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03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에 이어 금세 새로운 서평 이벤트로 찾아왔습니다. 


서평단 책을 소개하기 전에 한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윤고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혈기가 넘치는(!!) 젊은 소설가라는 점입니다.


이번 서평단의 주인공은 바로

2013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인 이재찬

「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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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올해의 작가상「펀치」는 내신 성적 5등급, 외모도 5등급인

18살 여고생 방인영이 40대 계약직 공무원 ‘모래의 남자’에게 부모 청부살해를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습니다. 


방인영은 재력과 명예를 고루 갖췄지만, 재벌총수와 사회 고위층의 비리를 변호하는

아버지를 경멸하며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방 변호사'라고 칭합니다. 


또한 자신의 성적에 열을 올리며, '방 변호사'에게 사랑받기 위해 몸무게 유지에

여념없는 어머니에게도 등을 돌립니다.


방인영은 '딸을 외고 보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계급이기에 억울함'(p.12)을 가진 부모에게,

혈연이기에 잔존할 수 밖에 없는 자잘한 애정까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문제의식 뿐만 아니라, 이재찬 작가만의 경쾌한 말맛과 뒷통수를 때리는 신선한 시각은

책을 덮을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속도감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2013 오늘의 작가상 심사평 중_

이 소설이 지닌 온갖 장점 중에서 이른바 ‘타고난 감각’ 혹은 ‘선천적 재능’으로 부를 만한 것 하나만을 꼽으라면, 나로서는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흑마술’이라 대답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사기다. 그러나 이 작가가 제대로 사기를 쳐 주어서 나는 기뻤다.

—심사평 중에서|박형서(소설가)

 

이야기가 경쾌하고 문장이 좋다. 문장들을 읽어 가다 보면 사물(사태)의 본질을 재빨리 포착해서 이를 발랄하게 드러낼 줄 아는 감각이 느껴진다. 우리 문단에 의미 있는 한 방을 날려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심사평 중에서|정영훈(문학평론가·경상대 국문과 교수)




2013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 이재찬 작가, 그는 누구인가?_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에서 「버스, 정류장」이 당선되었고,
 이 작품은 2002년 3월 김민정, 김태우 주연의 동명 영화(명필름 제작)로 개봉되어 호평을 받았다. 2013년 장편소설 『펀치』로 제37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장편소설 『안젤라 신드롬』으로 제5회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을 수상했다.

영화 「버스, 정류장」을 보신 분들에게 
더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 


2013 오늘의 작가상 이재찬 장편소설 <펀치> 중_
한국 여자의 몸매는 전통적으로 '상체 빈약, 하체 튼튼'이다. 
걸 그룹들은 그런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른 '가슴 육덕, 하체 부실'이다.
몸매로는 신이 창조한 역사를 어겼지만 걸 그룹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남성이 창조한 여성의 역사에 고스란히 복종하고 있다.
"오빠 나 좀 봐. 나를 좀 바라봐." 이건 질투심이 아니다. p.20

"1등급이 아니면 기회조차 잡지 못해."
방변호사가 한 말이다. 1등급은 유전자와 부모의 재산이 결정하는 거다.
주인공이 될 수 없기에 난 궤도에서 이탈할 테다. 
안그러면 내 인생은 보나 마나 평생 들러리일테니까. p.25 

엄마와 방 변호사도 시장에서 만나 흥정한 거 아닌가.
각자의 가치를 높인 후 적당한 소비자를 물색하고 판매하기 전에
스스로 사랑을 세뇌한 후 결혼한 거 아닌가.
열성 유전자만 물려준 건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사랑이 충만했다면 우성유전자들이 내가 됐을까. p.56

맨발로 엘리베이터까지 쫓아 타면서 동생한테 쌍욕을 퍼부은 
방 변호사는 누가 뭐래도 자타 공인 대한민국 엘리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전형적인 한국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p.57


이재찬 작가만의 예리한 시각과 경쾌한 말맛이 느껴지시나요?


2013년 올해의 작가상「펀치」를 읽고 
서평을 써주실 분 들은 아래의 양식으로 해당 날짜까지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_
★ 응모 방법 :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 완료
★ 응모 기간: 2013.10.25 - 2013.11.05 (12일간)
★ 추첨 인원: 20명
★ 서평단 발표: 2013.11.06 (수) 오후
★ 서평 기간: 2013.11.09 - 2013.11.23 (2주간)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펀치-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10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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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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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두 권짜리 책을 읽을 때는 2권까지 마저 읽고 감상을 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괴]는 1권까지만 읽은 지금 한 번쯤 정리를 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2권부터 전개될 내용이 1권과는 명확히 다를 거라고 예상됩니다. 1, 2권이 단순히 분량으로만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각각의 역할도 명확해 보입니다.


1권은 말 그대로 2권에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서막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1권의 말미에 구체적인 사건이 언급되고 있지만 그것은 사건의 겉모습일 뿐 속사정은 아닙니다.

1권까지만 읽고 먼저 감상을 써보기로 한 데에는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에 대한 약간의 실망의 영향도 있습니다. 초반에 인물들에 집중한 이야기는 히라노 게이치로 답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소위 '사건'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날 때부터는 왠지 전형적인 일본의 범죄소설과 다르지 않다는 실망감이 저도 모르게 생겼습니다. 

현대의 범죄라는 것은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과도하게 내재된 분노를 기반으로 한다든가, 그 분노가 단순히 분노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에게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든가, 표출방식이 정말 무섭도록 잔인하고 끔찍하다든가 하는 특징들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일본에서 화제가 되는 극악무도한 범죄들은 또 특유의 성질들을 더 갖고 있습니다. 막상 말로 하자니 어떤 식으로 써야할지 어렵게 느껴지지만, 일본에서 특별히 화제가 되는 범죄들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폭력과 억압을 특정 개인이 수렴하는 방식이 더욱 나르시시스트적이고, 그래서 그 분노가 '미화'라는 방식으로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지적(intellectual)'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더 소름끼칩니다. 순간적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투박해서 차라리 인간적이라면, 자신이 느끼는 분노를 차곡차곡 모아서 그것을 가장 끔찍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실행하는 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말로 무섭습니다.

이것이 일본에서 생산된 많은 영화나 소설 등의 콘텐츠에 의해 생긴 편견인지, 그것도 아니면 제가 하필이면 본 콘텐츠들이 대부분 그런 경향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는 저도 분명히 말하기는 힘듭니다. 어쨌든 저에게는 일본의 범죄에 대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선입견들을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속 범죄양상에서도 비슷하게 느꼈고 결국은 히라노 게이치로 역시 이렇게 자극적인 소재와 묘사 방식을 선택했구나 하는 약간의 실망감을 느낀 겁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ㅡ버스에 타고 있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난데없이 칼을 빼들고 날뛴다. 승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응? 어쨌거나 그 남자가 빨리 버스에서 내려주길 간절히 바라겠지. 밖에서는 누구를 죽이든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밖에서 누군가를 죽여주면 기뻐할 거야. 다행이다, 버스 안에 있었던 덕분에 살았다, 하면서. ㅡ아무 일 없는 대낮에도 살인이 은밀하게 기대되고 있단 뜻이야! 내 말 알겠나? 살인은 결코 근절되지 않아. 그렇다면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일어나게 하는 수밖에 없지. p.317

'히라노게이치로마저 이토록 자극적인 소재와 묘사를 선택했다는 것'에 대한 저의 작은 실망은, 사실 너무 적나라한데 차마 절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어서 나온 반작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직 2권을 남겨놓은 저는 기대가 더 큽니다. 1권에서 드러난 잔혹범죄의 양상은 여느 범죄소설의 끔찍함과 다를 바 없이 그저 자극적으로만 느껴지지만, 이 모든 게 다 2권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만의 시각으로 그 이면을 보여주고 사람을 보여주고 삶을 보여주기 위한 치밀한 계산 아닌가 하는 기대 말입니다.

앞에서 실망 어쩌고 한 것도 히라노 게이치로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아서 그렇지 사실 따지고 보면 본격 범죄가 일어나기까지 작가가 인물들에 들이는 공이 상당합니다. 

특히, 작품의 초반에 료스케가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주변 공기를 느끼는 방식은 상당히 철학적이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의인화라는 방식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공기를 시각적으로, 와닿게 표현하는 데는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사변()의 영역을 체험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옵니다.

또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 탓인지, 잔혹범죄가 아닌 인간관계에 대해서 쓴 것도 그 어떤 범죄에 대한 묘사보다 더 을씨년스러움이 묻어납니다. 오랫동안 같이 산 부부, 혹은 그보다는 적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의심이 개입된 부부, 오랫동안 열등감을 주고 받은 형제 관계가 냉정하게 바라볼 때 그 얼마나 싸늘해질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어떤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용의자를 추려나가는 것도 어쩌면 그러한 관계의 본질에 있겠지요.

가즈코의 굳은 표정 위에는 목욕 후 바른 화장수의 흔적이 주눅든 기색도 없이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더없이 안온하고 예사롭고 일상적인 윤기이며, 그녀가 남편과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베풀어온 "무언가"였다. 그에게는 그것이 자신과 아내 사이에 놓인 무한에 가까운 거리로 느껴졌다. p.354

한 번에 그 뜻이 확 와닿지 않는 '결괴(決潰)'라는 제목은 '방죽이나 둑 따위가 물에 밀려 터져 무너짐'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1권은 '터져 무너짐'을 주로 보여줬습니다. 2권에서는 그것이 어찌하여 '물에 잔뜩 밀려' 터져 무너지지 않고는 안 되었나를 더 촘촘하게 보여줄 것 같습니다. 읽기 전에 벌써 조금은 두렵고 무섭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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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피 블랙 캣(Black Cat) 13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非아이슬란드식 살인에 대한 소설들을 주로 쓰고 있는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두르 반장 시리즈 중 한 작품입니다. 국내에 번역된 세 작품 [저주받은 피], [무덤의 침묵], [목소리] 중에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소설입니다. 


저는 [무덤의 침묵]을 먼저 읽었는데, 물론 에를렌두르를 둘러싼 개인사나 또 함께 일하는 후배 형사 등의 캐릭터에 대한 파악을 위해서는 발간된 순서대로 읽는 게 가장 좋겠지만, 순서를 바꿔 읽어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에를렌두르 시리즈 전권이 국내 번역된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작품을 보지 않고 이 중 하나만 보더라도 캐릭터나 그 캐릭터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게 설명이 돼 있습니다. 

이 책은 약 40여 일 전, 아이슬란드로 출발하는 전날 밤에 읽었습니다. [무덤의 침묵]을 읽고 좋아서, 레이캬비크에 가면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작가를 만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말입니다. 전체 인구 30만의 나라에 간다고 제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었지만 그 생각만으로도 설레긴 했습니다.

[저주받은 피]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한 노인이 그의 집에서 머리에 재떨이를 맞고 사망한 채 발견됩니다. 사체 옆에는 '내가 바로 그다'라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습니다. 살인자를 찾기 위해서는 피살자에 대해 조사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가 왜 누군가에게 의해 강제로 삶을 종료당해야 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와 그의 삶의 궤적을 쫓아야만 합니다.

피살자에 대해 조사하던 에를렌두르는 그가 과거 강간으로 고소당한 전력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와 그에게 강간을 당한 피해자들, 그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된 친구, 당시 강간 사건을 조사한 형사, 피해자의 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가 왜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가 밝혀집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실과 또다른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소설은 이런 측면에서 추리소설로서의 묘미를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새로운 등장인물의 등장과 함께 독자가 예상했던 방향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비틀면서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는 방식은 정통 추리소설의 방식에 굉장히 충실합니다.

그러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작품의 미덕은 그 과정에서 드러내는 사람들의 고통과 그 비극에 대한 진지한 위로에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읽다보면 '저주받은 피'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단순히 다섯 글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피 속의 저주가 얼마나 비극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맞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지고, 평범했던 말 그대로 범인(凡人)이 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犯人)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더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은 피해자가 죽어 마땅하다는 비난도 아니고, 살인자는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고 인정하는 면죄부도 아닙니다. 그저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겪지 않아도 됐던 비극에 대한 이해와 공감입니다.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끔찍한 범죄를 이야기하면서도 이렇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위로를 전할 줄 아는 작가입니다. 손이 찬 사람이 사실은 마음이 따뜻하다고 하는 말은, 손이 차가운 제가 좋아서 믿는 말이지만, 이 말을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이 사실은 마음이 굉장히 뜨거운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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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이것은 소설입니까.

라고 할만큼 아주아주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소설입니다. 작가의 전작인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영화제목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와 미묘하게 달라 늘 헷갈리는 이 제목!) 역시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보여줬습니다만, [누구]는 정말이지 현실의 인물과 대화들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작품입니다.

아사이 료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직을 했다고 들었는데, 짐작해보건대 이 작품은 길지 않았을 그의 '취준생' 시절 동안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쓴 것 같습니다. 작가다운 관찰력으로 보고 들은 이야기로 여기 소설의 주인공처럼 몇 년씩 취업준비를 하지 않고도 이렇게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 것이지요.

저 또한 첫 직장을 관두고 문턱이 높은 곳을 목표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구직활동한 경험이 있고, 모르는 사람과 주로 이야기하는 트위터보다는 아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페이스북을 주로 하긴 하지만 적극적인 SNS 사용자입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낯설고 새롭다기보다는 굉장히 익숙했다고나 할까요.

이 책을 읽는 것은 구직활동을 하던 때의 고민들, 과연 나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자기소개라는 명목으로 한껏 나를 포장하면서 느끼는 자괴감, 때로는 사상 검증까지 받아야했던 면접 경험 등을 고스란히 되짚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친숙하고 익숙한 이야기들인데도 저는 이상하게 이 책이 쭉쭉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다기보다는 말그대로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서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누군가의 '취업준비 수기'를 읽는 기분이었달까요.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참신한 청춘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며 전후 최연소 나이로 나오키상을 받았지만 저는 그러한 평가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물론, 문학에서의 '참신함'이란 이전에 쓰여지지 않았던 것을 쓰는 것에 큰 가치를 둡니다. 이전에 이토록 적나라하게 구직활동을 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 대해서 쓴 작품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참신하다'는 평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가까운 과거에 구직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상합니다. 열일곱살들의 이야기와 감성을 섬세하게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는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를 읽었을 때는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공감이 잘 안 되고 그 섬세함도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다고 썼었는데 말입니다.

곰곰히 되짚어보면, [누구]의 참신함에 대해서는, 멀지 않은 과거에 너무 직접적으로 고스란히 체험해본 것을 너무 그대로 보게 돼서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고,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의 섬세함에 대해서는, 그 시기를 지난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시절의 감정이나 감성이 떠오르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사이 료의 작품에 대해서는 이런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가, 아마 그 적나라함과 사실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은유나 상징이 강하다면 독자가 스스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꼭 내가 겪어본 일인지 아닌지, 그 시절을 지나왔는지 아닌지와 상관 없이 공감도 하고 감동도 하고 또 다른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사이 료의 작품은 굉장히 구체적이기 때문에 툭툭 읽다가 걸리는 부분이나 와닿지 않는 부분이 좀 더 많이 생기고 그것이 인상깊게 남는다고 할까요.

아사이 료의 작품을 두 번째로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대체로 어떤 작가의 작풍을 좋아하는 것이 독자라면 저마다 있듯이, 아마 아사이 료 작가의 작풍은 저의 취향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상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대체로 청춘의 시기도, 취업준비생의 시기도 오래전에 지나왔을, 이제는 한 국가의 문단에서 권위를 인정받으며 나오키상이나 스바루상의 심사위원이 되어 있는 세대의 작가들에게 이런 이야기 자체가 낯설고 새롭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지나온 청춘은 대체로 아릅답게 느껴지고, 또 이미 훌쩍 지나와버렸기 때문에 10대나 20대 사이에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현실이나 감성은 대체로 참신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감정표현이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요. 또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화나 상황 등을 옮겨오는 방식 역시 기성 세대에게는 참신하게 다가갈 것 같고요.

어쨌든 이 작품이 참신하다는 평을 받게 한 또 다른 포인트인 트위터를 통해 결국은 서로의 이중성이 드러나고 사실은 위태로웠던 관계들이 무너지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그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SNS의 사용자이지만, 이메일 주소를 통해 SNS 계정을 찾아낸다거나 포털 검색창의 자동완성 기능으로 어떤 사람을 파악하고, 인간의 이중성이나 천박함을 드러내는 부분은 통쾌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리얼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치졸함을 실제로 지켜보고 있는 듯해 민망하기도 하고,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경험담을 듣고 있는 것 같아 긴장감도 느꼈습니다. 

아사이 료가 각광받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적나라한 리얼리티를 사소한 일상을 쓰며 극대화하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에 대한 저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서 아사이 료가 그러한 장기를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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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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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울었습니다. 예전에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울었던 것에 약간 못 미치게 운 것 같습니다. 그때는 만성이던 중이염이 다시 심해져 병원을 찾아야 했을 정도로 엉엉 울었거든요. 미미여사의 [화차]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히사에 아줌마가, 너무 많이 울면 중이염 걸리니까 참으라고 했어." 


엄마나 아빠는 항상 우리에게 커다란 슬픔이 담긴 우물 같은 존재인가 봅니다. 우리 엄마 아빠를 떠올려도 울게 되고, 남의 엄마 아빠 이야기를 들어도 어김없이 매번 울게 되니 말입니다. 아무리 그 슬픔을 퍼내고 퍼내도 왠지 서럽고 슬픈 것은, 아마도 관계 자체에 내재하는 커다란 무언가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주었고 우리는 도저히 그들에게 되돌려줄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너무너무 크고 많은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들은 우물 속의 그 슬픔을 퍼내기보다는 더해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책 뒷날개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조금도 두렵지 않단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 보는 거야 (p. 135)

둘째 날, 양페이와 그의 전부인 리칭이 만나는 순간까지만 해도 이 말은 둘 중 한 사람이 한 말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셋째 날,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직 이 문구가 나오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양페이 아버지가 양페이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요. 

 

사후 7일 동안 양페이는 살아 있을 때 깊고 얕게 연을 맺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전체 장에 걸쳐 골고루 아버지와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주로 아버지와의 기억을 담아놓은 셋째 날의 분량이 가장 길기도 합니다. 양페이와 아버지의 사랑은, 책을 다 읽은지 보름이 지난 지금도, 양페이와 그 아버지를 떠올리기만 해도, 그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아름답고 큰 사랑입니다.

가까이에 있는 것일수록 빨리 사라지고, 멀리 있는 것일수록 늦게 사라지는 게 이상해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그런 거예요?"
아버지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구나."
p. 106

아버지가 불치병에 걸려 집을 나간 뒤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자 다섯 노인의 눈가가 붉어졌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너무 거칠어서인지 다섯 명 모두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p.141

쓰며 보니 저에게 [제7일]은 '눈물'이네요.

양페이가 죽어서 리칭과 재회해서 나누는 대화가 첫 고비였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는데 마침 대화가 무르익는 장면에서 내려야하지 않았다면, 저는 바보같이 그곳에서 울고 말았을 겁니다. 죽는 건 슬픈 거지만, 헤어지는 건 슬픈 거지만, 양페이는 묘하게 슬픈 사람이라서 그가 하는 이별과 그가 겪은 죽음은 이상하게 곱절로 더 슬픕니다. 

양페이나 양페이의 아버지, 그리고 하오아저씨 부부처럼 말그대로 선한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기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마땅한 속세의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렇게 그들을 대신해서 서러운 감정이 복받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설사 그들은 그대로 행복했고 아무것도 바라거나 원망하는 것이 없다해도, 이미 책을 읽고 있는 저는 그들의 그 자연스럽고 욕심 없는 삶을, 가난하고 어려운 삶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지경이 된 것 같습니다.
 
양페이의 아버지는 기차선로에서 발견한 양페이를 의심 없이 불만 없이 자신의 아들로 키웁니다. 그래서인지 양페이는 후에 재회하는 친부모보다는 양아버지인 양진뱌오를 더 많이 닮았습니다. 욕심 없이 소박하고 착하며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다소 소심해지는 면까지도 비슷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데 그 유전자만을 닮는 건 분명 아니지 싶습니다.

양진뱌오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입니다. 장가도 가지 않은 젊은 그의 인생에 그렇게 갑자기 끼어든 양페이를 한 순간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저희 엄마들도 다들 그랬다는 겁니다. 

이제 막 아이들을 낳아 기르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하도 육아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저도 짐작과 공감이 가는 바, 엄마에게 얼마 전 물어봤습니다. 엄마는 힘들지 않았는지, 예전에는 남편들이 육아나 가사일은 나몰라라 했는데 원망스럽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단 한 순간도 저희들 때문에 몸이 힘들다거나 도망가고 싶다거나 잠시라도 혼자 쉬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새벽에 울어도 깨서 함께 안아주거나 힘들겠다고 토닥여주지 않는 아빠를 원망해본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주일만 혼자 있고 싶다거나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을 흉보고자하는 것은 결코 아니고요, 단지 어떤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게 됐습니다.

양페이의 아버지는 그렇게 갑자기 양페이의 아버지가 되고서도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심지어 양페이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했을 때도 양페이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저 그는 양페이 친모의 말대로 굉장히 좋은 사람입니다. 실제로 만나기 쉽진 않지만 절대로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굉장히 좋은 사람' 말입니다.

넷째날, 다섯째날, 여섯째날까지도 양페이는 계속해서 속세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실제로 이웃이었던 사람들도 있고, 얕게 연을 맺었던 사람들도 있고, 단순히 뉴스에서 소식을 접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입니다. 죽어서도 돈이 없어 매장되지 못한 사람들이죠.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양페이의 단 한 가지 관심은 아버지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제 눈물도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울고 또 울고, 어느 순간은 너무 서러움이 뱃속부터 밀려올라와 엉엉 끄윽끄윽하고 울면서도 제 맘 한켠에는 또 이런 의심이 피어올랐습니다.

위화라는 이 사람, 나를 울리려고 작정을 했나. 

소위 '신파'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나같이 구구절절한 사연들도 그렇거니와 어쩜 그렇게 마침 죽기 전에 관계 있었거나 소식을 들었던 그 사람들을 딱딱 만날까, 하는 지나친 우연의 남발 때문에 다소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너무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고, 모든 사건들이 다 너무 특별합니다. 그래서 재미와 감동이 있으나 그저 눈물을 빼려고 작정한 신파는 아닌가, 의심을 해보았습니다.

결론은 아직 유보입니다. 위화 작가의 작품은 [제7일]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정말로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자극하고 싶어 사건과 상황들을 과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판단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분명한 것은, 영리하고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주변의 착하지만 가난한 인간 군상들, 그리고 그 보통의 인간들이 겪어내야하는 사회의 부조리와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들을 아주 적절히 엮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사건들 중에는 도저히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일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는 부조리의 변주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죽은 사람들을 통해 그 사건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인지 그것이 심각하게 이야기되기보다는 관조적인 유머로 승화됩니다.

다만 그런 사람과 사건의 연결고리들이 너무 매번, 많이 등장하는 바람에 조금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온 인생으로 양페이를 키워내고도 막상 자신이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사라져버린 양아버지 양진뱌오와 결국은 아버지를 찾아내고만 양페이는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지만 또 어딘가에는 분명 있을 마음들이라고 생각하면, [제7일]을 읽으며 그토록 서러웠던 울음들이 아깝지 않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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