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동탄에 다녀왔다. 친구가 개인적 사정으로 동탄에 호텔을 잡아 하루 지내게 되었는데, 너 오지 않을래? 라고 내게 물었던 것. 나는 갈게~ 하고 자 가만있자, 동탄엔 어떻게 가야하나.. 차편을 알아보는데, 친구는 내게 '너는 수서역에서 SRT 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하길래 오, 그래? 하고 알아보니, 수서역에서 동탄역까지는 14분밖에 안걸리는 것이었다! 오오. 그렇게 수서에서 SRT 를 타고 동탄역에 내려 또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하면서, 아아, 나는 왜 동탄에 오게 되었는가, 내가 동탄이란 곳에 오게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지, 낯선 곳에서 낯선 버스를 타고 낯선 거리에 내려 스맛폰의 표시된 지도를 따라 걸으면서, 아아, 나의 역마살이란 무엇..왜 가만있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는가... 하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쉰 뒤에 호텔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갔다. 말이 공원이지 산과 연결되어 있어, 초행인 우리는 공원에 간다고 간것이지만 산을 타고 있었다. 그래봤자 낮은 산이어서 시간이 걸린 건 아니었지만, 예상외로 산길에 난 계단을 오를 때에는 힘들었어. 계단은 너무 힘들어..


그렇게 친구와 그 밤을 함께 보내고 다음날 아침 까페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친구의 크레마속 책을 살펴보았다. '박총'의 《읽기의 말들》을 보면서 당장 읽고 싶어졌고, 머릿속으로 이시간 이후에 내가 이 책을 살 수 있는 동선에 대해 생각했다. 수서역에서 내려 잠실까지 갔다 가기에는, 와인 한 병과 책 세 권이 들어있는 가방이 너무 무겁다. 그렇다고 집에 가방을 두고 다시 잠실까지 나가기에는 멀고 지친다. 그래, 그렇다면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 가 책을 대출하자! 역시 나는 짱이야, 천재야, 하고 강동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책이 대출가능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래, 그러자!



그러나 집에 돌아온 나는 너무 지쳐서, 일단 엄마랑 함께 먹으려고 사온 빵을 흡입한 뒤에 양치를 하고 잠에 빠져들고야 만것이다. 아, 나여... 일어나니 밤 여덟시였고...... 서점에 가기도 도서관에 가기도, 그러니까 그냥 집에서 나가기도 너무 늦었어...나는 읽기의 말들을 포기한다....그러나 내 크레마에 내가 사둔 기억이 전혀 없는, '은유'의 《쓰기의 말들》이 있다. 오, 나여... 이건 언제 산거니? 어떻게 이 책을 사게 되었니????? 그래, 읽기의 말들 대신 쓰기의 말들을 한 번 읽어보자꾸나! 그렇게 나는 어젯밤에 이 책을 다 읽고잔 것이다. 



















책의 구성이 얼마전 읽은 '바바라 애버크롬비'의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과 닮아 있었다. 다른 이의 쓰기에 대한 말들을 가져오고, 거기에 자신의 에세이를 덧붙이는 식. 딱히 내게 새로울 건 없었고, 글이 짧게 구성되어져 있어 크레마로 읽기에 더할나위 없이 잘 맞았다. 이 책은 평점이 매우 높은 편인데, 나로서는 왜그렇게까지 높은지 좀 의아하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 책에서 가져갈 게 많았는가 보다.


책 속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이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런데 아주 사소한 그러나 기본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저 문장에서 남자와 여자의 성별을 바꿔도 무리없이 참인 문장인데, 그렇다면, '책을 안읽는 사람'은???


내 경우엔 책을 읽고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늘 그렇다. 그것은 책 속 등장인물이 그를 닮아서일 경우도 있지만, 에피소드가 우리의 역사와 닮아서일 수도 있고, 그저 그 자체만으로 너무 재미있거나 아름다워,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해 그를 떠올릴 수가 있다. 그러니 저 문장은 저 문장 그대로 순수하게 참이다. 그런데, 책을 안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나는 내가 읽는 모든 책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게 되는데, 책을 안읽는 당신은, 나를 어디서 찾지? 설마....



안찾나?




책읽는 내가 억울하다... (으르렁)




일요일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친구와 나란히 누워, 나는 친구에게 기본적인 트위스트 동작을 알려주었다. 누워서 할 수 있는, 아무나 할 수 있는 트위스트 동작. 친구는 내가 시키는대로 따라해보고서는 너무 시원하다고 했다. 그거 수시로 해, 라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호텔 방안에 이번에 새로 나온 에피톤 프로젝트 앨범을 틀어두었다. 나는 '딱히 좋지는 않아' 라고 틀어주었는데, 친구는 '노래 다 괜찮은데?' 라고 말했다. 그러네, 이렇게 아침에 같이 들어보니 또 괜찮네...하다가, 나는 얼마전에 오빠로부터 추천받은 이소라의 새 노래도 들려주었다.


여러분 같이 들어봅시다.






가사는 별 거 없는데 이상하게 좋다. 이소라 목소리 때문인가...




친구가 얼마전에 박미선이 텔레비젼에서 한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자신은 지금의 생활이 너무 안정적이고 편안해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말이었다. 내게도 물었다. 넌 어떠냐고. 나 역시 20대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20대의 나는 술도 마셨고, 여행도 다녔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었고, 책도 읽었고, 영화도 보았고, 연애도 했지만, 그러나 그 시간이 내게 어떤 성장의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은 정체되어 있고 멈춰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그 부분을 싹 도려내어도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았던, 그런 시절. 나는 30대부터의 내가 좋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고 여행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연애도 했지만, 30대에 비로소 하나씩 채워져나가고 충족되어져 나간 것 같다. 본격적인 성장은 30대부터 이루어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일찍 성장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늦게 성장한다. 나는 매우 늦은 축에 속하는 사람인것 같다.



그건그렇고, 오늘도 나는 책을 살것이다. 읽기의 말들을 포함하여 장바구니를 이렇게 저렇게 정리해보는데, 5만원대로 맞추고 싶은데 아무리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도 7만원대라서 고민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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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8-10-15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락방님 제 직장과 가까운 곳에 오셨었다니 왠지 반갑네요~
친구와 호텔에서의 1박 넘 좋은데요? 낯선 곳에 가보는 경험도 좋구요~ 저도 30대의 제가 좋습니다:)

다락방 2018-10-15 17:44   좋아요 1 | URL
오오, 븅븅토토님 동탄에서 직장다니십니까? 반갑습니다!! 거기 엄청 고층 아파트들 많더라고요. 교통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아아 나도 여기 이사올까‘ 싶어 친구가 급 검색해줬는데, 그 번화가의 좋은 아파트들은 비싸더라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당연하겠지만 ㅠㅠ 그래도 새로 지은 것 같은 높은 아파트들 보니 살고 싶어졌어요. 차도도 넓고 사람은 별로 없어서 뭔가 조용할 것 같고....그렇지만.....대출을 몇 억씩이나 받아야 될텐데 그건 어찌갚나 싶고 말이지요... (시무룩)

우리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더 좋아하며 지냅시다, 븅븅토토님!! :)

transient-guest 2018-10-16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한번 가본 곳 같아요. 동탄신도시 어딘가, 그냥 아파트로 가득하던 기억이...

다락방 2018-10-16 07:5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정말 아파트가 가득해요. 그런데 아파트가 아주 많이 비어있더라고요. 몇 해전에 송도 신도시 갔을 때도 비슷한 광경을 봤거든요. 고층 아파트가 많은데 아파트가 비어있는... 아파트에 비해 사람이 현저히 적은 것 같아요. 두 곳 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