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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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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울었습니다. 예전에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울었던 것에 약간 못 미치게 운 것 같습니다. 그때는 만성이던 중이염이 다시 심해져 병원을 찾아야 했을 정도로 엉엉 울었거든요. 미미여사의 [화차]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히사에 아줌마가, 너무 많이 울면 중이염 걸리니까 참으라고 했어." 


엄마나 아빠는 항상 우리에게 커다란 슬픔이 담긴 우물 같은 존재인가 봅니다. 우리 엄마 아빠를 떠올려도 울게 되고, 남의 엄마 아빠 이야기를 들어도 어김없이 매번 울게 되니 말입니다. 아무리 그 슬픔을 퍼내고 퍼내도 왠지 서럽고 슬픈 것은, 아마도 관계 자체에 내재하는 커다란 무언가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주었고 우리는 도저히 그들에게 되돌려줄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너무너무 크고 많은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들은 우물 속의 그 슬픔을 퍼내기보다는 더해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책 뒷날개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조금도 두렵지 않단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 보는 거야 (p. 135)

둘째 날, 양페이와 그의 전부인 리칭이 만나는 순간까지만 해도 이 말은 둘 중 한 사람이 한 말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셋째 날,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직 이 문구가 나오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양페이 아버지가 양페이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요. 

 

사후 7일 동안 양페이는 살아 있을 때 깊고 얕게 연을 맺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전체 장에 걸쳐 골고루 아버지와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주로 아버지와의 기억을 담아놓은 셋째 날의 분량이 가장 길기도 합니다. 양페이와 아버지의 사랑은, 책을 다 읽은지 보름이 지난 지금도, 양페이와 그 아버지를 떠올리기만 해도, 그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아름답고 큰 사랑입니다.

가까이에 있는 것일수록 빨리 사라지고, 멀리 있는 것일수록 늦게 사라지는 게 이상해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그런 거예요?"
아버지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구나."
p. 106

아버지가 불치병에 걸려 집을 나간 뒤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자 다섯 노인의 눈가가 붉어졌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너무 거칠어서인지 다섯 명 모두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p.141

쓰며 보니 저에게 [제7일]은 '눈물'이네요.

양페이가 죽어서 리칭과 재회해서 나누는 대화가 첫 고비였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는데 마침 대화가 무르익는 장면에서 내려야하지 않았다면, 저는 바보같이 그곳에서 울고 말았을 겁니다. 죽는 건 슬픈 거지만, 헤어지는 건 슬픈 거지만, 양페이는 묘하게 슬픈 사람이라서 그가 하는 이별과 그가 겪은 죽음은 이상하게 곱절로 더 슬픕니다. 

양페이나 양페이의 아버지, 그리고 하오아저씨 부부처럼 말그대로 선한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기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마땅한 속세의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렇게 그들을 대신해서 서러운 감정이 복받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설사 그들은 그대로 행복했고 아무것도 바라거나 원망하는 것이 없다해도, 이미 책을 읽고 있는 저는 그들의 그 자연스럽고 욕심 없는 삶을, 가난하고 어려운 삶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지경이 된 것 같습니다.
 
양페이의 아버지는 기차선로에서 발견한 양페이를 의심 없이 불만 없이 자신의 아들로 키웁니다. 그래서인지 양페이는 후에 재회하는 친부모보다는 양아버지인 양진뱌오를 더 많이 닮았습니다. 욕심 없이 소박하고 착하며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다소 소심해지는 면까지도 비슷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데 그 유전자만을 닮는 건 분명 아니지 싶습니다.

양진뱌오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입니다. 장가도 가지 않은 젊은 그의 인생에 그렇게 갑자기 끼어든 양페이를 한 순간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저희 엄마들도 다들 그랬다는 겁니다. 

이제 막 아이들을 낳아 기르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하도 육아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저도 짐작과 공감이 가는 바, 엄마에게 얼마 전 물어봤습니다. 엄마는 힘들지 않았는지, 예전에는 남편들이 육아나 가사일은 나몰라라 했는데 원망스럽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단 한 순간도 저희들 때문에 몸이 힘들다거나 도망가고 싶다거나 잠시라도 혼자 쉬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새벽에 울어도 깨서 함께 안아주거나 힘들겠다고 토닥여주지 않는 아빠를 원망해본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주일만 혼자 있고 싶다거나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을 흉보고자하는 것은 결코 아니고요, 단지 어떤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게 됐습니다.

양페이의 아버지는 그렇게 갑자기 양페이의 아버지가 되고서도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심지어 양페이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했을 때도 양페이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저 그는 양페이 친모의 말대로 굉장히 좋은 사람입니다. 실제로 만나기 쉽진 않지만 절대로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굉장히 좋은 사람' 말입니다.

넷째날, 다섯째날, 여섯째날까지도 양페이는 계속해서 속세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실제로 이웃이었던 사람들도 있고, 얕게 연을 맺었던 사람들도 있고, 단순히 뉴스에서 소식을 접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입니다. 죽어서도 돈이 없어 매장되지 못한 사람들이죠.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양페이의 단 한 가지 관심은 아버지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제 눈물도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울고 또 울고, 어느 순간은 너무 서러움이 뱃속부터 밀려올라와 엉엉 끄윽끄윽하고 울면서도 제 맘 한켠에는 또 이런 의심이 피어올랐습니다.

위화라는 이 사람, 나를 울리려고 작정을 했나. 

소위 '신파'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나같이 구구절절한 사연들도 그렇거니와 어쩜 그렇게 마침 죽기 전에 관계 있었거나 소식을 들었던 그 사람들을 딱딱 만날까, 하는 지나친 우연의 남발 때문에 다소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너무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고, 모든 사건들이 다 너무 특별합니다. 그래서 재미와 감동이 있으나 그저 눈물을 빼려고 작정한 신파는 아닌가, 의심을 해보았습니다.

결론은 아직 유보입니다. 위화 작가의 작품은 [제7일]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정말로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자극하고 싶어 사건과 상황들을 과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판단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분명한 것은, 영리하고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주변의 착하지만 가난한 인간 군상들, 그리고 그 보통의 인간들이 겪어내야하는 사회의 부조리와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들을 아주 적절히 엮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사건들 중에는 도저히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일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는 부조리의 변주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죽은 사람들을 통해 그 사건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인지 그것이 심각하게 이야기되기보다는 관조적인 유머로 승화됩니다.

다만 그런 사람과 사건의 연결고리들이 너무 매번, 많이 등장하는 바람에 조금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온 인생으로 양페이를 키워내고도 막상 자신이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사라져버린 양아버지 양진뱌오와 결국은 아버지를 찾아내고만 양페이는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지만 또 어딘가에는 분명 있을 마음들이라고 생각하면, [제7일]을 읽으며 그토록 서러웠던 울음들이 아깝지 않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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