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위로할 것 - 180 Days in Snow Lands
김동영 지음 / 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독후감을 쓰다 보면 느낍니다. 저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꽤 많은 선입관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서평을 쓰는 일은 그래서 저 스스로에 대한 발견을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 시작할 때 검열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문장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여행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문장을 처음 쓰는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원래잠언집이나 명언집이나 자기계발서나 암튼 이렇게 분류되는 책들에 대해서 선입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책들을 읽게 된 후 감상을 쓸 때는 으레 저런 식의 문장을 썼던 것 같습니다.

 

연애를 하는 상대와 다투게 될 때 나는 원래 이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을 해버리면 그 때부터는 대화가 잘 되지 않습니다. ‘원래 어떻다라는 대화나 타협의 여지를 차단하기 쉬우니까요. 이리하여 저는 <나만 위로할 것>의 서평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자기반성을 합니다.

 

사실 처음에 쓰려던 저는 원래 여행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에는 디테일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플로베르의 <플로베르의 나일 강>이나 기형도 시인이 쓴 <짧은 여행의 기록> 같은 여행기는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원래 동시대의 나름 유명인이 쓴 여행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쓰면 좀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 근데 또 생선 작가는 제가 라디오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은 아니니까 그것도 좀 애매하긴 합니다. 각설하고 그래서 결론은 <나만 위로할 것>은 생각보다 좋았다는 겁니다. 그것이 꼭 제가 곧 아이슬란드에 여행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곧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갑니다. 작가는 무려 180일을 아이슬란드에 보냈는데 저는 그 기간의 18분의 1 정도로 짧은 여행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가고 싶었고 곧 가게 될 나라에 나보다 먼저, 나보다 오래 머물다 온 사람의 글과 사진이라고 생각해서 더 마음이 열린 것도 아마 맞을 겁니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작가가 일을 그만두고(그만두어지고?) 아이슬란드로 떠난 나이와 지금의 제 나이가 같습니다. 또 이 책은 저와 같은 나이의, 생선처럼 아이슬란드가 좋아서 2번이나 다녀온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기도 합니다. 사실 친구는 책을 선물하면서 제목의 뉘앙스를 패러디 해 그림만 볼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저는 글자까지 빠짐 없이 읽었습니다.

 

<나만 위로할 것>의 좋았던 점은 이 책은 정말 아이슬란드 관광 가이드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오래 머물면서 거의 4계절을 모두 경험했던 작가는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또 그곳에 본의 아니게 감금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슬란드의 몇 대 관광지만 잔뜩 찍어서 싣지도 않았고, 그저 아이슬란드에 가서 그곳에 있는, 혹은 그곳에 간 자신에 대해서 썼습니다. 간혹 간지러운 부분들도 없지 않지만 그런 간지러운 부분들도 제가 충분히 자연스럽게 읽어 넘길 정도였습니다. 간지러운 것은 작가가 이 나라를 정말 애정하고, 또 아직은, 그렇게 좋아하던 나라에 가서 그 정도 감상에는 빠져도 되는 나이(저와 같은 나이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더 나이 들면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ㅠㅠ)인 듯 합니다.

 

만났던 사람들, 머물렀던 공간들, 그리고 그 틈틈이 비치는 실직자로서의 불안감들을 지나치게 꾸미지 않고 풀어놓았습니다. 누구나 갖고 살 그 불안감은 단순히 실직에 대한 불안감만은 아니기에 그만 위로할 수는 없지만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 들었습니다.

 

특히 레이캬비크에서 매일 가던 커피숍에서 같은 제품 시리얼키 때문에 만났던 여성(이름을 잊었습니다)에 관한 얘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이고, 또 인생의 신비지! 그랬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시규어로스의 헤이마’ DVD를 보던 그 때부터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그 나라, 너무 멀다고 생각했던 그 도시의 이야기여서 보는 내내 기분 좋은 설렘을 줬습니다. 책은, 어떻게 갖게 되어서 언제 어떤 마음으로 읽는가 하는 것도 굉장히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생선 작가님, 저도 곧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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