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청춘이 ‘응답하라’ 시리즈에 열광하는 현상이 나에겐 씁쓸하다. 그들의 행복한 기억이 자신의 과거가 아니라 타인의 과거, 아니 엄밀히 말하면 미디어가 제공하는 과거로부터 공급되는 것 같아서다.
ㅡ<푸른색 이야기>

일상생활에서 악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산책을 하다 발아래 꽃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꽃을 피해 발을 내디디는 게 보통이다. 그때 걸음을 멈추고 ‘흠, 고민이군. 이 꽃을 밟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라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웃기는 사람이다. 별생각 없이도 선하게 살 수 있는 삶이 정상적인 것 아닌가?

일상생활에서 깊이 생각해야만 선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까? 있다. 아니 이 시대에는 너무 많다. 우리가 꽃을 밟느냐 마냐, 혹은 앞사람을 밀치냐 마냐를 깊이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는 순간은 산책할 때가 아니라 급히 달려가야 할 때다. 〈화차〉의 여주인공은 생계의 벼랑 끝에서 오로지 살기 위해 자신과 처지가 같은 이를 죽이고 그 사람 행세를 했다. 이때 그녀가 악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대단한 성찰 능력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그들이 나와 같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에서의 ‘깊이 생각함’이란, 느긋하게 산책을 할 때라면 한 송이 꽃을 보고도 쉽게 느낄 공통성의 기초를, 생존의 흐름에 내몰리고 휩쓸릴 때에도 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ㅡ<악을 생각하다>

열다섯이 지나서도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종교인, 예술가, 지식인이었다. 종교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강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답을 구하는 편이다.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좀 별나서 남을 괴롭히다못해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굳이 어렵게 답을 찾았는데, 이제 이들에게조차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소위 `쿨`하지 않은 것이 돼버렸다.
ㅡ<삶의 의미? 지금 삶의 의미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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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0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2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19-09-12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참 오랫동안 북풀에서 뵜네요~ ㅜㅜ 제가 라이크만 주로 해서 ㅎㅎ
추석 연휴 잘 보내시고 언제나 해박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날 되세요~

AgalmA 2019-09-12 18:39   좋아요 1 | URL
세월이 그새 꽤 되었죠^^; 밥벌이로도 모자란 시간 쪼개가며 읽기와 쓰기를 양질로 균형맞춰가며 진행하기 참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초딩님 독서와 일상의 평안을 저도 빌어 드립니다^^🙏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지적 전투력을 높이는 독학의 기술
야마구치 슈 지음, 김지영 옮김 / 앳워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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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소셜미디어가 이토록 생활 전반에 뿌리내릴지 몰랐다. 세상은 매일 급변하고 그리 달갑지 않게 수명도 늘어가니 기존의 지식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이 필요해지는데 나이를 핑계 댈 수도 없다. 미국 듀크 대학의 캐시 데이비슨은 "2011년도 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65퍼센트는 대학을 졸업할 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예전의 지식은 빠르게 낡아가고 노동력은 길어지며 기업의 전성기는 짧아진 혁신의 시대에서 이질적인 영역을 새롭게 연결할 수 있는 파이형 인재, 크로스오버 인재가 요구되고 있다. 베스트셀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쓴 야마구치 슈는 지적 전투력을 높이는 게 필수라고 강조하며 ‘어떻게 독학할 것인가’를 소개한다.

 

  

슈는 독학을 ‘전략, 인풋, 추상화와 구조화, 축적’ 네 가지 모듈로 이루어진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전략] 어떤 테마에 대해 지적 전투력을 높이고 싶은지 그 방향성을 결정

[인풋] 전략의 방향성에 근거해 책과 기타 정보 소스로부터 정보를 획득

[추상화 및 구조화] 인풋 한 지식을 추상화하고 다른 것과 조합해 자신의 관점 만들기

[축적] 획득한 지식과 추상화 및 구조화로 얻은 시사점과 통찰력으로 정리하고,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도록 정리

 

 

 

최근 읽었던 대니얼 J. 레비틴 『정리하는 뇌』와 접점이 있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배운 걸 생각하면서 통찰력을 키우고 적재적소에 써먹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사고 시스템을 만들라는 소리다. “애초에 옮겨 적기의 최대 목적은 ‘잊어버리기’ 위해서다. 잊어버리는 것으로 뇌의 작업 용량을 확보해 눈앞의 지적 생산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필요한 때가 되면 외부의 지적 축적에서 정보를 다운로드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밀한 검색 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과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혁신 그 자체를 체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어디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애매한 영역에 대한 직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이는 예정조화적인 도구나 지식의 조성과 대비되는 ‘브리콜라주’(손에 닿는 재료를 짜 맞추어 창조적으로 활용한다는 뜻으로 문화 상품이나 현상을 재구축하는 전술의 일종) 능력이다. “독서를 그 사람의 독특한 지적 전투력에 얼마나 연결시킬 수 있는지는 바로 이 감각을 느끼는 감도에 크게 좌우된다.” 동질성이 높은 의견이나 책만 접하면 지적 축적이 독선에 빠지거나 편협해지므로 마음 편한 인풋만 받아들이는 건 경계해야 한다.

 

 

독서는 크게 ‘단기적으로 일에 필요한 지식, 자신의 전문 영역 심화, 교양 넓히기, 오락’이라는 네 가지 목적이 있다. 써두기만 하고 다시 들춰보지 않는 독서 노트 채우기에 급급해선 안 된다. 필요할 때 되돌아가서 참조할 수 있는 방법(독서노트, 밑줄 긋기, 태그 정리)을 책의 종류의 따라 선별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가치가 없다. 타인과 다른 정보를 인풋 하는 것(차별화)이 독학 전략의 최대 포인트다. “평균적인 어른이 1분 동안 읽을 수 있는 글자 수는 대략 200~400단어이고, (전문서를 제외한) 평균 도서는 10~12만 자로 구성된다. 만일 독서 속도를 1분에 300단어로 가정한다면 보통 책은 한 권 읽는 데 대여섯 시간 정도가 든다.” 막무가내 비효율적 독서는 어리석다. ‘1년간 읽을 수 있는 최대치의 책 분량을 어디에 분배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슈는 장르보다는 ‘테마’에 따라 방향성을 추구하길 권한다. 테마와 장르가 크로스오버되면 더욱 좋다. 이건 나도 가지고 있는 습관인데, ‘시간’에 대해 알고 싶을 땐 그와 관련된 소스들,  ‘인간 심리’에 대해 파고들고 싶을 땐 장르 가리지 않고 주요 도서와 영화들을 찾아본다. 이런 것들을 고를 때도 내 본성과 흥미를 주축으로 하기 때문에 행위 자체가 즐겁고 다른 이와 차별된 시각이 나온다. 기록, 대화에서도 두루뭉술 하지 않고 육하원칙을 확실하게 아웃풋에 넣는 것도 지적 전투력을 높인다. “어떤 분야의 책을 한 시기에 몰아서 읽으면 한 권 한 권의 내용이 상호 연관되어 보다 단단히 머릿속에 정착”되므로 ‘관련 분야 묶어서 읽기’도 효율적인 독서법이다. 메타포(metaphor) 독서와 메토미니(metonymy:환유) 독서 두 종류로 나뉘는데, “메타포적 독서에는 독서의 대상이 되는 영역이 가로로 중첩된다. 예를 들어 리더십론을 읽고 처음으로 남극점에 성공한 아문센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다음으로 아문센의 남극 탐험기를 본다면, 메타포적 독서라 할 수 있다.” 메토미니적 독서는 책 사이에 종적 계층 구조를 형성해 전체의 형상을 떠올리기 쉽다. “베네치아에 관한 책을 읽고 베네치아에 흥미가 생긴다면, 다음에는 곤돌라나 베네치아가 수송 요청을 받은 제4차 십자군에 대해 조사해보는 식이다.” 이렇게 누적된 독서량이 어느 단계를 넘어 책과 책의 관계성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독서 속도에는 가속도가 붙고 정리 및 구조화에도 체계가 잡힌다. 그러므로 책과 책 사이의 관계를 메타포와 메토미니의 구조로 파악하는 습관을 들이자! 우리가 획득해야 하는 것은 인포메이션(단순한 정보)이 아니라 인텔리전스(정보로부터 시사와 통찰)이다. 빅 데이터가 인간의 지식을 압도하고 있지만, “사람이 독학의 미디어로서 효율적인 이유는 사람이 가진 고도의 필터링 능력과 문맥 이해력 때문이다.” 독학에서 독서, 영화, 인터넷, 광고 등 유효한 리소스가 많지만, 식견이 있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으로부터 가르침과 지식, 견문을 얻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학습 방법이라고도 슈는 권한다. TED, 북 토크 붐도 그런 현상의 연장이다.

 

 

질문은 모르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알고 나서야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배워서 알고 있는 영역의 경계선이 조금씩 넓어짐에 따라 미지의 전선도 넓어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질문의 수는 점점 늘어나게 된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출발점으로 하여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인풋을 하면,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효율과 정착률도 덩달아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축적도 충실해진다.”

 

 

이런 과정을 수반한 슈의 사고 프로세스는 이렇다.

 

[인풋]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서 메리 홉킨스가 나오는 장면

[추상화①] 영국은 양질의 판타지를 잇달아 내놓는 나라다

[추상화②] 판타지에 의해 리얼리티와 균형 관계가 성립된다

[추상화③] 뭔가 극단적인 것이 있는 경우, 그 배후에는 정반대의 극단적인 것이 있다

[구조화①] 예를 들어 중국에서 공자의 사상과 그 정반대인 한비자 사상의 양립

 

 

 

사소한 요소는 버리고 본질적인 메커니즘만 추출하는 추상화를 거쳐야 교양서에서 읽은 것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탄생한 걸작 중 다수는 행정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후원한 사례가 많다든가(미술사적 지식), 개미집에는 일정한 비율로 놀고 있는 개미가 없으면 긴급 사태에 대응할 수 없어서 전멸할 리스크가 높아진다든가(생물 및 생태학적인 지식), 폴리네시아와 멜라네시아에서는 부족 사이의 증여가 의무로 되어 있어서 부족 사이의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문화 인류학적 지식)는 지식은 그것만으로는 비즈니스 세계에 직접적인 통찰과 시사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추상화는 개별성을 낮추고 어느 장소, 어느 시대에도 성립되는 명제로 바꾸는 작업이다. “①얻은 지식은 무엇인가? ②그 지식의 무엇이 흥미로운가? ③그 지식을 다른 분야에 적용한다면, 어떤 시사와 통찰이 있는가? 이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개별적인 정보를 접함과 동시에 그것을 추상화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지적 축적은 통찰의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고, 눈앞의 상식을 상대화하기 쉬워 ‘의심해야 할 상식’을 가려내는 선구안을 부여해준다. 다른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유추의 활용을 높여 창조성도 높아진다. 컨베이어 벨트를 응용한 회전 초밥집을 생각해보라.

 

저자는 연간 대략 300권 전후의 책을 읽는데, ‘밑줄을 쳐서 골라내고 옮겨 적는 귀찮음’과 확인의 편리 때문에 그중 반 정도는 전자책으로 읽고 있다고 했다. 나도 읽은 책의 반이 전자책인데 활용도 비슷하다. 밑줄 많이 긋고 끄적끄적 메모로 만족하는 독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슈와 같은 자기주도적 활용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초독] 밑줄 긋기 : 읽으면서 ‘사실’, ‘시사’, ‘행동’의 세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자신의 깨달음도 적고, 고민이 된다면 계속해서 밑줄을 그어 더욱 더럽히면서 읽는다. 저자와 대화를 하는 지적 전투 단계.

[재독] 뽑아내기 : 밑줄을 중심으로 읽고 중요한 부분을 선별한다. 옮겨 적는 노력을 생각해 다섯 부분 이상, 아홉 부분 이내로 압축한다. 특히 중요하고 재미있다고 느낀 부분에는 메모를 붙인다.

[삼독] 옮겨 적기 : 메모를 붙인 부분을 읽고 나중에 참조할 것 같은 부분을 뽑아내서 옮겨 적는다. 검색할 수 있는 에버노트 등을 활용. 한 권당 10분 이내로 행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좋다. 추상화로 얻은 가설, 시사, 행동을 세트로 적는다.

 

 

 

참고로 나는 문학도 내 나름의 포인트로 밑줄 긋고 노트 정리해 두기도 했다. 소설 경우 배경, 묘사, 대화 등으로 뽑아서 분석하고, 시집 경우 시인이 구축한 시점, 소재, 주제를 체크해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습관은 작가나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특이한 단어나 용어를 발견하면 나만의 단어장에 사전 배열로 적어둔다.

 

 

인풋, 추상화 및 구조화를 거쳐 축적된 정보를 ‘언런unlearn’(지우기)하는 것이 마지막 단계다. 환경 변화가 매우 빨라졌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새로운 콘셉트나 프레임워크로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슈는 혁신, 커리어 지키기, 영역 아우르기, 혁신 무기로 교양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역사, 경제학, 철학, 경영학, 심리학, 음악, 뇌과학, 문학, 시, 종교, 자연과학에서 참고할 책들을 추천하고 있는데 국내 미출간 일본 도서가 많고, 내 기준에는 그리 흡족하지 않았다. 앎이란 결국 스스로 찾아가는 모험 아닌가. 이제 슈가 제시한 ‘전략, 인풋, 추상화와 구조화, 축적’ 시스템을 참고해 각자 독학의 달인이 되어 보자! 이미 잘 하고 계신 분께는 더욱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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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9-04 21:38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목에 ‘독하게....‘ 라고ㅎㅎ
언어라는 게 이해 과정이 있어야 하는 난관이 있어서 그렇지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습관으로 잡히면 생체 시스템이 알아서ㅎ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일까요ㅎ;;
저도 제 나름의 독학 방식 잡는데 십수년 걸렸는데, 야마구치 슈가 이렇게 한방에 정리해주니 체계없이 우왕좌왕 독서하며 방책을 찾는 분에겐 유용할 듯 싶습니다^^

cyrus 2019-09-05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 제가 하고 있는 독서 방식과 조금 비슷해요. 이 책만큼은 진짜 읽어보고 싶네요. ^^

AgalmA 2019-09-11 23:53   좋아요 0 | URL
저도 체감하는 독서방식이라 동감되는 부분이 많더군요^^ cyrus님도 그러실 거라 생각해요

서니데이 2019-09-11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님, 더운 여름 잘 지내셨나요.
내일부터 추석연휴가 시작이라서 명절 인사 왔습니다.
올해도 어머님 뵈러 귀성하시나요.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AgalmA 2019-09-11 23:5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내려갑니다.
서니데이님도 추석 잘 쇠시고 건강히 뵈어요^^/
 
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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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사랑에 대한 갈구보다 더 지독한 버릇이 있다. 바로 평가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도 끝난 후에도 오래 반추한다. 나, 타인, 사회, 세계 등 우리의 생각이 미치는 모든 것에 대해 가치 판단한다. 생존 본능이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감정에 좌우되고 잘못된 잣대로 판단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우리는 매일 이런 문제를 목도하고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조지 레이코프는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프레임에 갇혀 사고하는 것에서 비롯된 각종 사회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뿐인가. 사람은 올바른 길을 알면서도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시스템의 편의, 다수의 기준에 따라 좀 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도 있다. 이게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반발과 의심도 가진다. 인간은 단순한듯하면서도 복잡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흥얼흥얼.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는 평가 기준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살면서 배우고 취하게 된 것이다. 토드 로즈는 이 책을 통해 말한다. 많은 측정 방식과 평가 기준을 통해 말해지는 ㅡ평균적 신체지수, 평균적 지능, 평균적 성격, 평균적 학생, 평균적 직원 같은 ㅡ 일상화된 개념들은 잘못된 과학적 상상이 빚어낸 허상이다. 평균적 사람은 없는데 우리는 시스템을 통해 그것을 도모하며 자신을 망치고 있다. 문제의 기원으로 토드가 중요하게 지적하는 것은 1840년대 케틀레의 사회물리학적 착안에서 비롯된 평균적 인간 개념, 골턴의 계층 개념, 테일러주의에서 비롯된 평균주의 기업 모델이다.

 

벨기에의 천문 과학자였던 아돌프 케틀레는 스물세 살에 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수학 수재였다. 그는 뉴턴처럼 우주의 작동 법칙을 발견해내고 싶은 야심이 있었다. 그런 과업을 수행할 천문대 완공이 혁명으로 불투명해지자 그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사회적 행동 속에 숨겨진 패턴을 천문학에서 쓰던 평균적 측정값을 응용해 산출하고자 했다. ‘평균적 인간’을 제시하는 케틀레의 개념은 혼란스러운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는 듯했고 타인들을 정형화하고 싶은 인간의 충동에 정당성을 입증해주니 호응은 뜨거웠다. 지금도 이런 호응은 여전하다. ‘1만 시간의 법칙’, ‘마시멜로 실험’, ‘밀그램의 복종 실험’ 등 그런 실험과 통계들이 조금만 신빙성이 있다 싶으면 우리는 쉽게 끌린다. 케틀레 개념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

“전 분야의 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숨겨진 법칙을 밝혀냈다며 케틀레를 천재로 치켜세웠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케틀레의 개념을 간호에 적용시키며 평균적 인간이 “신의 섭리”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칼 마르크스는 케틀레의 개념을 취해 공산주의 경제 이론을 세우며 평균적 인간이 역사 결정론historical determinism을 성립시켜주는 증거라고 밝혔다.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James Maxwell은 케틀레의 수리에 착안해서 기체역학의 고전적 이론을 세웠다. 내과 의사 존 스노John Snow는 런던에서 콜레라와 싸우던 중 케틀레의 개념을 활용하면서 공중위생 분야의 서막을 열었다. 실험심리학의 아버지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는 케틀레의 글을 읽고 이렇게 단언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제외한 그 어떤 철학자들보다 통계적 평균이 심리학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p57~58)

 

 

19세기의 프랜시스 골턴은 은행업과 제조업으로 떼돈을 번 영국의 부유한 상인 계층이었다. 지금은 인류학자로 소개되는 이 인물은 수학과 의학까지 공부한 데다 찰스 다윈이 사촌이었으니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영국의 우월한 사회계층이 쇠퇴해가는 것을 재건하려는 야심을 가졌고 케틀레의 유형 개념을 응용해 인간이 “우월층”과 “저능층”으로 나뉜다고 평가했다. 독일 나치 때문에 유명해진 바로 그 우생학(eugenics)이다.

📎

“1900년대 초반에 이르자 인간은 능력별로 하위에서부터 상위까지 분류된다는 관념이 사실상 사회과학계와 행동과학계 전체에 침투하게 됐다.

평균의 시대, 다시 말해 1840년대 케틀레의 사회물리학적 착안에서 비롯돼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그런 문화적 시대를 특징짓자면 사회의 거의 모든 일원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2가지 가정을 꼽을 만하다. 바로 케틀레의 평균적 인간 개념과 골턴의 계층 개념이다. 케틀레가 그러했듯 우리 모두도 평균이 정상을 판단하는 믿을 만한 기준이라고 믿게 됐다. 특히 신체 건강, 정신 건강, 성격, 경제적 지위와 관련해서 유독 그런 믿음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성과라는 편협한 기준에 따른 개개인의 계층이 개개인의 재능을 판단하는 유용한 도구라는 믿음도 갖게 됐다. 이 2가지 개념이 현재 전 세계의 교육 시스템, 대다수의 채용 관행, 상당수 직원 업무 평가 시스템 이면에서 구성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케틀레가 개개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방식에 끼친 영향력은 아직도 우리의 시스템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우리의 사생활을 보다 확실하고도 밀접하게 틀어쥐고 있는 것은 바로 골턴의 유산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능한 한 평균을 훌쩍 뛰어넘으려는 압박감을 느낀다. 우리가 평균 이상이 되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평균 이상이 되려고 기를 쓰는 이유가 아주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평균의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정말 끔찍하게도!) 평균 이하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p63~64)

 

 

 

수학을 활용해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던 유럽의 두 과학자의 추상적인 ‘평균주의’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기업과 학교의 주류 원칙으로 올라서게 된 것은 미국의 기업가 프레더릭 윈슬러 테일러에 의해서였다. 1880년대 농업에서 산업 경제로 전환돼가는 시기를 살았던 그는 하버드 법대를 자퇴하고 산업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공장 생산 시대의 문제점들을 눈여겨보았고, 업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평균주의의 중심 지침, 개개인성의 등한시 개념을 받아들였다. “시스템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라는 테일러의 신념에 따른 ‘표준화 시스템’을 구축한 주역이다.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자동차 생산의 조립 라인을 대량 생산방식으로 바꾼 ‘포드 시스템’도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

“경영 컨설턴트, 기획 부서, 능률성 향상 전문가 모두가 분석의 수행에서 평균이라는 수리에 의존했다. 관리자들은 케틀레와 골턴의 과학을 정당성의 근거로 삼아 근로자 각자를 스프레드시트의 셀처럼, 일람표의 숫자처럼, 교체 가능한 평균적 인간처럼 다뤄도 된다고 여겼다. 관리자들로선 개개인성의 경시를 별 어려움 없이 선뜻 받아들였다. 개개인성을 경시하면 자신들의 직무가 그만큼 더 수월해지고 안정적이 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간 관련 결정에서 유형과 계층을 활용할 경우 항상 옳지는 못하더라도 평균적으로 옳은 편이 되며 표준화된 공정과 역할들로 수두룩한 거대한 조직으로선 그 정도로도 만족스러워할 만했다. 관리자들이 사원에 대해 오판을 내린다 해도 시스템에 잘 맞추지 못한 탓이라고 그 사원에게 허물을 씌우면 간단히 해결됐다.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러버 컴퍼니, 인터내셔널 하비스터 컴퍼니, 제너럴 모터스는 모두 과학적 관리법을 채택한 초창기 회사들이었다. 테일러주의는 이런 고무 제조업이나 수확기 제조업이나 자동차 제조업 외에도 벽돌쌓기 공사, 통조림 제조업, 식품 가공업, 염색업, 제본업, 출판업, 평판인쇄업, 철사 세공업에도 적용됐고, 이후엔 치과업, 은행업, 호텔용 가구 제조업에도 적용됐다. 프랑스에서는 르노가 테일러주의를 자동차 제조에 적용했는가 하면 미쉐린도 타이어 제조에 응용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국가 계획 시스템은 아예 드러내놓고 테일러주의를 모범으로 삼았다.

테일러주의는 대체로 미국의 자본주의와 동일시됐으나 국경과 이데올로기마저 넘어서는 호응을 얻었다. 소련에서 레닌이 과학적 관리법을 러시아의 공장들을 활성화하고 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구상하기 위한 핵심으로 선언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프레더릭 테일러는 소련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만큼이나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도 레닌과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열렬한 테일러주의 지지자 대열에 합류하며 전시 산업에 테일러주의를 도입했다.

한편 아시아의 여러 집단주의 문화에서 과학적 관리를 서구 문화권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게 적용시키면서 미쓰비시와 도시바 같은 기업들은 표준화와 사원-관리자 분리 원칙에 따라 철저히 탈바꿈했다.”(p80~81)

 

 

 

기준의 정당성을 입증해줄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의 기준은 매우 수상하다. “개개인의 측정치 배분을 그룹의 측정치 배분으로 대체해도 무방하다는 식의 별난 가정”을 우리도 인정해야 하는가. 과학이 반대 증거에 열린 자세인 ‘반증 가능성’(칼 포퍼)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전제해도, 등급화와 유형화 같은 평균주의 방식은 인간이 냉동 클론(복제 생물)이라는 가정을 취하고 있다. 토드는 이런 ‘에르고딕 이론’의 오류를 지적한 피터 몰레나의 ‘에르고딕 스위치’ 이론을 가져왔다. 에르고딕 이론은 물리학에서 기체 분자의 종합적 작동 방식을 활용해 개별 기체 분자의 평균적 작동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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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측에서는 2가지 조건이 충족해야 한다. 첫 번째, 그룹의 모든 구성원이 동일할 것. 두 번째, 그룹이 모든 구성원이 미래에도 여전히 동일할 것. 특정의 독자적 그룹이 이 2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그 그룹은 ‘에르고딕’으로 인정되면서, 그룹의 평균적 행동을 활용해 개개인에 대한 예측을 이끌어내도 무방하다고 간주된다.”(p100~101)

“케틀레는 이 에르고딕 스위치로 인해 평균적 인간의 존재를 믿게 됐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이 에르고딕 스위치를 통해 평균이 이상에 해당하고 개개인은 오류에 해당한다는 자신의 가정을 정당화하기까지 했다.

응용과학의 150년은 케틀레의 원초적 착각에 의해 이미 예견돼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그 어떤 여성의 몸과도 일치하지 않는 ‘노르마’, 그 어떤 사람의 뇌와도 일치하지 않는 뇌 모델, 그 누구의 생리에도 꼭 들어맞지 않는 표준화 치료 요법, 신용할 수 있는 개개인들에게 불리한 점수를 부과하는 금융 신용 정책, 전도유망한 학생들을 걸러내버리는 대입 프로그램, 비범한 재능을 과소평가하는 고용 정책 등이다.”(p103)

 

'노르마' 선발 대회에서 기준에 딱 맞는 여성이 없어서 근사치의 여성을 선발했다.

 

 

 

토드는 우리 대다수가 평균주의 과학에 길들여져 은연중에 개개인보다 시스템을 우선시하는 일차원적 사고를 통해 재능을 평가해 들쭉날쭉한 인간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런 사고에서 탈피하려는 기업들이야말로 지금 가장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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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주의 사고에서 탈피해 맥락과 관련된 상황 맥락별 기질을 의식하게 되면 개인적·직업적 삶에서 굉장한 이점이 생긴다. 개인적 차원에서 보자면 우리 자신이 빛을 발할 만한 상황을 보다 쉽게 깨닫게 돼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서로 협력해 일하는 팀의 일원으로서는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개별적으로 따로따로 일하는 경우에는 애를 먹는 편이라면 직무 시간의 90퍼센트를 집에서 독자적으로 일해야 하는 조건의 파격적 승진을 제안 받을 경우 승진에 따른 혜택과는 별개로 그 직무가 당신의 상황 맥락별 기질에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맥락의 원칙은 불리하거나 자멸적인 행동을 저지르게 될 만한 상황적 요소를 분간하게도 해준다.”(p177)

“테일러주의에서 비롯돼 100여 년에 걸쳐 뿌리내려온 평균주의 기업 모델이 그동안 우리를 설득시켜온 논리는, 시스템이 잘 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을 스프레드시트의 셀과 같이 쓰고 버릴 수 있는 평균적 직원처럼 여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완전히 틀린 것이다. 앞에서 자세히 이야기했다시피 딜로이트, 구글, 애들러 그룹, IGN은 비록 암묵적이라 해도 개개인성의 원칙을 채택해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 기업들은 일차원적 사고, 본질주의 사고, 규범적 사고라는 정신적 장벽을 버림으로써 직원들이 적극 동참하며 경쟁력 있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이런 기업들이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가 남긴 유산을 버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막대한 자원을 가졌거나 (IT 업종처럼) 비정통적인 기업 경영 방식에 남달리 열려 있는 업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개개인성의 원칙을 적용하는 일은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모든 업종의 모든 기업이 이용 가능한 선택이다.”(p215)

 

 

70년 전 테일러주의에서 벗어나 개개인성의 원칙으로 나아갈 때 개개인의 자유, 창의력, 책임의식을 포용하면서 자유로운 모험심을 희생시키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토드는 본다. 우선 교육부터 바꿔야 한다. 현존 고등교육 시스템은 1세기 전에 설계된 것이다. 표준화된 커리큘럼 수행력으로 학생들을 등급 매기고 분류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별 학습과 진도를 평가하는 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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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이 학생들의 개개인성을 완전히 무시하도록 짜여 있어요. 온통 평균과 선별 타령을 하면서 10대들이 입학 사정관의 눈에 들기 위한 허울이나 쫓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승화하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이게 교육 시스템이라는 것이 할 짓입니까? 모든 학생을 평균에 비교하는 일방적 시스템이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일까요? 아이들은 합격을 의식해 논술을 꾸며 쓰려 하고 별 신념도 없이 기계적으로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합니다. 해외에서 실시되는 SAT에서 부정행위까지 저지릅니다. 제가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뭔지 아세요? 이 대학이나 저 대학에 입학하려면 사회봉사 활동을 몇 시간이나 해야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해주죠. 성공한 인생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학생 자신의 독자적인 개개인성을 이해하고 발현시키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너무도 많은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학생의 개개인성을 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데 급급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다른 모든 학생들이 스스로를 부각시키려 기를 쓰는 방면에서 자신을 부각시키려 기를 쓰면서 비롯되는 문제입니다.”(p243)

ㅡ 휴스턴 대학 입학 상담사, 쥬디 무어

“대학 입학은 대체로 평균의 게임입니다. 사람들은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으며 그 평균의 게임을 펼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아지기 위해 자신의 독자성을 버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모두가 되려고 기를 쓰는 목표상에서 조금 더 뛰어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요. 하지만 평균을 놓고 겨루면 평균적으로 성공하기가 힘듭니다.”(p244)

ㅡ 하버드 대학교 입학 및 학자금 지원 책임자, 빌 피츠시몬스 

 

 

 

토드는 ‘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성적을 실력으로 대체하기,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다양한 결정권 허용’을 제시한다. 개개인의 수행 능력 안배 없이 애초에 재능 있는 학생들과 재능 없는 학생들로 구분해놓고 표준화된 시스템을 따르라는 것은 많은 실패를 발생하게 하는 구조를 만든다. 모두에게 ‘평등한 접근권’을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토드가 제시하는 개개인의 능동적 교육 구조라면 평생 학습의 습관이 길러질 것이다.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사는 구세대 운운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요즘 유튜브나 각종 도전으로 주목받은 노인들을 생각해보라.

요즘은 그 의미가 다소 퇴색된 ‘아메리칸 드림’이란 신조어는 1931년 제임스 트러슬러 애덤스가 대공황 시절 테일러주의 세계관의 확산에 우려하며 반대 의견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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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드림'

“이것은 자동차와 높은 임금을 향한 꿈이 아니라 사회질서를 향한 꿈이다. 남녀 모두 누구나 다 타고난 재능을 한껏 펼칠 수 있고 타인들로부터 출생이나 지위라는 우연에 따른 배경과 무관한 본연의 모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질서를 동경하는 꿈이다.”(p271)

ㅡ 제임스 트러슬러 애덤스

 

 

 

 

평균을 말하지만 사실상 우리는 남보다 좀 낫기를 바라며 그 카테고리의 우월성을 느끼고 싶어한다. 내 위와 내 아래를 가늠해보는 중간지대는 허상이다. 스스로를 흙수저라 말하는 기괴한 자괴감에 휩싸이는 사람들, 내로남불 핑퐁게임을 하는 한국. 개인별 맞춤 학습도 한국에서는 과외를 얼마나 할 수 있는가 경쟁력 여부가 되고 있다. 능력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선, 성공을 부의 축적이나 타인을 이기는 능력으로 보는 사고방식 그런 것들이 참을 수없이 답답하다. 늘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토드가 평균주의의 나쁜 예만 제시한 거 같아 평균주의로 얻을 수 있었던 좋은 점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찾아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토드의 이 이론들이 ㅡ불확실하기에 오히려 다양성과 가능성을 품고 있는ㅡ 이 세계에서 블랙스완 개념으로 제시된 것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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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8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8-28 18:37   좋아요 0 | URL
네^^ 평생 기성복만 입을 운명이죠^^;
저희 동네에도 오래된 양복점이 있는데 안 사라지고 있는 게 신기해요. 양장점보다 오래 남는 양복점의 특수성도 좀 신기하고요ㅎ;
가게에 갇혀 일하셨던게 답답하셨던 걸까요. 돌아다니는 택시 운전을 하시게 된 게 재밌습니다.

먹는 거 입는 거 큰 신경 안 쓰고 대충 떼우고 입고 다녔던 사람이라 이런 분야 장인들에게 죄송스럽네여^^;

카알벨루치 2019-08-28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다가 도서관에 다시 반납했는데....아 ㅋㅋ

AgalmA 2019-08-28 19:33   좋아요 1 | URL
다른 책에 치여서? 반골 기질 저자 논리가 맘에 안 들어서? 두껍지 않아 금방 읽는 책인데 왜 그러셨는지 궁금하네요^^ 더 폭넓은 관점이 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교육제도 개선에 대한 저자의 의견엔 저도 동의해서 결론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8-28 19:57   좋아요 1 | URL
다른 책에 치였다는 말이 맞겠죠 책을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체하다가 결국 반납했더랬죠 ㅎㅎ

겨울호랑이 2019-08-28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순한 것이 좋다고 하지만, 이제는 저자의 말처럼 단순한 수치의 함정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평균값을 대신한 중앙값, 표준편차 등을 통해 평균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인식의 변화를 희망해봅니다.^^:)

AgalmA 2019-09-04 17:31   좋아요 1 | URL
정답, 해결을 바라는 인간 심리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현상일텐데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도 그렇고, 과학계도 그렇고 요즘의 경향은 불확실성의 변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8-28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개 긴 글 남기신 걸 보니 분명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

AgalmA 2019-09-04 20:58   좋아요 1 | URL
예리한 판단력의 북다이제스터님이 읽으시면 한계와 아쉬움 많이 찾아내실 거 같은데요.
저자가 19세기에 집중해 원인을 찾고 있지만 평균주의는 인간의 사유 시작부터 이미 존재하는 거였잖습니까. 황금비율, 평균율, 비례 등등을 찾는 것부터 말이죠. 저자는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부분만 말한 어찌보면 안전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싶은데요. 시대를 이 잡듯이 잡아 복잡하게 제시하는 거보다 이렇게 명쾌한 것도 대중서로서의 장점이자 나름의 방도라면 방도겠지요^^;
 


낭만적 거짓의 이면 - 『인간 본성의 법칙』 & 《립반윙클의 신부》

 

"이런 지식은 다소 유행이 지났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수준이 높고, 기술적으로 발전했고, 진보적이며, 계몽된 상태니까 말이다. 원시적 뿌리를 벗어난 지 한참이고, 심지어 인간 본성을 다시 쓰는 중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가 지금처럼 인간 본성의 노예가 되었던 적도 없다. 인간 본성의 잠재적 파괴력이 지금보다 더 컸던 때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사실을 무시하며 위험한 불장난에 빠져 있다.

소셜 미디어만 봐도 그렇다. 감정이 서로에게 전염될 일은 오히려 늘었다. 소셜 미디어상에서는 바이럴 효과(viral effect, 소문 등이 바이러스처럼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 - 옮긴이)를 따라 새로운 이슈가 끊임없이 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조작에 능한 지도자들이 우리를 이용해먹고 뜻대로 휘두르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가상 세계에서는 공격성을 대놓고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뒷일을 생각지 않고 우리의 어두운 이면을 펼쳐놓기가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과 순식간에 소통하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남들과 나를 비교하고, 시기심을 느끼고, 주목을 받아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성향 역시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마지막으로 우리 부족 본능을 보면 이제는 그 성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완벽한 도구가 생긴 셈이다. 나와 동일시할 집단을 찾아내고, 서로의 메아리만 주고받는 공간에서 내 부족의 의견만 계속 증폭시키고, 누가 되었든 외부인은 철저하게 악마로 몰아서 떼로 몰려가 겁을 준다. 인간 본성의 원시적 측면 때문에 아수라장이 벌어질 가능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어느 개인이나 기관, 기술적 발명보다 인간 본성이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결국에 가면 인간 본성과 그 원시적 뿌리를 반영하게 되어 있다. 인간의 본성은 장기판 위의 말처럼 우리를 가지고 논다. 인간 본성의 법칙을 무시한다면 그 사람의 손해일 뿐이다. 인간 본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패턴 속에 빠져 계속해서 혼란과 무력감을 느끼겠다고 작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ㅡ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나나미가 살아남았다고 해도 이와지 슌지 《립반윙클의 신부》 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나나미는 내내 타인에게 휘둘렸다. sns로 인터넷 쇼핑을 하듯 남자친구를 고르고 적당한 결혼 상대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거짓의 문고리에 손을 댄 순간부터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녀의 성격 문제도 크다. 학생들이 자신을 놀리는 걸 파악하지도 막지도 능청스레 넘기지도 못했다. 그녀의 소극성 때문에 교사 직업에서 결국 퇴출당한다. 그리고 결혼으로 도피한다. 자신이 정의롭다 생각하는 자들은 나나미 같은 사람에게도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고 말하겠지.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극 속의 나나미는 스스로를 지킬 정도로 이성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르치는 함수가 사회에서 어떤 쓰임이 되는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녀가 필요하다는 과외 학생에게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는 데 안도할 정도의 미약한 자존감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립반윙클도 죽음을 코 앞에 두고도 타인의 성욕을 채워주는 AV 배우 역할로 자존감을 채웠다. 행복에 돈을 지불하는 게 더 편하다고 말했던 립반윙클은 자신의 충동과 비이성에 휘둘린 채 삶을 마감했다. 세상에 행복이 가득하다는 말을 바꿔, 없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행복은 없다. 세상은 우리 심리의 반영인 셈이다. 나나미와 립반윙클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세울 생각도 용기도 없이 타인의 틀에서 적당히 살아왔다. 아무로는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았고 그들은 손쉽게 그의 먹잇감이 된다. 그는 나나미에게 은근히 경고도 했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당신은 1시간 만에 빠져들걸요. 자신감 같은 게 아니라 당신이 저한테 빠진다면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빠져드는 거니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거나 마음이 안 채워진다거나 그런 느낌을 조심해야 합니다."

 

집안에서 낯선 귀걸이를 발견한 나나미는 자신의 의심을 더 신뢰했다(확신 & 확증 편향). 나나미는 남편에게 사실 확인을 하기보다 어떤 사람인지 더 모를 아무로를 더 신뢰해 남편의 외도 조사를 의뢰했다(겉모습 편향). 그는 나나미를 유혹할 수도 있었고 죽일 수도 있었다(실제로 죽이려고도 했고). 적당하게 이용했고 그에게 그녀는 아직 이용 가치가 있다. 나나미에게 급여를 정확히 전해주고 그녀의 새 집에 가구를 선물한 걸로 그가 한편으로는 착한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면 우린 스스로의 순진함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나나미는 아무로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어떤 진실도 몰랐다. 립반윙클과 나눈 투명 결혼반지를 생각하며 자신의 손가락을 쓰다듬는 나나미의 모습은 불안스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나나미는 아무로의 제안에 어디론가 또 보내질 수 있다. 많은 관객이 립반윙클의 생의 마지막 친구가 되어준 나나미의 순수와 낭만성에 취했을 테지만 이와이 슌지는 잘 속는 나나미의 답답할 정도의 수동성, 나약함, 무능력을 끝끝내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녀는 실수와 교훈에 대해 성찰하지 않았다. 아무로가 알려주는 정보만 믿고 남편과 남편의 집안 탓만 하며 자기 연민만 했다. 이혼 후에도 타인이 원하는 역할을 반복하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헤매며 그저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 그녀 결혼식에 온 가짜 하객들에 끼어 그녀도 가짜 하객 행세를 했듯 제목처럼 그녀는 죽은 자의 신부로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이 영화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우리에겐 디폴트 값이 많은데 죽음과 비이성도 그에 해당한다. 순수는?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듯이 순수와 그 대립쌍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그게 적절히 발휘되고 있는 걸까. 니체가 지적한 우월한 입장에서 가지는 '연민과 동정'처럼 우리는 '순수'도 그렇게 치장하고 있진 않은지 고찰해 볼 일이다. 살아남고 싶다면.

 

 

"우리는 교훈을 배워 같은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저지른 잘못을 그다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의 자기 성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럴 때 자연스러운 반응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 혹은 순간적 오판을 탓하는 것이다. 탓하기 편향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저지른 실수를 들여다보는 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수를 저지르면 내가 느끼는 이 우월감이 정당한가라는 의심이 생기고, 자존심에 금이 간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한 일을 반추하는 척 시늉만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쾌락 원칙이 다시 부상하고 실수 중에서 내 탓이라고 생각했던 작은 부분마저 잊어버린다. 그러면 또다시 욕망과 감정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수박 겉핥기식 반성 과정을 거쳐, 잊어버리고, 죽는 날까지 같은 패턴을 반복할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면 세상에 실수는 거의 없을 테고, 누구나 승승장구할 것이다."

ㅡ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자신과 문학 중에 택한 샐린저 - 《호밀밭의 반항아》 & 『호밀밭의 파수꾼』


J. D. Salinger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 유명세 때문에 내게 더 별점을 깎인다. 이 정도가 영미문학의 대표작? 사람들이 호들갑 떨며 순위권에 넣는 책은 내게 우선순위가 아니다. 하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아야겠기에 읽기도 한다. 때론 수긍되고 때론 그냥 그렇다. 이 소설의 인기는 사춘기라는 공감대, 전후 비트 세대를 알리는 선두, 잭 케루악, 찰스 부코스키, 커트 보니것 등의 소설이 그랬듯 주인공의 삐딱함과 거침없음 그런 다양한 것들이 인기에 일조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나왔을 때 유명세는 완성된다.

번역 문제보다 문장 자체가 정말 내 취향 아니다. 사춘기 소년의 심리를 재현했다고 해도 읽는 내내 쳐내야 할 문장들이 계속 보여서 정말 데뷔작 답군, 나는 툴툴대며 읽고 있다.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2017)를 보며 샐린저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 작가 사생활에 관심을 안 두는 내 습관이 작품 파악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뭐 살다 보니 이래저래 알게 된다.

 

작가가 되고 싶으나 잘 안 풀리던 샐린저는 홀든 콜필드처럼 여러 학교를 쫓겨나다 컬럼비아 대로 가서 글쓰기 공부를 본격적으로 한다. 문학잡지 편집자이기도 한 위트 버넷 교수는 그에게 창작의 포인트를 잡아주며 격려와 채찍을 아끼지 않는다. 작가 목소리가 앞에 나오기보다 스토리에 녹아들게 하라는 조언은 백 번 지당하셨지. 버넷 교수는 샐린저에게 묻는다. 아무 대가 없이 혹은 모든 걸 버리더라도 평생 글쓰기에 매달릴 자신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넌 작가가 될 운명은 아니라고. 그때 샐린저는 도망쳤었다. 작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던 버넷은 샐린저의 글 속 목소리를 칭찬하며 '홀든 콜필드' 캐릭터로 장편 쓰기를 권한다.

버넷이 칭찬한 샐린저의 글 속 목소리는 '분노' 였을 것이다.

 

"오랫동안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는 예술작품들을 한번 보라. 그 이면에 절제된 분노를 느끼거나 읽어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모두가 너무나 조심스럽고 옳은 말만 하기 때문에 영화나 책이나 혹은 어딘가에서 주도면밀하게 방향을 잡은 분노가 느껴지면 신선한 한 줄기 바람을 쐰 것 같다. 우리의 모든 좌절과 원망을 끌어 모아 펼쳐놓은 것 같다. 우리는 그게 진실이고 진정성이 있음을 알아본다."

ㅡ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단편 몇 편으로 작가계에 들어선 샐린저는 유명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 유나 오닐과 사귀는 기회도 잡게 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샐린저가 참전한 사이 허영심 많은 유나 오닐은 늙은 찰리 채플린과 결혼한다. 18세 여성과의 결혼이라니 잘 알려진 찰리 채플린의 성적 취향을 여기서 또 확인. 샐린저의 이후 삶을 보면 유나 오닐이 그와 결혼을 안 한 건 그녀에겐 다행이었다. 샐린저는 여러 차례 결혼하고 이혼하게 되는데 그게 다 그의 글쓰기 종신 결혼 때문.

 

전쟁 중에도 샐린저는 내내 홀든 콜필드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펜이 없는 상황에서도 머릿속으로. 전쟁이 끝났어도 샐린저는 외상 후 장애가 심해 방황하게 되고 명상을 접하면서 글쓰기가 풀리기 시작한다. 단편소설로 인지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샐린저가 어렵사리 쓴 첫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출판사마다 출판하길 꺼린다. 독특한 캐릭터인 홀든 콜필드에게 공감이 잘 안된다는 게 큰 이유였다. 얘, 혹시 미친 건가요? 소리를 들으며;; 샐린저는 홀든 콜필드가 전쟁에서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다고 말하며 어떤 수정도, 타협도 거부한다. 책이 출판되자마자 대중의 폭발적 인기를 얻은 샐린저는 광적인 팬과 유명세에서 멀어지고자 은둔자의 삶을 선택한다. 출판에 목매는 상업 작가가 아니라 글쓰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창작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즈음 약물, 알코올 중독과 기행으로 자살이나 요절한 작가가 많았는데, 뉴에이지, 명상 문화를 받아들인 샐린저는 구도와 글쓰기의 조합으로 건실히 살아남았다고 해야 할까. 모르긴 몰라도 『호밀밭의 파수꾼』만 읽은 사람이라면 샐린저가 요절했을 거라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63년 이후부터 91세로 사망하기까지 어떤 책도 출판하지 않았다.

 


샐린저의 은둔적 삶 때문에 더 세간의 관심을 받았겠지만, 이런 삶을 살게 된 사람의 첫 장편이 『호밀밭의 파수꾼』인 건 참 의외다. 전쟁을 겪은 뒤에 30대에 쓴 소설이 이렇다는 것도.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두고 학교를 쫓겨난 사춘기 소년의 도시 방황.

이후 작품을 더 읽어봐야 할까. 이 책의 어떤 점이 어떤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추측하고 발견하는 재미가 있긴 했지만 샐린저는 내게 매력을 주는 작가가 아니란 걸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시 읽으며 알게 됐는데-_-)...






 





● 진실과 기만 사이에서 - 《체르노빌》

《체르노빌》은 NBO에서 제작한 역사 드라마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경위와 수습 과정을 에피소드 5편에 촘촘히 담았다.

"우리의 기밀과 거짓말이 그 원인이에요. 사실상 그 두 가지가 우리를 정의하죠. 진실이 맘에 안 들면 우린 거짓말을 하고 또 합니다. 그러다 진실이 존재한단 사실조차 잊어버리죠.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있습니다. 우리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실에 대한 빚이 쌓입니다. 머잖아 그 빚을 청산해야 하죠. RBMK 노심이 폭발한 게 그 대가였습니다."


ㅡ 핵물리학자이자 진상조사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발레리 레가소프의 대사, <에피소드 5>

결함을 은폐한 채 가동한 RBMK 원자로의 작동 과정과 폭발 원인에 대해 저 문장이 모든 걸 함축한다. 드라마처럼 그가 재판에서 저 말을 한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저 문장은 매우 진실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알면서도 거짓을 일삼는 인간들이 만든 인재였다. 그리고 그 모든 잘못을 대신 겪고 바로잡으려 했던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이 드라마에서는 돋보인다. 피폭 상태였던 발레리 레가소프는 진실 규명과 사고 수습을 위해 노력하다 사건 발생 2년 뒤 자살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부소장이자 수석 엔지니어였던 아나톨리 다틀료프는 사고 발생의 가장 큰 책임이 있었는데 재판에서 겨우 10년 형을 받았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와 이후 대처를 보면 인간에겐 치러야 할 대가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 대가는 모두가 치러야 할 문제다.

 








프리피야트 생존자 증언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많이 참고되었다고 한다.





● 사진으로만 가능한 것 -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선택받은 사람, 뛰어난 사람은 자신을 초월한, 자기보다 우월한 어떤 기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 내적 필요를 느낀다. 그리고 그 기준의 도움을 만끽한다… 보통 사람과 뛰어난 사람을 구별할 때 우리는 전자가 자신을 닦달하고 후자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지금 상태와 자기 자신에 크게 만족한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뛰어난 사람은… 사실상 노예 상태로 산다. 무언가 초월적인 것에 인생을 바치지 않는 이상, 삶이 무미건조해진다. 그래서 그는 인생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탄압이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어쩌다 그런 필요성이 사라질 경우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스스로를 강제할 수 있는 더 어렵고 시급한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원칙을 따르는 삶, 고귀한 삶이다."(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ㅡ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한 사람이 평생 다 전하지 못할 이야기를 사진에 담은 비비안 마이어. 그래서 그녀에겐 인화하지 못한 필름이 그렇게나 많았는지도 모른다. 미처 따라잡기도 전에 또 다른 이미지와 이야기들이 들이닥친다. 창작을 해본 사람은 이 진퇴양난의 상황을 잘 알 것이다. 그 예술 행위에 알맹이가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자기 시선과 색깔을 담는 자에게 우리는 예술가라는 호칭을 붙인다. 그러나 마이어는 평생 자신의 작업을 숨겼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 작업을 그저 취미생활이라 했다. 요즘의 '예술', '예술가'의 의미는 참 남루해졌다. 대중의 눈에 띄어 유명해지길 바라고 명예와 부까지 얻는 '직업' 같이 여겨질 때가 많다. '예술'이 '구도'와 비슷했다는 건 잊히고 있다. 타인의 인정을 거부하는 것은 이중의 고통이다. 자신의 작업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파악할 척도가 오직 자신뿐이라면 내가 흔들릴 때 그것들은 다 무가 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진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을 의심하지 않았다. 작업에 관해서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고집스러움.

사진에는 그 고집이 시선에서 느껴진다. 상처, 비밀, 위험, 경멸, 모욕 등 피사체가 드러내는 부정적 감정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셔터를 누른 순간이 사진에 각인되어 있다. 사진은 여러 상황을 감당하면서 순식간에 잡아내야 해서 고도의 소양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감수 없이 편안히 찍은 자신의 사진을 예술적이라고 흡족해하는 이들은 예술가가 아니다. 마이어의 사진에는 열정적인 탐구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많이 알려진 사진보다 사진집에는 더 좋은 사진이 많았다. 비비안 마이어 다큐를 봤을 때와 다른 생각의 시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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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5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8-25 21:42   좋아요 1 | URL
샐린저도 처음엔 출판 한 번 해보겠다고 그렇게 기를 썼지만ㅎ; 정작 작가가 되니 이게 아니라는 갈등에 휩싸이죠. 부나 명예, 외부와의 타협없이 자기만의 길을 가는 것. 작가든 예술가든 그게 제일 난관인 거 같아요. 요즘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라는 요구도 많잖아요. 먹고 살려니 원고 청탁, 마감에 휘둘리기 일쑤고. 예술도 돈 있는 자가 할 수 있단 소리까지 나오고.
《호밀밭의 반항아》 에서도 아무 대가 없이 혹은 모든 걸 버리더라도 작가가 될 수 있겠는가란 질문에 샐린저는 처음에 도망쳤었죠^^;

겨울호랑이 2019-08-25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취미로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직업으로 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낼 수 있으니, 좋을 것도 같지만 동시에 직업이 되면 무슨 일이든 부담이 생기는 것 같아요... 가장 좋은 것은 생계걱정없이 마음껏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와 비슷한 문제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하는지 아니면 연애를 해야하는 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정답은... 상상하시는 그것이 될 듯 합니다.ㅋ

AgalmA 2019-08-25 23:07   좋아요 1 | URL
또 다른 딜레마가 있지요.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먹고사니즘 일을 하는데 정작 일 하느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매진을 못 하는 아이러니ㅎ;; 그래서 직장 때려치고 자기 꿈을 찾자는 자기계발서 넘쳐 나잖아요ㅎ; 생계 걱정없이 자기 꿈을 실현해줄 일을 찾자니 일확천금을 노리게 되고 <부의 추월차선> 같은 책들이 거듭 하는 소리죠.

제 경험상 사람은 죽고 못사는 꿈 없어도 살긴 살아진다는 건데, 그게 없음 사는 의미를 못 느끼겠다니 사람의 인생이란 참 복잡하지요-,-);;
사랑인든 일이든 자신, 재능, 라이프 스타일과 맞는 걸 찾아야지 꿈은 이뤄진다!로만 덤벼든다면 삶이 공허해질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타인의 욕망을 투사하는 것도 있으니깐요. 그런 의미에서 ‘롤모델‘ 같은 것도 그리 자랑스럽게 말할 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러다 삶의 페이스를 잃어버리는 경우 많이 보잖습니까.

겨울호랑이 2019-08-25 22:36   좋아요 1 | URL
아직 인생에 대해 뭐라 말하기는 부족함이 많습니다만, 자신의 계획과 꿈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라 생각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아야하겠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을 보며 힘들어하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해봅니다.그러다 보면 또 누가 알겠습니까, 잘 될지 ㅋ ^^:)
 
정리하는 뇌 - 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 과부하로 뒤엉킨 머릿속과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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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다면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 두 마리뿐인가. 다섯 마리, 열 마리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건강, 학업, 경력, 인간관계, 취미생활, 경제력, 성공, 안정된 노후 등등. 대체로 돈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자본주의가 이토록 심화된 것이겠고 최상의 방법을 찾겠다고 난리다. 우리에겐 이미 훌륭한 시스템이 있다. 바로 뇌다.

“대략 5,000년 전 문자를 고안해낸 인류는 뇌의 기억 시스템 중 일부인 해마의 용량을 늘리기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러한 능력은 “자신의 생활을 정리함으로써 따분하고 일상적인 일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고, 영감이 넘치고 위안을 주고 보람찬 일에 투자하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창의력과 효율을 극대화” 했다. 생활 영역이 넓어지고 정보가 과부하 되면서 우리 뇌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최근 신경과학의 발견에 따르면 “우리 뇌에서 판단을 담당하는 신경 네트워크는 어느 판단이 더 우선적인지 따지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하루에 특정 개수만큼의 판단만 내릴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그 한계에 도달하면 중요도에 상관없이 더 이상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생각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이 우리가 때로 중요한 판단을 놓치는 이유 중 하나다.

 

"신경과학자들은 정신 작용이 늘 특정 뇌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며, 서로 연관된 뉴런 집단의 회로와 네트워크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누군가가 “냉장고를 작동하게 만들어주는 전기는 어디에 저장돼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디를 가리키겠는가? 콘센트? 가전제품의 코드를 콘센트에 꼽지 않는 한 사실상 콘센트에는 전류의 흐름이 없다. 코드를 콘센트에 꼽으면 전기의 위치는 의미 없어진다. 전기는 모든 가전제품의 회로에, 어찌 보면 집 안 전체에 존재하게 된다. 사실 전기가 존재하는 어느 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기는 분산된 네트워크다.

 

인지신경과학자들도 정신적 기능이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을 점차 인정하고 있다. 언어 능력은 뇌의 한 특정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 안에 존재하는 전선처럼 분산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뇌 이곳저곳의 영역들에 의지하고, 또 그 영역들을 끌어들인다. 초기 연구자들이 언어 기능이 어느 한 부위에 국한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뇌의 특정 영역이 파괴되면 어김없이 언어 기능의 상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집에 있는 전기회로를 생각해보자. 고칠 것이 있어서 사람을 불렀는데 그 사람이 실수로 전선을 잘라버린다면 집 안 전체의 전기가 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기가 전선이 잘린 바로 그 부위에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은 그저 전기를 전송하는 데 필요한 선이 파괴됐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사실 전선을 자르면 집 안 전체의 전기가 나갈 곳은 전원인 차단기를 비롯해서 거의 무한할 정도로 많다. 하지만 당신이 먹통이 된 믹서와 함께 서 있는 부엌에서 보면 어디를 자르든 그 효과는 똑같다. 전기를 고치러 나선 뒤에야 무언가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신경과학자들도 뇌를 이런 식으로 바라본다. 뇌는 복잡하게 겹쳐 있는 네트워크의 집합이다.

 

몽상 모드는 중앙관리자 모드와 정반대로 작용한다. 어느 한 모드가 작동 중이면, 다른 모드는 작동하지 않는다. 중앙관리자 네트워크가 하는 일은 한 가지 과제를 수행할 때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게 막는 것이다. 중앙관리자 모드는 다른 것이 우리의 의식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제한해서 우리가 방해받지 않고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몽상 모드에 있든 중앙관리자 모드에 있든 간에 주의 필터는 무의식 속에서 조용히 한 발 비켜서서 거의 항상 작동하고 있다.

 

우리 선조에게 과제에 집중한다는 것은 대형 포유류를 사냥한다든가, 포식자를 피해 도망간다든가, 포식자와 싸우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활동을 하다가 잠깐이라도 부주의해지면 엄청난 재앙을 겪을 수도 있었다. 오늘날에는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사람이나 컴퓨터와 상호작용하거나, 차를 운전하거나, 길을 찾거나, 머릿속으로 문제를 풀거나, 그림이나 음악 같은 예술 활동을 할 때 중앙관리자 모드를 가동한다. 이런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잠깐 부주의해지더라도 삶과 죽음이 갈리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달성하려 노력할 때는 이런 부주의가 그 성과를 방해할 수 있다.

 

몽상 모드에서 우리의 생각은 대부분 내면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목표, 욕망, 느낌, 계획,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등으로 향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때도 몽상 모드가 활성화된다. 중앙관리자 모드에서는 생각이 내부와 외부로 동시에 향한다. 과제에 집중하는 능력에는 분명한 진화적 이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비가역적인 과도한 집중 상태로 들어가서 포식자나 적이 덤불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여기가 바로 주의 네트워크attentional network가 무대에 등장하는 시점이다. 주의 필터는 혹시나 중요할지도 모를 것을 찾아 환경을 끊임없이 감시한다.

 

몽상 모드, 중앙관리자 모드, 주의 필터와 아울러 주의 시스템에는 네 번째 요소가 존재한다. 이 요소는 몽상 모드와 중앙관리자 모드 사이를 스위치를 켜고 끄듯 전환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스위치는 한 가지 과제에서 다른 과제로 옮겨갈 수 있게 해준다. 예컨대, 파티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부엌의 가스레인지 불에 대한 다른 대화로 관심이 갑자기 옮겨가게 하는 것, 이마에 달라붙은 모기에게 주의를 돌렸다가 점심식사 후의 몽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이 신경 스위치다."

 

 

뇌의 ‘주의 시스템’과 ‘기억 시스템’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이해하면 우리가 깜빡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잃어버리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의 종류를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의 작동방식에 대해, 그리고 일이 틀어지는 이유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한 전략(만족하기)”을 기본 생활전략으로 쓰고 있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나 투자 전략에 그저 이만하면 됐다 싶을 정도로 하지 않는다. ‘변화’와 ‘주의도’를 따지는 ‘주의 필터’는 지나가는 풍경을 깊게 인식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급하게 메모를 해야 될 상황이 되면 우리의 뇌는 볼펜, 연필, 크레용, 립스틱까지 하나의 범주로 즉각 인지하게 만든다. 이렇듯 우리의 뇌는 ‘풍부한 기억’과 ‘연상 접근’의 작동방식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활용이 관건이다. “우리가 일을 깜빡하거나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리’의 부담을 뇌가 아닌 외부 세계로 넘기는 것이다. 정리 과정의 일부 또는 전부를 뇌에서 물질세계로 떠넘길 수 있다면 그만큼 실수를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지금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언어에서부터 메모, 컴퓨터, 휴대폰 등의 각종 전자기기의 활용은 이런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최소의 인지적 노력으로 최대의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다.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정된 장소의 원칙’만 제대로 수행해도 훨씬 편리해진다. “지금 막 꺼낸 것을 어디에 다시 꽂아두어야 하는지 기억하고 싶다면 방금 꺼낸 것 바로 왼쪽에 있는 것을 2cm 정도만 앞으로 빼어두자. 물건을 다시 되돌려놓도록 해주는 간단하고 훌륭한 행동유도장치가 될 수 있다.” 작업 기억과 주의력이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4의 시스템’, “상황 대처 능력이 가장 좋은 시기이기 때문에 가장 불쾌한 일들은 아침에 처리” 등 이 책은 정신적 부담을 덜어줄 습관 만들기를 여럿 제안한다.

우리의 심리는 외따로 있지 않다. 그때 그때 상황 판단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우리의 뇌와 심리가 작동되는 메커니즘 이해가 필요하다.

1)

“대부분의 연인이 각자 상대방은 잘 모르는 자기만의 전문 영역을 가지고 있고, 그 사실을 둘 다 잘 안다.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전문성이 있는 쪽이 그 정보에 대한 책임을 맡고, 상대방은 자기 파트너가 그렇게 하도록 놔둔다. 만약 양쪽 모두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영역의 정보가 들어오면 둘 중 누가 그것을 담당할 것인지 짧은 협상이 이루어진다. 이런 분산기억 전략들이 결합되면 이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언제나 둘 중 적어도 한 명에 의해서는 확실하게 포착될 수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한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나머지 파트너가 일상생활의 큰 영역이 뻥 뚫려버린 듯 어찌할 바 모르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의 데이터 저장소 중 상당 부분은 자신과 개인적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작은 집단 안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세계를 성공적으로 정리하려면 자기가 거기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원시적 유산 중에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고, 집단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어느 한 집단에 소속되어 혼자 남겨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 차이는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다 보면 신경화학적 변화가 찾아와 환각, 우울, 자살 충동, 폭력적 행동, 심지어 정신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고립은 흡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심장마비와 사망의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혼자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언제나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실험에서 통근자들에게 이상적인 통근에 대해 물어보았다. 통근할 때 옆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쪽을 선호하는가, 아니면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쪽을 선호하는가? 그러자 압도적 다수가 차라리 혼자 앉아 있는 쪽이 좋다고 했다.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다음 통근자들을 혼자 앉아서 고독을 즐기거나, 아니면 옆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도록 배정해서 그 결과를 살펴보았다.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던 통근자들은 통근시간이 훨씬 더 즐거웠다고 보고했다. 이것은 성격 차이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외향적이든 내성적이든, 개방적이든 무뚝뚝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결과가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종이 등장한 초기에는 포식자와 다른 부족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제한된 식량 자원을 공유하고, 아이를 키우고, 부상당했을 때 보살핌을 받으려면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갖는 것은 깊은 생물학적 필요를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관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앞쪽 전전두엽피질anterior prefrontal cortex의 뇌 영역들을 활성화시킨다. 이것은 또한 편도체를 비롯해서 뇌의 변연계에 있는 감정 중추들을 활성화시키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도와준다. 쉽게 말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 위안이 된다.”

 

2)

“우리의 뇌는 귀인 오류를 범하는 선천적 기질이 있고, 험담을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외부인에 대한 선천적인 의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인에는 우리와 다른 모든 사람이 해당된다. ‘우리와 다르다’라는 것은 종교, 피부색, 고향, 출신 학교, 수입 수준, 소속 정당, 즐겨듣는 음악의 종류, 응원하는 스포츠 팀 등 여러 가지 차원과 특성으로 설명된다.”

 

3)

“다른 사람 일에 끼어들지 않으려는 이런 경향은 서로 연관돼 있는 세 가지 강력한 심리적 원리에 근거한다. 첫 번째 힘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순응하려는 강력한 욕구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사회집단 안에 받아들여지고, 상냥하고 협조적으로 보이리라는 희망 때문에 생기는 욕구다. 두 번째 힘은 사회적 비교다. 우리는 타인을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을 살펴보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 힘은 책임감 분산이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 천부적으로 새겨져 있는 공정함에 대한 욕구, 무임승차를 벌하려는 마음에 기반을 둔다.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있는데 뭐 하러 괜히 위험을 자초한담? 나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

 

4)

"주차금지구역에 다른 사람의 차가 주차된 것을 보면 덩달아 그곳에 주차하는 사람이 많다. 개 배설물을 치워야 하는 법을 무시해버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도 역시 무시하기 십상이다. 이런 현상은 부분적으로는 진화의 산물로 볼 수 있는데, 우리 뇌에 선천적으로 새겨져 있는 형평성과 공정성의 감각 때문이다(심지어 세 살배기도 불평등에 반응을 보인다)."

 

 

우리의 고질적 문제인 ‘미루기’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모든 미루기는 자기조절, 계획, 충동조절 중 어느 하나나, 이 세 가지 모두에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전반적인 자신감의 결여든, 이 특정 프로젝트 때문에 탄로 날 자신감 결여든 간에 우리가 일을 미루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평판이 위험에 내몰리는 것을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심리학 용어로는 자존심 보호 술책)” “도전이 크면 불안으로 이어지고, 도전이 낮으면 지겨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미루기’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중간인 몰입 상태를 잘 이용해야 한다.

장수 사회가 되어가는 만큼 나이 탓만 할 수도 없다. 서른을 넘기면 반응 시간, 인지처리 속도, 대사 속도가 느려진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느려진 생각의 속도 때문에 세상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인상을 받는다. 종합 비타민보다 정신적 활력을 유지하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노화를 늦추는 방법이다.

 

다시 한 번 더 정리하면,

 

“정리는 우리 모두를 삶의 다음 단계로 이끌어준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낡은 습관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청소가 필요한 영역들을 의식적으로 자세히 살펴 확인한 후에 체계적이고 주도적으로 청소를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가끔은 우주가 우리를 대신해서 이런 일을 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뜻하지 않게 친구, 사랑하는 애완동물, 사업상의 거래를 잃기도 하고, 세계 경제가 붕괴되기도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뇌를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상황에 기분 좋게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내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보통은 그보다 더 좋은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해주었다. 낡은 것을 없애면 무언가 훨씬 멋진 것이 그 자리를 채워준다는 신념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관건이다.”

(p552)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면 되겠지 막연히 생각하고 행동해서는 우리 인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리된 마음’ 그것이 우리를 변화로 이끌고 살아갈 힘이 된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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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08-19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왓 ~ 뇌를 잘 알아야 탓하지도 않고 또 왜 이렇지에 대해서도 알게되는 것 같아 관심이 많은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AgalmA 2019-08-19 00:24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책이에요. 머릿속 원리 이해도 되고 생활 교정 방법도 알려줘서 유용했습니다.
‘나 자신을 알자‘에 참 부합하는 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