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는 자 을유세계문학전집 45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최애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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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대화는 아주 화기애애하게 계속되었다 ㅡ 마티아스의 취향에는 약간 길었다. 그의 대화 상대자는 언제나 그와 전적으로 같은 의견으로 시작하고는, 필요에 따라 그의 문장 표현들을 설득된 어조로 반복하면서 곧바로 의혹을 도입하고, 다소 단정적인 정반대의 주장을 통해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묘한 응답 방식을 갖고 있었다.

#알랭로브그리예 #엿보는자 (혹은 #여행자) 중에서


나는 일생을 명확한 것보다 모호한 것, 이해되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보다 너무 멀리 있는 것들에 마음을 이끌리며 살아온 것 같다. 명확해질 거라 기대하고 알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언젠가 손에 닿을 거리만큼 가까워질 거라 헛된 꿈을 꾸면서.

마찬가지로 모든 점에서 모호하고 알 수 없고 이야기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책에 매혹 당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대략 반 년 전에 읽었다. 때문에 희미한 기억에 기대어 2부와 3부를 읽는 내내 안개가 가득 내려앉은 섬마을의 수풀 속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반복되는 이미지와 반복되는 사건과 그 모든 것들의 끊임없는 재구성에 대해 나름의 재해석을 하면서, 3부를 마저 다 읽은 후 다시 1부를 읽으면 조금 더 선명해진 무언가를 손에 잡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1부에 등장하는, 무의미해보이는 모든 사물과 묘사가 2, 3부와 관련되어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그러나 그 또한 `관련 있어 보임`일 뿐, `관련 있음` 혹은 `연결되어 있음`은 아니어서 결국 아무것도 명확해지지 않고 확실하게 알게 된 것도, 손에 잡은 것도 없는 채로 1부 다시 읽기가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난 또 그 점에 한 번 더 미혹되었다.

책의 제목인 엿보는 자(Le Voyeur)는 원래 여행자(Le Voyageur)였다고 한다. 2부와 3부를 읽기 전의 1부 읽기는 엿보는 자를 여행자로 착각한 상태에서의 나태한 관찰이었다면, 2부와 3부를 읽고 다시 읽는 1부는 여행자인 줄 알았던 엿보는 자의 엿보기에 동참하는 행위가 된다. 물론,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엿보기인 만큼 즐겁다기보다는 불안하고 설렌다기보다는 긴장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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