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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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이 소리지르고 양손을 비틀며 협박해대도 나는 내 지하실을 빠져나와 발길 닿는 대로 다른 지하 세계들을 찾아간다. 그중에서도 중앙난방 제어실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보러 가는 게 가장 즐겁다. 개들이 개집에 매여 있듯이 일에 매여 있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을 통해 배운 것들을 가지고 동시대 역사를, 그러니까 일종의 사회학적인 앙케트를 쓴다. 극빈층이 점점 줄고 있다는 것과 하층 노동자들이 교육을 받게 된 한편으로 대학 졸업자들이 이 노동자들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도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단연 하수구 청소부들이다. 아카데미 회원이었던 두 사람은 프라하의 하수구와 시궁창에 대한 책을 쓴다. 포드바바 하수처리장으로 흘러드는 배설물이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판연히 다르다는 걸 내게 가르쳐준 것도 그들이다. 요일별로 콘돔 배출량에 따른 배설물의 유량을 그래프로 작성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동네 사람들이 성생활을 가장 많이 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인간의 전쟁만큼이나 전면적인 회색 쥐들과 검은 시궁쥐들의 전쟁과 관련해 그들이 쓴 기사였다. 그 전쟁 중 하나가 회색 쥐들의 완벽한 승리로 막을 내린 참이었다. 쥐들이 지체 없이 두 개의 무리, 두 개의 종족, 두 개의 조직화된 사회로 나뉘어 싸웠던 것이다. 프라하의 하수구와 시궁창에는 쥐들이 생사를 건 대전쟁을 벌이는데, 승리하는 쪽이 포드바바까지 흘러가는 배설물과 오물을 전부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변증법의 논리대로 승자가 다시 두 진영으로 나뉜다는 것도 그 고매한 하수구 청소부들이 내게 알려주었다.

#보후밀흐라발 #너무시끄러운고독 중에서

밀란 쿤데라가 극찬했다는 등등 수사가 화려해서 어쩔 수 없이 기대하며 읽었는데, 별 감흥이 없다. 조금 전 읽은 책에서 로베르트 무질이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랬다고 증명한 것처럼, 천재도 너무 많고 걸작도 너무 자주 탄생한다. 이런저런 신문사에서 올렸다는 화려한 말의 상찬은 그렇다 치고 밀란 쿤데라의 치켜세움이 가장 의아한데, 아마 본인은 체코 땅을 떠나 프랑스어로 글을 썼는데 보후밀 흐라발은 끝까지 체코에 남아 체코어로 글을 썼다는 데 대한 미안함, 혹은 의무적인 존중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아니면 위대한 걸작을 알아보는 눈이 나에게 없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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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는 자 을유세계문학전집 45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최애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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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대화는 아주 화기애애하게 계속되었다 ㅡ 마티아스의 취향에는 약간 길었다. 그의 대화 상대자는 언제나 그와 전적으로 같은 의견으로 시작하고는, 필요에 따라 그의 문장 표현들을 설득된 어조로 반복하면서 곧바로 의혹을 도입하고, 다소 단정적인 정반대의 주장을 통해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묘한 응답 방식을 갖고 있었다.

#알랭로브그리예 #엿보는자 (혹은 #여행자) 중에서


나는 일생을 명확한 것보다 모호한 것, 이해되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보다 너무 멀리 있는 것들에 마음을 이끌리며 살아온 것 같다. 명확해질 거라 기대하고 알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언젠가 손에 닿을 거리만큼 가까워질 거라 헛된 꿈을 꾸면서.

마찬가지로 모든 점에서 모호하고 알 수 없고 이야기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책에 매혹 당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대략 반 년 전에 읽었다. 때문에 희미한 기억에 기대어 2부와 3부를 읽는 내내 안개가 가득 내려앉은 섬마을의 수풀 속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반복되는 이미지와 반복되는 사건과 그 모든 것들의 끊임없는 재구성에 대해 나름의 재해석을 하면서, 3부를 마저 다 읽은 후 다시 1부를 읽으면 조금 더 선명해진 무언가를 손에 잡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1부에 등장하는, 무의미해보이는 모든 사물과 묘사가 2, 3부와 관련되어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그러나 그 또한 `관련 있어 보임`일 뿐, `관련 있음` 혹은 `연결되어 있음`은 아니어서 결국 아무것도 명확해지지 않고 확실하게 알게 된 것도, 손에 잡은 것도 없는 채로 1부 다시 읽기가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난 또 그 점에 한 번 더 미혹되었다.

책의 제목인 엿보는 자(Le Voyeur)는 원래 여행자(Le Voyageur)였다고 한다. 2부와 3부를 읽기 전의 1부 읽기는 엿보는 자를 여행자로 착각한 상태에서의 나태한 관찰이었다면, 2부와 3부를 읽고 다시 읽는 1부는 여행자인 줄 알았던 엿보는 자의 엿보기에 동참하는 행위가 된다. 물론,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엿보기인 만큼 즐겁다기보다는 불안하고 설렌다기보다는 긴장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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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터 Littor 2016.8.9 - 창간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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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으로 계간문예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창간된 릿터는 어떤 책일지 안 궁금해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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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수학 바로풀기 - 구멍 난 개념을 메워 주면 문제가 바로 풀린다
박태균 지음 / 바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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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풀기 정말 좋은 공부앱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이제 책까지 만들었네요! 완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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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감정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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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해 쓴 제발트의 글을 읽는 일은 실제로 여행하는 일과 같다. 대부분의 풍경, 대부분의 사람과 대부분의 사물을 그냥 스쳐지나가듯 많은 문장들을 그냥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숨까지 멎고 멈추게 되는 순간, 호흡, 문장들이 발견되고, 그를 통해 제발트가 안내한 여행이 비로소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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