알게 되었다. (책 제목을 줄여서 ‘존 딕슨 카’라고 하겠다)
다행히 책 상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약간 낡은 느낌이 나지만, 종이가 많이 변색되지 않았다. 책이 심하게 갈라진 곳도 없었다. 알라딘 온라인 중고나 중고매장에서 주문한 책 뒤쪽 아래에는 바코드 스티커가 붙어있다. 가끔 바코드 스티커가 서너 장 겹쳐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주인 없는 책이 여러 중고매장을 전전하면서 생긴 흔적이다. 《존 딕슨 카》에 붙여진 스티커는 네 장이었다. 겹쳐 붙은 스티커는 한 번 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과거가 무척 궁금해서 한 겹 한 겹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스티커를 떼어냈다. ‘강남점’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맨 위에 붙어 있는 걸로 봐서는 내가 주문하기 전에는 《존 딕슨 카》가 알라딘 강남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강남점’ 스티커를 제거하자 뜻밖의 정보가 적힌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지금까지 알라딘 온오프라인 중고서적을 주문하면서 ‘LA점’에 판매되었던 책을 만난 것은 《존 딕슨 카》가 처음이다. 알라딘 LA점은 2013년 7월에 열린 중고서점이다. ‘LA점’ 스티커 밑에 나머지 두 장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지만, 이 두 장의 스티커가 딱 달라붙은 바람에 더 이상 매입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아무튼 《존 딕슨 카》가 잠깐 미국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고 가격은 6달러. 우리나라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6600원이 나온다.
책이 유통되는 과정을 잘 알지 못해서 스티커에 있는 정보만으로도 이 책의 외로운 방랑을 알 길이 없다. 그냥 내 나름대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갖은 호기심과 상상력이 일어난다. 이 책의 전 주인은 누구였을까? 어쩌다가 이 책이 미국 LA에 있다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 강남으로 오게 되었을까? 《존 딕슨 카》는 미국과 서울 한 번 찍고 나서야 드디어 안식처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이 책은 더 이상 쫓겨날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