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향기(또는 냄새)
가장 기본적인 프란세시냐는 식빵 두 쪽 사이에 소시지, 햄, 스테이크등을 끼워 넣고 그 위에 피자치즈를 씌우고 소스를 끼얹어 구운 것이다. 그 위에 달걀 프라이까지 얹어 주기도 한다. 온갖 재료들이 치즈를 씌운 식빵 사이에서 맛깔진 소스와 함께 촉촉히 녹아내리는 맛의 풍부함이 일품이다.(pp.219-220)
며칠전 회사동료 E 양이 사직서를 냈다. 쉬고 싶다고 했다.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지쳤을까. 그녀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나처럼 더 나이가 많아지기 전에 그만두느니 지금 관두는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그때 갑자기 나는 그녀에게 이 책을 선물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포르투갈에 가서 쉬지 않겠냐고도 말했다. 그녀는 그럴까요, 라고 했다. 나는 이 책에 나왔던 프란세시냐를 먹어보고 싶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책의 설명에 의하자면 이것은 무려 '식빵 두 쪽 사이에 소시지, 햄, 스테이크등을 끼워 넣고 그 위에 피자치즈를 씌우고 소스를 끼얹어 구운 것' 인데 그 위에 계란 프라이까지 얹어준단다. 아..미치겠어...나는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프란세시냐의 사진을 다시 한번 E 양에게 상기시켜주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책을 꺼내 이 사진을 다시 찾아 보았다. 아...진짜 미치겠어...이제 포르투갈은 E 양에게 추천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하는 곳이 되었다. 프란세시냐를 먹으러.
(사진출처는 잘 모르겠고 여튼 야후닷컴 영어버젼에서 검색해서 가져왔음.)
아...나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포르투갈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비행기편을 알아봤다. 직항은 없다. 경유를 해야하는데 갈 때는 프랑스 파리를, 올 때는 스페인 마드리드 경유다. 비행기 티켓은 2백만원. 내가 쓸 수 있는 여름휴가는 주말을 포함하여 단 5일. 오고 가는데 하루씩을 잡으면 내가 포르투갈에서 묵을 수 있는 시간은 사흘. 3일. 3일간 포르투갈에 묵으며 프란세시냐를 먹기 위해 내가 투자해야 하는 돈은 항공료와 숙박비 기타 등등을 포함하여 삼백만원 가량을 예상한다고 칠 때, 하루에 일백만원 꼴. 저 풍성한 음식을 먹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하루에 백만원. 하아-
포기했다.
그런데 좀처럼 포기가 안된다.
그래서 E 양과 계속 얘기중이다. 갈까 말까. 하루에 백만원. 프란세시냐. 갈까 말까. 하루에 백만원. 프란세시냐. 아 진짜 겁나게 먹고 싶다. 나는 뭐 먹고 싶은게 있으면 먹기전까지 다른 생각을 못하겠던데 어떡하지. 저걸 먹으러 가는걸로 결정한다고 해도 8월이나 되야 가능한데. 그때가 여름휴가라...아 젠장. 나는 왜 갑자기 이 음식이 생각났을까.
어제는 점심에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혼자 충동적으로 극장엘 갔다. 디스 민즈 워나 볼까, 하고. 그런데 손님이 없어서 매력적인 우리 동네 극장에...글쎄...손님이 너무 많은거다. 완전 바글바글. 나는 그 분주함을 보자마자 질려버려서는 다시 뒤를 돌아 나왔다. 그리고는 올림픽 공원에 갔다. 하아- 거기도 너무 사람이 많았다. 날씨가 좋아서 다들 나왔는가보다.
대낮이었고, 환했고, 밝았고, 날씨도 좋았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래는 자꾸 니 생각이 나~ 하는 야광토끼의 노래. 어쩌면 이렇게 날씨와 분위기와 잘 맞는 노래를 나는 듣고 있을까. 나는 멜랑꼴리한 기분이 되어서 걸었다. 중간에 벤치에 앉고 싶었는데 벤치마다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빈 벤치를 찾는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걷기만 했다. 자꾸 니 생각이 나~ 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언젠가의 밤에 올림픽공원에 왔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생각하려고 했던건 아닌데. 그때는 밤이었고 여름이었다. 비가 온 직후라 풀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내가 거기에 가자고 했는데, 밤에 오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던터라 내가 원래 가고자 했던곳엘 가지 못했다. 샌들의 한쪽 굽은 다 닳아서 소리가 요란했다. 벤치에 앉았던 순간, 그가 들고 있던 자신의 자켓을 나에게 건네주었던 순간, 다리로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던 순간, 나란히 한 뼘의 거리를 두고 걷던 순간, 그 매순간들이 그 당시에는 꽤 소중하고 아름다웠지만 지금 떠올려보니 안타까운것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하필 왜 그곳을 걸었을까, 하필 샌들굽은 왜 닳아있었을까, 하필 왜 나는 그날 평소에 하지 않던 눈화장을 했을까, 하필 왜.........이렇게 밝은 낮에,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다시 한번 여기에 함께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함께 웃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날씨가 좋아서 자꾸 니 생각이 나
사실은 날씨가 나빠도 그래.
어젯밤에는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지금의 나였는데 이상하게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가야했다. 그런데 내가 알 수 없는 고등학교라 교통편을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다들 알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버스를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 어떤 버스가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시계를 봤는데 수업 시작할 시간이 9분가량 남았고 그래서 초조해졌다. 택시를 타고 데려다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내 앞에 자가용보다는 더 큰 차가 섰다. 그리고 그 차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한 남자가 내렸다. 나더러 타라고 했다. 그는 (꿈에서)나와는 다른 학교였는데 시험기간이라고 공부중이라고 했다. 당신 우리학교 모르잖아, 라고 말했더니 기사가 데려다 주겠지, 라고 말했다. 그래서 차에 타보니 몇 명의 남학생들이 그 차 안에 더 있었고 다들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는 기사에게 내가 배정받은 학교를 말하고 거기로 가라고 말했다. 차는 출발했다. 나는 공부하는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꿈속에서)그는 꽤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얌전히 가려고 했는데 그가 갑자기 내 손을 꼭 쥐고 책을 본다. 무심한듯, 내 손을 잡은걸 인식하지 못한다는 듯, 그렇게 내 손을 잡고 책을 본다. 가슴속이 막 따뜻해져서 나는 그만 말을 걸고 말았다. 시험 언제 끝나? 그러자 그는 다음주 목요일, 이라고 말했다. 응, 공부해. 그리고 다시 그가 잡은 손을 놓지 않은채로 가만히 앉아있는데 그가 갑자기 손을 놓고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낸다. 그러더니 시험이 끝난 뒤의 계획을 하나씩 적기 시작한다. 어느 칸에는 '소년 소녀'라고 적다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좋다고 했던 그 노래, 그거 뭐였지? 나는 어떤 노래를 말하는지 몰라서 어? 무슨 노래? 라고 하자 소년 소녀가 들어가는 노래야, 제목에. 한다. 아 그래? 나는 나의 스맛폰을 꺼내어 음악파일들을 검색하다가 아, 변두리 소년소녀? 한다. 그러자 그가 맞다, 그거. 나 시험 끝나면 그거 들어보려고. 하더니 수첩에 그 노래의 제목을 적었다. 변두리 소년소녀. 나는 그런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그런데 왜 이남자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꿈에서 깼고, 꿈에서 깨고나서 그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마치 번개를 맞은것처럼 그 이름이 생각난 순간, 이내 가슴이 아파왔다. 심장을 이쑤시개로 찌르는 것 같은 아픔.
아, 그는 여기에 없지.
그랬다. 그는 아주 먼 곳에, 다른 나라에 있었다. 당신의 꿈을 꿨다고 문자를 보낼 수 없는 곳에 그는 가 있었다. 아 젠장. 그리워만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꿈에도 나오지 않으면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